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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철학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철학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영롱한 별을 볼 수 있다. 햇볕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곡식은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사람도 고난 속에서 강해지고, 고난 속에서 지혜로워지고, 고난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불행을 겪게 되면 주저앉거나 무너지지만,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그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선다. 인생을 자신있게 사는 사람음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다.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라며 한계를 규정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생각한다. 다산 정약용은 평생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중심을 지키며 후회없는 삶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삶의 모든 여정에서 절망에 맞닫뜨린 다산은 '포기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다산에게 절망은 매가 날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 삶을 포기할 이유는 아니었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다.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실시구시로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던 혁명가였고,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등 500여권의 책을 남긴 저술가였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던 혼란한 해(1762년)에 태어났고, 벼슬에 올라 나랏일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았다. 그러다 결국 서학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유배인이 되었고, 조카사위인 황사영이 쓴 〈황사영 백서〉에 연루되어 오랜 생활을 강진에서 묶여 지냈다. 그후 18년의 유배생활에서 풀려났으나 그의 부활을 저지하는 사람들 때문에 벼슬하지 못하고 고향에 머물며 여생을 보냈다. 공적인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험난한 다산의 삶은 사적인 기록을 보태면 더욱 처절해진다. 다산은 부인 홍씨와 6남매를 낳았지만, 4남2녀를 가슴에 묻었고, 함께 수학하던 동료들과 형 정약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또한 우애를 나누던 친구들이 등을 돌리고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는 상황도 견뎌야 했다. 이렇듯 탄생부터 죽음까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다산을 둘러싼 세상은 무척 소란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이 '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이다. 다산은 어떤 상황에서든 세상에 휩쓸리지 않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다산에게 신념을 지키는 방법은 신념을 가지고 현실을 살며, 생각을 크게 가지고, 생각에 그치지 말고 행동하며, 주변을 신경쓰는 일이었다. 다산은 요즘말로 하면 '엄친아'였다. 가문으로 보나 개인으로 보나, 그는 상당히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정약용의 집안은 이른바 '8대 옥당'이라 불린 명문가였다. 학문이 높은 사람만 될 수 있다는 옥당 관리, 즉 홍문관 관리를 8대 연속으로 배출했다 하여 그렇게 불린 것이다. 이 가문은 양반 중에서도 양반이었다. 정약용은 스물두 살에 소과시험인 생원시에 합격, 스물여덟에는 대과인 문과에 급제했다. 그는 병조참의(국방부 국장), 황해도 곡산부사, 부승지(대통령 비서)등을 역임하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정조 임금의 신임까지 얻었으니 그의 앞날은 푸른 하늘처럼 높고 맑기만 했다.   그런데 서른아홉살 때부터 정약용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주군이 정조가 갑자기 사망한 것이 그 시초였다. 정조의 새할머니인 정순왕후 김씨는 손자가 죽은 뒤 심환지를 비롯한 보수파와 손잡고 정조시대의 개혁을 파괴했다. 이 때문에 정조의 측근들은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었다. 정약용도 그런 표적이었다. 정조의 시신이 땅에 묻히고 얼마 뒤 정약용은 자택에서 의금부 관리들에게 체포되었다. 죄목은 '서학쟁이'였다.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였다. 오래 전에 천주교를 떠난 사람에게 이런 죄목을 뒤집어씌운 것은 정약용 체포의 본질이 정치탄압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시기에 정약용 뿐만 아니라 그의 가문 전체가 사실상 멸문지화를 당했다. 둘째형인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고, 셋째형인 정약종과 매형인 이승훈은 사형을 당했다. 이외에도 고초를 겪은 집안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렇게 시작된 정약용의 수난은 무려 18년간이나 계속됐다. 구속된 이후에 그는 경상도 장기현(포항시)과 전라도 강진군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그렇게 새장에 갇힌 새가 되어 그는 18년을 견뎌야 했다. 18년의 수난생활에 대해 정약용은 독특한 대처법을 취했다. 그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승리를 위한 날개짓이었다. 정조의 죽음과 함께 맞이한 패배를 만회하고 내일의 승리를 기약하고자 그는 유배지에서 18년간 그렇게 날개짓을 했다. 특이한 것은 정약용의 날개짓이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양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중앙정계에 복귀하거나 반정부운동을 벌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있는 현재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완성을 이룩하는 것이었다. 그런 철학적인 방법으로 그는 승리를 이룩하고자 했다.     승리를 향한 정약용의 날개짓 중의 하나는 유배지 주민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가 유배지에서 당한 설움을 감안하면, 이런 태도는 따스한 가슴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장기현 유배 당시, 정약용은 죽림서원이란 곳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현지 선비들의 저지로 문앞에서 쫓겨난 것이다. 정조가 살았을 때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번째 유배지인 강진군에서는 한동안 숙소를 구하지 못해 마음을 졸여야 했다. 정약용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집이 없었던 것이다. 장례문제에 관한 서적인 〈상례사전〉 서문에서 그는 “강진 백성들은 귀양온 사람 보기를 큰 해독처럼 여겼다.”고 했다. 다행히 주막집 여주인의 도움으로 숙소 문제를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다. 여주인이 그에게 객실 하나를 선뜻 내어준 것이다. 세상이 다들 기피하는 인물에게 호의를 베푼 것을 보면 마음도 좋고 배짱도 좋은 술집마담이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냉대를 받으면서도 정약용은 유배지 주민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베풀었다. 대표적 증거중 하나가 〈촌병흑치〉라는 저서다. 이 책은 장기현 주민들을 위해 저술한 의료지침서다. 병에 걸리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하거나 뱀을 잡아먹을 정도로 의료사각지대였던 장기현 주민들을 위해 이 책을 지었던 것이다.     승리를 향한 정약용의 날개짓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투적 글쓰기였다. 그가 남긴 저서는 약 500권이다. 저술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기간은 18년간의 유배생활중이었다. 그는 왜 그렇게 열심히 글을 썼을까?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책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은 사헌부(검찰청)의 보고서나 재판서류를 근거로 나를 평가할 것이다.” 법적으로는 이미 죄인이 되었지만, 역사의 재평가를 받기 위해서 열심히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정약용의 생각이았다. 정의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쓴다면 후세 사람들이 자기를 올바로 평가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정약용은 자기에 대한 현실권력의 법적 평가를 무력화시키고 미래권력의 역사적 평가를 받고자 그토록 치열하게 글을 썼던 것이다. 죽어서 승리하고자 그렇게 했던 것이다. 죽음으로써 삶이 끝나는 게 아니라 죽어서도 얼마든지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다고 그는 확신한 것이다. 정약용은 글을 통해 승리를 거두었다. 오랜 유배 생활은 다산에게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학문적으로는 매우 알찬 결실을 얻은 수확기였다. 귀양살이는 그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주었지만, 최고의 실학자가 된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귀양살이라는 정치적 탄압까지도 학문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업적을 이뤄낸 인내와 성실, 그리고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성실을 제일로 친 사람이었다.  500권의 책 속에 담긴 그의 사상은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가 쓴 500권의 책은 승전비나 마찬가지다. 젊은 나이에 주군도 잃고 가문도 망한 정약용은 길고도 지루한 유배생활 중에도 스스로를 혁명하기 위한 노력을 잠시도 늦추지 않았다. 그는 살아서 못다 한 일들을 죽어서라도 달성하고자 했다. 정약용은 유배생활을 역전의 발판으로 만들었다. 쓰러지면 쓰러진 채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자 그는 불굴의 날개짓을 했다. 결국 그는 새장을 뚫고 날아올랐고, 적들보다 더 높이 푸른 하늘을 날아올랐다. 정약용은 그렇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     김지민 기자소란 철학 다산 정약용 정약용 체포 유배지 주민들

2022-08-03

"거짓말에 지친다, 변호사가 알아서 할 것"

에이미와 폭행사건에 연루된 허모씨가 에이미의 "일방적으로 맞았다"는 주장에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허씨는 본지와 가진 대화를 통해 "에이미의 거짓말에 지친다"고 말했다. 그는 "에이미의 엄마는 남편을 통해 화해의 뜻을 전달하는데 에이미는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다"며 "폭행엄마가 되었다. 에이미를 도왔던 주변 지인들도 많이 놀랐고 충격을 받았다. 힘들다"고 말했다. 허씨는 에이미와 주고 받은 메시지를 보여주며 그의 주장을 일일이 반박했다. 허씨의 주장을 정리했다. -뭐가 거짓말인가 "100% 거짓말이다. 지인들도 알고 있고 메시지를 주고 받은 기록도 있다. 3년 전 처음 알던 때부터 이번 사건까지 전부 거짓말이다. 힘든 상황이라서 도와줬는데 이렇게 돌아왔다. 지인들도 에이미를 동생처럼 보살피고 도와줬는데 결과가 이렇게 돼 많이 힘들다고 말한다. " -당일 무슨 일이 있었나 "2일 밤, 집 앞에서 남편과 와인 1병을 나눠 마시고 들어왔다고 에이미가 말했다. 에이미가 남편과의 싸움에 끼어들어 그녀에게 나가라고 하며 밀쳤다. 남편을 사정없이 때리고 에이미를 계단에 내팽개쳤다는데 황당하다. 6일과 12일 남편이 '맞지 않았다'고 지인들 앞에서 이야기했다. 녹취가 있다." -사건 이후 연락했나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왔다. 수술비용도 내야 되고 양육권도 포기해야 될 거라고 했고 중국에서도 소송한다고 했다. 3일부터 호텔에 있었다는데. 에이미와 그 엄마가 6일까지 우리 집에 머물렀다." -어떻게 진행중인가 "그것이 혼란스럽다. 남편이 '에이미 엄마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 원만하게 합의하기 원한다'라고 전하더라. 하지만 에이미는 언론을 통해 거짓말을 계속 하고 있다. 에이미와 엄마는 전혀 다른 입장인가? 힘들다." -에이미와는 어떻게 지냈나 "교회도 같이 가고 중국에 간다 해서 쇼핑도 함께 했다. 차가 없어 거의 함께 했다. 7시부터 일어나 아이들을 챙겼다는데 나의 일상을 이야기하더라. 큰 애가 14세다. 7시에 일어나서 뭘 도와줄 수 있겠나." -외출은 없었나 "가끔씩 밖에 나갔다 왔고 들어오면 오래 잠을 잤다. 1월 7일에는 친구 만나러 LA에 갔다 이틀 뒤에 들어왔다. 사촌언니를 만났다고 했는데 친척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집에 와서는 거의 이틀을 잤다." -앞으로의 계획은 "법적인 것은 변호사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가장 아픈 것은 이번 일로 한 가정이 깨진 것이다. 아이들도 주변 사람들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 힘들겠지만 에이미를 알기 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한편, 지난 2일 허씨와 에이미는 말다툼끝에 출동한 경찰에게 '상대방을 체포해달라'고 요청했다. 에이미는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으며 경찰은 둘 모두에게 쌍방폭행혐의로 4월 15일 오전 8시 풀러턴 법원에 출두하라는 티켓을 발부했다. 에이미는 지난해 12월 31일 한국에서 떠난 뒤 풀러턴 허씨의 집에서 머물러 왔다. 백정환 기자

2016-03-13

[영상인터뷰]"일방적으로 맞았다…경찰도 고소하라 했다"

에이미(사진)가 폭행사건이 일어난 이후 처음으로 미디어에 모습을 비추며 '억울하다'고 말했다. 11일 LA 한 호텔에서 에이미는 "이번 문제에 가해자처럼 비친다는 게 마음이 아픈 상황이라며 많이 힘들다"고 첫 말을 뗐다. 이어 그는 "허씨가 마치 불륜처럼 몰아가고 연예인이라는 약점을 이용하고 있다. 더이상의 거짓말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에이미는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에이미와의 인터뷰 내용을 1문1답으로 정리했다. -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피트니스, 골드짐에서 운동을 했다. 8시 반쯤 오빠(황씨)가 픽업을 왔다. 술 마셨냐고 물었더니 와인 한잔을 마셨다고 했다. 원래 술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그날따라 마음이 울적해서 집 앞에 앉아 있었다. 밤에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황씨가 먼저 들어가고 9시쯤 들어갔다." - 부부싸움이 있었나 "집에 들어가니 언니(허씨)가 갑자기 '니네 지금 뭐하는거야'라고 소리를 쳤다. 손만 씻고 와서 이야기하겠다고 말하고 1층 화장실로 갔다. 나오니까 이미 위에서 싸움이 났다. 2층에 올라갔는데 허씨가 남편 머리채를 휘어잡고 얼굴을 사정없이 구타하는 장면을 봤다. 아이들이 아빠 다치는 것을 못 보겠다며 911에 신고했다." - 폭행을 당했나 "그만하라고 말하고 '남편을 그렇게 못 믿냐'고 말하는데 허씨가 계속 밀었다. 당장 나가라고 했다. 그래서 렌트비 낸 것을 돌려 달라고 했다. 1층으로 내려왔는데 계단 쪽으로 나를 내팽겨치고 얼굴, 코, 몸, 다리 등을 정신없이 때렸다. 잠깐 정신을 잃었는데 허씨 아들이 '엄마, 그만해'라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경찰이 와 있었다." - 경찰은 뭐라고 했나 "경찰이 코가 많이 부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이 와서 사진을 다 찍었다. 응급실로 가겠냐고 물어봤지만 보험이 없어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아 괜찮다고 했다. 경찰은 소송을 하라고 말해 주고 명함을 주면서 위로해주고 돌아갔다. 허씨는 경찰이 오자 표정과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중적으로 내가 먼저 때렸다고 경찰에게 말했다. 놀랐다" - 많이 다쳤나 "다음날 코 안으로 뼈가 튀어나온 게 만져졌다. 병원에 갔는데 연골쪽이 부러졌다고 말했다. 완전히 휘어진 상태였다. 토요일에 수술하며 핀을 박았다. 숨도 잘 못 쉬어 불편하다. 엑스레이는 찍지 않았다. 붓기가 가라앉은 다음에 상태를 보고 수술을 결정해야 된다고 했다." - 지금은 어떤가 "몸은 쇼크 상태인 것 같다. 갑자기 정신을 잃기도 한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고 밤마다 소리지르며 일어나기도 한다. 사건 다음날 충격이 와서 은행 앞에서 쓰러졌다. 며칠 뒤에는 풀러턴 호텔 앞에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많이 힘들다." -황씨 집에는 어떻게 머물게 됐나 "가족이 한국에 다 있고 연고도 없다. 황씨는 예전에 1년 정도 머무를 때 알게 됐고 비즈니스 이야기도 나눈 적이 있는 아는 사이다. 중국에서 쿠킹쇼를 준비하고 있었다. 황씨는 유명한 셰프이기에 배우려고 그 집에 들어갔다. LA에 머무를 수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힘든 일도 있었고 새로 태어나고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와서 풀러턴으로 오게 됐다." - 그 집에 계속 머무른 이유는 "한국에서는 혼자만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황씨 샌드위치숍에서 일하며 손님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사람들과 말도 많이 하게 되면서 힐링이 되었다. 나이가 있어서 가족에게 손을 벌리기도 그렇고 가족에게 더이상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황씨 가족이 크리스찬이고 교회도 나가면서 삶의 패턴을 바꾸고 싶었다." -황씨 집에서는 어떻게 지냈나 "항상 패턴이 같았다. 7시에 일어나서 애들 깨우고 옷 입히고 학교 준비 시키고 애들 라이드 해주고 레스토랑 가고 5시까지 일하고 애들 다시 픽업하고 집에 와서 숙제 봐주고 밥 먹는 거 체크하고 놀아주기도 하고 그러고 잠을 잤다. 일도 많이 하고 세탁, 청소, 설겆이도 하고." - 사건 이후에 허씨하고 연락을 주고 받았나 "3일 그 집을 나와 호텔에 머물렀다. 황씨는 미안하다고 했다. 고생만 시켰다고 했다. 엄마한테 죄송하다고 말했다. 7일 허씨한테 먼저 문자를 보냈다. 경찰, 병원 내용을 전했다. 사과하기를 바랐다. 용서할 수 있었다." - 허씨 주장과 많이 다르다 "스스로 보호하려고, 몰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일부러 약점을 이용한다. 많이 실망되고 충격이다. 너무 화가 난다. 열심히 집안 일과가게 일도 도왔는데. 너무 억울하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하다." - 허씨에게 바라는 것은 "사과를 바란다. 그리고 수술 등 보상을 해야 된다. 더이상의 거짓말은 용납 못한다. 계속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명예훼손도 고려할 것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16일 코에 핀을 뺀다. 상태에 따라 결정될 것 같다. 많이 부어 있으면 앞으로 스케줄에 차질이 생긴다. 우선은 14일에 경찰서에 가서 추가 리포트를 제출할거다. 변호사와 상의하고 있다. 허씨가 인정하지 않을 경우 폭력, 상해로 갈 것이다." 한편 에이미는 지난해 12월 31일 한국에서 떠난 뒤 풀러턴 황모씨의 집에서 머물러 왔다. 그러다 지난 2일 에이미와 황씨의 아내, 허씨와 심한 말다툼이 벌어져 경찰이 출동했다. 당시 에이미와 황씨의 아내는 경찰에게 '상대방을 체포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둘 모두에게 쌍방폭행혐의로 4월 15일 오전 8시 풀러턴 법원에 출두하라는 티켓을 발부했다. 백정환·김상진 기자 <영상 인터뷰> 취재: 오세진 기자, 편집: 김인수 인턴 기자

2016-03-11

에이미, LA 길거리서 쓰러져 응급실행 '쇼크상태'

에이미가 길거리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후송됐다. 에이미는 9일 LA의 한 길거리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후송됐으며 현재 쇼크상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에이미 측은 "(폭행 사고 당시) 머리를 많이 맞은것이 쇼크에 빠진 원인이다. 현재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로써 3월 말, 중국에서 방송 고정 출연이 예정돼 있었던 에이미의 스케줄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앞선 8일 오후에는 에이미가 지인(황씨)의 가정에서 머물던 중, 지인의 부인(허씨)과 물리적 다툼을 벌여 경찰이 출동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부인 허씨는 사건 당일 남편이 에이미와 술을 마시고 귀가 했으며,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던 중, 에이미가 올라와 '남편에게 잔소리가 심하다. 애들이나 잘 키우라'고 말해 몸싸움으로 번졌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 대해 에이미가 부상을 당했고, 허씨는 '가볍게 밀친 정도'라고 주장한 상황. 또한 허씨는 에이미가 가정에 머무르는 동안 남편에게 명품 가방 구입을 부탁하고 복용중인 약물을 방치해 어린아이가 집어 먹는 소동까지 일어나는 등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반면 에이미는 8일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를 통해 남편 황씨와 오랜 지인이며 자신의 어머니와도 비즈니즈 파트너를 맺을 정도로 친숙한 사이라고 전하며 "사건 당일, 황씨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부부가 2층에, 내가 1층에 머물고 있는데, 2층에서 부부의 아들이 내게 달려와서 '좀 말려달라'고 했다"며 "깜짝 놀라서 달려 올라갔고, 아내와 남편이 몸싸움을 하고 있길래 급히 만류했다. 그러자 화가 난 아내가 나를 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죽하면 911에 신고한것이 아들이겠는가"라고 반문 했다. 이어 "코뼈가 부러지고 온몸 여러곳에 부상을 입었다. 경찰 3명이 왔고, 일방적인 구타 사실을 모두 확인했다. 그들의 리포트 결과에도 내가 맞은 사실이 기록돼 있다. 심지어 경찰 3명은 재판때 나의 증인이 되어주겠다고 약속가지 한 상황이다.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것"이라며 당시 경찰 조서와 상처를 입은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또한 에이미는 약물 복용에 대해서도 '천연 수면제'라고 말하며 "방치한것이 아니고, 꼬마 아이가 방에 있던 약품 뚜껑을 열어 철없이 먹으려는 것을 낚아채서 말린 적이 있다. 부주의한 점을 후회하긴 하지만, 마치 약에 취해서 아무렇게나 약을 방치한것 처럼 주장한다면 그것은 터무니 없는 말이다"라고 주장했다. 박현택 기자

2016-03-09

에이미-'풀러턴 한인여성' 진실 공방전

속보 방송인 에이미와 '풀러턴 한인여성'간 쌍방폭행사건이 '거짓말 주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에이미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폭행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코뼈가 부러지고 온몸 여러곳에 부상을 입었다. 경찰이 일방적인 구타 피해 사실을 모두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지인 부부싸움에 개입한 이유에 대해 "아내는 상습적으로 남편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람이었다. 2층에서 부부의 아들이 '좀 말려달라'고 하더라. 아내가 남편을 때리고 있길래 급히 만류했다"고 말했다. 또 풀러턴 황모씨 집에 머물게 된 계기는 "오래전부터 알던 지인인데다, 어머니와도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를 가질 만큼 친숙한 사이였다. '함께 산것'이라기보다 한달에 1000달러씩 지불하며 2층집에서 1층에 거주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허모씨(풀러턴 여성)는 에이미가 당일 집에 오기 전에 인근 골드짐 피트니스센터에서 한인 여성 2명과 말다툼과 함께 몸싸움을 했다고 주장했다. 허씨는 "락커룸에서 다른 한인 여성 2명이 에이미와 관련된 안 좋은 말을 해서 수건을 던지며 싸웠다고 들었다"면서 "남편 황씨가 에이미를 달래주기 위해 술을 함께 마신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골드짐측은 본지의 확인 요청에 사실관계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허씨는 렌트비와 관련, "받은 적 없다. 밥값을 준다고 해서 1000달러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가달라고 요청하면서 1130달러 체크를 끊어서 주었다"고 했다. 남편과 아이들 폭행 주장에 대해서는 "황당하다. 아들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는데 뻔뻔한 거짓말이다. 에이미가 작은 아이(5세)에게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했다. 경찰 리포트를 보면 다 나오는 이야기다"라고 주장했다. 백정환 기자

2016-03-08

[단독]에이미, 상처 공개 "일방 폭행 당해 코뼈 부러져"

에이미가 미국에서 벌어진 폭행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지난 7일 에이미가 풀러턴 지인(황씨)의 가정에서 머물던 중, 지인의 부인(허씨)과 물리적 다툼을 벌여 경찰이 출동했다는 본지 보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관련기사 : 한국서 쫓겨난 에이미, 이번엔 미국서 폭행 시비 허씨는 사건 당일 남편이 에이미와 술을 마시고 귀가 했으며,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던 중, 에이미가 올라와 '남편에게 잔소리가 심하다. 애들이나 잘 키우라'고 말해 몸싸움으로 번졌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 대해 에이미가 부상을 당했고, 허씨는 '가볍게 밀친 정도'라고 주장한 상황. 또한 허씨는 에이미가 가정에 머무르는 동안 에이미가 편에게 명품 가방 구입을 부탁하고 복용중인 약물을 방치해 어린아이가 집어 먹는 소동까지 일어나는 등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 모두에 대해 에이미는 어떤 입장일까. -황씨와는 어떤 관계이며 어떤 계기로 그 집에 머물게 됐나. "아내가 있는 '남성 지인'의 집에 머물다가 그 아내와 싸움을 벌였다고 하니 마치 이상한 뉘앙스로 비춰져 버렸다. 황씨는 오래전부터 알던 지인인데다, 우리 어머니와도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를 가질 만큼 친숙한 사이였다. 또한 황씨가 셰프로 일하는 만큼, 요리등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 하에 머물게 됐다. '함께 산것'이라기보다 1달에 1000불씩 지불하며 2층집에서 1층에 거주한 것이다." -사건 당일, 황씨와 술을 마시고 귀가했나. "아니다. 미국은 차가 없으면 활동이 제한적이다. 황씨가 퇴근 중 나를 픽업해 함께 집에 온 것이며, 나를 만나기 전에 지인과 와인을 조금 마셨다고 들었다." -부부의 싸움에 개입한 이유는. "허씨는 상습적으로 남편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체벌이 엄격히 금지된 미국에서 아이도 자주 때리곤 했다. 부부가 2층에, 내가 1층에 머물고 있는데, 2층에서 부부의 아들이 내게 달려와서 '좀 말려달라'고 하더라. 가만히 있을 사람이 누가 있나. 깜짝 놀라서 달려 올라갔고, 아내가 남편을 때리고 있길래 급히 만류했다. 그러자 화가 난 아내가 나를 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죽하면 911에 신고한것이 아들이겠는가." -폭행 과정이 어땠나. "코뼈가 부러지고 온몸 여러곳에 부상을 입었다. 경찰 3명이 왔고, 일방적인 구타 사실을 모두 확인했다. 그들의 리포트 결과에도 내가 맞은 사실이 기록돼 있다. 심지어 경찰 3명은 재판때 나의 증인이 되어주겠다고 약속가지 한 상황이다.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는데, 마치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른 사람처럼 되어서 매우 당황스럽다. 어떠한 증거라도 보여줄 수 있으며 재판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꼭 봐달라." - 부부의 집에 머물던 중, 약물을 아무곳에나 방치해 어린아이가 먹게되는 소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멜라토닌이라는 미국 천연 수면제였다. 방치한것이 아니고, 꼬마 아이가 방에 있던 약품 뚜껑을 열어 철없이 먹으려는 것을 낚아채서 말린 적이 있다. 부주의한 점을 후회하긴 하지만, 마치 약에 취해서 아무렇게나 약을 방치한것 처럼 주장한다면 그것은 터무니 없는 말이다." -황씨에게 명품가방 구입을 부탁한적이 있나. "상식적으로 명품가방을 왜 부탁하겠나. 그런일은 전혀 없었다." -향후 어떤 절차를 밟을 예정인가. "억울하고 황당하다. 단 한대도 때리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결과를 보시면 알게될 것이다." 박현택 기자

2016-03-08

'프로포폴' 에이미, 이번엔 미국 법정

한국에서 강제출국된 방송인 에이미(사진)가 미국 법정에 서게 됐다. 에이미는 지난해 12월 31일 한국에서 떠난 뒤 풀러턴 황모씨의 집에서 머물러 왔다. 그러다 지난 2일 에이미와 황씨의 아내간 심한 말다툼이 벌어져 경찰이 출동했다. 당시 에이미와 황씨의 아내는 경찰에게 '상대방을 체포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둘 모두에게 쌍방폭행혐의로 4월 15일 오전 8시 풀러턴 법원에 출두하라는 티켓을 발부했다. 황씨의 아내에 따르면 2일 오후 남편과 에이미가 술을 함께 마시고 집에 들어왔다. 이에 화가 난 아내는 남편과 부부싸움을 벌였다. 소리를 들은 에이미는 남편 편을 들었다고 아내는 주장했다. 결국 에이미와 자신이 말다툼을 하게 됐다고 황씨 아내는 말했다. 에이미 어머니는 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모든 것은 법원에 나오면 알 수 있다. 에이미가 많이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황씨 아내는 "서로 밀고 밀치는 정도였다. "어려운 상황이던 에이미를 도와줬다. 수차례 나가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러지 않았고 결국 이렇게 됐다"고 주장했다. 3년 전 지인의 소개로 에이미를 알게 된 남편 황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에이미가 집에 머무른 이유에 대해 "렌트를 준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 국적인 에이미는 한국서 2012년 프로포폴 투약 사실이 적발돼 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출입국 당국은 에이미에게 '법을 다시 어기면 강제출국을 당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준법 서약서를 두 차례 받고 체류를 허가했지만, 에이미는 지난해 9월 졸피뎀을 투약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500만원이 선고된 바 있다. 이에 당국은 지난해 3월27일까지 출국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에이미는 불복, 소송을 냈지만 패소해 강제출국됐다. 백정환 기자

2016-03-07

한국서 쫓겨난 에이미, 이번엔 미국서 폭행 시비

한국에서 강제추방된 방송인 에이미(34·본명 이에이미)가 미국 법정에 서게 됐다. 이번에는 폭행 시비가 문제다. 에이미는 지난해 12월 31일 한국을 떠난 뒤 풀러턴의 황모씨 집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난 2일(현지시간) 황씨의 아내 허모씨와 다퉈 풀러턴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은 두 사람에게 4월 15일 오전 8시에 풀러턴 법원에 출두해 판사 앞에서 잘잘못을 가리라고 명령했다. 허씨에 따르면 남편 황씨는 사건 당일 에이미와 술을 마시고 귀가했다. 그러나 허씨는 남편 황씨에게 "아이를 봐 달라는 부탁은 들어주지 않고 왜 술을 마시러 갔었느냐"며 따졌다. 부부는 2층에서 말다툼을 벌였다. 이때 아래층에 있던 에이미가 올라왔다. 허씨는 "부부문제니 빠져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에이미는 "남편에게 잔소리가 심하다. 애들이나 잘 키우라"고 말해 몸싸움까지 벌어졌다는 게 허씨의 설명이다. 경찰은 허씨의 아들이 신고해 출동했다. 에이미 측도 허씨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에이미의 모친은 7일 미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에이미가 다쳤다. 모든 것은 법원에서 알 수 있다. 에이미가 많이 힘들어한다"며 "변호사를 통해 모두 이야기하겠다"고 설명했다. 허씨는 "서로 밀치는 정도였다. 에이미가 큰 부상을 당했다는데 그렇다면 나에게도 상처나 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어려운 상황이던 에이미를 도와줬다. 수차례 집에서 나가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러지 않았고 결국 이렇게 됐다"고 주장했다. 남편 황씨는 기자에게 "모든 것은 변호사를 통해서 이야기하겠다. 사실과 다른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에이미씨가 계속 집에 머무른 이유에 대해서는 "렌트를 준 것"이라고 답했다. 황씨는 3년 전 지인을 통해 에이미를 알게됐다. 이후에도 연락을 주고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 측 주변인들에 따르면 에이미는 황씨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수차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주변인들은 에이미가 황씨 집에 머무는 첫날부터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해에는 에이미가 황씨에게 명품가방 구입을 부탁했고, 이를 알게 된 아내가 황씨와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는 "남편이 당일 아침에야 에이미가 온다고 말했다. 황당했지만 (에이미에게) 안좋은 일이 있었고 3~4일만 머물면 된다고 해서 잘 돌봐주기로 했다"며 "에이미가 편안히 머물 수 있도록 방을 내어주고, 차가 없는 에이미의 발이 되어주기도 했다. 최대한 배려했다"고 말했다. 에이미의 약물 복용 문제도 또 거론됐다. 허씨는 집에 머무는 동안 에이미는 계속 여러 약들을 복용했고 이로 인해 여러 문제들도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에이미는 약을 많이 복용한 날에는 약에 취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으며, 거실에 약들을 방치한 채 짧은 옷을 입고 잠들기도 했다. 그밖에도 14세, 5세된 아이들이 차마 볼 수 없는 여러 상황들이 있었다고 허씨는 강조했다. 허씨는 "동생이 아기를 데리고 왔는데 거실에 굴러 다니던 에이미의 약을 집어먹어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며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집을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계속 머물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국에 스케줄이 있다고 말했는데 20일이 지나도 계속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LA에 친척 언니가 있고 부모가 못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집에 머무르느냐고 계속 이야기했는데 '언니 집이 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에이미와 황씨 부부사이가 점점 안 좋아지자 주변 지인들도 에이미에게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에이미는 번번이 거부했다. 지인들은 이번 일이 발생하면서 결국 서로간에 쌓였던 불만이 터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 에이미는 황씨의 집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온 어머니와 함께 모처에서 기거 중이다. 한편 미국 국적인 에이미는 2012년 프로포폴 투약 사실이 적발돼 한국 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출입국 당국은 에이미에게 '법을 다시 어기면 강제출국을 당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준법서약서를 두 차례 받고 체류를 허가했다. 하지만 에이미는 집행유예 기간이던 지난해 9월 졸피뎀을 퀵서비스로 받아 투약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500만원이 선고된 바 있다. 이에 당국은 다시 범죄를 저지른 에이미에게 지난해 3월27일까지 출국하라고 통보했으며 에이미는 불복하고 소송을 냈으나 패소해 지난해 한국을 떠났다. 백정환 기자 baek.junghwan@koreadaily.com

201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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