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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자신의 잘못 앞에서 딱 한 마디 “Sorry”

내게는 누군가를 판단할 때 이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지 별로인 사람인지를 구분하는 기본적인 판단 기준이 하나 있다. 자신이 잘못했을 때 상대방에게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지다. 나는 아무리 평소에 친절하고 살갑게 구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명확한 잘못이나 실수 앞에서 뒤로 숨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결코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의 잘못으로 벌어진 문제 앞에서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뒤로 숨는 사람들은 직장인 혹은 사회인 더 나아가 어른으로서의 기본 소양인 책임감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실수 앞에 인정은커녕 다짜고짜 화를 내거나 울며불며 징징대거나 묵묵부답으로 가만히 있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별다른 말 없이 조금씩 그 사람과의 관계에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것은 참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받았을 상대방에 대한 배려 자기 책임으로 잘못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잘잘못을 빨리 판단하고 그에 대한 행동을 취하는 순발력. 상대방의 화를 가라앉혀 상대방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회성까지 그 사람의 인격적인 요소들을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모습을 통해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정말 강한 사람은 잘못했으면 자기 잘못을 곧바로 인정하고 그것을 수습한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숙이고 들어가면서도 결국에는 남을 위해 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한국 마켓에 가면 쇼핑 카트를 이용한다. 가끔 간장이나 된장, 김치 같은 것은 상당히 무겁다. 카트를 끌고 가다 보면 무거워 옆으로 비틀어지는 일도 생긴다. 카트에 물건을 가득 싣고 좁은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으면 점원이 계산한다. 계산된 물건을 백에 담아 카트에 넣어주는 남미계 종업원이 있다. 무거운 카트를 끌고 나오면서 그 종업원 발을 다치는 사고 광경을 목격했다. 얼마나 아프겠는가. 무거운 물건을 실은 카트가 발을 쳤으니 아파서 아 소리를 내면서 쓰러지는 듯 움츠렸다. 그런데 그 손님은 아무 일 아닌 듯 그냥 카트를 끌고 가버렸다. 그 손님 뒤에 서 있던 내가 달려가 물었다. 그 종업원은 화를 내면서 여러 번 경험했지만 “Sorry”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힐난했다. 내가 그 남미 종업원에게 매우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미국 사람들은 옷깃만 스쳐도 “Excuse me” 한다. “Sorry, Excuse me”를 입에 달고 산다. 우리는 왜 그 흔하고 쉬운 Sorry나 Excuse me를 말하지 않는가. 그 말을 하면 자존심이 상하는가 아니면 부끄러운가. 미국 사람들에게도 무뢰한 짓을 하고 그냥 모르는 척하며 지나가는지 몹시 궁금하다.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 때 그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은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누가 얼마만큼 잘못해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누가 사과를 해야 하고 누가 사과를 받아줘야 하는지 대강의 정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다만 섣부르게 참견했다가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봐 다들 쉬쉬하며 자기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런 긴장된 상황 속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을 주변 사람들은 결코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이미 자신의 잘못을 명확히 인지하고 기꺼이 사과까지 하는 사람에게 누가 구태여 무엇을 더 보태어 말할 수 있을까. 끝내 이기고 남의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당장의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기꺼이 상대에게 먼저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마디 남미계 종업원 쇼핑 카트 남미 종업원

2023-08-21

[건강 칼럼] 손가락 관절 통증 조기 치료가 중요

기온이 낮아지면 피부건조, 호흡기 질환뿐 아니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관절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관절 주변의 근육과 인대, 힘줄들이 추위로 인해 수축해 평소보다 손가락 마디가 뻣뻣하게 굳어지면서 붓고 아픈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 특히 요즘처럼 비가오고 기온이 내려가면 평소보다 통증이 심해져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손가락 관절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는 류마티스성 관절염과 퇴행성 관절염이 있다. 관절염 초기에는 두 질환을 구분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혈액 검사와 방사선 사진(X-ray) 결과 및 증상들을 종합하여 진단을 받아야 한다.     퇴행성 관절염은 주로 과사용으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데 집안일을 많이 하거나 손을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손가락의 퇴행성 관절염이 발생활 확률이 높다. 통증은 손가락 끝 마디에 잘 나타나고 자주 쓰는 손가락이나 엄지손가락 마디에 발생한다. 퇴행성 관절염은 서서히 진행되고, 관절 연골이 닳고, 염증 생기면서 병증 부위가 붓고 통증과 열이 난다. X-ray 사진을 살펴보면 관절 간격은 좁아져 있고, 관절 근처 골낭종과골극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면역세포가 엉뚱하게 자기 관절을 공격해 관절의 활액막에 염증이 생기는 자가 면역 질환의 일종으로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다. 주로 손바닥 쪽에서 가까운 손가락 첫째 관절이나 중간 관절, 손목 관절에 염증성으로 나타난다. 양쪽 손이 대칭으로 함께 붓고 아픈 것이 특징이다. X-ray 사진 상 대칭적으로 관절 간격이 좁아져 있고, 심한 경우 골침식이나 관절 변형이 관찰될 수 있다. 혈액 검사상류마티스인자 양성과 염증 수치가 올라갈 수 있고 육안으로는 류마티스 결절이라고 불리는 피하에 딱딱하게 만져지는 동그란 결절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관절염 증상 초기에는 붓고 아프다가 쉬면 나아지고 통증이 심하지 않기 때문에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증상이 진행되면 관절 주변의 근육이나 힘줄이 수축하고 일정 방향으로 관절이 비뚤어지는 변형이 일어나게 되는데, 한번 변형된 관절은 되돌리기 힘들고, 무엇보다 주변 조직의 손상으로 통증도 심해져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에 발병 초기에 통증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절염에 좋은 오가피차를 소개한다. 동의보감에서 오가피는 ‘뼈와 힘줄을 튼튼하게 하고 뼈의 통증과 허약함을 낫게 한다’라고 되어 있다. 만드는 방법은 오가피 100g과 물 5~6L를 10분 끓여준 다음, 약한 불에 1시간 정도 더 끓여주면 된다. 평소 소화가 잘 안 되거나 장이 안 좋은 경우 따뜻하게 복용하고, 장복할 경우 복통이나 설사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하루 1~2잔 정도 복용하는 것이 좋다.     손가락 관절 통증을 줄이고 운동성 늘려주는 스트레칭을 소개한다. 1. 관절 견인: 관절염이 있는 관절 부위의 위, 아래를 잡고 지긋이 적당한 힘으로 5초간 당겨준다. 5회 반복한다. 2. 묵, 찌, 빠 스트레칭: 엄지손가락 집어넣지 말고 가볍게 주먹을 쥔다. 30초 정도 유지한 후, 검지와 중지를 하나씩 천천히 펴준 후 30초 정도 유지,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모두 편 후 30초 정도 유지한다. 5회 반복한다. 3. 손가락을 전체 편 후,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도록 한 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엄지손가락을 테이블에서 편안하게 들어 올려 5초 유지 후 내려놓는다. 다음 검지, 중지, 약지, 소지를 차례로 같은 방법으로 진행한다. 5회 반복한다.   ▶문의: (213)944-0214 박언정 원장 / 해성한방병원건강 칼럼 손가락 관절 엄지손가락 마디 류마티스성 관절염 퇴행성 관절염

2023-02-07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마침내, 일제히 꽃이 되었다

마침내, 일제히 꽃이 되었다       바람에 일렁이던 들풀은 마침내 일제히 꽃을 피웠다 눈을 감았다 다시 뜬 순간, 짧은 그 순간   바람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향기 같은 절정이 들판에 하얀 눈처럼 번졌다 들꽃은 송이송이 번지는 물보라 환희 몸 속 가득 작은 입자가 탄산수처럼 피어오른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빨래처럼 몸을 비틀어서라도 불꽃에 마른 장작 타 오르는 그 순간   안으로 안으로 다짐할수록 몽롱해 정신을 놓았다 주인은 태초부터 이 곳에 없었다 희미한 것들은 먼 곳에서 바람 되어 불고 거울 보듯 가까와진 세포가 꽃을 피우며 일어설 때 틀에 갇힌 통념을 깨고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호두알을 깨무는 일처럼 벌써 온몸이 지끈거렸다   지친 하루, 저물어 가는 어둠은 익숙해져 오고   어둠은 거침없이 바로 온몸을 눌러 온다 손가락 마디마다 튀어나온 굳은 살만큼 불거진 피로 노송의 깊은 껍질, 깊게 페인 한숨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순간 바닥에 나뒹굴었다 시간이란 정의를 잃어버린 후 마침내 일제히 꽃이 보이듯 네가 보였다 오래 그 곳에 노송처럼 세월을 외면하며 서있는 너를 만지듯 꽃을 만지는 내내 바람은 춤을 추었다   꽃을 담은 수정체 속에 파란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일렁이고, 멀리 뒤돌아 가는 노을 언저리 지친 하루가 허리를 구부정히 지나가고 있었다 흩어져있던 시간의 조각들이 두 필로 목을 감싸고 부르르 몸을 터는 더듬이가 긴 곤충의 느린 시간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내는 들꽃 무수한 언어의 유희에 맞춰 언덕이 모로 눕고 마침내 일제히 내속에서 너는 꽃이 되었다     나는 들꽃이 좋아 들풀을 사랑하게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식물은 나름 꽃을 피운다. 들판에서, 언덕에서, 심지어 물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화려한 원색의 멋진 모양으로 뭇 사람의 눈길을 휘어잡기도 하지만, 이게 꽃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미미한 먼지 같은 무채색의 꽃을 피우기도 한다. 꽃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나는 종종 꽃이 된다. 주인 없던 꽃은 내 속에서 그리운 이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꽃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은 자연스럽게 시간의 정의를 망각하게 된다. 그 후에야 나는 손을 내밀어 벨벳보다 더 매끄럽고 향기로운 꽃을 내 속에 담는다.   하루가 깨어나고, 다시 저물어간다. 무거운 짐을 지고 종일 걸었던 삶의 무게가 어깨를 누른다. 꽃들도 눕고 싶을까? 온종일 꼿꼿이 서 있으려면 스르르 눈도 감기고 다리도 풀릴 텐데. 아마도 꽃을 피웠던 시간의 조각들을 모아 또 한 송이의 꽃을 피우려 안간힘을 다했으리라.     바람에 출렁이는 들풀은 마침내, 일제히 꽃을 피웠다. 내속에 들어와 만개한 들꽃은 놀랍게도 그리운 이의 얼굴이 되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의 얼굴 손가락 마디 물보라 환희

2022-06-14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마침내, 일제히 꽃이 되었다

마침내, 일제히 꽃이 되었다       바람에 일렁이던 들풀은 마침내 일제히 꽃을 피웠다 눈을 감았다 다시 뜬 순간, 짧은 그 순간   바람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향기 같은 절정이 들판에 하얀 눈처럼 번졌다 들꽃은 송이송이 번지는 물보라 환희 몸 속 가득 작은 입자가 탄산수처럼 피어오른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빨래처럼 몸을 비틀어서라도 불꽃에 마른 장작 타 오르는 그 순간   안으로 안으로 다짐할수록 몽롱해 정신을 놓았다 주인은 태초부터 이 곳에 없었다 희미한 것들은 먼 곳에서 바람 되어 불고 거울 보듯 가까와진 세포가 꽃을 피우며 일어설 때 틀에 갇힌 통념을 깨고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호두알을 깨무는 일처럼 벌써 온몸이 지끈거렸다   지친 하루, 저물어 가는 어둠은 익숙해져 오고   어둠은 거침없이 바로 온몸을 눌러 온다 손가락 마디마다 튀어나온 굳은 살만큼 불거진 피로 노송의 깊은 껍질, 깊게 페인 한숨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순간 바닥에 나뒹굴었다 시간이란 정의를 잃어버린 후 마침내 일제히 꽃이 보이듯 네가 보였다 오래 그 곳에 노송처럼 세월을 외면하며 서있는 너를 만지듯 꽃을 만지는 내내 바람은 춤을 추었다   꽃을 담은 수정체 속에 파란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일렁이고, 멀리 뒤돌아 가는 노을 언저리 지친 하루가 허리를 구부정히 지나가고 있었다 흩어져있던 시간의 조각들이 두 필로 목을 감싸고 부르르 몸을 터는 더듬이가 긴 곤충의 느린 시간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내는 들꽃 무수한 언어의 유희에 맞춰 언덕이 모로 눕고 마침내 일제히 내속에서 너는 꽃이 되었다     나는 들꽃이 좋아 들풀을 사랑하게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식물은 나름 꽃을 피운다. 들판에서, 언덕에서, 심지어 물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화려한 원색의 멋진 모양으로 뭇 사람의 눈길을 휘어잡기도 하지만, 이게 꽃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미미한 먼지 같은 무채색의 꽃을 피우기도 한다. 꽃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나는 종종 꽃이 된다. 주인 없던 꽃은 내 속에서 그리운 이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꽃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은 자연스럽게 시간의 정의를 망각하게 된다. 그 후에야 나는 손을 내밀어 벨벳보다 더 매끄럽고 향기로운 꽃을 내 속에 담는다.   하루가 깨어나고, 다시 저물어간다. 무거운 짐을 지고 종일 걸었던 삶의 무게가 어깨를 누른다. 꽃들도 눕고 싶을까? 온종일 꼿꼿이 서 있으려면 스르르 눈도 감기고 다리도 풀릴 텐데. 아마도 꽃을 피웠던 시간의 조각들을 모아 또 한 송이의 꽃을 피우려 안간힘을 다했으리라.     바람에 출렁이는 들풀은 마침내, 일제히 꽃을 피웠다. 내속에 들어와 만개한 들꽃은 놀랍게도 그리운 이의 얼굴이 되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의 얼굴 손가락 마디 물보라 환희

2022-06-13

[기고] 가족사진 속 아버지

 가족에 대한 기억은 오감으로 구성된다.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공유되었을 일상의 냄새, 미각, 소리 그리고 감촉과 색상은 유대감으로 채색된다. 가족의 일원으로 더불어 살아내는 삶 속에서 때론 모진 삭풍을 헤집는 연약한 손바닥의 온기를 서로가 붙잡을 때마다, 세상 그 어떤 가치보다 형언하기 힘든 애정은 실핏줄처럼 형성된다.     대나무가 마디를 짓듯 인생의 고비마다 가족과 함께했던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게 새겨진다.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는 것은 사이사이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거친 비바람에 견딜 수 있는 것도 중간중간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마디가 없다면 미끈해 보일지 몰라도, 마디가 있기에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내게 아버지는 대나무의 마디 같았고 오감의 결정체 같던 존재였다. 온전한 진실에 너무 무감했다.   함께할 시간이 더 남았다고 막연하게 기대했던 아버지를 홀연히 떠나보내며 유품을 정리하니 빛바랜 사진들이 서럽게 추슬러진다. 가물거리는 기억이 사진 속 얼굴을 통해 또렷이 상기되는 것조차 아버지와의 이별 앞에 북받쳐 오르는 슬픔으로 치환된다. 누구나 가족의 죽음을 통해 이별과 상실을 배운다는 건 고통스럽고 처연한 일이다.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일이지만 가능한 한 늦게 천천히 겪을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한 치 앞을 못 보는 인간의 한계는 차마 어쩌지 못하는 가족과의 이별 앞에 속절없고 무기력하다. 생명을 어루만지는 의사로서 가족의 죽음을 차마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배가된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가족사진으로 그제서야 떠오른 기억은 평온한 삶에 제동을 건다. 삶은 어쩔 도리 없는 관습의 반복이라지만 사진 속 평온했던 소소한 일상조차 제대로 반복하지 못한 우를 범하였다는 자책감이 격하게 역류한다. 홀로서기에 안착했다고 자만했던 아들이 아버지의 떠남 이후 시답잖은 헌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떤 이유에서건 인생의 ‘산티아고’를 걷고 있던 아버지에게 아들은 건조했다. 어쩌면 여름 산 지천에 널린 패랭이꽃의 위로만으로 도리를 다하였다고 자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아, 무심했다.   가족사진 속에서 여전히 젊음이 박제된 채 불멸의 푸름으로 아버지는 남아 있다. 빛바랜 흑백 사진 속 고향 마을 인근의 저수지 풍경은 아스라한 유년의 이데아로 배어있다. 아버지의 여우비 같았던 청춘의 존재가 소환되는 사진 속 그곳은 백설기 구름 같던 백서향이 융단처럼 깔렸다. 온종일 걸어도 인기척조차 없는 고즈넉한 숲길 배경 속, 사람 좋은 웃음으로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른 아침에 뜨는 이사빛의 영롱함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면도를 하던 거울 속 내 모습이 무척이나 닮아 있다. 영락없는 아버지의 자식이다.     시인 정호승의 ‘아버지들’ 속 아버지는 ‘석 달 치 사글세가 밀린 지하 셋방’이고 ‘아침 출근길 보도 위 누가 버린 낡은 신발 한 짝’이며, ‘벽에 걸려 있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 고장 난 벽시계’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자식만큼은 ‘햇볕 잘 드는 전셋집’에서 ‘새 구두’ 와 ‘인생의 시계가 고장 나지 않는’ 평탄한 삶을 살기 원한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다. 나이가 차 들어 아버지를 이해하고 나니 이제는 가족사진 몇장의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당신의 부재가 너무 아파져 새벽을 기웃거린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 모질게 계속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부질없는 연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차오르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는 아들의 통렬한 오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제야 알겠다. 가족사진 속 저수지에서 아버지와 누린 유년의 행복은 ‘가장의 무게에 대한 공감의 부재’에 기초했다. 자식의 그 이기적 행복을 이제 아버지에게 돌려 드릴 기회가 없다.   의료기기 빼곡한 중환자실에서 아버지의 밤새 안녕함에 감사했던 순간들. 사랑한다고 또렷이 말하며 아버지를 꼭 안아주었던 그때 그 시간이 차라리 그립다. 죽음은 모든 삶의 순간과 가치를 재정렬한다. 아버지의 삶과 죽음이 전해준 고귀한 가르침은 의사로서의 남은 삶에 가장 큰 지표로 남을 것이다. 빛바랜 가족사진 속 아버지의 내리사랑 온기가 오감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연로하신 환자들에 대한 치사랑으로 승화시킬 것이다. 안태환 / 의학박사기고 가족사진 아버지 내리사랑 온기 중간중간 마디 이별과 상실

2022-02-23

[삶의 뜨락에서] 나를 다스리는 해

새해 들어 보름이 후딱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새해 인사도 함께 날아갔습니다. 새해의 결의도 머릿속에 가득 안고 몇 가지를 골라보려고 애를 쓰던 중 덜컥 정월 초하루가 닥쳤습니다. 다행히도 떡국은 맛있게 끓여 먹었습니다. 마침 눈 다운 첫눈도 내려주어 나이를 잊은 채 반겼습니다. 이렇게 새해를 떡국과 반가운 하얀 눈 그리고 9시간을 비행기로 날아온 큰애와 엄마, 아빠 그리고 막내 부부와 눈이 쌓인 뒷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2021년 마지막 밤과 새해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크리스마스와 설날이었습니다.   제 머리가 가득 희망으로 부풀었던 새해 아침! 이유 모를 어지럼증으로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하얀 눈이 주범인지 제 머리가 문제였던지 아직도 원인을 모릅니다. 새해 맞아 글은 쓰고 싶었지만 허락지 않았습니다. 큰 병은 아닌 듯 자가진단으로 임시처방 약을 먹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고 애써 보았습니다. ‘누가 이기나?’ 싸움터에 섰습니다.     어차피 이 고약한 전염병에서 긴 세월을 견디며 언제나 길이 열릴까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까? 하여간 이 세상 탓인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차츰 내 존재가 아주 작은 조무래기로 느껴지는 우울증에 빠지고 있었습니다. 야릇한 이 어지럼증에 기를 쓰며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초라한 내 모습이 더욱더 슬펐습니다. 그래도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저 높고 먼 곳으로부터 아련히 메아리가 들려왔습니다. ‘네, 마음을 좋은 쪽으로 달래볼까요?’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컴 앞에 앉았습니다. 어지럼증 이전, 저의 새해 첫날 플랜이 엄청 많았던가 봅니다. 아, 그 많은 생각이 저의 머리를 빙빙 돌려버렸던가요? 새해부터는 더 간단히 살려고 정돈과 청소에 힘썼습니다. 마침 구닥다리 부엌 뜯어고치기도 끝냈습니다. 배부른 흥정이라 자랑거리는 못 되지만, 새것이 좋기는 좋습니다. 그렇게 새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미움도 아니면서 그냥 사람을 싫어하는 고약한 내 가슴앓이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 가슴이 절대로 편치 않았습니다. 그 아픔은 내가 진정 누구였던가를 진단하게 했습니다. 가슴앓이를 치료해 보겠다는 것 이제 1번 새해의 결의였습니다. 살아가며 제가 사람을 싫어했다는 기억은 없습니다. 불평은 있었어도 미움은 아니었습니다. 나이가 들며, 보다 느긋이 관대해졌다고 그동안 고마워했었는데! 아마도 제가 사는 이 땅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이들 어렸을 적 생각이 떠오릅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침울한 표정으로 “엄마! 난 누구누구가 싫고 학교에 가기도 싫다”고 투정했습니다. 어리둥절! 나 자신도 어렸던 그때, 이 엄마가 무어라 구라를 쳐서 위로했었는지 기억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요즘 엄마말이 언제나 꼭 맞는다고 이 엄마를 치켜줄 때면 아이들 앞에서 우쭐대기보다는 내가 무슨 말을 했었나? 기억을 더듬으며 조용히 양심에 묻곤 합니다. 이제 이 나이에 와서 제가 거꾸로 아이들한테 제 속끓이를 호소합니다. 아이들이 한 마디 두 마디 엄마를 이해하는 듯 위로의 말을 던져줍니다. 아이들에게서 지혜를 얻습니다. 아마도 이 엄마가 지금은 아이로 돌아가는 계단 앞에서 조심스레 스텝을 세며 내려가고 있는가 봅니다.     이런 제가 마음을 가다듬어 더욱 감사한 사랑의 마음을 다스려보겠다고, 하물며 새로운 삶도 구상해 보겠다는 새해의 결의 제2탄까지 여러분께 선언을 합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께 감사와 새해에 건강과 만복을 빌며…! 남순자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새해 종소리 새해 인사 마디 엄마

202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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