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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책의 오류와 수치심의 역사

최근 영미권에서 마크 솜스의 편집으로 프로이트 전집 개정판이 출간됐다. 그동안은 제임스 스트레이치 판본이 표준으로 인정받았는데, 여기에 솜스가 연구 주석을 추가하고 56편의 미발간 에세이 및 편지를 보태 새롭게 편집한 것이다. 올해 카프카 100주기를 기념해 출간된 안드레아스 킬허 편저의 『프란츠 카프카의 그림들』 역시 기존 판본에서 누락된 카프카의 그림들과 불투명했던 자료의 경로를 메운 노고가 빛난다. 막스 브로트가 담당한 카프카 유고는 늘 독자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니 말이다.   책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영속성을 띠는 터라 그 안에 담긴 오류도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다. 하지만 개정판 출간에서 보듯 우리에게는 오류를 고칠 기회가 이따금 주어진다. 위의 두 책은 후세대 연구자들이 개정한 것이지만, 대체로는 저자나 역자가 생전에 자기 문장을 직접 매만진다. 그중 새로운 원고를 쓰며 성과를 내놓기보다 이미 출판된 저서를 끊임없이 들춰보며 수정하는 이의 전범으로는 애덤 스미스를 꼽을 수 있다. 『도덕감정론』의 저자 스미스는 글을 천천히 쓰는 사람이었고, 앞서 쓴 내용을 최소 여섯 번은 되돌릴 만큼 심사숙고하는 유형이었다.   학문적 엄밀성은 단번에 갖춰질 수 없다. 따라서 학자들은 논리와 증거 불충분성을 들며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점을 보완할 임무를 지닌다. 스미스의 원고를 향해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가장 강력한 우정을 담아 요구했다.   “나는 모든 종류의 공감은 필연적으로 즐거운 것임을 당신이 더 상세하고 충실하게 입증했으면 좋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99쪽과 iii에서 당신은 이런 서술에서 벗어나 있고, 이를 당신의 추론과 뒤섞었습니다. 이 감정을 수정하거나 설명하고, 그것을 당신의 체계와 조화시키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흄은 스미스를 아껴 그의 명예를 보호하고자 『도덕감정론』을 고쳐 쓰라고 재촉했다. 물론 수정은 뼈를 녹이는 일이다. 우선 자기 오류를 직시하는 건 자괴감이 들고, 이미 출간된 책에 새로운 내용을 삽입하고 연결하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작업도 없기 때문이다. 인쇄업자(편집자)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 또한 스미스에게 불안과 수치심을 주었을 것이다. 스미스의 인쇄업자는 예컨대 ‘불인정’을 ‘인정’으로, ‘비효용성’을 ‘효용성’으로 잘못 썼다. 이건 제3판에서 대부분 바로잡았지만, 제6판까지도 오류는 10개 이상 남아 있었다.   저자, 역자, 편집자는 자신이 저지른 오류를 알고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현실 여건상 종종 이를 대수롭잖게 여기거나 모른 척한다. 개정판 작업을 제안하는 쪽은 주로 저자다. 하지만 출판사는 이 일에 섣불리 착수하지 못한다. 내용이 추가돼 페이지 수가 늘면 서점에 데이터베이스 등록을 다시 해야 하고, 편집과 디자인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출판사 연 매출의 50% 이상은 신간에서 달성되므로 편집 역량은 여기에 투입될 수밖에 없고, 실상 구간에 오류가 있더라도 판매는 문제없기 때문이다.   우리 출판사 경험을 말하자면, 『홍차수업』은 저자의 홍차 산지 조사와 공부에 따른 정보가 늘어남에 따라 개정판을 펴냈는데, 이는 이 책이 매년 1000권 이상 나가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다른 출판사에서 절판됐다가 우리가 재계약해서 펴낸 책이 있다. 우리에겐 신간이지만 내용상 개정판이다. 이후 몇 년이 흘러 저자는 인용한 원자료에서 다시 오류를 발견했고 이에 따라 새로운 판을 펴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직 실행하지 못했다. 저자는 “자기 오류를 볼 때 학자는 수치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번역자들도 종종 개정판 작업을 한다. 과거에 자신이 번역한 것을 뜯어고치기도 하지만, 다른 번역자가 했던 작업이 유효 기간을 다해 재번역을 하기도 한다. 학자 J는 전공 관련 번역서들을 꼼꼼히 읽으면서 정오표를 만들어 출판사에 보내곤 한다. 자신이 만든 책에서 빼곡한 오류를 발견한 편집자들은 J에게 종종 개정판 번역을 의뢰하곤 한다.   번역의 생명은 보통 25년쯤이라 하니 개정판 작업은 필수다. 시대가 바뀌면서 용어가 달라지고, 전통적인 종이책 독자와 책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독자들이 요구하는 문장의 호흡이나 길이는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책 마케팅에서 자주 쓰는 방법 중 하나는 펀딩이다. 목표 금액을 설정하고 혜택을 주어 신간의 독자를 모으는 것인데, 서점 노출과 사전 홍보의 효과가 있다. 개정판 역시 펀딩이 가능하다. 그러자 몇몇 출판사는 매출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개정판 펀딩을 추진했지만 정작 담당 번역가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주지 않았다. 개정판을 펴내는 것의 목적이 완벽을 기하기 위함보다 홍보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그 의의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은혜 / 글항아리 편집장마음 읽기 수치심 오류 개정판 작업 자기 오류 개정판 출간

2024-07-04

[장열 기자의 법정스트레이트] 명예 찾으려 시작한 5년 싸움

미국은 전적으로 신용 사회다. 신용 점수가 곧 신뢰도다. 금전적 거래, 융자 등이 필요한 실생활과 직결된다.     북한 국가보위성 소속의 대북 제재 대상자로 오인, 신용 거래를 거부당한 강성곤씨는 무려 5년간 신용정보사와 법적 다툼을 벌였다. 〈본지 6월 7일자 A-1면〉이 소송은 그만큼 신용 확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직하게 신용을 쌓아왔던 강씨에게 거래 거부는 명예를 훼손당한 감정으로까지 이어졌다.   법원 서류에는 당시 강씨의 심경이 이렇게 적혀있다.   “아버지와 여동생 앞에서 제재 대상으로 오인당하고 자동차 판매를 거부당하자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다.”   강씨의 변호인(마이클 캐들)은 공정신용보고법(Fair Credit Reporting Act·이하 FCRA)에 근거해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FCRA는 소비자 보호법이다. 신용정보사는 소비자가 신용 정보를 요구하면 전부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부정확한 내용 때문에 소비자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별도 요금을 부과하지 않고 재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FCRA는 신용뿐 아니라 신원조회에도 적용된다. 일례로 고용주는 직원에 대한 채용, 해고 등에 있어 신용 및 신원조회 등을 할 수 있다. 단, 이때 조회 대상자로부터 허가서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FCRA의 보호 규정 때문이다.   또, 허가 하에 조회를 진행했을 때 그 결과가 고용, 부서 이동, 승진 등에 부정적 결과를 미쳤다면 고용주는 조회 대상자에게 해당 사실을 즉시 통보해야 한다. 조회 결과 사본을 제공하고 반박할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   FCRA는 이를 어길 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까지 포함하고 있다. 손해에는 강씨와 같이 명예훼손을 비롯한 정신적 고통, 수면 장애 등 다양한 피해가 해당하며 원고 측의 변호사 비용까지 포함된다. 게다가 손해배상액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자칫하면 거액의 배상까지 이루어질 수 있다.   신분 도용, 정보 유출 등 관련 피해가 늘면서 FCRA 소송 역시 증가세다.   연방법원에 따르면 FCRA 소송은 지난해 총 5597건이 제기됐다. 전년(5407건) 대비 3.5%포인트 늘었다. 매달 500건에 가까운 소송이 제기된 셈이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만 총 447건의 소송이 제기됐는데 이 중 20건은 집단소송이었다.   정기적인 신용 점수 관리가 중요한 시대다. 부정확한 내용이 파악되면 즉시 이의 제기를 통해 수정해야 한다. 안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북한의 비밀경찰로 오인당하는 사례가 또 발생할지 모른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수치심 법정 법정스트레이트 신용 신용 거래 신용 정보

2023-06-07

"소외와 수치 당해도 포용·존중해야 그리스도인"

올해 들어 잇따라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아시아계를 비롯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테네시주 멤피스 지역에서는 교통 단속 과정에서 흑인 타이어 니컬스가 경찰관 5명에 의해 구타를 당해 숨졌다.   피해자들은 유색 인종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가해자도 유색 인종이었다. 아시아계가 아시아계에 총을 쐈고, 흑인 경관들이 흑인을 구타했다.     그럼에도, 범죄를 야기한 혐오, 증오 등의 감정은 인종의 틀 안에서 소수계를 다시 한번 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강우중 교수(기독교 사회윤리학)는 "혐오, 증오범죄는 이민자가 미국 사회 내에서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해악을 끼친다"고 말했다.     강 교수에게 증오 범죄 현상을 기독교 윤리 차원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야 하는지 물었다.   -사회가 흉흉하다.   "이제 '미국 사회'를 새롭게 이해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미국은 다양성에 대한 포용, 이질성을 수용했지만 동시에 특정 집단의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우월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지금은 그러한 부분이 배제와 차별로 연결되고 있다. 혐오 범죄 현상을 들여다보면 '누가 미국인임을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소수계도 미국인 아닌가.   "인종적, 민족적, 사회적 기준 등을 보면 진짜 미국인이란 무엇일까. 암묵적으로 이 사회는 특정 기준에 부합되어야 진짜 '미국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 가운데 소수계로 불리는 이들은 '내부의 이방인'으로 구분되어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유색 인종에 대한 사건들은.   "이는 단순히 인종적 정체성과 가치를 무시하는 제도적 폭력 수준에서 정리될 수 없는 일들이다. 최근의 사건들은 공통 핵심 사항이 '수치심'이다.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침 뱉기, 폭행, 조롱, 협박을 당할 때 피해자가 겪는 두려움, 공포, 아픔, 상처는 극한의 수치심으로 각인된다.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짓이겨진 것이다. 소수계 사이에서 이러한 '사회적 수치심'이 지금 미국 사회 가운데 확산하고 있다."   -수치심의 확산 속에서 주목할 점은.   "폭력의 다양한 형태가 얼마나 일반화, 일상화되어 있는지 주목해 봐야 한다. 수치심이 일상화하면 우리도 폭력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동시에 가해자도 될 수 있다. 한인들 역시 LA폭동과 같은 사건을 통해 소외와 차별이라는 사회적 수치를 경험하지 않았나."     -기독교인은 무엇을 할 수 있나.   "그리스도인은 소외당해도 포용할 수 있다. 수치를 당해도 존중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게 그리스도인이다. 한인들 역시 다른 소수 인종에게 소외와 수치를 경험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연합과 화해의 모습으로 반응하고, 사회적 도덕성과 신앙의 견고함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 윤리 관점에서 해결 방안은.   "수치를 당하는 이들의 현실을 당사자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들과 화해와 연합을 이루어가고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이유를 먼저 깨우쳐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어떻게 찾을 수 있나.   "예수는 화해와 연합을 통해 소외된 우리를 회복시켰다.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인도 하나님과 연합한 존재가 되지 않았나. 우리도 당연히 수치를 당하는 이들과 연합하고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존재로서 현실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할 책임도 있다. 신앙 고백과 다짐이 사회적 맥락에서도 발견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오직 그리스도인과 교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며, 변화들이다."   -한인 교계는 적극적인 행동이 부족한데.   "사랑은 감정적 호소와 막연한 도덕, 윤리 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사랑의 의미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그렇게 역동적인 힘이 있음을 나타내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통해 구원받은 사실은 소외와 수치를 당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따라 점검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피해자를 추모하는 모임에 참여해서 위로하고, 정의 실천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해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사회적 연대가 될 수 있다. 지역 사회에서 자원봉사자가 되고, 소외 계층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인 교회가 꾸준하게 진정성을 갖고 진행하는 선교 활동, 이웃을 섬기는 활동에 좀 더 참여하고 열심을 낸다면 좋겠다."   -교회가 그렇게 할 때 생겨날 변화는.   "연합된 모습을 통해 결국 복음의 재생산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다. 수치를 당하는 이들에게 복음의 진실을 말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은 연합과 화해를 이루어낼 수 있다. 어색함을 떨쳐 버리고 함께하려는 작은 노력을 기울일 때 가능하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미국 그리스도인 사회적 수치심 기독교 사회윤리학 혐오 증오범죄

2023-02-06

[이 아침에]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

 부끄럽게 산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도 나를 부끄러운 사람 취급한다. 사는 게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두 손으로 눈을 가려도 다른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본다. 덕지덕지 바르고 치장하면 좀 나아보이겠지만 화장 지우고 거울 앞에 서면 다 보인다. 얼굴 구석구석에 실버들처럼 번지는 주름을 찾고, 쭈글쭈글한 호박은 아니지만 서걱거리는 가을 잎새처럼 황량한 얼굴을 바라본다. 단감으로 잘 익은, 쫄깃하게 잘 마른 곶감으로 나긋해진 내 속을 드러내 보일 수 없으니 어느 것이 진짜 내 모습일까.     어릴 땐 부끄러움을 몰랐다. 웃통 홀랑 벗고 머슴애들과 실개천에서 멱을 감았다. 수영복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삼베 속곳만 입고 개구리 헤엄치며 얼굴이 까맣게 탈 때까지 땡볕에서 하루종일 놀았다.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은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부끄러움과 창피함으로 고통 받게 되고 나이들면서 ‘수치’와 ‘부끄러움’을 배우게 됐다. 동물은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은 인간만이 가지는 감정이다.     “우리들은 부끄럽다는 기분 속에 살아간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벌거벗은 피부를 부끄러워하듯이, 우리들은 자신에 대해서, 친척에 대해서, 수입에 대해서, 의견에 대해서, 경험에 대해서 부끄러워한다.”-조지 버나드 쇼     빈 박스는 포장을 아무리 잘해도 속이 비어있다.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수치심이다. 죄책감이 내적 규율인 양심에 의해 유발되는데 비해 수치심은 외부의 반응에 의해 발생한다. ‘수치심’은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의해 생겨난다.     반면에 ‘부끄러움’은 죄책감이나 수치심,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는 종합적인 감정 상태다. 인간답게 사는 길은 외부의 판단 기준을 벗어나 스스로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일이다.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이라는 책에서 서양인과 일본인의 문화를 비교하여 분석한다. 서양은 ‘죄’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반면 동양은 ‘수치’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수치는 타인의 비판, 조소, 반대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라고 타인을 의식하는 걱정이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유발되는 감정 상태이다. 자기 방안에서는 벌거벗고 있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지만 종로 한복판에서 나체로 있게 되면 수치심을 넘어 사이코패스로 몰린다.   외부의 시선이나 판단에서 벗어나 나의 길을 가는 사람은 가난해도 구차스럽지 않다. 타인의 눈에 허접하고 못 살아 보여도 수치스럽지 않다. 적게 먹어도 배가 부르고 돈 없어도 넉넉하다. 타인의 눈길에 숨죽여 떨 일 없고 있는 사람 앞에 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다. 잘난 체하는 사람 비껴가고 빼곡히 적힌 명함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주머니가 비어도 밥 사 줄 사람 챙긴다. 부자 만나도 부럽지 않지만 작은 봉사로 큰 사랑을 나눈 사람들 보면 낮아지고 작아진다.     사랑이 스쳐가도 울며 잡지 않고 미련은 바람으로 날려 보낸다. 말랑하게 잘 익은 홍시 같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달콤한 사랑 꿈꾸며, 만날 사람은 지구 끝에서라도 꼭 만난다고 믿는다.     사는 것은 나 홀로 각색하고 연출하고 주인공으로 내가 선택되는 행운이다. 몇 해를 건너뛰고 연락 못해도 어제 만난 것처럼 그리운 얼굴들 새기며 산다는 것은 발가벗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덮고 품는 것이다.  이기희 / Q7 파인아트 대표·작가이 아침에 수치심 자신 얼굴 구석구석 인의 문화

2022-02-06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발가벗어도 부끄럽지 않는

부끄럽게 산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도 나를 부끄러운 사람 취급한다. 사는 게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두 손으로 눈을 가려도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본다. 덕지덕지 바르고 치장하면 좀 나아보이겠지만 화장 지우고 거울 앞에 서면 다 보인다. 얼굴 구석구석에 실버들처럼 번지는 주름과 쭈글쭈글한 호박은 아니지만 서걱이는 가을잎새처럼 황량한 얼굴을 바라본다. 단감으로 잘 익은, 쫄깃하게 잘 마른 곶감으로 나긋해진 내 속을 드러내 보일 수 없으니 어느 것이 진짜 내 모습일까.   어릴 땐 부끄러움을 몰랐다. 웃통 홀랑 벗고 머슴애들과 실개천에서 멱을 감았다. 수영복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삼베 속곳만 입고 개구리 헤엄치며 얼굴이 까맣게 탈 때까지 땡볕에서 하루 종일 놀았다.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은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부끄러움과 창피함으로 고통 받게 되고 나이 들면서 ‘수치’와 ‘부끄러움’을 배우게 됐다. 동물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은 인간만이 가지는 감정이다.   “우리들은 부끄럽다는 기분 속에 살아간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벌거벗은 피부를 부끄러워하듯이, 우리들은 자신에 대해서, 친척에 대해서, 수입에 대해서, 의견에 대해서, 경험에 대해서 부끄러워한다.”- 조지 버나드 쇼   빈 박스는 포장을 아무리 잘해도 속이 비어 있다.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수치심이다. 죄책감이 내적 규율인 양심에 의해 유발되는데 비해 수치심은 외부의 반응에 의해 발생한다. ‘수치심(羞恥心)’은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의해 생겨난다. 반면에 ‘부끄러움’은 죄책감이나 수치심,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는 종합적인 감정상태다. 인간답게 사는 길은 외부의 판단 기준을 벗어나 스스로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일이다.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는 ‘국화와 칼’이라는 책에서 서양인과 일본인의 문화를 비교하여 분석한다. 서양은 ‘죄(罪)’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반면 동양은 ‘수치(羞恥)’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수치는 타인의 비판, 조소, 반대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라고 타인을 의식하는 걱정이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유발되는 감정상태이다. 자기 방안에서는 벌거벗고 있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지만 종로 한 복판에서 나체로 있게 되면 수치심을 넘어 사이코패스로 몰린다.   외부의 시선이나 판단에서 벗어나 나의 길을 가는 사람은 가난해도 구차스럽지 않다. 타인의 눈에 허접하고 못 살아 보여도 수치스럽지 않다. 적게 먹어도 배가 부르고 돈 없어도 넉넉하다. 타인의 눈길에 숨죽여 떨 일 없고 있는 사람 앞에 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다. 잘난 체 하는 사람 비껴가고 빼곡히 적힌 명함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주머니가 비어도 밥 사 줄 사람 챙긴다. 부자 만나도 부럽지 않지만 작은 봉사로 큰 사랑을 나눈 사람들 보면 낮아지고 작아진다.   사랑이 스쳐가도 울며 잡지 않고 미련은 바람으로 날려 보낸다. 말랑하게 잘 익은 홍시 같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달콤한 사랑 꿈꾸며, 만날 사람은 지구 끝에서라도 꼭 만난다고 믿는다. 이상의 ‘날개’가 겨드랑에서 간지러운 밤엔 몰래 시를 쓴다. 사는 것은 나 홀로 각색하고 연출하고 주인공으로 내가 픽업 되는 행운이다.   몇 해를 건너뛰고 연락 못해도 어제 만난 것처럼 그리운 얼굴들 새기며 산다는 것은 발가벗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덮고 품는 것이라고.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수치심 자신 얼굴 구석구석 인의 문화

2022-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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