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 입천장소리 되기
입천장이라고 하면 뜨거운 것을 먹다가 입천장이 다 데(디)었다(저는 ‘디다’가 익숙합니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일반적으로 쓸 일이 없는 표현입니다. 입천장을 언어학 용어로는 주로 구개(口蓋)라고 합니다. 입의 덮개라는 말입니다. 구개는 다시 연구개(軟口蓋)와 경구개(硬口蓋)로 나뉩니다. 부드러운 입천장과 딱딱한 입천장이지요. 혀끝으로 입천장을 건드려보면 이빨 뒷부분이 딱딱하고 목구멍 쪽으로 갈수록 부드러워집니다. 구별이 금방 될 겁니다. 언어학에서 구강 내부를 설명하다 보면 용어가 지나치게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저는 구개라는 말에서 입천장이 잘 연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용어로서는 좋은 방식의 작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나마 구개라는 표현이 익숙한 것은 구개음화라는 음운현상 때문일 겁니다. 구개음화를 순우리말로 하면 입천장소리 되기입니다. 구개음화 현상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구개음이 아니었던 음이 구개음이 되는 현상입니다. ‘주로 이와 으 앞에서 디귿이나 티읕이 지읏이나 치읓으로 변하는 현상’입니다. 이 모음과 으 모음이 고모음이어서 입천장과 닿아있다는 점이 원인이 됩니다.
구개음화는 동화현상이기 때문에 우리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슷한 것은 어디나 닮기 마련입니다. 영어에서 ‘tree’나 ‘try’를 발음할 때 트리나 트라이라고 하지만, 사람에 따라 ‘추리’나 ‘추라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구개음화 현상으로 t를 ch로 발음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구개음화 현상이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는 언어는 일본어입니다. 일본어는 ‘아이우에오’의 모음으로 각 자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타 행의 경우에는 ‘타티투테토’라고 발음이 되지 않습니다. 아예 ‘타치츠테토’와 같이 발음이 됩니다. 일본어에서 티와 투가 구개음화된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는 말이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라디오는 라지오라고 하지 않고, 그냥 라디오라고 합니다. 구개음화가 되지 않은 겁니다. 티셔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왜일까요? 외래어니까 우리말의 음운현상에 적용받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외래어는 우리 음운현상의 적용을 받기도 합니다. 근본적으로 외래어는 우리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라디오나 티셔츠는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구개음화가 일시적인 현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는 구개음화는 단어 안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새로 만들어지는 구개음화는 없다는 말입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볼까요? ‘잔디’나 ‘디디다’의 경우에는 왜 ‘잔지’나 ‘지지다’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것도 똑같은 설명이 가능합니다. 구개음화가 한창일 때는 잔디와 디디다가 없었던 겁니다. 이 단어들은 오래된 말 같은 데, 옛날에 없었던 것은 이상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옛말에서 잔디는 ‘잔듸’였습니다. 디디다도 ‘듸듸다’였습니다. 우리말에서는 ‘이’ 모음 앞에서 구개음화가 일어나는데 원래는 잔디는 이 모음 앞이 아니었던 겁니다. 구개음화의 유행이 지나간 후에 잔디로 바뀌었기 때문에 잔지로 바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구개음화는 아주 간단해 보이는 음운현상입니다만,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구개음화를 무조건 이 모음 앞에서 디귿이나 티읕이 지읒이나 치읓으로 변하는 현상이라고 소개하면 국어학이 재미없어집니다. 암기과목이 되는 겁니다. 언어는 우리의 삶입니다. 언어의 다양한 현상은 우리를 반영하고 나타냅니다. 음운현상도 우리의 모습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다른 나라 말을 배울 때도 구개음화를 적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많은 언어에 구개음화가 나타납니다.
조현용 / 경희대 교수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