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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소풍같은 인생

김건흡 / MDC시니어센터 회원

대중가요에 별로 친숙하지 못한 내가 시니어센터에 가면 자주 듣는 노래가 있다. ‘소풍 같은 인생’이다. 노래 자체의 신명도 좋지만, 가사의 의미가 긍정적이어서 노인들의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노래에 맞춰 시니어건강체조를 하다 보면 절로 흥이 난다.   
 
너도 한번 나도 한번/ 누구나 한번 왔다 가는 인생/ 바람 같은 시간이야/ 멈추지 않는 세월/ 하루하루 소중하지/ 미련이야 많겠지만/ 후회도 많겠지만/ 어차피 한번 왔다 가는 걸/ 붙잡을 수 없다면/ 소풍 가듯 소풍 가듯/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야지.... 
 
쿵작쿵작 반복되는 흥겨운 리듬에 바람 같은 인생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가사, 이것이 ‘소풍 같은 인생’의 인기 열쇠다. 여기에 가늘고 맑게 여운을 이어가는 추가열의 목소리는 어찌할꼬. 이 노래를 음유하다 보면 문득 천상병시인의  ‘귀천(歸天)’이 떠오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영화 '박하사탕'에서, 돌아갈 곳 없는 설경구는 철교 위에서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빽'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빽'이 하늘이라면 그는 천하무적으로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이다. 하늘을 믿으니 이 땅에서는 깨끗한 빈손일 것이다. 하늘을 믿는데 들고 달고 품고 다닐 리 없다. 그러니 새벽빛에 스러지는 이슬이나, 저물녘 한때의 노을이나, 흘러가고 흘러가는 구름의 손짓 등속과 한패일밖에. 
 
시인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소풍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비유한다. 죽어 하늘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을 소풍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발상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는 인생을 소풍처럼 살다간 시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보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서울대 상대를 중퇴하고 부산시청에 근무하며 시인이자 평론가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유럽으로 유학을 갔던 친구로부터 술 한 잔 얻어먹고 막걸릿값을 받는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1967년 동백림사건 때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간다.   
 
6개월 뒤 선고유예로 풀려나지만 거지가 되어 거리를 떠돌다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사망했다고 여기고 유고시집을 낸다. 후에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문우들이 시집을 들고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기저귀를 차야만 하는 몸이었다. 마흔둘에 장가를 갔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아기도 낳을 수 없게 된다. 어쩌면 기구한 자기 인생을 원망하고 세상의 불의에 분노를 삭이며 살았을 법도 한데,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시인의 사진을 보면 모두 한결같이 해맑게 웃고 있다. 인생에 티끌 하나 없을 듯한, 아무런 걱정 하나 없는 아이처럼 보인다. 젊었을 때 이미 죽음을 경험한 그에게 그 이후의 삶은 선물처럼 생각된 모양이다. 그 후 그는 아내와 함께 주일마다 서울 연동교회에 출석하여 맨 앞자리에서 말씀을 들었다. 그의 믿음 때문이었을까. 시인은 중년의 나이에 ‘귀천’을 발표하는데, 시의 부제는 ‘주일’이었다. 아마도 주일에 헤아려 본 죽음에 관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는 누구보다 순수한 시를 쓴 시인이었다. 그의 시에서는 물질적인 욕망이 배제되고 마치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순진무구한 시선으로 읽어낸 세상의 단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귀천이 그의 대표적인 시로 꼽히는 이유 또한 여기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무거운 테마를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담담히 받아들이며 오히려 이를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한다. 이는 세속적인 욕망에서 자유롭고, 이로 인해 삶에 대한 집착과 미련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시인만의 특별한 인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생활 속에서 누구보다 일찌감치 죽음을 자신의 바로 곁에 있는 어떤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시가 그가 죽기 20여 년 전에 쓰인 것을 생각하면, 이미 실제로 세상을 떠나기 한참 전부터 그는 죽음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졌으며,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볼 때 상당히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그리고 세속적인 가치에 큰 무게를 두지 않고 정신적인 근원이 본래 자신의 자리인 것으로 받아들인 그지만 이승의 삶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시인은 먼 우주의 어느 공간에서 어쩌다 지구에 잘못 떨어진 별의 씨앗 같다. 가난을 순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나 지구 한 귀퉁이 지하실에서 당한 가혹한 고문에도 그 흔한 감정의 분화구 하나 없이 불구로 살다 떠나간 것이 애초 별나라 사람이다.   
 
소풍은 즐겁고, 유쾌하고, 가벼운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비춰보자면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는 행복한 일탈이며 여유다. 마치 어릴 적 동네 어귀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저녁때가 되면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집으로 뛰어 돌아갔던 기억처럼. 시인은 노을빛과 함께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이 이제 오라고 부르면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말한다. 그는 세상 너머의 푸른 본향을 사모했다. 과연 우리도 시인처럼  잠시 소풍 다녀온 즐거운 마음으로  이승의 삶을 살다가 갈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꿈꾸는 아름다운 삶. 오늘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귀천’이 나의 가슴을 적신다.

김건흡 / MDC시니어센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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