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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

 부끄럽게 산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도 나를 부끄러운 사람 취급한다. 사는 게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두 손으로 눈을 가려도 다른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본다. 덕지덕지 바르고 치장하면 좀 나아보이겠지만 화장 지우고 거울 앞에 서면 다 보인다. 얼굴 구석구석에 실버들처럼 번지는 주름을 찾고, 쭈글쭈글한 호박은 아니지만 서걱거리는 가을 잎새처럼 황량한 얼굴을 바라본다. 단감으로 잘 익은, 쫄깃하게 잘 마른 곶감으로 나긋해진 내 속을 드러내 보일 수 없으니 어느 것이 진짜 내 모습일까.  
 
어릴 땐 부끄러움을 몰랐다. 웃통 홀랑 벗고 머슴애들과 실개천에서 멱을 감았다. 수영복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삼베 속곳만 입고 개구리 헤엄치며 얼굴이 까맣게 탈 때까지 땡볕에서 하루종일 놀았다.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은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부끄러움과 창피함으로 고통 받게 되고 나이들면서 ‘수치’와 ‘부끄러움’을 배우게 됐다. 동물은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은 인간만이 가지는 감정이다.  
 
“우리들은 부끄럽다는 기분 속에 살아간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벌거벗은 피부를 부끄러워하듯이, 우리들은 자신에 대해서, 친척에 대해서, 수입에 대해서, 의견에 대해서, 경험에 대해서 부끄러워한다.”-조지 버나드 쇼  
 
빈 박스는 포장을 아무리 잘해도 속이 비어있다.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수치심이다. 죄책감이 내적 규율인 양심에 의해 유발되는데 비해 수치심은 외부의 반응에 의해 발생한다. ‘수치심’은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의해 생겨난다.  
 
반면에 ‘부끄러움’은 죄책감이나 수치심,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는 종합적인 감정 상태다. 인간답게 사는 길은 외부의 판단 기준을 벗어나 스스로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일이다.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이라는 책에서 서양인과 일본인의 문화를 비교하여 분석한다. 서양은 ‘죄’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반면 동양은 ‘수치’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수치는 타인의 비판, 조소, 반대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라고 타인을 의식하는 걱정이다. 수치심과 부끄러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유발되는 감정 상태이다. 자기 방안에서는 벌거벗고 있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지만 종로 한복판에서 나체로 있게 되면 수치심을 넘어 사이코패스로 몰린다.
 
외부의 시선이나 판단에서 벗어나 나의 길을 가는 사람은 가난해도 구차스럽지 않다. 타인의 눈에 허접하고 못 살아 보여도 수치스럽지 않다. 적게 먹어도 배가 부르고 돈 없어도 넉넉하다. 타인의 눈길에 숨죽여 떨 일 없고 있는 사람 앞에 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다. 잘난 체하는 사람 비껴가고 빼곡히 적힌 명함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주머니가 비어도 밥 사 줄 사람 챙긴다. 부자 만나도 부럽지 않지만 작은 봉사로 큰 사랑을 나눈 사람들 보면 낮아지고 작아진다.  
 
사랑이 스쳐가도 울며 잡지 않고 미련은 바람으로 날려 보낸다. 말랑하게 잘 익은 홍시 같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달콤한 사랑 꿈꾸며, 만날 사람은 지구 끝에서라도 꼭 만난다고 믿는다.  
 
사는 것은 나 홀로 각색하고 연출하고 주인공으로 내가 선택되는 행운이다. 몇 해를 건너뛰고 연락 못해도 어제 만난 것처럼 그리운 얼굴들 새기며 산다는 것은 발가벗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덮고 품는 것이다. 

이기희 / Q7 파인아트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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