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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6피트 땅 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비참한 보물섬 (3)
한인타운 셸터 거주 전명오씨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노숙자 문제는 경찰도 외면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 정책
더 비인간적으로 변하게 돼

전명오씨가 노숙자 셀터에서 선글라스를 자랑스럽게 착용하고 있다. 고가의 선글래스는 다른 노숙자가 훔친 것이다. 전씨는 그것을 싸게 구입했다. 김상진 기자

전명오씨가 노숙자 셀터에서 선글라스를 자랑스럽게 착용하고 있다. 고가의 선글래스는 다른 노숙자가 훔친 것이다. 전씨는 그것을 싸게 구입했다. 김상진 기자

LA 한인타운의 한 평온한 주택가에는 냉혹한 현실이 숨겨져 있다. 아이롤로 스트리트와 11가 인근, 하얀 목조 주택 뒤로 수북이 쌓인 물건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암묵적으로 전하고 있다.  
 
꽃무늬 셔츠와 야구 모자를 쓴 노숙자 전명오(65) 씨는 자신만의 보물 창고를 갖고 있다. 그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는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선글라스 하나를 보여줬다. 전 씨는 “이게 얼마짜리로 보이나. 400~500불 정도 될 것”이라며 “누가 훔친 물건인데 내가 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만의 보물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우리에게 자랑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는 “방금 좋은 자전거가 하나 들어왔는데 관심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자전거, 전기 스쿠터, 골프채, 고급 여행 가방 등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비싼 물건만 있는 건 아니다. 그릇, 빈 술병, 낡은 소파 등 잡동사니도 널브러져 있다.
 
전씨가 자신의 작은 방 침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는 설탕과 크림이 듬뿍 들어간 한국식 커피를 선호한다. 그는 한인 노숙자 부부와 방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원래 전 씨의 방에는 다른 노숙자가 들어올 수 없지만, 이 규칙은 오래전부터 무시되어 왔고, 쉼터 관리는 부실한 상태다. 김상진 기자

전씨가 자신의 작은 방 침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는 설탕과 크림이 듬뿍 들어간 한국식 커피를 선호한다. 그는 한인 노숙자 부부와 방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원래 전 씨의 방에는 다른 노숙자가 들어올 수 없지만, 이 규칙은 오래전부터 무시되어 왔고, 쉼터 관리는 부실한 상태다. 김상진 기자

 
전 씨의 보물 창고가 있는 이곳은 한 한인이 소유한 주택이다. 시정부의 지원을 받아 노숙자 셸터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엔 전 씨와 같은 노숙자가 20여 명이 살고 있다. 전 씨는 “이 물건들은 모두 파는 것”이라며 “훔친 물건들이라서 팔 수 있는 곳이 없으니까 여기서 구매자를 찾아주는데, 일종의 암시장 같은 곳”이라고 했다.
 
그는 1975년에 미국에 왔다. 영어 구사에 큰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전 씨는 자신을 포함해 이곳의 노숙자 모두를 “6피트 아래에 놓여있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했다. ‘6피트’는 사람이 묻힐 때 관이 놓이는 깊이다. 노숙자들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인생의 바닥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인터뷰를 하면서 셸터의 내부 사진을 찍으려 하자 갑자기 민머리의 한인 남성이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는 “지금 뭐 하는 거냐. 사진을 왜 찍는 거냐”고 화를 냈다. 그러자 전 씨가 곧바로 막아서면서 “내 사진을 찍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당장 덤빌 듯 화를 냈던 이 남성은 전 씨의 말 한마디에 조용히 셸터로 들어갔다. 전 씨는 이곳에서 나름 ‘실세’인 듯했다. 전 씨가 갑자기 왼쪽 팔을 들어 흉터를 보여줬다. 그는 “한인타운의 갱단이 이렇게 한 것”이라며 “길거리에 살면서 여러 번 칼에 찔렸다”고 했다.
 
지난 4월, 길거리에서 생활하던 전명오 씨는 자신의 텐트 주변 쓰레기를 모아 태우고 있다. 김상진 기자

지난 4월, 길거리에서 생활하던 전명오 씨는 자신의 텐트 주변 쓰레기를 모아 태우고 있다. 김상진 기자

 
전 씨에게 한인타운은 모순적인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보물들을 찾기도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마당에 널린 장물들을 우리에게 자랑하던 그는 한인타운 치안의 현주소와 노숙자들이 겪는 실질적인 어려움들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전 씨는 “경찰은 싸움이 나도 우리가 노숙자인 것을 알면 그냥 가버린다”며 “어떤 일이 벌어져도 개입하지 않으려 하고 노숙자를 제대로 보호하지도 않기 때문에 노숙자들은 더 비인간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베벌리힐스 같은 동네는 돈이 많으니까 신고하면 경찰도 바로 오고 통제가 되는데 한인타운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현실은 역설적으로 그가 한인타운을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 씨는 “특히 한인들은 한인 노숙자가 길거리에서 흉기 같은 걸 들고 있어도 쫓아내거나 신고하지 않는다”며 “아무래도 같은 민족이니까 연민 같은 감정을 갖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가 자신이 거주하는 쉼터의 철문 안쪽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김상진 기자

전씨가 자신이 거주하는 쉼터의 철문 안쪽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김상진 기자

 
전 씨는 노숙자가 되기 전 핸디맨으로 일했다. 그가 노숙자로 전락한 건 6년 전 일이다. 마약에 손을 대면서 그의 인생도 ‘6피트’ 밑으로 떨어졌다. 그는 수년간 거리와 셸터를 오간 경험을 토대로 현재 시정부 노숙자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 씨는 “소셜 워커들이 이곳을 가끔 방문하는데 정리가 잘된 거실만 보고 간다”며 “진짜 우리가 사는 모습은 제대로 살펴보지 않으니까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전 씨에게 한인타운은 비참한 보물섬과 같다. 영원히 떠나지 못하고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이 기사는 미주중앙일보의 영어 매체 코리아데일리US(www.koreadailyus.com)에 12월 20일 게재된 기사를 한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생활하던 전명오 씨는 현재 LA 코리아타운의 한 노숙자 셀터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곳에서 다른 노숙자들 사이에 질서를 유지할 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지내고 있다. 김상진 기자

길거리에서 생활하던 전명오 씨는 현재 LA 코리아타운의 한 노숙자 셀터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곳에서 다른 노숙자들 사이에 질서를 유지할 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지내고 있다. 김상진 기자

 

취재 = 장열·김영남 기자 사진=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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