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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CMA ‘한국의 보물들’ 전시작 위작 논란

지난 25일부터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전시 중인 ‘한국의 보물들(Korean Treasures)’ 작품 일부가 위작이라는 의견이 한국에서 나왔다.   LACMA의 이번 전시는 남가주 한인 커뮤니티의 올드타이머이자 사회공헌활동가인 체스터 장 박사가 지난 2021년 LACMA에 기증한 한국의 고미술품 중 일부다. LACMA는 장 박사와 아들 캐머런 장 박사(전문의)가 기증한 초기 컬렉션 중 35점을 선정해 지난 25일부터 오는 6월 30일까지 레스닉 파빌리온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위작 논란이 나온 작품은 박수근과 이중섭의 그림이다.   야자수가 있는 해변 풍경이 담긴 박수근(1914~1965)의 ‘와이키키’와 또 다른 유화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1961년경), 이중섭(1916~1956)의 유화 ‘황소를 타는 소년’(1953년경)과 타일 그림 ‘기어오르는 아이들’이다.     한국내 감정 관계자들은 “사진 이미지로만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박수근·이중섭, 그리고 북한에서 활동한 화가들로 구성된 그림들만큼은 출처와 진위가 의심스럽다”며 “선의의 기증이라도 미술관은 이를 검증해 전시 여부를 결정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그림들을 직접 본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전 관장은 “수장고에서 10여 점을 본 뒤 박수근·이중섭·김관호 등 몇 점에 대해 ‘위작’이라는 의견서를 써 줬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2년 LACMA와 ‘사이의 공간: 한국미술의 근대’전을 공동 개최했고, 윤 관장은 이때 해당 그림들을 봤다. 윤 전 관장은 “필요하면 한국의 전문가와 감정기관에 원격 감정을 의뢰할 수 있다고 조언했는데 미술관이 전시를 강행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관객들이 ‘한국 근대 미술의 대표작이라는 것이 이런 수준인가’ 오해할까 싶다”고도 덧붙였다.     한국미술품감정가협회장을 지낸 그는 “그림값이 비싼 박수근·이중섭 등은 지금도 꾸준히 위작이 제조·유통되고 있어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전문가가 적은 미국의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건 아닐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수근의 장남 성남(77) 씨도 “거친 갈색을 주조색으로 우리 이웃들의 정감 어린 일상을 담은 아버지가 하와이의 파란 하늘을 그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인물화도 전형적 ‘짜깁기’다. 주요 인물 도상을 여기저기서 가져다가 맥락 없이 붙였다. 아버지의 인물화는 여백 미가 있고 인물이 갖는 스토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로 아버지의 이미지에 흠이 갈까 안타깝다”라고도 했다.   이같은 논란에 대해 LACMA는 28일 본지에 “LACMA는 박수근, 이중섭, 김관호의 작품에 대한 우리의 연구를 확신한다. 우리는 이 작품들에 대한 정보를 계속 추구할 것이며 우리의 미래의 출판물에 새로운 발견을 공유할 것이다”라며 위작 논란을 일축했다.   앞서 지난 21일 열린 VIP 리셉션에서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중국·한국·동남아 및 남아시아 미술관장이자 큐레이터인 스티븐 리틀 박사는 “기증자인 체스터 장 박사 집안이 50년 이상 간직하던 작품들로 이번 전시회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라며 “작품 확인 등을 위해 지난 3년간 한국을 수차례 방문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기증자인 체스터 장 박사 역시 28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LACMA에서 미술품을 기증받은 후 오랫동안 검증 작업을 진행했다.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수근 작품을 구입할 때 그의 아들(박성남)의 작품도 함께 판매되고 있었다. LACMA 기증품 중에는 아들의 작품도 여러 개 포함돼 있다. 만약 박수근 화가의 작품이 위작이라면 아들의 작품도 위작이라는 것”이라며 “위작 논란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장연화.한국 중앙일보 권근영 기자 chang.nicole@koreadaily.com한국 보물 위작 논란 보물들 전시품 박수근 이중섭

2024-02-28

[뉴욕의 맛과 멋] 숨어있던 보물 ‘매실’

내 김치냉장고 한쪽은 한국의 된장, 고추장 등 장류 저장고이다. 어제 배추 된장국 끓이려고 된장과 고추장을 꺼내는데 고추장이 든 작은 용기가 서너개가 되었다. 한국서 올 때 친구들 혹은 지인들이 준 것을 먹다 보면 그렇게 된다. 보통 때도 늘 보던 장면이지만, 왠지 눈에 거슬려서 “이걸 한데 모아야지” 싶었다. 꺼내다 보니 오른쪽 구석에 밑에 매실 병이 있다. 매실청 건더기인데, 뚜껑에 2017년 5월 14일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다.     요즘은 셰프들도 요리할 때 보면 매실청이 빠지는 적이 없다. 매실이 워낙 천연소화제에 기관지와 피로해소에 좋다고 해서 매실청 담는 집이 많다. 나도 덩달아 매실 장아찌를 몇 번 담았다. 매실 씨에 독성이 있다고 해서 씨를 다 빼고 담았는데, 씨 빼는 작업이 하도 일이 많아 몇 번 만들다 포기했다. 그러다가 매실을 씨째로 담아도 일 년 동안 숙성시키면 독이 다 빠져서 아무 상관 없다는 말을 듣고 작년에 다시 매실청을 담았다. 5월에 일 년이 된다.   나는 신 것을 매우 싫어해서 매실청 따르고 나면 건더기는 그냥 버렸다. 그 신맛 나는 매실로 장아찌를 만든다든가 하는 건 엄두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매실이 비싸니까 아깝단 생각이 없진 않았나 보다. 그래서 버릴 날을 미루다가 잊어서 밑에 깔린 바람에 얘는 아직 명줄이 남았던 것이다.     첨엔 그냥 버리려고 했다. 그래도 씨를 빼고 만드느라 애썼던 내 노동에 미련이 남아 형식적으로 한쪽을 먹어 보았다. 그리고 얼떨떨해졌다. 아직도 오돌오돌한 매실은 신맛은 무늬뿐, 뭔가 입맛을 돋워주는 오묘한 매력이 있었다. 만 5년 동안 숙성되었으므로 신맛이 그동안 무뎌지고, 청은 따라낸 후이니 당도도 적당했다. 조금 꺼내어 간장에 살짝 무쳤더니 은근히 입 안을 사로잡는다. 마치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손댄 김에 신이 나서 내가 먹을 것은 그렇게 간장에 버무리고, 나머지는 고추장에 버무렸다. 늘 소화 문제로 골치 썩는 첫째에겐 아주 좋은 선물이 될 것 같고, 친구들에게도 나누어주면 좋을 것 같다. 매실 장아찌는 이렇게 청을 따르고 남은 건더기를 입맛에 맞게 간을 해서 장아찌로 먹으면 되는데, 진즉에 그러지 못한 일이 새삼 아깝기 짝이 없다.   시답잖게 여겼던 매실의 발견이 마치 숨은 보물찾기에서 보물 찾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사실 우리 어릴 적엔 안방 위에 있던 ‘다락’이 보물창고였다. 다락 위엔 꿀이며 엿, 밤, 곶감 등 우리들의 간식거리가 있었지만, 아이들에겐 접근금지의 성역이었다. 그것을 몰래 훔쳐 먹을 때의 스릴과 두근두근 가슴 뜀. 들켜서 혼나도 마냥 즐거웠다. 그리고 겨울이면 뒷마당 항아리에서 짚 위에 켜켜이 쌓여 있는 홍시가 익기를 기다리던 안타까움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보니 어릴 때의 그 기다림과 설렘과 애달픔의 시간이 우리에겐 인생의 인내와 절제를 위한 숙성기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사순절이다. 5년을 묵히니까 원래의 신맛이 무뎌지고 순해진 매실을 보면서 나를 돌아본다. 푹 삭은 매실처럼, 오래된 장처럼, 세월의 두께가 인성의 향기로 담금질 된 사람을 보면 아무 말 없이 옆에만 있어도 평화를 느끼고, 신뢰와 치유가 모르는 새 스며든다. 언젠가는 나도 매실처럼 깊이 숙성되어 사람들에게 그렇게 스며들 수 있겠지. 그 날을 기다리며…. 이영주 / 수필가뉴욕의 맛과 멋 보물 매실 된장 고추장 김치냉장고 한쪽 뒷마당 항아리

2022-04-08

[문화의 창] 100년 뒤 지정될 국보·보물이 있는가

 10여 년 전, 문화재청장으로 있을 때 이야기이다. 재임한 지 4년 째 되던 해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때 느닷없이 “문화재청장을 오래 지내면서 말 못할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이때 나도 모르게 나온 것은 “100년 뒤 지정될 국보·보물이 이 시대에 창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는 대답이었다.   사실 이 문제는 내가 마음속에 깊이 품고 있던 사회적 과제이다. 현재 국가문화재로 지정하는 유물·유적은 100년 이상의 수령이 필요조건이다. 근대 문화재가 아직 국보·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십 년이 더 지나면 1950년대에 제작된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의 작품 중 몇 점이 보물로 지정될 것이다. 그래서 연전에는 현역 미술 평론가들에게 어느 작품이 대상으로 될 만한가 설문조사를 한 바도 있다.   문제는 건축이다. 현대건축의 기술과 재료의 발달로 멀쩡한 집을 부수고 재건축하는 것이 다반사로 된 오늘날의 추세로는 수령 100년을 넘길 건축이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싶다. 그중에서도 건축의 기본이라 할 주택 문제는 더욱 회의적이다.   조선시대엔 목조에 기와를 얹은 ‘한옥’이라는 주택 형식이 완성되어 하회마을의 ‘양진당’(보물 306호)과 ‘충효당’(보물 414호), 안동 내앞의 ‘의성김씨 종가집’(보물 450호), 경주 양동마을의 ‘무첨당’(보물 411호)과 ‘관가정’(보물 442호) 등이 나라의 보물을 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면 우리시대 시대정신을 담아낸  ‘현대주택’이 몇 채나 지어졌을까. 그동안 우리나라는 일정 규모가 넘는 집은 ‘호화주택’으로 치부하여 중과세가 부여되어 왔고 이에 대한 국민정서의 거부감도 없지 않았다. 나라가 가난했던 50년 전에는 시대 분위기 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러나 100평 넘는 복층 아파트가 즐비한 오늘날, 100평 넘는 저택을 짓는다고 호화주택이라는 비난의 대상으로 될 것 같지 않다. 문화재란 최고 수준의 예술, 최고의 기술, 최고의 재력이 만나야 된다. 평범한 주택은 민속이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는 아니다. 사실 보물로 지정된 조선시대 한옥들도 그 당시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라 불린 호화주택이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조선시대에는 삼천리강산 곳곳에 아름다운 정원(庭園), 원림(園林), 별서(別墅), 정사(精舍)를 지어 오늘날 우리들은 이곳을 행복한 답사처로 찾아가고 있다. 정원은 집 울타리 안에서 자연을 아름답게 가꾼 것이고, 원림은 풍광 좋은 곳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정원과 원림의 차이는 자연과 인공의 관계가 바뀐 것이다. 별서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별장이고, 정사는 집 가까이에 있는 독서처다. 이것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 명승이다.   봉화 닭실마을에 있는 ‘청암정’(명승 60호)은 대표적인 정원이고, 담양의 ‘소쇄원’(명승 40호)과 ‘윤선도 원림’(명승 34호)으로 지정된 ‘보길도 세연정’이 대표적인 원림이며, ‘독락당’으로 유명한 경주 안강의 ‘옥산정사’(보물 제413호)가 대표적인 정사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시대에 훗날 명승으로 지정될 정원, 원림, 별서, 정사가 지어진 것이 있는가. 이 또한 ‘별장’이라는 것에 대한 국민정서의 거부감과 세제상 중과세를 부여하는 규제 때문이다.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며 삶을 건강하게 하고 후손에게 물려주어 나중에는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막강한 것이어서 저택과 별장은 상속세 두 번 맞으면 자산 가치가 제로에 가깝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사회로 환원된다. 프랑스 르와르 강변의 대저택들이 다 그런 것이다.   요즘 시골에 폐가가 즐비하여 사회적 문제로 된 지 벌써 오래다. 만약에 도시인들이 그 폐가를 사서 작은 원림으로, 정사로, 별서로 가꿀 수 있도록 합법적인 길을 열어주고 1가구 2주택 양도소득세에서 제외해 준다면 폐가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고령화시대 현대 도시인의 삶은 시골에 별서를 장만하여 ‘5도2촌’, 또는 ‘2도5촌’으로 지내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다차’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반세기 전, 1인당 국민소득 몇 백 달러밖에 안 되던 시절에 제정된 호화주택·별장·농가주택에 대한 규제를, 3만 달러가 넘는 지금 이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은 마치 인구는 줄어드는데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던 것과 똑같은 우를 범하는 것이다.   부동산 파동의 근본 요인 중 하나는 아파트가 현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택에는 그런 환금성이 없다. 그렇다면 규제를 풀어 주택 건설경기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아파트 값 파동을 막는 첩경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진정 국토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인지 원점에서 생각하고 과감하게 바꿀 때가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집의 본원적 기능을 회복하는 길이며, 무엇보다도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홍준 /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문화의 창 지정 국보 아파트 값 사실 보물 정원 원림

2021-12-05

[계단 대화] 수요산악회 김중식 회장 "우리네 인생 같이 편할 길 절대 없지"

지난 18일 김중식 수요자연산악회 회장(사진)과 에코 파크에 있는 백스터 231 계단을 올랐다. 계단도 인생이었다. 혼자보다 누군가와 함께 오르니 확실히 힘이 덜 들었다. 김 회장은 오랜 산행 경험을 통해 오르막 길을 덜 힘들게 오르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또 계단이 산길보다 오르기 어렵다고 했다. 김회장과 '계단 대화'를 나눴다. -계단 숫자를 세는 것과 안 세는 것 어느 게 덜 힘들까요? "숫자를 세면 마음도 가뿐해지고 몸도 힘이 덜 든다. 대화를 나누는 것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 얘기에 정신이 팔려서 헛딛지만 않는다면." -계단을 가장 많이 세 본 것은 몇 개인가. "사실 108개가 최고다. 그 이상 세기에는 산행 리더 자리가 바쁘다." -산을 오르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 "오르막 길에서는 발 앞꿈치에 힘을 주고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오르는 게 좋다. 결국 발이 아니라 몸으로 오르는 것이다. -산에서도 계단이 흙길보다 쉬운가. "아니다. 계단이 어렵다. 발을 완전히 끌어 올려야 하기에 힘이 더 든다. 경사길은 발을 끌어올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기업조직체에서는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는 표현을 쓴다. 두 세 칸씩 오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원래는 두 칸 세 칸씩 올라가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초보자들에게 강권한다. 하지만 실제에서 리더는 달라야 한다. 대원 중 가장 앞에 선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고 잘못된 길로 못 가게 막기도 해야 한다. 산행 리더도 기업 리더같이 몇 걸음씩 앞장서서 가야 한다." -그게 리더들의 덕목인가. "산행이 이러니 기업도 마찬가지 아닐까. 산행에 앞서 전날 코스를 미리 돌아보고 돌도 치우고 위험한 곳이 없나 살피기도 한다. 기업가들이 새벽같이 출근해서 회의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산행 리더는 대원들이 완주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 아닌가. "산을 15년 넘게 타다보니 많은 것을 깨닫는다. 사실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어렵다. 위험하기도 하고. 보통 대원들은 다 오르기도 전에 내려가는 것을 걱정한다. 리더는 이런 대원들에게는 오를 때는 올라가는 것에 집중하라고 독려한다." -벌써 다 올라왔다. "이제 내리막이다. 내려갈 때는 뒷꿈치를 먼저 디디면서 역시 양발을 어깨 넓이로 벌려야 한다. 자연스레 앞꿈치가 닿게." -계단을 오르내릴 때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계단이나 길은 인생과 같다. 뛰어가던 걸어가던 기어가던 편한 길은 절대 없다. 얕은 개울에 빠져도 허우적 대는 사람이 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는데 넘어지자마자 허우적 거리면 허리도 안 차는 개울에서도 큰 일이 날 수도 있다.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쉬어 간다는 생각으로 한발짝 물러서서 (계단) 전체를 살펴보면 허우적 거리지 않는다." 장병희 기자

2011-02-24

바람 벗삼아 오르락 내리락…훌륭한 하이킹 코스

'에코 파크'(Echo Park) 지역에는 의외로 계단이 많다. 계단마다 표정도 달라 '계단 공원'이라 부를 만하다. 계단은 에코 파크와 실버레이크에 많은데 이곳에서 북쪽으로 로스펠리스 서쪽으로 할리우드 하이츠에도 많이 남아있다. 이 중 에코 파크 지역의 몇 곳을 직접 올랐다. ★백스터 계단(1501 Baxter St. ↔ 2101 Park Dr.) 231 계단. 0.068마일 거리에 180피트를 올라간다. LA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꽃나무가 주위에 멋있게 펼쳐져 있다. 구불구불 이어진 구조로 경사가 높아 의외로 숨가쁘다. 정상은 파크 드라이브며 백스터 길보다 주차가 용이하다. 정상에서 길을 건너면 하이킹 트레일이 펼쳐진다. ★클린턴 계단(1700 Clinton St.) 좌우로 갈라졌다 합쳐지는 짧은 계단. 에코 레이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주위가 낙서로 어지럽혀져 있지만 레이크 풍경은 좋다. 계단 아래는 글렌데일 불러바드라 주차가 어렵지 않다. ★라베타 테라스 계단(Laveta Terrace) 선셋 불러바드에 인접한 라베타 테라스 길은 굽어 있다. 이 길의 각진 끝에 65개의 넓고 우아한 계단이 있다. 1905~06년에 '선셋 하이츠 트랙'사 알렉스 컬버가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언덕에서 밑으로 수목이 도열해 있어 영화 속 대저택의 계단같은 웅장함마저 엿볼 수 있다. 선셋 불러바드 북쪽 한 블럭과 에코 파크 애비뉴에서 동쪽으로 한 블럭인 곳에 있다. 계단을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아주 좋다. ★델타 계단(1620 Delta St.) 125 계단. 정글을 방불케하는 팜트리로 뒤덮혀 있다. 다른 곳에 비해 사람들이 많다. 그리 길지 않고 적당히 자연과 어우러져 있어 몇 번씩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주차가 어려워 큰 길에 차를 세우고 올라와야 한다. 대신 재미도 있고 운동효과도 있다. ★루크레샤 계단(1559 Lucretia Ave.) 델타계단의 정상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루크레샤 계단의 정상이다. 델타 계단이 짧아서 운동효과가 다소 아쉬웠던 사람들에게 딱 맞는 코스다. 반대편(1600 Grafton St.)의 경우 주차가 용이하므로 루크레샤 아래에서 올라와 델타를 타고 내려왔다가 다시 역방향으로 오르내리면 20분 정도에 끝낼 수 있는 훌륭한 하이킹 코스가 된다. ★아발론 이스트 계단(1550 Avalon St. ↔ 1893 Lucretia Ave.) 루크레샤 계단을 다 오른 뒤 델타계단을 따라가지 않고 그 길로 계속 가면 북쪽으로 에코 파크 애비뉴와 평행으로 걷게 된다. 이어서 에코 파크를 가로지르면 오르막 길이 나오고 그 끝에 아발로 이스트 계단의 정상(1893 Lucretia)이 나온다. 192 계단으로 철제 난간을 잡고 산을 따라 내려오도록 되어있다. ★아발론 웨스트 계단(1907 Vestal Ave. ↔ 1902 Lemoyne St.) 아발론 이스트 계단을 지나 아발론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아발론 웨스트 계단이 나온다. 125 계단. 사람들이 사는 집 대문과 연결돼 있어 운동하는 사람과 쇼핑을 다녀오는 사람 계속 아발론 길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생활 속 계단이다. 팜트리가 멋있고 루크레샤부터 아발론 이스트 아발론 웨스트로 연결되는 코스는 환상적인 하이킹 코스다. 옛날 LA시민들의 정취를 쉽게 느껴볼 수 있다. ★큐런 계단(1540 Curran St. ↔ 2403 Valentine St.) 에코 파크 드라이브를 타고 올라가면 큐런 스트리트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오르막 길 끝에 큐런 계단이 나온다. 129 계단으로 사람들이 사는 번지수가 이어지는 살아있는 계단이다. 가로등이 옛스러우면서도 운치가 있다. 주차는 아래쪽 밸런타인 길이 낫다. ■또 다른 계단들 ◇에코 파크 일대 -유잉 웨스트 (Ewing West Stairway, 129 계단) 2016 Ewing St. ↔ 2004 N Alvarado St. -얼 스트리트 (Earl Stairway, 219 계단) 2216 Earl St. ↔ 2230 Earl St. -로마 비스타 플레이스 웨스트 (Loma Vista Place West Stairway, 182 계단) 2387 Loma Vista Pl. ↔ Loma Vista Place East Stairway -로마 비스타 플레이스 이스트 (Loma Vista Place East Stairway, 166 계단) 2220 Allesandro Way ↔ Loma Vista Pl. West Stairway ◇계단 정보 웹사이트 -www.communitywalk.com/los_angeles/ca/los_angeles_stairs/map/434719 -www.historicechopark.org/id30.html 글.사진=장병희 기자

2011-02-24

잊혀진 길 '계단' 추억으로 오르다

그보다 느린 로컬길에서도 길은 곧 속도다. 그런 LA에도 자동차는 못 가고 걸어서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바로 계단이다. 계단은 인간이 직립 보행하는 존재임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LA에는 의외로 계단이 많다. 한인타운 인근에도 많다. 게 중에는 독특한 정취를 느끼게 하는 계단도 적지 않다. '잊혀진 길' 계단을 올랐다. 계단은 잊혀진 길이다. 자동차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LA에서 전차(트롤리)와 보행도로가 일반 시민들의 주요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전차와 보행도로 대부분이 없어지고 차도로 바뀌었지만 보도의 일부였던 계단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자동차길을 내기에는 좁거나 경사가 높은 경우 조금만 돌아가면 길과 길이 연결되기 때문에 굳이 따로 길을 내지 않았다. 그 길이 그저 사람만 다니는 샛길처럼 남았다. 그렇게 계단은 자동차 문화가 발달하면서 역사 속으로 잊혀진 길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도시의 한 부분으로 남아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전 에코 파크 애비뉴 인근 아발론 웨스트 계단으로 올라섰다. 앞서 계단을 오르던 여성이 보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여자가 사라진 지점에서 둘러보니 계단을 따라 무성하게 자란 풀숲에 가려 작은 골목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여성은 동네 주민이었다. 계단 위로 갈수록 번지숫자는 올라가고 그 숫자 앞에는 어엿한 대문이 있다. 시골 좁은 길로 장에서 뭔가를 사가지고 집으로 들어서던 기억 속의 계단이 떠올랐다. 이 동네에서 계단은 살아있는 길이었다. 아발론 웨스트와 큐란 스트리트의 계단집에는 우체부도 걸어서 계단을 오르내릴 수 밖에 없었다. 자동차의 도시에서 차로는 못 가고 계단이 유일한 접근로인 집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LA의 계단들은 북쪽 구릉지대에 특히 많다. 어떤 곳은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경사진 길을 방불케한다. 서쪽으로는 샌타모니카에서 할리우드를 거쳐 실버 레이크 에코 파크로 동쪽으로는 패서디나에 이른다. 살아 남아 있는 계단은 LA에만 275개가 넘는다. 계단은 혼자서는 힘들고 함께 가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취재차 혼자 걸을 땐 겨우 50개를 오르고서도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7학년 딸아이와 함께 오르니 라베타-테라스나 아발론 웨스트 계단 어디에서도 땀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추억을 되살리며 계단의 정취를 오르려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한인 타운 인근에는 1924년 조성돼 1998년 LA사적 657호로 지정된 '로스펠리스 하이츠 스텝'(181계단 4803 Cromwell Ave. ↔ 4796 Bonvue Ave.)은 두 사람이 손잡고 오르기엔 조금 좁지만 중간에 두 곳의 휴식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 계단에서 인근 주민인 지넷 할머니를 만났다. 매일 이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는 "하루에 100여명 정도가 계단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에도 몇 명씩 할리우드 사인이 어느 쪽에 있냐고 물어봐요. 사실은 그 사인이 어디에 있는지 나도 무척 궁금해요(웃음). 그 덕에 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계단을 찾는 걸 알게됐어요." 실버레이크나 에코 파크 같은 비교적 오래된 주거지들에 많은 계단은 LA의 숨은 보석과 같다. 반짝이지는 않지만 사막 한가운데 거칠 것 없이 줄 긋고 세웠다고 오해했던 LA를 다시 보게 한다. 건축사무실 'PQNK'의 이웅범 대표에 따르면 현대 건축규정상 계단 한 단의 높이는 4~7인치 깊이는 11인치 이상이어야 한다. 또 계단참이라 불리는 계단중간의 넓은 공간은 높이 12피트 마다 하나가 있어야 한다. 폭은 36인치는 돼야 한다. 자연 속 계단이 모두 이 규정 수준은 아니다.하지만 대체로 건축규정의 안전 개념은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계단 오르기는 짧은 시간에 산행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미니 등산'이다. 평지를 뛰는 것만큼 운동 효과를 낸다. 박상욱 발.발목전문의는 "오르막에서는 무릎 위 앞근육과 엉치뼈의 근육이 종합적으로 단련된다. 반복적인 하체 운동이 가능해서 운동효과는 최고"라고 말했다. 내리막에서는 오르막의 운동효과에 더해 종아리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다. 물론 무리를 하면 역효과가 난다. 박 전문의는 "계단 운동은 평지 도보 운동과 달리 항상 브레이크가 걸리기 때문에 천천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득 자동차에게 빼앗긴 것이 계단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계단을 잃어버려 뜨거운 햇빛과 시원한 그늘 호젓한 자연을 조금 더 많이 잃어버린 게 아닐까. 장병희 기자

201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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