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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포커스] ‘트럼프 정부 시즌 2’의 시나리오

“축하합니다. 백악관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치라는 게 참 어렵군요. 하지만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이 13일 백악관에서 주고받은 덕담이다. 이날 만남은 원활한 정권 이양 작업을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2024년 판 대선극의 마지막 대사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얄궂다. 4년 만에 입주자와 퇴거자의 입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만 4년 전과의 차이는 당시 트럼프가 두 페이지짜리 편지만 남기고 백악관을 떠나는 바람에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선극이 끝나면서 무대에는 새로운 것이 준비 중이다. ‘트럼프 정부 시즌 2’다. ‘시즌 1’보다 출연진은 더 화려하고 제작 여건도 좋다. 정부 요직에 충성심 강한 인물들이 속속 발탁되고, 연방상·하원도 공화당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마음이 맞는 배우들과 제작비 걱정 없이 마음껏 ‘시즌 2’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됐다.      그럼 ‘시즌 2’에는 어떤 줄거리가 펼쳐질까?  대외 정책 기조는 ‘시즌 1’의 연장선이 될 전망이다. ‘미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다. ‘세계 경찰’의 역할은 그만두고 미국의 국익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등 우방국들이 긴장하는 이유다.          국내 정책 역시 ‘시즌 1’의 확장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 공약에 나타난 키워드는 감세,규제완화,연방정부 축소,불법체류자와의 전쟁 등이다. 이중 주목되는 것이 감세, 규제완화 등의 경제 정책이다. 트럼프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경제 이슈이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인플레이션과 일자리 걱정에 지친 ‘워킹 클래스’ 유권자들은 대거 트럼프에게 표를 줬다.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관심사고, 이를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표상의 경제는 괜찮다고 하지만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고 식료품과 개스 가격, 주거비용이 오르는 상황은 참지 않았다.       이런 민심의 흐름은 선거 당일 실시된 에디슨 리서치의 출구 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응답자의 절반 가까운 46%가 4년 전보다 살기가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이는 4년 전 선거 때의 20%에 비해 배 이상 급증한 비율이다. 당연히 후보의 경제 공약을 보고 투표를 결심했다는 응답자가 32%나 됐다. 낙태(14%)와 이민(11%) 이슈를 훨씬 앞질렀다.      이는 많은 히스패닉, 아시안 유권자가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이유이기도 하다. 히스패닉 남성 유권자의 55%가 트럼프에게 한 표를 줬다고 답했다. 트럼프의 득표율이 2020년 선거 때와 비교해 19%포인트나 급증했다. 아시아계 유권자의 득표율도 4년 전 34%에서 39%로 높아졌다. 반면 트럼프의 백인 유권자 득표율은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결국 바이든 정부의 경제 정책에 실망한 히스패닉과 아시안 유권자의 표심이 선거 결과를 가른 셈이다.     이 두 그룹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층으로 분류됐다. 이민과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지지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표심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민주당에게는 큰 충격이 될 듯하다.   ‘시즌 1’과 달라진 것도 있다. 감세 확대와 연방정부 축소다. 두 정책은 별개로 보이지만 연관성이 깊다. 법인세 추가 인하, 팁과 오버타임 수입, 사회보장연금 비과세 등으로 인한 세수 부족 문제를 연방정부 지출 축소로  해결한다는 구상이다. 이 업무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비벡 라마스와미다. 머스크는 현재 500개 가까운 연방정부 기관과 관련  “99개로 줄여도 충분하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트럼프의 시계가 이미 작동을 시작한 셈이다.     유권자들은 인권이나 민주주의 등 추상적 가치는 잠시 미뤄두고 경제적 실리를 택했다. 과연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시나리오 트럼프 감세규제완화연방정부 축소불법체류자 트럼프 정부 트럼프 지지

2024-11-14

[뉴스 포커스] 현수, 월드시리즈서도 MVP 됐으면

LA다저스의 3회 말 공격 상황, 4번 타자 토미 현수 에드먼의 2점 홈런이 터졌다. 순간, 오늘 게임은 다저스가 이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일의 다저스와 메츠 간 NLCS(내셔널리그 챔피언십) 6차전 경기 장면이다. 예상대로 다저스는 이날 승리했고,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NLCS의 MVP는 쇼헤이 오타니도 무키 베츠도 아닌 에드먼이었다. 이날 다저스타디움에 모인 6만 명 가까운 팬들은 이미 8회 말 에드먼이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을 때 “MVP!”를 연호했다.         다저스가 시즌 중 에드먼을 데려온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그의 영입으로 불안했던 유격수 문제가 해결됐고,타선에도 활기가 돌았다. 그 덕에 다저스는 시즌 막판 치열한 순위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     사실 다저스의 에드먼 트레이드는 위험 부담이 있었다. 에드먼이 부상으로 시즌 초부터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상중 트레이드’로 7월 말 다저스에 합류한 에드먼은 8월 중순이 돼서야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에드먼의 경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야구를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플레이는 화려하지 않지만 성실하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작전 수행 능력도 뛰어나다. 감독이 계속 선발로 기용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에드먼은 본인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에드먼은 한인들에게는 ‘현수’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지난해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 대표팀의 멤버로 활약한 이후다. 그는 어머니가 한인이라 한국 대표팀 합류가 가능했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현수 외에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몇몇 한국계 선수들과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부상 등을 이유로 대부분 고사했고 현수만 합류 의사를 밝혔다.     물론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현수의 결정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대회가 스프링캠프 시즌 기간에 열렸기 때문이다. 스프링캠프는 치열한 주전 경쟁이 벌어지는 무대다. 자리가 보장된 스타 선수가 아니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잠시지만 팀을 떠난다는 것은 큰 결단이 필요하다. 더구나 부상의 위험도 따른다. 현수가 시즌 초 부상으로 결장한 것도 혹시 WBC의 후유증은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계, 아니 한인 한국 대표선수’가 탄생했다. 다른 종목은 종종 있었지만 야구는 처음이었다. 당시 대표팀 합류를 위해 한국에 도착한 현수가 인터뷰 중 비록 서툴지만 한국말로 인사를 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팀은 예선에서 탈락했고, 에드먼의 짧은 ‘한국 대표선수’ 생활도 끝이 났다. 그래도 한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한국 선수들과 함께 뛰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진출로 LA가 들썩이고 있다. 다저스는 4년 전인 2020년 월드시리즈에서도 우승한 바 있지만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라 팬들은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번 상대는 뉴욕 양키스다. 두 팀은 과거 라이벌이었고, 지금도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팀들이다. 대형 스타 선수들도 즐비하다. 경기장 입장권 가격이 폭등할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인 팬들에게는 월드시리즈를 기다리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현수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혹시 아직 그를 모르고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갖고 응원하면 된다.   주변에 “요즘 힘들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월드시리즈를 보며 현수를 열심히 응원하는 것도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스포츠의 매력 중 하나다.        한인 사회에는 현수가 박찬호나 류현진보다 더 가까운 존재다. 우리의 차세대인 한인 2세이기 때문이다. 그가 월드시리즈에서도 MVP가 되길 기대한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월드시리즈 현수 월드시리즈 진출 한국 대표팀 한국계 선수들

2024-10-24

[중앙칼럼] LA타임스가 우리보다 한인을 잘 아나

주류 언론에서 다루는 아시아계 증오 범죄는 피상적이다. 단순 통계로 현상만 설명한다. 질문은 그 지점에서 시작됐다.   ‘과연 증오의 뿌리는 무엇인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본지 기자들은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조사했다. 그러자 근저에 오랜 시간 스며든 차별, 배제, 외면 등의 역사적 사각지대가 서서히 드러났다.   묘지의 모퉁이로 내밀리다 못해 역사에서 지워질 뻔했던 포틀랜드의 중국계 이민자들, 묻힐 땅도 없었던 하와이 한인 이민 선조들의 묘비 이야기는 오늘날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의 역사적 맥락을 담고 있었다.   주류 언론이 세세하게 살펴보지 못하는 지대를 조명하고자 했다. 이는 본지가 올해 초 언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퓰리처 상(Pulitzer Prize)에 도전하게 된 시발점이 됐다.   주로 전국 단위의 이슈 또는 거대 담론을 다루는 주류 언론은 미세한 뉴스의 영역을 살피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소수계 그리고 각 지역의 세부적인 이슈는 더욱 그렇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 관심사도 이질적이다.     수년 전부터 언론계에서는 ‘뉴스의 사막화(news desert)’라는 용어가 화두다. 땅덩이가 크고, 수백 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선 더욱 심각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뉴스의 사막화는 언론사가 없는 커뮤니티 또는 뉴스 매체가 줄어 언론의 기능이 상실된 지역을 의미한다. 지역 뉴스의 상실은 정보의 빈곤 상태를 가져온다. 결국 커뮤니티가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뉴스의 사막화 때문에 커뮤니티 이슈를 공론화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지역도 늘고 있다. 목소리를 내지 못해 단절되고 지역 사회 구성원이 커뮤니티 뉴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폐해를 낳는다.   노스웨스턴대 메딜 저널리즘 스쿨이 이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2023년 기준)에 따르면 전국에서 뉴스 매체가 없는 카운티는 무려 204개다. 단 한 곳의 뉴스 매체만 운영되고 있는 카운티도 무려 1562개에 이른다.   하물며 소수계 언론 등을 일컫는 민족 매체(Ethnic Outlets)는 어떻겠는가. 카운티 차원을 넘어 메인, 뉴햄프셔, 와이오밍,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웨스트버지니아 등 단 한 곳의 민족 매체도 없는 주가 많다.   한인 언론은 중요하다.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면 주류 매체가 간헐적, 표피적으로만 다루는 한인 커뮤니티 소식에만 의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목소리를 대변할 언론을 소유한 민족은 그리 많지 않다. 전국에서도 이민자가 많이 사는 LA카운티를 살펴봤다. UCLA 임상·중개 과학 연구소(CTSI)에 따르면 LA카운티는 224개 언어, 140개 민족으로 구성돼있다.     가주 지역의 소수계 언론 연구 및 지원 기관인 에스닉 미디어의 자료를 살펴보면 남가주 지역에서 언론을 보유하고 있는 민족은 한인을 비롯한 일본계, 중국계, 베트남계, 아르메니안계 등 고작 25개 민족뿐이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소수계가 언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영향력으로 직결된다. 주류 사회가 소수계 또는 지역 이슈에 대해 외면할 수 없도록 긴장하게 만든다.   그뿐 아니다. 미국에만 200만 명 이상의 한인이 산다. 디아스포라 시대 가운데 재외국민 또는 재외동포 이슈를 한국에 알리는가 하면 미국 사회의 시각을 한인 사회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도 한다.   ‘아스바레즈(Asbarez)’는 LA 지역 아르메니안 커뮤니티 최대 일간지다. 이 신문의 영문판 담당 아라 크라차투리안 편집국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지역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LA타임스나 뉴욕타임스가 과연 아르메니안 커뮤니티 이슈를 ‘아스바레즈’만큼 자세하게 다룰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인 사회 이슈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일 본지는 ‘함께한 50년, 함께할 50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창간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한인 사회는 다른 민족과 달리 언론을 소유한 커뮤니티다. 함께할 50년은 그 자부심에서 기인한다. 장열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la타임스 한인 커뮤니티 뉴스 커뮤니티 이슈 지역 뉴스

2024-10-20

[본지 창간 50주년 축하 메시지] "한인사회 뉴스·정보 전달에 충실"

캐런 배스 LA 시장은 미주중앙일보 창간 50주년이 한인사회 전체의 ‘골든(50년) 애니버서리(golden anniversary)’가 됐다며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공무 일정으로 기념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배스 시장은 10일 오드리 이루마스 파빌리온에 보내온 영상 메시지를 통해 “50년 동안의 미주중앙일보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중앙일보는 한인사회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필요한 뉴스와 정보를 성실히 전해왔다”고 격려했다.   배스 시장은 이어 “특히 LA시 전체에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영향을 준 많은 한인들에게 큰 동기를 부여해 준 것에 감사하다”고 언급했다.   동시에 그는 “이번 행사에 한국 모기업에서도 중요한 분들이 많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 LA시와 기업들과도 함께 일할 좋은 기회를 마련하기를 고대한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미셸 스틸 연방 하원의원(45지구)이 참석해 미주중앙일보의 성공적인 50년 역사에 감사를 표시했다.   스틸 의원은 “정치권에서 일하면서 소수계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항상 깨닫는다”며 “한인사회에 소식과 정보를 성실히 전달해 준 언론인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LA한인타운이 포함된 지미 고메즈 연방 하원의원(34지구)은 “100년이 넘는 한인 이민 역사에서도 중앙일보의 역할은 무척 큰 것이었다”며 “다양한 커뮤니티가 함께 풍성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더 정진해달라”고 주문했다.   테리 탕 LA타임스 편집국장은 “소수계 언론은 몸속의 핏줄처럼 커뮤니티 전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앞으로의 50년에도 콘텐츠 교류 등 여러 협력을 통해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함께 나서자”고 발언했다.   현재 뉴저지 연방 상원에 출마한 앤디 김 의원은 영상 메시지로 “중앙일보가 한국과 미국, 한인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50년 동안 해온 것에 놀랍고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더 알찬 정보와 소식을 제공해 한인사회를 풍성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최인성 기자본지 창간 50주년 축하 메시지 한인사회 충실 한인사회 뉴스 한인사회 전체 미주중앙일보 창간

2024-10-10

[뉴스 포커스] 꼭 전하고 싶은 “수고하셨다”는 말

신문 지면에는 매일 다양한 기사들이 실린다. 그 많은 기사 중에서 요즘 꼭 챙겨 읽는 것이 부고 기사다. 인연이 있는 분들의 이름을 부고 기사에서 발견하는 일이 잦아지면서부터다.     올해도 이미 몇몇 분의 부고 기사를 보고 놀랐다. 앞으로는 지인의 부고 기사를 더 자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시더니….”, “이분이 갑자기 왜….” “연세가 이렇게 많으셨나.” 기사를 읽고 난 감회는 다르지만 안타깝기는 매한가지다.   고인들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다양하다. 취재를 명분으로 본의 아니게 괴롭혔던 분도 있고, 반대로 나를 힘들게 했던 분도 있다. 물론 좋은 감정으로 시작된 인연이 훨씬 많지만 말이다. 그중에는 인간적인 친밀감으로 개인적은 고민을 털어놓는 사이가 된 분들도 있었다.       부고 기사는 고인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흔적이다. 그 안에는 그의 일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 비록 고인의 이름과 나이, 사망 원인, 유가족, 장례식 일정만 있는 짧은 부고 기사라도 그렇다.  지인들은 부고 기사를 읽으며 고인과 공유하는 부분을 추억하게 된다.       나는 지인의 부고 기사를 보면 고인이 들려준 옛날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달랑 300달러를 들고 미국생활을 시작했다는 얘기, 길에서 한인을 마주치면 누구든 오랜 친구처럼 반갑게 인사했다는 얘기, 이야기, 밴 차량에 물건을 가득 싣고 여기저기 다니며 장사를 했었다는 얘기, 고기 통조림 가격이 너무 싸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애완동물용이었다는 얘기, 샌타모니카 바닷가를 찾아 향수를 달랬다는 얘기…. 그들은 추억처럼 담담하게 들려줬지만 이민자의 어려움이 묻어나는 사연들이었다.   그들이 떠나면서 그들이 간직했던 사연들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한인 사회 역사의 한 페이지가 함께 묻히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민 초창기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줄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그나마 자서전 등으로 본인 삶의 기록을 남기는 분들도 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부고 기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은 것이 뉴욕타임스(NYT)의 ‘Overlooked(간과했던 것)’이라는 연재물이다. 우리에겐 2018년 3월 29일 게재됐던 유관순 열사 부고 기사를 계기로 잘 알려졌다. 미국 최고의 신문이 한국 독립운동가를, 그것도 사후 100년이 되어가는 시기에 새삼스레 추모 기사를 썼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Overlooked’에는 유관순 열사 외에도 많은 인물이 소개됐고, 연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NYT가 뒤늦은 부고 기사를 쓰는 이유다. NYT는 “1851년부터 부고 기사를 게재했지만 백인 남성에게 집중됐다. 우리가 간과했지만 역사적으로 뛰어난 인물들을 알리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잊지 말아야 인물들을 발굴해 역사의 퍼즐을 맞춰가겠다는 의도 아닌지 싶다. 이런 의도라면 부고 기사도 역사 기록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한인 사회의 인구 구성이 달라지고 있다. 1세들의 은퇴는 느는 데 반해, 신규 이민자의 유입은 줄고 있다. 자연히 무게 중심은 점차 차세대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세대교체 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한인들은 이민 1세들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까? 아니 기억하려 할지조차 모를 일이다.     지금의 한인 사회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세들의 피와 땀이 만든 결과물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지만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습조차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성과를 거뒀다.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부고 기사의 주인공들에게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김동필 / 논설 실장뉴스 포커스 수고 추모 기사 얘기 이야기 얘기 샌타모니카

2024-09-26

[뉴스 포커스] 차기 LA한인회장이 되려면

'한인회가 어떤 일을 하는 단체죠?' 이런 질문에 선뜻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한인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있을 정도로 한인회라는 조직은 많지만 역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어렵다. 그래서 '한인회'라는 명칭은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수많은 한인회 가운데 대표를 꼽으라면 아마 LA 한인회일 것이다. 규모나 역량 면에서 그렇다는 의미다. 이런 LA 한인회를 들여다보면 한인회의 존재 이유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LA 한인회 웹사이트에 소개된 설립 목적을 보면 한인사회 공익 대변과 한인 단체의 구심점 역할, 한·미 양국의 각종 정보 제공, 한인 사회 위상 제고로 되어 있다.   주요 업무 내용은 더 다양하다. 주류 사회와 한인 사회 연결,한인들의 권리와 공익 보호, 소비자 문제 상담, 문제 해결 중재, 각종 정보 제공 및 확인, 통역 및 서류작업 지원, 고용 추천 서비스, 법률,복지제도 상담, 세미나 워크숍, 사회복지 혜택 상담, 차세대 지도자 육성, 이민자 지원 서비스 등 12가지나 된다. 모두 필요한 일들이긴 하지만 '지금 역량으로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LA 한인회는 비영리 봉사단체고, 회장 자리는 명예직이다. 역대 회장 대부분이 본업은 따로 있고 한인 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며 나선 분들이었다. 물론 회장 역량에 따라 성과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큰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인회라는 조직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예산이 부족하면 회장이나 이사장이 주머닛돈으로 메우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한인회에 분발을 촉구하기도 모호한 구석이 있었다.     LA 한인회가 주목받을 때도 있었다. 회장 선거 시즌이 그때다. 특히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LA 한인회장 선거는 과열 양상을 보였다. 한동안은 선거 때마다 분란이 생겼을 정도다. 갈등의 골이 깊어져 법원에 호소하기도 하고, 2명의 회장이 선출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런 볼썽사나운 모습에 '한인회 무용론' 주장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의 분란 원인을 복기해 보면 대부분이 주먹구구식 업무 처리와 불투명한 운영이 발단이었다.     그러던 LA 한인회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 19 펜데믹 시기였다. 당시 정부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들이 쏟아졌지만 한인들이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은 없었다. 이때 발 벗고 나선 곳이 LA 한인회다. 펜데믹 기간에도 사무실 문을 열고 상담을 하고 신청을 도왔다. 자연히 한인회를 바라는 한인들의 시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있느나 마나한 단체'에서 '필요한 단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펜데믹 이후 한인 사회도 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이 인구 구성의 변화다. 한인 1세들의 은퇴는 늘고 있지만, 신규 이민자는 줄고 있다. 그 격차를 1.5세와 2세들이 일부 메우는 상황이다. 이처럼 한인 사회가 달라지고 있다면 한인회도 변해야 한다.   지금의 한인회라는 틀은 수십 년 전 이민 1세들이 만든 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 차이가 있다. 과거에 만들었던 틀은 이제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달라진 환경에 맞는 새로운 한인회로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조만간 차기 LA 한인회장 선거가 있다고 한다. 벌써 자천타천으로 몇몇 후보가 하마평에 오르는 모양이다. 한인 사회를 위해 활동하겠다는 의욕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니 반갑다. 다만 LA 한인회장 선거에 나서려는 후보들이 염두에 둬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LA 한인회도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처럼 단순히 명예직으로 생각하고 회장에 나설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한인 사회의 변화에 맞게 한인회 조직과 역할에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 차기 회장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LA 한인회가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수많은 한인회의 생존도 가능하다.  김동필 / 논설 실장뉴스 포커스 la한인회장 차기 한인회 가운데 la 한인회 한인사회 공익

2024-09-19

[뉴스 포커스] 그도 불법체류자였다

한국이 IMF 사태로 어려움을 겪던 1990년대 말, LA에 왔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먼 길 왔는데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며 약속을 잡았다.     그의 ‘미국행’엔 사연이 있었다. IMF사태로 하루아침에 사업이 망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렵게 여행 비자를 받아 LA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했다. 그 무렵 많은 한인이 무작정 미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의 재기를 꿈꿨다. 이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자녀들을 ‘IMF 키즈’라고 부를 정도였다.      사정은 딱했지만 달리 도울 방법은 없었다. 종종 밥 한 끼 사주며 응원의 말을 건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비자 기간 만료로 그는 불법체류자가 됐고, 얼마 후 연락이 끊겼다. “잘살고 있겠지” 생각하며 몇 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사업을 시작했다고. 체류 신분 문제를 물었더니 그것도 잘 해결될 것 같다고 했다. 그간의 고생담은 직접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그는 든든한 가장으로, 건실한 비즈니스맨으로, 성실한 납세자로 잘 살고 있다.      친구의 미국 정착기는 다행히 ‘해피 엔딩’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을 불법체류자로 전전긍긍하면서도 열심히 살았지만 끝내 체류 신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고인이 된 분도 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분들도 있다. 그들은 미국 사회에서 가장 약자로 살았다.     최근 몇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줄곧 불법이민자 문제가 주요 이슈로 부상했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 무대에 등장하면서부터다. 그는 첫 출마였던 2016년  선거에서 국경장벽 설치와 불법체류자 추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불법 이민자들이 서민 일자리를 빼앗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치 모든 미국적 병폐의 원인이 불법이민자에게 있다는 듯 몰아붙였다. 당시 “불법체류자, 불법입국자는 과거에도 있었는데 느닷없이 왜?”라고 생각했다. 전략이 통했는지 트럼프는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그런데 그는 4년 후인 2020년 대선 때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다시 나선 2024년 대선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말 “불법이민자가 미국인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하더니 10일 대선 토론회에서는 “불법이민자가 미국인이 기르는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고 있다”는 황당한 발언까지 했다.  진행자가 “언급한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시에 확인했더니 근거 없는 얘기라고 하더라”고 팩트 체크를 해도 발언 취소나 정정은 없었다. 이 정도면 가짜 뉴스가 아니라 막말 수준이다.     이번 토론회는 6700만 명이 지켜봤다고 한다. 물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황당 발언’으로 웃고 넘겼겠지만,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앞으로 그들이 이민자를 만나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가정이기는 하지만 가슴이 서늘해진다. ‘합법이민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이름표처럼 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불법 입국자가 늘고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특히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들은 이들의 처리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주요 대도시가 홈리스 해결에 골몰하듯 이들 지역은 불법 입국자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속 시원한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국경을 통한 불법 입국자는 최대한 막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굳이 혐오스러운 막말까지 퍼부을 이유는 없다. 그 말의 여파가 모든 이민자 커뮤니티에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의 나라에서 이민자가 혐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앞에서 언급한 친구의 예처럼 불법체류자였지만 이제는 건강한 미국시민이 된 사례도 많다.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이라면 본인 발언의 파장도 염두에 둬야 한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불법체류자 불법체류자 불법입국자 불법이민자 문제 불법체류자 추방

2024-09-12

[뉴스 포커스] 멀어지는 ‘아메리칸 드림’

미국에 살면서 많이 했던 덕담 가운데 하나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셨네요”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지인에게도, 사업이 번창하는 지인에게도,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한 지인에게도 이 말로 축하 인사를 전하곤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냥 ‘축하한다’는 말보다는 낫다는 생각에서다. 어떤 이유든 큰 결심을 하고 미국에 왔으니 ‘아메리칸 드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보통 ‘아메리칸 드림’ 하면 이민 1세들의 목표나 희망을 떠올린다. 이민 2세나 3세의 성공담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 역사와 함께 하는 오랜 미국의 가치다. 의미가 포괄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의 여지가 많지만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다.     미국에 처음 정착한 대부분의 유럽인은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출신 국가에서의 온갖 박해와 차별을 피해 이주를 결심했다. 따라서 노력에 합당한 결과물을 받고, 공정한 기회를 얻는 것이 그들에게는 최고의 가치였다. 이것이 ‘아메리칸 드림’의 뿌리다. 당연히 신규 이민자뿐만 아니라 수 대에 걸쳐 미국에 사는 사람도 꾸는 꿈이다. 이민 1세와는 다르겠지만 2세나 3세들에게도 ‘아메리칸 드림’이 있는 이유다.   그런데  ‘아메리칸 드림’의 개념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갈수록 경제 이슈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것이다. 이런 변화에는 2008년의 금융위기가 많은 영향을 끼친 듯하다. 금융위기가 확산하면서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제기됐고 이에 대한 논란도 거세졌다. 상위 1%가 부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굳어진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소위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이런 분위기에 월가 대형 투자은행들에 대한 정부의 막대한 지원이 기름을 부었다. 정부의 지원이 탐욕스러운 은행과 큰 손 투자자들의 배만 불렸다는 주장이다. 이에 반발해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벌어졌고 그때 등장한 구호 가운데 하나가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졌다( American Dream is Over)’였다.     그로부터 1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 가고 있다. 서민들의 경제 사정은 별반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업체 퓨리서처가 최근 전국 87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메리칸 드림은 가능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53%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과거엔 가능했다’는 응답자가 41%, ‘가능한 적이 없었다’는 답도 6%였다. 겉으로 보면 아직 절반 이상은 ‘아메리칸 드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 사회의 중심인 젊은층과 중년 세대의 생각은 딴판이다. 30~49세 사이의 응답자 가운데 ‘가능성이 있다’는 반응은 43%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더구나 18~29세 사이에서는 그 비율이 39%로 더 떨어진다. 주목할 것은 그들이 ‘아메리칸 드림’에 부정적인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문제라는 점이다. 매달 생활비를 걱정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내 집 장만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마 이들 중 상당수는 10여년 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에 직접 참여했거나 그들의 주장에 공감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11월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경제 이슈가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카말리 해리스와 도널프 트럼프 캠프에서는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선거 광고의 상당 부분도 경제 관련 내용이다. 하지만 그중에는 현실성 없는 내용도 많다.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을 바라는 유권자라면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아메리칸 드림 아메리칸 드림 경제 이슈 경제적 불평등

2024-08-29

[뉴스 포커스] 미국 한인 사회는 왜 못할까?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은 감동이다. 경기에 나서는 팀이나 선수가 스토리를 갖고 있다면 감동은 배가 된다. 어려움을 극복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정적 동조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일본의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학교가 화제다. 전일본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에서의 맹활약 덕분이다. 이 학교 야구팀은 일본 최고 권위의 고교 야구대회에 참가해 승승장구했다. '여름 고시엔'은 대회 참가 자체가 영광일 정도라고 한다. 올해도 전국 3100여개 고등학교 야구팀 가운데 겨우 49개만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그런데 중학교까지 합쳐도 전교생이 겨우 160명인 교토국제학교가 본선 진출은 물론 연전연승을 한 것이다.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감동으로 충분하다.         교토국제학교는 1947년 재일 한인들이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가 모태다. 이후 1958년 교토한국학원으로 이름을 바꿨고 1963년엔 고등학교 과정도 개설했다. 하지만 일본 교육 당국으로부터 정식학교 인가를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개교 56년이 지난 2003년에야 정식 학교 인가를 받아 교토국제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인 학생도 받았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교 명맥을 이어온 재일 한인들의 끈기와 저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해외 최대 한인 사회가 있는 LA에도 한국계 학교가 있었다. 윌셔 초등학교와 멜로즈 중·고등학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 학교는 이제 이름만 남았다. 1985년 개교했던 윌셔 초등학교는 2018년 문을 닫았고, 멜로즈 중·고등학교는 1994년 개교한 후 5년 만인 1999년 폐교를 했다.        재일 한인 사회는 해낸 일을 LA 한인 사회는 실패한 것이다. 조건과 상황은 일본 한인 사회가 훨씬 열악했을 텐데도 말이다. 윌셔와 멜로즈의 폐교엔 여러 원인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학교를 이끌던 이사들의 무능과 무책임이다. 이사들은 학교 발전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의 실행 방안을 찾기보다 자리보전에 더 급급했다. 이사들 가운데는 교육 문제와 전혀 관계없는 인물들도 있었다. 학교 측은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런 학교에 자녀를 맡길 부모는 없었다. 결국 학교는 '학생 수 감소-예산 부족-교육의 질 저하'라는 악순환에 빠졌고 그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폐교 위기가 알려지면서 한인들 사이에는 논란도 벌어졌다. "기금을 모아 학교를 살리자"는 측과 "왜 사립학교를 지원해야 하느냐"는 주장이 맞섰다. 하지만 "왜"의 목소리가 훨씬 컸고   학교는 폐교 수순을 밟았다. 이 과정에서도 이사회라는 조직은 별 역할을 하지 않았다. 만약 당시 이사회가 한국계 학교의 필요성을 각계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생존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에게는 두고두고 불명예로 남을 것이다.  단순히 한국계 학교 하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 교육의 핵심을 지키는 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웨스트 LA 지역에 갈 때면 유달리 유대인 학교들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2세들에게 늘 정체성을 강조한다.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라고. 그런데 정작 그들이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를 체화할 수 있는 수단은 제공하지 않고 있다. 관심 있으면 필요한 내용물은 알아서 채우라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정체성을 강조해봐야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지난해 재외동포청 출범에 잠시 기대감을 가졌었다. 2세들의 정체성 함양이 역점 사업의 하나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 내부 역량으로 어렵다면 외부 지원을 받아서라도 풀어야 할 과제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부연 설명 한 가지, 교토국제학교의 교가는 '동해 바다 건너서'로 시작되는 한국어 가사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미국 한인 고등학교 야구팀 한인 사회 고등학교 과정

2024-08-22

[뉴스 포커스] 이제부터는 경제다

트럼프가 달라졌다. 대선 유세에서 경제 관련 발언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지난 14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빌에서의 유세는 그의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첫 무대였다. 얼마 전 마라라고 자택에서의 기자 회견이나 일론 머스크와의 장시간 대담에서는 보이지 않던 모습이다.       “당선되면 취임 12개월 이내에 전기료 등 가정용 에너지 가격을 50~70% 내리겠다”, “소셜 시큐리티와 팁 수입은 면세 혜택을 주겠다”, “경제를 활성화해 모든 국가 부채를 상환하겠다”, “취임 1년 이내에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는 모든 규제를 폐지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    애쉬빌에서 그가 쏟아낸 경제 관련 공약들이다. 이미 소개된 새로운 버전의 ‘트럼프노믹스’에 몇 가지가 추가됐다.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것도 있지만 관심 끌기용으로는 그럴듯하다. 물론 이날도 바이든 대통령을 ‘비뚤어진 조(Crooked Joe)’라 조롱하고, “해리스는 인터뷰를 할 능력이 있을 만큼 똑똑하지 않다”는 등 인신공격 발언을 멈추지 않았지만 경제 얘기를 하느라 비중은 줄었다.     트럼프의 변화는 위기감을 감지한 결과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된 해리스의 기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우세를 보였던 ‘스윙 스테이트’들도 어느새 접전 양상으로 변했다. 일부 주에서는 지지율이 역전됐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온다. 트럼프 캠프 입장에서는 초조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선택한 카드가 ‘경제’다. 경제 분야만큼은 트럼프가 해리스 보다 우위라는 판단 때문인 듯하다.  유권자들도 경제 분야에서는 트럼프가 해리스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가 해리스보다 경제를 잘 이끌어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 비율이 높다. 그 배경에는 트럼프가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하는 듯하다. 일종의 선입견일 수 있지만 기업인이 경제 문제를 더 잘 알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 스스로는 “그들은 (경제가)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하는 데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제로의 방향 전환은 트럼프 본인의 결정이 아니라 공화당과 대선 캠프의 전략적 선택인 듯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트럼프의 경제 정책, 즉 ‘트럼프노믹스’를 경험한 바 있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2017~2020년 사이다. 기억력 탓인지는 몰라도 당시 엄청나게 경제적 호시절을 보낸 것 같지는 않다. 법인세와 소득세 세율을 인하하고,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중국과 요란한 무역 전쟁을 벌였지만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특별히 나아진 것이 없었다. 이는 트럼프의 임기 중반쯤이던  2018년 9월에 실시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당시 금융정보 업체 뱅크레이트의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2%가 “트럼프 취임 이후 재정상태가 나아진 게 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2017년부터 팬데믹 전까지 트럼프 재임 기간 3년 동안의 경제성장률과 바이든 정부와 별 차이가 없다. 자유무역협정 폐기, 세율 인하, 재정 지출 확대, 규제 완화 등으로 대표되는 ‘트럼프노믹스’의 성과가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다.      남은 대선 기간엔 경제가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도전자인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의 경제적 실정을 찾아 맹공에 나설 것이고, 해리스 부통령은 방어와 함께 개선안 제시해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공화당과 트럼프 캠프의 전략적 선택에 의한 것이지만 오히려 긍정적이다. 서민들에게는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세 현장에서의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언행, 가짜 뉴스 유포, 갈등과 증오 조장 행위도 많이 줄어들 것 같다. ‘경제적 논쟁’은 팩트를 기반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경제 경제 분야 경제 문제 경제 정책

2024-08-15

[이 아침에] 흐르는 센강

나조차 바빴다. 땀 흘리며 큰 숨을 몰아쉬던 선수들처럼. 채널을 돌리며 올림픽 뉴스에 빠졌다. 206개국이 참가해 자유·평등·박애 정신으로 1세기 만에 파리는 흥분했다. 선수들이 보트를 타고 입장한 센강 개막식은 화려했고, 오륜기가 달린 에펠탑은 세계인의 로망이 되었다.   패기와 당당함으로 조준한 과녁은 신기록과 새 역사를 썼다.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한 열정으로 심리적 압박과 부담감을 이겨내고 용기 있게 도전한 글로벌 인재들이 있다. 혼신을 기울인 레이스는 응원하는 우리 땀샘을 열어 무더위를 식혀주었다. 더욱이 승리 후 패한 선수를 포옹하며 위로해 준 품격 있는 행동이 세계 최강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는지. 감동적이고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다.   특히 주목할 사항은 우리 선수들이 펜싱, 양궁, 사격 종목, 즉 칼, 활, 총을 들고 경쟁하는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아픈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불굴의 의지가 보이는 것은 당연할 터.   인류의 역사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승패는 얼마나 좋은 무기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되었다. 멀리서 적을 공격할 수 있던 활은 휘어진 나무에 가는 밧줄을 걸고 화살촉을 끼워 목표를 맞추었다. 혁신적인 무기였지만, 총의 등장으로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무기들은 짜릿한 스포츠의 도구가 되었다. 집중과 영리한 판단으로 그것을 다루어 금빛 물결을 이룬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특별히 ‘한국의 집’에서는 전통과 현대 감각이 조화된 한국의 미를 보여주었다. 문화 행사와 의류, 화장품, 예술, 음악, 음식 등에서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올림픽이 어떻게 사람을 모으고 문화간 이해를 촉진하는가? 어떤 선수들은 출신 국가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도 보았다.     수질 문제로 논란도 많았지만, 개막식이 열렸던 센강을 통해 세계인의 화합을 기원하는 내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 중략 … 생명을 잉태해 자라게 하고/ 고향을 떠나 어디론가 흘러간다/ 낮은 곳을 향해/ 다문화 틈으로 스며들어/ 겸손히 품어 관계를 맺는다//   남을 소유하지 않고/ 막힌 인종의 벽을 넘어/ 모든 민족 속에 두루 퍼져/이방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혈연 언어 풍습 문화 역사/ 열방의 다름을 보듬는다//   단단한 모서리를 굴리고/ 버티는 바위도 뚫을 수 있다/넘쳐 솟아오르기도 하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도전으로 새역사를 쓴다//   자유로운 공동체들/ 작은 갈래의 민족들이 합쳐진/ 센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무지가 가져온 편견을 버리고 가능성으로 가득 찼다. 파리올림픽을 통해 문화 간에 다리를 잇는 변화된 세상을 발견한 듯했다. 열린 마음으로 발견하고 유지하는 여정은 시작되었다. 이희숙 / 시인·수필가이 아침에 센강 센강 개막식 문화 역사 올림픽 뉴스

2024-08-12

[뉴스 포커스] 토미 현수 에드먼이 다저스에 온 의미

메이저리그(MLB)의 한국계 선수인 토미 현수 에드먼이 LA에 왔다. 트레이드를 통해 LA다저스 선수가 된 것이다. 아직 부상에서 회복 중이지만 조만간 다저스타이움에서 그가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야구팬들에게는 가슴 설레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다저스행이 반가운 것은 지난해 2월 ‘토미 현수 에드먼의 태극기’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 대표팀 선발 소식이 전해진 무렵이었다. 그의 한국 대표팀 합류는 큰 의미가 있었다. 당시 재외동포청 출범 작업도 한창이던 터라 시기적으로도 좋았다. 한국에선 ‘한국 국적자가 아닌 선수의 첫 한국 대표’라면서도 반응은 긍정적이었고, 한인 사회는 ‘한국계’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토미 현수가 한국 대표 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WBC의 독특한 규정 덕분이다. WBC 주최 측은 흥행을 위해 본인이 원하면 부모는 물론 조부모 출신 국가의 대표로 출전하는 것도 허용했다. 토미 현수는 어머니가 한인이라 자격이 충분하다. 메이저리그에는 한국 대표 선수 자격을 갖춘 선수가 몇 명 더 있었다. 한국 대표팀 측은 이들과도 접촉했지만 아쉽게도 다들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상과 팀 내 주전 경쟁이 이유였다. 사실 확실하게 주전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팀을 이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미 현수는 흔쾌히 합류 의사를 밝혔고 소중한 시간을 할애 했다.     그가 한국 도착 후 공항에서 들뜬 표정으로 첫 인터뷰를 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팀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서툴지만 한국어 인사말도 건넸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의 성적이 좋지 않았고 토미 현수 에드먼의 스토리도 거기서 마침표를 찍었다.   그의 한국 대표선수 활약은 많은 여운을 남겼다. 우선 ‘한국계 미국인’의 존재 가치를 다시 한번 확신시켜 줬다. 일반적으로 ‘한국계’란 부모나 조부모 중 한 명이 한인인 경우를 칭한다. 일부에서는 ‘혼혈’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거부감이 든다. 왠지 차별의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해서다.       이민 역사가 깊어지면서 ‘한국계’도 늘고 있다. 타인종과 결혼하는 한인이 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제로 인구 센서스 결과를 보면 ‘한국계’의 증가폭이 한인 인구 전체의 증가폭을 훨씬 앞선다. 시간이 흐르면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 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 ‘메이 디셈버(May December)’의 남자 주인공 역을 맡았던  찰스 멜튼은 어머니가 한인인 한국계다. 그리고 지난해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 골프에서 깜짝 우승한 앨리슨 코푸즈도 한국계다. 음악계에도 이미 잘 알려진 한국계가 있다. 그래미상 수상자로  2022년 LA에서 열린 56회 수퍼보울 하프타임 공연에도 참여했던 앤더스 팩이다. 그는 외할머니가 한인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과 한인 사회와의 접점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한인 사회는 그들에게 무관심하고, 그들은 한인 사회의 존재를 잘 모른다. 거창하게 정체성 운운하지 않더라도 그들에게 “나도 한인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이라도 갖게 할 방법은 없을까. 이를 위해서는 한인 사회가 머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류현진이 떠난 후 다저스에 대한 한인 야구팬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하지만 이제 다시 다저스를 응원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다저스에는 토미 현수 에드먼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박찬호, 류현진에게 그랬듯 이제는 토미 현수의 활약에 열광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그것이 한인 사회가 ‘한국계’를 끌어안는 첫걸음이 되었으면 한다.  김동필 / 논설 실장뉴스 포커스 다저스 토미 토미 현수 한국 대표선수 la다저스 선수

2024-08-01

[뉴스 포커스] 트럼프의 밴스 선택이 효과를 보려면…

도널드 트럼프의 쇼맨십은 여전했고 정치적 감각은 8년전에 비해 발전한 듯하다. 그는 지난 13일 유세 연설 도중 총격 피습을 당한 긴박한 상황에서도 ‘그림’ 하나를 만들었다. 피를 흘리며 경호원들에 에워싸여 안전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주먹을 높이 치켜든 것이다. 본인은 괜찮다는 신호였다. 이에 지지자들은 ‘유에스에이(USA)’를 외쳤고, 그는 ‘파이트(fight)’로 화답했다. 누구와 싸우라는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그의 스타 본능이 작동했고 참석자들은 이에 열광했다. 지지자들이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러닝메이트로 JD 밴스를 낙점한 것은 그의 정치적 감각을 보여준다. 밴스는 트럼프 비판자에서 충성파로 돌아선 인물이다. 지명도나 경력 면에서도 다른 후보들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 트럼프가 ‘확장성’ 대신 ‘충성심’을 선택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피상적 분석이다. 트럼프는 밴스 지명을 통해 ‘확장성’과 ‘충성심’ 두 가지를 다 택한 것이다. 밴스가 트럼프에게는 없는 세 가지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밴스는 39세의 젊은 정치인이다. 이는 트럼프에게도 제기될 수 있는 ‘고령 논란’을 희석하는 효과가 있다. 워낙 고령인 바이든에 가려서 그렇지 올해 78세인 트럼프도 사실 고령 정치인이다. 만약 그가 당선된다면 임기 2년 차부터 80대에 접어들기 때문이다.         밴스에게는 러스트벨트 지역 ‘흙수저’ 출신이라는 서사도 있다. 부유한 집한 출신인 트럼프와는 전혀 다른 배경이다. 트럼프의 득표율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밴스의 출신 지역인 오하이오 주를 비롯해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 등 러스트벨트 지역은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올해도 양당의 지지율이 팽팽해 ‘스윙 스테이트’로 분류된다. 여기에서 우위를 점한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밴스가 러닝메이트 수락 연설에서 “러스트벨트 지역 주민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다.     배우자가 소수계라는 것도 밴스의 강점이다. 밴스의 아내 우샤 칠루쿠리 밴스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인도계는 최근 정치적으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소수계 커뮤니티다. 이번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인물들 가운데서도 인도계가 2명(니키헤일리, 비벡 라마스와미)이나 있었다.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도 모친이 인도계다. 게다가 인도계는 민주당의 아성으로 알려진 실리콘밸리 IT업계도 장악하고 있다.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인도계의 창업 비율도 높다. 트럼프 캠프 측은 우샤 밴스를 앞세워 인도계는 물론 다른 소수계 유권자들과 접점을 넓히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꼭 ‘선거 공학’대로 상황이 흘러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먼저 둘 다 강경 보수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가 모두 강경 보수 이미지라면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소한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밴스가 트럼프의 장남과 친구라는 것도 개운치가 않다. 과거 트럼프 정부 당시 트럼프 자녀들의 국정 관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정치 언어는 쉽고 간단하고 명료하다. 지지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그러나 때로는 혐오감과 증오심을 유발하는 언사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정치적 극단주의가 생기고 양극화가 심화했다. 그리고 그 피해자는 주로 소수계나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트럼프가 이번 선거에서 이기려면 과거 대통령 시절과는 달라져야 한다. 결국 본인이 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략인 셈이다. 김동필 / 논설 실장뉴스 포커스 트럼프 선택 트럼프 비판자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 캠프

2024-07-18

[뉴스 포커스] 복수국적 확대가 혜택이라는 착각

1990년대 말 닷컴 열풍이 한창일 때 한인 벤처 스타도 여러 명 탄생했다. 유리시스템스라는 통신장비업체를 10억 달러에 매각한 김종훈도 그중 한 명이었다. 특히 그는 중학생 때 이민 온 1.5세라는 것이 더 친밀감을 갖게 했다. 한인 차세대의 롤모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김종훈이 다시 뉴스에 등장한 것은 2013년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를 미래창조과학부 초대 장관 후보로 임명한 것이다. 당시 한인 사회는 놀라움과 기대감으로 환호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청문회를 앞두고 자진 사퇴를 선택했다. 온갖 억지스러운 시비에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다. 결정적이었던 것이 그의 국적 문제였다. 미국 시민권자라는 것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정서적 거부감이었다. 그는 시민권 포기까지 결심하고 한국 국적을 회복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국에서 복수국적 허용 연령을 낮추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현행 65세 이상에게만 허용하는 것을 55세 이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사실 ‘연령 하향’ 추진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복수국적 시행 이후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모두 무산됐다. 그 원인 역시 국민 정서 탓이 크다. “국방, 납세 등 의무는 다하지 않은 사람들이 혜택만 보려 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반감이다.     이런 정서가 형성되어 있다 보니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 돼도 통과가 어렵다. 의원들은 찬성표를 던져봐야 정작 선거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다 보니 관련 법안들은 시간만 지체하다 자동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렇다면 정말 어떤 혜택만을 위해 복수국적 허용 확대를 요구하는 것일까?  ‘복수국적 연령 하향’은 선천적 복수국적자 문제 해결과 함께 한인 사회의 주요 요구 사항이기는 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이를 해외동포들에게 베푸는 혜택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는 일방적 혜택이 아니라 한국과 재외동포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이다.     정서적 거부감의 밑바닥에 있는 ‘얌체족’ 이슈를 보자. 물론 건강보험 이용 등의 목적으로 한국 국적을 회복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수일 것이다. 특히 65세 이상 시니어는 미국에서 메디케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굳이 의료만을 목적으로 ‘한국행’을 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시니어들에 제공되는 다른 복지 혜택도 미국이 훨씬 많다. 이는 복수 국적 허용 연령을 낮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노동시장의 경쟁 심화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경제 활동 가능 인구가 유입되면 일자리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기우다. 한국에서의 취업이 목적이라면 굳이 복수국적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세금 문제 등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음에도 복수국적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장기 체류의 편리함이다. 물론 해외동포비자(F-4)를 받으면 시민권자도 90일 이상 체류가 가능하지만 한국 국적자가 되는 것만큼 편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재외동포청은 복수국적 확대 명분으로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 문제 해결과 우수 인재 유치’를 내세웠다. 그런데 여기에 추가할 것이 있다. 바로 구매력 있는 소비자의 유치다. 장기 체류를 위해서는 주거지가 있어야 하고 자동차나 가전제품도 구매해야 한다. 생활비도 필요하다. 대부분은 이에 필요한 비용을 미국에서 가져다 쓰기 마련이다. 복수국적자 2000명이 연간 5만 달러씩만 써도 총액은 1억 달러나 된다.         한국 정부는 복수국적 확대에 대한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조사 대상은 20세 이상의 성인 2000명가량이다. 그런데 이 일이 여론조사 결과로 추진 여부를 결정할 사안인지 모르겠다. 만약 여론조사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온다면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인가.     ‘김종훈 사태’가 벌어진 것이 불과 10년 전이다. 그동안 한국의 정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복수국적 확대 선천적 복수국적자 복수국적 허용 복수국적 연령

2024-06-27

[뉴스 포커스] 한 올드타이머의 걱정

“20~30년 후에도 한인 커뮤니티가 존재할까요?” 오랜만에 만난 올드타이머 한 분이 자문하듯 질문을 던졌다. “글쎄요. 남아있지 않을까요.” 별 생각 없이 답은 했지만 계속 여운이 남았다. 한인 은행 이사를 하는 등 오랜 세월 한인 커뮤니티와 함께 한 분의 말이라 그냥 흘려 들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 생각은 어떤지 되물었다. “안타깝지만 쉽지 않을 거라고 봐요.” 지금 상태가 지속한다면 이름은 남겠지만 존재감은 훨씬 약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한인 사회는 주요 소수계 커뮤니티의 하나로 간주된다. 인구는 물론 정치력, 경제적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결과다. 그 덕에  한인 사회는 소수계 정책의 우선 고려 대상 그룹에 포함되어 이런저런 혜택을 받는다. 소수계 가운데는 정치적 발언권도 꽤 있는 편이다. 그런데 커뮤니티의 존재감이 약해진다는 것은 이런 위상도 함께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혜택도 발언권도 줄어드는 것이다.       그의 걱정에는 근거가 있다. 커뮤니티의 구심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의 한인 사회는 동력이 많이 떨어진 모습이다. 과거에는 다소 거칠고 구성원간 갈등을 빚더라도 무엇인가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일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세대교체기로의 진입이 아닐까 싶다. 각 분야에서 1세들의 은퇴가 늘면서 점차 1.5세, 2세들이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서는 부모 세대가 가졌던 강한 커뮤니티 의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한인’이라는 유대감이 1세들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한인 단체들의 활동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진 것이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그렇다고 차세대 모임이 활발한 것도 아니다.     신규 유입 인구 감소도 악조건의 하나다. 한국에서 새로 이민 오는 사람이 줄고 있다. 한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한 1980~90년대의 한인 영주권 취득자는 연간 3만 명이 넘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평균 2만 명 선으로 줄었고, 요즘은 1만5000명 수준으로 더 감소했다. 이민의 형태도 가족 초청보다 취업이민이 더 많다. 취업이민자는 지역적, 직업적 분산 현상이 특징이다. 이들에게 커뮤니티 의식을 주문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한인 커뮤니티의 미래를 얘기할 때 흔히 비교되는 것이 일본 커뮤니티다. 우리와 이민 역사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모국으로부터 유입 인구 감소’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반면, 중국이나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 다른 아시아계 커뮤니티는 유입 인구 등에서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이로 인해 한 세대 정도 더 지나면 한인 사회도 지금의 일본 커뮤니티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름은 남아 있지만 존재감은 크지 않은 커뮤니티로 말이다.     한인 이민 역사가 120년이 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커뮤니티 형성은 인구가 늘기 시작한 70년대 말 무렵 부터가 아닐까 싶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인 커뮤니티의 역사는 이제 두 세대가량이 지난 셈이다.     이제 한인 커뮤니티도 갈림길에 서 있는 듯하다.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냐, 아니면 시간의 흐름 속에 퇴화할 것이냐다. 하지만 기자가 만났던 올드타이머처럼 대부분이 퇴화보다는 진화를 원한다. 숫자는 적어도, 신규 유입 인구가 없어도 한인 사회가 영향력 있는 커뮤니티로 남길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거저 얻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다.  지금부터 밑그림을 그리고 준비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이 일에 누가 앞장설 것인가?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만, 선뜻 나서는 주체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올드타이머 걱정 한인 커뮤니티 커뮤니티 의식 아시아계 커뮤니티

2024-06-20

[뉴스 포커스] ‘국경 단속’ 정치적 이용 말아야

‘이민 문제’가 11월 대통령 선거의 주요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의 4월 설문조사 결과 영향이다. 질문은 ‘현재 미국의 가장 큰 문제’를 꼽으라는 것이었고 ‘이민’을 선택한 응답자가 27%로 가장 많았다. 정부(20%), 경제(17%), 인플레이션(13%) 등의 답변을 훨씬 앞질렀다. 동일 조사에서 ‘이민 문제’는 3개월 연속 1위를 기록했고, 이는 25년 만에 처음이라는 설명도 따랐다.         그런데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표현 방식 문제다. 갤럽이 제시한 항목은 정확히 말해 멕시코 국경을 통한 불법입국자 문제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매체가 이 내용을 전하며 제목에 ‘이민(immigr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제목만 보면 불법입국자가 아니라 이민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갤럽이 낸 자료를 찾아봤더니 ‘이민이 3개월 연속 미국의 최대 현안에 올랐다(Immigration Named Top U.S. Problem for Third Straight Month)’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갤럽의 단어 선택에 문제가 있었고, 다른 매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이를 그대로 옮겼다.      멕시코 국경의 불법입국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왜 새삼스레 ‘최대 현안’이 되었을까? 무엇보다 불법입국자의 급증 탓이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불법입국자는 계속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25만 명 가까이로 늘어 전달에 비해 31%나 급증했다. 2022년 12월에 비해서도 13%가 늘었다. 이런 국경 상황이 수시로 알려지면서 불안감이 높아졌다.         또 한 가지는 정치 이슈화다.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강경파들은 불법입국이 늘자 국경 문제를 계속 부각했다. 그런가 하면 그렉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불법입국자 이송쇼’ 까지 벌였다. 일방적으로 불법입국자들을 이들에게 우호적인 지역으로 보낸 것이다. 명분은 “우리 주가 당하는 어려움을 직접 겪어보라”는 것이었지만 내심은 불법입국자 문제의 전국 이슈화였다. 이들의 전략은 나름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에서조차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4일 발표한 ‘국경 망명신청 제한’ 행정명령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이다. 방치하면 선거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그동안 이민단체 등에선 정책 개선을 요구했다. 국경 순찰 인력을 늘려 최대한 불법입국을 막고, 이민법원 판사 충원을 통한 업무 신속화 등이다. 하지만  표를 의식한 바이든 대통령은 시간이 걸리는 정책 개선 대신 행정명령이라는 강경책을 택했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이민은 민감한 이슈다. 또 인종 문제와도 연결돼 있어 점화력이 강하다. 여기에 정치적 이슈라는 변수까지 더해지면 혼란은 더 커진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소수계 커뮤니티다.   아시아계는 최근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팬데믹 당시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계가 인종 증오범죄의 표적이 된 것이다. 어이없게도 증오범죄의 원인 제공자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었다. 그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하자 이를 ‘쿵후 바이러스’,‘차이나 바이러스’ 등으로 불렀다. 중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고려한 정치적 언사였다. 그런데 엉뚱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었다. 아시아계 주민을 향해 무차별적 폭력이 가해진 것이다. 피해자 대부분은 시니어와 여성이었다. 정치인의 한 마디에 사회적 낙오자들이 아시아계를 분풀이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불법이민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선거 전략과 맞물리면 증오와 갈등만 키울 우려도 있다. 그리고 그 불똥이 자칫 이민 사회로 번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국경 단속 불법입국자 문제 국경 문제 불법입국자 이송쇼

2024-06-06

[뉴스 포커스] ‘강남 스타일’에서 김밥까지

싸이가 부른 ‘강남 스타일’의 위력은 대단했다. 미국 전체가 난리였다. 인기 절정일 때는 하루에 한두 번은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같다. 미국 라디오 음악 방송에서 한국 노래를 듣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강남 스타일 열풍’ 소식을 전하던 뉴스 앵커가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였다. 미국에서 ‘K팝’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강남 스타일’ 상륙 이후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10여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 ‘K’라는 이니셜은 ‘한국 것’의 상징이 됐다. K팝을 넘어 다양한 종류로 분화가 이뤄지고 있다. 요즘엔 K푸드, K뷰티, K드라마, K무비, K패션 등 수 많은 분야가 K라는 이니셜로 소개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케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한국 것’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덕이다. 이미지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흔한 골목길 분식 메뉴인 김밥도 화제가 될 정도다. 이젠 어딜 가도 어렵지 않게 ‘한국 제품’을 찾을 수 있다.     문화 콘텐트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소재들이 영문으로 소개되고 한류 스타 관련 뉴스는 거의 실시간 전달된다.       ‘한국 것’을 즐기는 층도 다양해진다. 젊은 층 중심에서 이제는 그들의 부모 세대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필자의 최근 경험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는 듯하다. LA한인타운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에서 발레파킹했던 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1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다가오더니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자기 엄마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여성을 가리켰다. 얼떨결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답이 돌아왔다. 10대 여학생이 한국어를 배운다고 했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중년 여성이 한국어를 배운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왜 배우느냐”고 물었더니 K드라마 팬이란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녀 차가 먼저 오는 바람에 짧은 인터뷰를 마쳐야 했다.  ‘K의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경제적 발전과 문화 콘텐트의 영향력 확대는 자긍심으로 이어진다. 이제 한국에서 ‘문화 사대주의’ 운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자긍심이 지나쳐 소위 ‘국뽕’의 단계까지 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한국 것’이 최고라는 생각에 별것 아닌 일에도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게 그런 예다. 맹목적 믿음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미국 시장은 세계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이다. 워낙 다양하고 우수한 선수들이 뛰는 곳이다 보니 순식간에 판도가 바뀌곤 한다. 반면에 고객의 충성도 역시 높다. 한 번 마음에 들면 웬만해선 다른 것으로 바꾸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K푸드’의 현주소를 확인해 보자. K푸드의 인기가 많이 높아졌지만 아직은 다른 유명 아시아 음식에 뒤진다. 중국,일본,베트남,태국 등 아시아계 음식의 선두 주자들이 먼저 미국 시장 개척에 나섰기 때문이다. 단순히 식당 숫자로만 봐도 한식당은 아직 열세다. 경제정보 전문 업체인  렌텍 디지털의 자료에 따르면 미 전국에 중국 식당은 3만5000여개나 된다. 이어 1만8000여개인 일식당이 두 번째로 많다. 이어 1만500여개인 태국 식당, 6500여개의 베트남 식당이 뒤를 잇고 있다. 반면 한식당은 5200여개로 집계됐다.   ‘K의 인기’가 지속하려면 생명력이 필요하다. 분화만 해서는 생존 기간이 짧아질 우려가 있다. 누군가 내게 “‘K’를 관통하는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우둔한 탓인지 몰라도 ‘한국 것임을 의미한다’는 답 정도가 고작일 듯하다. 분명 현상은 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답답함이라니.  김동필 / 논설 실장뉴스 포커스 스타일 강남 강남 스타일 한국 노래 한국 제품

2024-05-30

[뉴스 포커스] 인플레와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

요즘 경제 뉴스의 키워드는 ‘인플레이션’ 이다. 증시나 주요 기업의 움직임들이 인플레이션을 중심으로 설명된다. 인플레이션은 기준 금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지금은 고금리 상황인 탓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 주체들은 매달 발표되는 개인소비지출(PCE)이나 소비자물가지수(CPI) 등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관심은 뜨거운데 누구도 자신 있는 전망을 내놓지 못한다. 한 투자 전문가는 “금리를 결정하는 연준 의원들도 인플레이션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모를 것”이라는 말로 어려움을 나타낸다. 워낙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공개된 연방준비제도(Fed)의 최근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도 답답함이 묻어나기는 마찬가지다. 회의록에는 “인플레이션이 지난 1년간 둔화하긴 했지만 최근 몇 달간의 자료는 목표 수준인 2%로 향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에 부족하다”고 되어 있다. 최근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올랐다는 의미다. 이런 언급은 금리 동결 때마다 있었던 내용이라 특별할 게 없다. 그런데 이번 회의록에는 이전과 다른 내용이 포함돼 시장을 긴장시켰다. 상당수 회의 참석자들이 “인플레이션이 더 지속하면 통화 긴축이 더 적절한 정책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의 완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연준이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불과 몇 달 전과는 온도 차가 느껴진다. 사실 연초만 해도 올해 최소 3차례 정도의 금리 인하 전망이 대세였다. 인플레이션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였다. 연준은 계속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이런 전망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물가 상승률이 3% 중반대에 고착되면서 금리 인하 전망도 최소 3회에서 1회 내지 2회로 줄었고, 그나마 요즘은 ‘올해는 동결’ 전망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은 한발 더 나아가 인상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이다.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폐혜는 자명하다. 건실한 경제 성장에는 독약이다. 각국 중앙은행의 최대 임무가 인플레이션 관리인 것도 이런 이유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물가가 급등하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급격히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 덕에 미국경제가 불경기 진입의 위기를 넘겼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연준의 행보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중하다. 시장의 선제적 조치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경제 주체들이 겪고 있는 고금리 압박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는 듯하다. 그런데 인플레이션보다 더 나쁜 게 디플레이션이다. 연준이 금리 인하 시기를 놓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분간 더 인플레·고금리와 함께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변화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씀씀이를 줄이는 모습이다. 이번에 공개된 FOMC 회의록에도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의 소비 패턴도 달라지고 있다는 내용이 언급됐다.     이렇게 달라진 소비 패턴은 소매업계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업소는 찾지 않고, 비싼 제품은 대체재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소매 업계에 가격을 내리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셈이다. 최근 대형 소매업체인 타겟이 식료품 등 주요 제품의 가격을 내린 것도, 맥도날드가 5달러 콤보 메뉴를 내놓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런 변화를 감지한 선제적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최근 5년간 식료품 가격이 33%나 오르고, 프랜차이즈 식당 음식 가격은 29%가 인상됐다는 것을 고려하면 일정 폭의 가격 인하는 업체에도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기능을 하기 시작한  셈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인플레 금리 인하 금리 인상 금리 동결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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