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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양이, 꽃, 말, 새의 봄 소풍

영화 한편을 보았다 ‘내사랑‘, 캐나다의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의 삶과 그림에 대한 스토리였다. 모드 루이스에게는 오두막 전체가 캔버스였다. 바깥 세상을 볼 수 있는 작은 창문 하나와 자신을 떠나지 않을 한 사람을 기다리는 오두막이 그녀의 세상이었고 우주였다.     꽃을 그리다 보면 꽃길을 만나게 되고 그 꽃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절망의 어두움에서 멀어져 향기로운 꽃길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이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선천성 류머티즘이라는 희귀병으로 어두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자그마한 키에 가슴에 붙는 턱, 움츠러드는 어깨, 손가락마저 굳어져 가는 아이여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교육받으며 성장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엄마와 함께 그리며 행복해했던 그녀는 자연스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말이 끄는 눈썰매가 눈 덮인 언덕을 오르고, 깜깜한 밤에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하늘을 그리며 그녀의 마음엔 한장 한장 고운 그림이 눈처럼 쌓이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기쁨이었고 후에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32살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2년 뒤 어머니마저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오빠 찰스가 부모의 유산을 독차지하고 그녀를 이모 집으로 보내게 된다. 그녀는 오래지 않아 자신을 무시하는 이모로부터의 독립을 생각하게 된다. 우연히 ’같이 살거나 집안일 해줄 사람 구함‘ 광고를 보고 찾아간 그곳에서 까칠한 에버렛 루이스를 만나 얼마 후 낚은 양말 한 쌍처럼 결혼하게 된다.     에버렛은 생선을 팔아 살고 있는 어부였는데 아주 작고 전기도 없는 어둠침침한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어둡고 칙칙한 오두막을 환하고 아름답게 색칠해 갔다. 칙칙한 부엌 벽에, 하나밖에 없는 창문 유리에, 들어오는 문에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 에버렛은 그녀가 온 집안을 그림으로 장식하는 것에 화를 내었다.     그러나 점차 그녀의 그림을 인정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그린 크리스마스카드를 5센트에 팔던 기억을 살려 틈틈이 그림을 그려 팔기 시작했다. 타고난 재능을 가졌지만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그녀의 그림은 자연스럽고 꾸밈없고 따뜻하였다. 오두막 외벽 나무에도 꽃 그림을 그려 마을 주민들에게 그녀의 오두막은 사랑 받는 명소로 유명해졌다.     마침내 캐나다 CBS 방송에서는 그녀의 삶과 그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림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녀는 굽은 뭉툭한 손으로 그림에 몰두하였다. 캐나다 전역뿐 아니라 미국까지 그녀의 명성이 퍼져나갔다. 캐나다 총리,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그녀의 작품을 구입할 정도로 이미 그녀는 유명화가가 되어있었다.     주문이 밀려왔지만, 처음과 똑같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게 그림 가격은 5달러, 10달러를 넘지 않았다. 그녀는 물질보다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감과 행복을 나누는 일에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알 필요도 없는 듯 돈을 더 주고 많이 사겠다는 사람들에게도 한 두 점 이상은 팔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녀의 그림을 원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복을 나누어 주기 원해서였다.     “바라는 게 별로 없어요. 붓 한 자루면 돼요.“ ”내 인생 전부가 액자 속에 있어요.“ 그녀는 처음과 끝이 같은 여자였다. 좁은 공간에서 시작된 그녀의 행복은 거리로 동네로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67세의 나이에 그녀는 작은 오두막과 그림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작은 오두막에서 남편 에버렛과 욕심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았던 그녀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부와 명예에 찌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화가는 아니었지만 순수하고, 아름답고, 단순한 그녀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선생님이요, 또 아름다운 화가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삶의 어두움을 극복하고 고양이, 꽃, 말, 새와 평생의 친구로 함께한 캐나다가 사랑한 민속화가 모드 루이스.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사람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다. 작은 오두막이 그녀의 가진 모든 것이었는데 그녀는 누구보다 행복했고 그 행복한 시간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남기고 떠났다. 그녀를 생각하는 한낮의 오후는 지나가고 있고 애꿎은 나무는 머리에 자꾸 꽃을 피운다. 꿈을 꾸라고, 행복하라고…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고양이 소풍 오두막과 그림들 에버렛 루이스 오두막 외벽

2024-05-06

[이 아침에] 코로나 속 봄 소풍

아득히 먼 옛날에 경험했던 설렘. 소풍 전날 밤에 잠 못 들고 뒤척이던 기억이 선명하다. 늦잠 자다 버스 놓치면 어쩌지? 알람 맞추고 몇 번 확인하고, 가까이 두면 얼른 손 뻗어 알람 끄고 다시 잠들까 두려워 멀찌감치 놓았다.   아직 팬데믹의 꼬리가 굵게 위협하고 있지만 패기 넘치는 두 협회 회장님들의 의기투합으로 재미시인협회와 미주한국문인협회 주관으로 봄 소풍이 결정되고 공고되었을 때. 갸웃뚱 반신반의 반응이 없지 않았으리라. 갈 수 있을까? 가도 될까? 참가 희망자가 없어 취소되지는 않을까? 아직 오미크론에다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도 빼곡 얼굴을 내밀었으니 불안하다.   ‘자슈아트리’라고 공고가 났을 땐, 10여년 전 암벽등반을 배우며 자주 갔던 곳이라 반가웠다. 그늘 하나 없고 땡볕에다 넓은 터가 없어 단체가 관광할만한 곳이 아닌 것에 의아했지만 개인적으론 한참 헤어져 있던 친구라도 다시 만나는 듯한 기쁨에 들떠 있었다.   사실 관광이라고 할 수도 없다. 뭐 볼 게 있다고. 바위 타는 사람들의 천국이다. 글쓰는 사람들이 모여 차분히 낯선 문우들과 교감할 만한 장소가 없다. 대형버스를 대절했으니 마땅히 주차할 공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섣부른 나의 기우였다. 나름 신선한 느낌으로 즐기는 모습들이 여기저기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다.    두 단체가 콜라보로 이루는 봄 소풍이다. 이름도 얼굴도 처음 대하는 회원들이 다수 있음에도 주최 측의 노력으로 매끄럽게 섞여진다. 열 한 시간을 공유하는 버스 여행이다. 특별한 진행 없이는 자칫 무료하게 잠이나 자면서 재미없다고 투덜대기 십상이다. 몇 사람이 분담해서 고생스러운 봉사를 해준 덕에 모든 참가 회원들이 재밌었다고 입을 모은다.   자유롭게 뭉쳐서 어디든 갈 수 있던 때의 소풍은 이런 짜릿한 흥분을 만날 수 없었다. 집콕해라. 마스크 착용해라. 거리두기 지켜라. 가까운 친구도 만날 수 없었다. 가족 병문안도 금지다.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     색깔이 닮은 사람들끼리 가슴을 열었다. 작정하고 소란을 피우자 했다. 많이 시끄럽긴 했다. 아무튼 큰소리로 무식하게 여러 번 웃었다.     잘 섞이지 못하고, 낯가림이 심한 글쟁이들이지만 무대에서 망가지는 극소수의 희생자들로 넉넉하게 따뜻했고 넘치게 즐거웠다. 센스쟁이들이 많으면 그만큼 더 풍요로운 시간을 꾸밀 수 있다.     주머니 털어 값 나가는 상품 가득 준비한 회원들도 있다. 간식거리 대령시킨, 사이즈가 작은 간을 가진 누군가도 있다. 대부분은 공짜에 눈이 멀었던 우리들이다. 그래도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가 버스 천장을 날린다.   예약하고 참가하지 않은 회원들 땅을 치고 후회할 거다. 지난 세월 경험했던 평안하던 시절의 그런 소풍이 아니었음을 어찌 글로 설명할거나. 행복해서 죽을 거 같다. 아니지. 천배 만배나 살 것 같다. 가슴도 뻥뻥 뚫렸고, 넘넘 좋아서 헤프게 웃음을 흘리고 있다. 오래 그럴 거다. 노기제 / 통관사이 아침에 코로나 소풍 소풍 전날 참가 회원들 미주한국문인협회 주관

2022-05-02

[오늘의 생활영어] to be due for (something to happen) ; ~할 때가 됐다

  (데이비드와 로저가 직장에서 휴식시간을 이용해 얘기한다…)     David: We're due for a school picnic aren't we?   데이비드: 학교 소풍 갈 때가 됐지 안그래?   Roger: Yes we are. When should we have it?   로저: 맞아. 언제 갈까?   David: Our director is out of town so we'll have to wait for him to come back.   데이비드: 원장님은 여행 때문에 안계시니까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려야지 뭐.   Roger: He's returning next Monday on the 23rd.   로저: 23일 다음 월요일에 돌아오실 걸.   David: We always have it on a Friday so how about the 11th or the 18th.   데이비드: 항상 금요일에 하니까 11 일이나 18일이 어떨까.   Roger: Either date is okay by me.   로저: 난 아무 날이나 괜찮아.   David: I'll ask the other teachers and see what they think.   데이비드: 내가 다른 선생님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게.     Roger: Where are we going to have the picnic?   로저: 소풍은 어디로 갈까?   David: I'd like to try the park by me.     데이비드: 우리 집 근처의 공원으로 가봤으면 해.     Roger: Yes that park is much closer to the school than the one we've been going to.   로저: 그래 그 공원은 이제껏 가던 공원보다 훨씬 학교와도 가깝지.   기억할만한 표현   * one is out of town: 멀리 여행중이다     "He's out of town right now. He'll be back on Monday." (그는 지금 멀리 여행중입니다. 월요일이면 돌아올 거에요.)   * (something) is okay by (one): 저는 괜찮습니다     "If you want Chinese food for dinner tonight that's okay by me." (오늘 저녁으로 중국요리를 드시고 싶으면 저야 좋습니다.)     California International University  www.ciula.edu (213)381-3710오늘의 생활영어 school picnic town right 학교 소풍

2022-01-05

[살며 생각하며]소풍같은 인생

대중가요에 별로 친숙하지 못한 내가 시니어센터에 가면 자주 듣는 노래가 있다. ‘소풍 같은 인생’이다. 노래 자체의 신명도 좋지만, 가사의 의미가 긍정적이어서 노인들의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노래에 맞춰 시니어건강체조를 하다 보면 절로 흥이 난다.      너도 한번 나도 한번/ 누구나 한번 왔다 가는 인생/ 바람 같은 시간이야/ 멈추지 않는 세월/ 하루하루 소중하지/ 미련이야 많겠지만/ 후회도 많겠지만/ 어차피 한번 왔다 가는 걸/ 붙잡을 수 없다면/ 소풍 가듯 소풍 가듯/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야지....    쿵작쿵작 반복되는 흥겨운 리듬에 바람 같은 인생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가사, 이것이 ‘소풍 같은 인생’의 인기 열쇠다. 여기에 가늘고 맑게 여운을 이어가는 추가열의 목소리는 어찌할꼬. 이 노래를 음유하다 보면 문득 천상병시인의  ‘귀천(歸天)’이 떠오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영화 '박하사탕'에서, 돌아갈 곳 없는 설경구는 철교 위에서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빽'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빽'이 하늘이라면 그는 천하무적으로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이다. 하늘을 믿으니 이 땅에서는 깨끗한 빈손일 것이다. 하늘을 믿는데 들고 달고 품고 다닐 리 없다. 그러니 새벽빛에 스러지는 이슬이나, 저물녘 한때의 노을이나, 흘러가고 흘러가는 구름의 손짓 등속과 한패일밖에.    시인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소풍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비유한다. 죽어 하늘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을 소풍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발상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는 인생을 소풍처럼 살다간 시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보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서울대 상대를 중퇴하고 부산시청에 근무하며 시인이자 평론가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유럽으로 유학을 갔던 친구로부터 술 한 잔 얻어먹고 막걸릿값을 받는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1967년 동백림사건 때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간다.      6개월 뒤 선고유예로 풀려나지만 거지가 되어 거리를 떠돌다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사망했다고 여기고 유고시집을 낸다. 후에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문우들이 시집을 들고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기저귀를 차야만 하는 몸이었다. 마흔둘에 장가를 갔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아기도 낳을 수 없게 된다. 어쩌면 기구한 자기 인생을 원망하고 세상의 불의에 분노를 삭이며 살았을 법도 한데,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시인의 사진을 보면 모두 한결같이 해맑게 웃고 있다. 인생에 티끌 하나 없을 듯한, 아무런 걱정 하나 없는 아이처럼 보인다. 젊었을 때 이미 죽음을 경험한 그에게 그 이후의 삶은 선물처럼 생각된 모양이다. 그 후 그는 아내와 함께 주일마다 서울 연동교회에 출석하여 맨 앞자리에서 말씀을 들었다. 그의 믿음 때문이었을까. 시인은 중년의 나이에 ‘귀천’을 발표하는데, 시의 부제는 ‘주일’이었다. 아마도 주일에 헤아려 본 죽음에 관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는 누구보다 순수한 시를 쓴 시인이었다. 그의 시에서는 물질적인 욕망이 배제되고 마치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순진무구한 시선으로 읽어낸 세상의 단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귀천이 그의 대표적인 시로 꼽히는 이유 또한 여기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무거운 테마를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담담히 받아들이며 오히려 이를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한다. 이는 세속적인 욕망에서 자유롭고, 이로 인해 삶에 대한 집착과 미련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시인만의 특별한 인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생활 속에서 누구보다 일찌감치 죽음을 자신의 바로 곁에 있는 어떤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시가 그가 죽기 20여 년 전에 쓰인 것을 생각하면, 이미 실제로 세상을 떠나기 한참 전부터 그는 죽음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졌으며,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볼 때 상당히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그리고 세속적인 가치에 큰 무게를 두지 않고 정신적인 근원이 본래 자신의 자리인 것으로 받아들인 그지만 이승의 삶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시인은 먼 우주의 어느 공간에서 어쩌다 지구에 잘못 떨어진 별의 씨앗 같다. 가난을 순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나 지구 한 귀퉁이 지하실에서 당한 가혹한 고문에도 그 흔한 감정의 분화구 하나 없이 불구로 살다 떠나간 것이 애초 별나라 사람이다.      소풍은 즐겁고, 유쾌하고, 가벼운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비춰보자면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는 행복한 일탈이며 여유다. 마치 어릴 적 동네 어귀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저녁때가 되면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집으로 뛰어 돌아갔던 기억처럼. 시인은 노을빛과 함께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이 이제 오라고 부르면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말한다. 그는 세상 너머의 푸른 본향을 사모했다. 과연 우리도 시인처럼  잠시 소풍 다녀온 즐거운 마음으로  이승의 삶을 살다가 갈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꿈꾸는 아름다운 삶. 오늘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귀천’이 나의 가슴을 적신다. 김건흡 / MDC시니어센터 회원살며 생각하며 인생 자기 인생 세상 소풍 중앙정보부 지하실

202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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