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컵 어떻게 내려놓습니까? "그냥 내려놔"
미주 한인 정체성 "희망, 내 뜻대로 안 되면 절망" 잘 살려는 괴로움 "돈은 돈 있는 곳에서 벌어야" 세상, 내 뜻대로 안 돼 "운명이나 팔자 탓하지 마라" 법륜스님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는 위로가 있다. 듣는이의 마음이 변하고 생각을 움직인다. 그에게서 사람들은 지혜를 얻는다. 법륜스님은 해외 순회강연중이다. 21일 미주중앙일보에서 열린 강연에 앞서 그를 만났다. 법륜스님은 "내가 지혜의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라고 했다. -미주한인들의 고민은. "정체성에 대한 문제다. 자신을 '이방인'으로 느낀다. 외국에서 살아도, 고국에 간다 해도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는 거다. 거기서 오는 외로움, 소외감 등으로 혼란을 겪는다." -어떤 답을 해주는가. "남의 기준으로,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때문에 그런 혼란이 온다. '나는 한국말도, 영어도 못한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인으로서 미국에 산다는 '제3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희망은 무엇인가. "가능성이다. 자기 뜻대로 안되니까,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니까, 절망한다. 희망은 '가져라' 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예로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건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을 인식하면 희망이 생긴다." -삶의 정의는. "그런 건 없다. 각자 나름대로 사는 거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된다. 문제는 자기 나름대로 살면 즐거워야 하는데 괴롭다는 거다. 이게 모순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서 괴롭게 살아서다. 마치 저축도 안 하면서 목돈을 찾으려는 심보와 같다. 그게 욕심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그런 생각도, 실제의 노력도 안 한다는 건 어리석은 거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삶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다. 뜨거운 컵을 들고 있다면 '뜨겁다' 하지 말고 그냥 놓으면 되는데, '어떻게 놓아야 하는데요'라고 묻는 것과 같다. 놓는 기술이 부족한 게 아니다. 뜨겁긴 한데 갖고 싶으니까 못 놓을 뿐이다. 욕심을 버려야 산다." -'자본(돈)'이 욕심을 생성하나. "지금은 전도몽상(顚倒夢想)이다. 뒤집혀졌다. 잘 살기 위한 행동이 지나치면 우리를 괴롭히는 일로 되돌아온다. 집의 역할이 무엇인가. 나를 보호하는 거처 아닌가. 그런데 이게 뒤집히니까 오히려 내가 집을 지키려고 애를 쓰게 됐다. 그러니 괴로운 거다. 그 모순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이 돈 버는 법에 관심이 많다. "열심히 한다고 돈이 벌리는 개념은 농경사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지금 사회는 구조적이다 보니 꼭 그렇게만 될 수는 없다. 돈은 돈 있는 곳을 가야 벌리는 것 아닌가. 돈 버는 노력이란, 안 하는 것 보단 낫다는 거지. 그 노력을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걸 잘 파악해야 한다." -돈에 대한 태도는. "돈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이 주인이 됐다. 한 예로 짐을 편리하게 넣어야 할 가방의 용도에 이제는 어떤 다른 의미가 개입됐다. 명품가방이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그 가방이 주인이 되다 보니, 자신이 그 가방에 얽매여 산다." -스님은 고민이 없나. "당연히 있다. 주어진 과제가 있을 때, 그걸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까 생각하는 게 고민 아닌가. 다만, 그것을 괴롭게 여기지 않을 뿐이다. 요즘은 북한의 홍수 피해를 두고 지원방안에 대한 부분을 고민중이다." -운명 또는 '팔자'가 있나.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이게 안 되는 운명인가' 생각하니까 운명론이 나오는 거다. 인생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 운명이나 팔자 탓을 하지 않는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중앙일보 직원 대상 강연 법륜스님은 '즉문즉설'은 답을 주는 게 아닌, "대화를 하는 시간"이라 했다. 그는 서서 강연했다. "대화는 눈을 마주보면서 해야 한다. 앉으면 상대의 눈을 볼 수 없다". 유머도 곁들였다. "눈을 봐야 졸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내 말이 마음에 안 드는구나'라는 것도 알지". 세상에는 수많은 가치관이 존재한다. 무엇이 보편이고 절대 기준일까. 한 청중이 질문했다. 법륜스님은 '생태계'를 언급했다. "자신의 주관을 객관화하지 마라. 우리는 어떤 것도 절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생태계는 보편적이다. 생태계를 보면 동물도 자기 음식을 남이 와서 먹는건 싫어한다. 그러나 자기가 다 먹고 남은 음식은 누가 와서 먹어도 가만히 있는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 배불리 먹었어도 남이 자기 것을 먹는 걸 못 본다. 이건 생태계에 없는 현상이다." 정치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민감해서일까. 에둘러 말했다. 그는 지난 한국 대선 당시 '안철수 바람'의 산파 역할을 했었다. "한국사회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다당제가 필요하다. 현재의 정치는 각계각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세다. 권력을 내각으로 옮기고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법륜(法輪) 스님은 1953년 울산 출생, 1969년 불가에 입문했다. 수행공동체 정토회를 설립(1988년)해 수행지도를 통한 구호 및 사회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2002년)을 비롯한 민족화해상(2007년) 포스코청암상(2011년) 등을 수상했다. 그의 즉문즉설(卽問卽說) 강연은 즉석에서 바로 묻고, 바로 답한다. 법륜은 "자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직시할 때 정확한 물음과 답이 나온다"고 말한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