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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랑그와 파롤과 세상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제일 먼저 맞닥뜨린 괴로운 용어가 저에게는 랑그와 파롤이었습니다. 언어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세운 개념으로 현대 언어학의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랑그와 파롤은 설명도 어렵지만 이해도 간단치 않은 듯합니다. 왜냐하면 랑그와 파롤의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명확히 파악이 안 되는데 번역어를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언어학책에서는 그냥 ‘랑그’와 ‘파롤’이라고 씁니다.   랑그는 머릿속에 있는 공통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각각 ‘사람’이라고 말을 하면 어느 한 소리도 똑같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각 개인이 사람이라고 발음을 할 때마다 소리는 달라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사람이라고 말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랑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개인이 발음하였던 사람이라는 발음이 파롤입니다. 파롤은 변화하는 것이고, 랑그는 변화하지 않는 추상적인 것입니다. 소쉬르의 언어학에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파롤이 아니라 사람의 머릿속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랑그를 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모두 기역 소리라고 인식하고 있는 음을 음운이라고 합니다. 이 음운이 바로 랑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미의 측면에서는 ‘나무’라고 말하면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인지하는 개념을 랑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마다 발음이 다르기 때문에 그 소리를 연구하는 것은 음성학입니다. 음운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운을 연구하는 것은 음운론이고, 음성을 연구하는 것은 음성학이라고 하는데 연구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론’과 ‘학’의 차이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나무도 사람마다 민족마다, 문화마다 인식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런데 랑그와 파롤을 다시 찾아보면서 오랜 고민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 소쉬르에게 랑그와 파롤이 중요했는지를 알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더 설명하자면 소쉬르의 랑그와 파롤이 왜 현대 구조주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끼치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해석이 맞는지 검증해 보고 싶습니다. 단순히 설명하자면 랑그는 사회이고, 파롤은 개인입니다. 랑그는 사회 속의 소통을 담당합니다. 따라서 공통을 찾아야 합니다. 공통을 발견하기 위해 서로 양보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랑그는 힘을 발휘합니다. 모두가 어긋나버리면 랑그는 힘을 잃습니다.   반면에 파롤은 개인이기 때문에 다름을 상징합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변화는 개인 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랑그를 연구하는 사람은 추상적인 현재에 주목합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통시적인 언어이지만, 추상적인 공시성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파롤은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차이이면서 자유입니다. 그리고 자유이면서 변화입니다. 이후의 연구에서 랑그보다 파롤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사회 속의 소통과 조화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차이와 자유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랑그와 파롤은 각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점이 소쉬르의 개념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서로는 체계를 이루면 맞물려 있습니다. 랑그를 떠난 파롤은 소통의 세계를 벗어납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 되고 맙니다. 반면에 파롤이 사라진 랑그는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합니다. 그저 답답하게 일치된 사회일 뿐입니다. 소쉬르는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체계, 겉과 속의 체계를 나눕니다. 앞에서 설명한 음운과 음성, 공시와 통시, 개념과 청각영상 등은 모두 양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양면은 서로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혼자인 듯하지만, 혼자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남과 다른 사람임에 틀림없지만, 남이 없다면 다르다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언어학의 개념을 살피면서 오늘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공시성에 연구 현대 언어학 음운과 음성

2024-10-20

[문장으로 읽는 책] 아노말리

“선생님은 우리 모두가 시뮬레이션 안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 우디 앨런이 한 말을 약간 비틀어서,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프로그래머들한테 그럴싸한 핑계라도 있길 바랍니다. 그들이 창조한 세상이 어쨌든 개판이니까요. 그렇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개판을 만든 장본인은 우리입니다.”     에르베 르 텔리에 『아노말리』   세상에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면? 미스터리한 비행기 사고로 300여명의 승객이 자신과 똑같은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과학자·철학자·정치인·종교인 등이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일련의 과학자들은 ‘매트릭스’적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프로그램이 거의 확실하다’라면서 말이다.    물론 명백한 답은 없다. 세상은 끝내 미스터리로 남고, 어느 게 원본인지 모르는 ‘나’와 ‘또 다른 나’는 제각각 살아간다. 서로를 통해 삶의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하기도 한다.  2020년 콩쿠르상 수상작품. 이상·변칙·모순이라는 뜻의 ‘아노말리’는 소설 속 소설이기도 한데, 소설 안에서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하는 짜릿한 리듬이 있다”는 평을 받는다. 바로 이 작품이 그렇다.  “매력적인 사유실험” “자아와의 대면” “수준 높은 오락과 진지한 문학의 교집합”이라며 전 세계 매체들이 호평했다. 콩쿠르상 수상작 중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기도 하다. 수학자·언어학 박사이기도 한 작가는 국제적 실험 문학 집단인 ‘울리포’ 회장직을 맡고 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콩쿠르상 수상작품 언어학 박사 우디 앨런

2024-03-20

[아름다운 우리말] 예능과 언어학

언어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예능 프로그램은 소중한 자료입니다.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언어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능은 마치 유행어와 신조어, 은어와 속어의 경연장 같습니다. 당시의 언어를 알려고 한다면 실생활을 들여다 보는 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의 생활을 관찰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다양하기도 하지만 몰래 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은 비교적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눕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버라이어티라고도 하는데 이는 참으로 적당한 표현입니다. 다양한 사람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스튜디오 촬영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여러 가지 기술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도전이나 여행, 게임 등이 어우러진 예능이 유행하였습니다. 또한 관찰형 예능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전지적 참견자 시점 등은 관찰의 의미를 명확히 합니다. 예전에는 몰래카메라가 유행이었다면 이제는 아예 사전에 이야기를 하고 관찰을 합니다.      자연스럽다고는 하지만 예능에는 기획이 있고, 연출이 있고, 작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들여다본다는 생각에 주저하는 참가자가 있을 겁니다. 따라서 완전히 현실 세계 그 자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능 이상으로 자연스러운 현실 세계를 관찰하고 연구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능은 그런 의미에서 언어학자에게는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의 대화를 모아놓은 자료보다 어쩌면 더 현실적일 겁니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은 당대의 인기 스타들이 함께합니다. 따라서 가장 앞장서 있는 언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기인이 사용한 언어를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은 따라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유행어가 됩니다. 유행은 따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나 따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이기에 예능은 귀한 자료가 되는 겁니다. 유행을 이끄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능에는 평소에 보기 어려운 유명인이나 인기 연예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종은 자신을 알리고, 자신의 영화나 노래를 소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이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보고 싶었던 유명인이 솔직한 모습을 많이 보이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능에 나온 표현이나 말투는 유행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요즘 예능에는 이전과 다른 점이 눈에 띕니다. 그건 바로 자막입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예능을 좋아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자막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막이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자막이 내용을 더 재미있게 만듭니다. 자막 때문에 웃고, 자막 때문에 울기도 합니다. 자막에는 언어학의 다양한 현상이 담겨 있어서 흥미롭니다. 아니, 언어학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수많은 새로운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능은 언어학과 언어교육의 귀중한 자료입니다. 그런데 비교적 예능에 대한 깊은 연구는 그다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예능을 활용해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체계적인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예능을 언어학의 관점에서, 한국어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일 겁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예능과 언어학 예능과 언어학 예능 프로그램 관찰형 예능도

2023-07-30

[아름다운 우리말] 입천장소리 되기

입천장이라고 하면 뜨거운 것을 먹다가 입천장이 다 데(디)었다(저는 ‘디다’가 익숙합니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일반적으로 쓸 일이 없는 표현입니다. 입천장을 언어학 용어로는 주로 구개(口蓋)라고 합니다. 입의 덮개라는 말입니다. 구개는 다시 연구개(軟口蓋)와 경구개(硬口蓋)로 나뉩니다. 부드러운 입천장과 딱딱한 입천장이지요. 혀끝으로 입천장을 건드려보면 이빨 뒷부분이 딱딱하고 목구멍 쪽으로 갈수록 부드러워집니다. 구별이 금방 될 겁니다. 언어학에서 구강 내부를 설명하다 보면 용어가 지나치게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구개라는 말에서 입천장이 잘 연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용어로서는 좋은 방식의 작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나마 구개라는 표현이 익숙한 것은 구개음화라는 음운현상 때문일 겁니다. 구개음화를 순우리말로 하면 입천장소리 되기입니다. 구개음화 현상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구개음이 아니었던 음이 구개음이 되는 현상입니다. ‘주로 이와 으 앞에서 디귿이나 티읕이 지읏이나 치읓으로 변하는 현상’입니다. 이 모음과 으 모음이 고모음이어서 입천장과 닿아있다는 점이 원인이 됩니다.     구개음화는 동화현상이기 때문에 우리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슷한 것은 어디나 닮기 마련입니다. 영어에서 ‘tree’나 ‘try’를 발음할 때 트리나 트라이라고 하지만, 사람에 따라 ‘추리’나 ‘추라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구개음화 현상으로 t를 ch로 발음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구개음화 현상이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는 언어는 일본어입니다. 일본어는 ‘아이우에오’의 모음으로 각 자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타 행의 경우에는 ‘타티투테토’라고 발음이 되지 않습니다. 아예 ‘타치츠테토’와 같이 발음이 됩니다. 일본어에서 티와 투가 구개음화된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는 말이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라디오는 라지오라고 하지 않고, 그냥 라디오라고 합니다. 구개음화가 되지 않은 겁니다. 티셔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왜일까요? 외래어니까 우리말의 음운현상에 적용받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외래어는 우리 음운현상의 적용을 받기도 합니다. 근본적으로 외래어는 우리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라디오나 티셔츠는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구개음화가 일시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는 구개음화는 단어 안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새로 만들어지는 구개음화는 없다는 말입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볼까요? ‘잔디’나 ‘디디다’의 경우에는 왜 ‘잔지’나 ‘지지다’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것도 똑같은 설명이 가능합니다. 구개음화가 한창일 때는 잔디와 디디다가 없었던 겁니다. 이 단어들은 오래된 말 같은 데, 옛날에 없었던 것은 이상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옛말에서 잔디는 ‘잔듸’였습니다. 디디다도 ‘듸듸다’였습니다. 우리말에서는 ‘이’ 모음 앞에서 구개음화가 일어나는데 원래는 잔디는 이 모음 앞이 아니었던 겁니다. 구개음화의 유행이 지나간 후에 잔디로 바뀌었기 때문에 잔지로 바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구개음화는 아주 간단해 보이는 음운현상입니다만,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구개음화를 무조건 이 모음 앞에서 디귿이나 티읕이 지읒이나 치읓으로 변하는 현상이라고 소개하면 국어학이 재미없어집니다. 암기과목이 되는 겁니다. 언어는 우리의 삶입니다. 언어의 다양한 현상은 우리를 반영하고 나타냅니다. 음운현상도 우리의 모습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다른 나라 말을 배울 때도 구개음화를 적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많은 언어에 구개음화가 나타납니다. 조현용 / 경희대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입천장소리 구개음화 현상 우리 음운현상 언어학 용어

2023-07-16

[문장으로 읽는 책] 아노말리

“선생님은 우리 모두가 시뮬레이션 안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 우디 앨런이 한 말을 약간 비틀어서,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프로그래머들한테 그럴싸한 핑계라도 있길 바랍니다. 그들이 창조한 세상이 어쨌든 개판이니까요. 그렇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개판을 만든 장본인은 우리입니다.”   에르베 르 텔리에 『아노말리』   세상에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면? 미스터리한 비행기 사고로 300여명의 승객이 자신과 똑같은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과학자·철학자·정치인·종교인 등이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일련의 과학자들은 ‘매트릭스’적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프로그램이 거의 확실하다’라면서 말이다.   물론 명백한 답은 없다. 세상은 끝내 미스터리로 남고, 어느 게 원본인지 모르는 ‘나’와 ‘또 다른 나’는 제각각 살아간다. 서로를 통해 삶의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하기도 한다.  2020년 콩쿠르상 수상작품. 이상·변칙·모순이라는 뜻의 ‘아노말리’는 소설 속 소설이기도 한데, 소설 안에서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하는 짜릿한 리듬이 있다”는 평을 받는다. 바로 이 작품이 그렇다.  “매력적인 사유실험” “자아와의 대면” “수준 높은 오락과 진지한 문학의 교집합”이라며 전 세계 매체들이 호평했다. 콩쿠르상 수상작 중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기도 하다. 수학자·언어학 박사이기도 한 작가는 국제적 실험 문학 집단인 ‘울리포’ 회장직을 맡고 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콩쿠르상 수상작품 언어학 박사 우디 앨런

2022-08-05

[아름다운 우리말]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

우리는 과학적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보통 과학과 인문학은 구별되는 개념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인문학 속에 과학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과학이라고 하면 자연과학만을 의미했으나 이제는 사회과학도 과학이고 인문학도 과학입니다. 과학이 아닌 게 없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과학자라는 말은 한정적이네요. 아마 사회과학 연구자가 스스로를 과학자라고는 하지 않을 겁니다.   과학은 학문이라기보다는 연구방법론이 된 느낌입니다. 과학적으로 접근한다는 표현이 방법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객관적이라는 말이고 계량화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늘 통계가 중요합니다. 조사 방법에 감정은 주관적 요소이므로 제외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학적 연구라는 말에는 인간의 감정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감정이 들어가는 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인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통계로 측정되지 않고, 정리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 있습니다. 언어의 많은 부분이 그렇습니다. 생각과 사고라는 말을 어떻게 구별하여야 할까요? 마음과 생각은 어떻습니다. 기쁜 감정과 즐거운 감정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설명이 가능할 겁니다. 설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당연히 언어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설명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언어에는 감정이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겁니다.   언어는 인간의 특징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언어를 연구한다는 것은 인간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연구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이해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위한 학문으로 언어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로 하는 언어학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와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입니다.     언어의 특성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저는 언어를 머리에도 담아보고, 가슴에도 비추어 봅니다. 머리로 생각할 때는 몰랐던 부분이 가슴으로 생각하면 뚜렷해집니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언어학은 과학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인문학적 접근도 필요합니다. 두 접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마치 믿음과 학문의 관계와 같습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학문은 공허합니다. 배움이 없는 믿음은 허황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는 이미 공자께서 밝혀 놓으신 일이기도 합니다. 논어 위정(爲政) 편에 나오는 학이불사즉망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이 그런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것도 모두 문제입니다.     믿음은 종교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이 그래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픈 것은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데 병을 죄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병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고통스러운 것이니 낫게 해 주면 좋은 겁니다. 아픈 사람은 병이 나아야 한다는 믿음이 의학을 발달시킵니다. 믿음이 학문을 발달시키는 겁니다. 인간과 자연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믿음이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청정에너지의 개발이 이루어집니다.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믿음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까? 그게 언어학의 시작입니다.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입니다. 언어는 싸우지 말자고 하는 겁니다. 언어를 통해서 감정을 교류합니다. 언어를 통해서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합니다. 서로 말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언어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언어학을 깊게 만듭니다.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언어학 가슴 사회과학 연구자 과학적 접근 보통 과학

2022-04-03

[아름다운 우리말]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

 우리는 과학적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보통 과학과 인문학은 구별되는 개념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인문학 속에 과학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과학이라고 하면 자연과학만을 의미했으나 이제는 사회과학도 과학이고 인문학도 과학입니다. 과학이 아닌 게 없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과학자라는 말은 한정적이네요. 아마 사회과학 연구자가 스스로를 과학자라고는 하지 않을 겁니다.   과학은 학문이라기보다는 연구방법론이 된 느낌입니다. 과학적으로 접근한다는 표현이 방법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객관적이라는 말이고 계량화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늘 통계가 중요합니다. 조사 방법에 감정은 주관적 요소이므로 제외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학적 연구라는 말에는 인간의 감정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감정이 들어가는 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인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통계로 측정되지 않고, 정리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 있습니다. 언어의 많은 부분이 그렇습니다. 생각과 사고라는 말을 어떻게 구별하여야 할까요? 마음과 생각은 어떻습니다. 기쁜 감정과 즐거운 감정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설명이 가능할 겁니다. 설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당연히 언어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설명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언어에는 감정이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겁니다.   언어는 인간의 특징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언어를 연구한다는 것은 인간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연구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이해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위한 학문으로 언어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로 하는 언어학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와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입니다.     언어의 특성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저는 언어를 머리에도 담아보고, 가슴에도 비추어 봅니다. 머리로 생각할 때는 몰랐던 부분이 가슴으로 생각하면 뚜렷해집니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언어학은 과학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인문학적 접근도 필요합니다. 두 접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마치 믿음과 학문의 관계와 같습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학문은 공허합니다. 배움이 없는 믿음은 허황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는 이미 공자께서 밝혀 놓으신 일이기도 합니다. 논어 위정(爲政) 편에 나오는 학이불사즉망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이 그런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것도 모두 문제입니다.     믿음은 종교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이 그래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픈 것은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데 병을 죄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병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고통스러운 것이니 낫게 해 주면 좋은 겁니다. 아픈 사람은 병이 나아야 한다는 믿음이 의학을 발달시킵니다. 믿음이 학문을 발달시키는 겁니다. 인간과 자연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믿음이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청정에너지의 개발이 이루어집니다.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믿음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까? 그게 언어학의 시작입니다.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입니다. 언어는 싸우지 말자고 하는 겁니다. 언어를 통해서 감정을 교류합니다. 언어를 통해서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합니다. 서로 말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언어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언어학을 깊게 만듭니다.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언어학 가슴 사회과학 연구자 과학적 접근 보통 과학

202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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