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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용서 구한다… 두번째 삶 감사와 축복”

 30년만의 출소 눈물의 기자회견... “겸손한 자세로 커뮤니티에 봉사”   “오랜 기간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신 한인 동포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한인 여러분의 기도와 성원 속에 오랜 수감생활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를 잊지 않고 앞으로 겸손한 자세로 조금이나마 사회에 봉사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9세 때인 지난 1993년 9월 시카고서 발생한 비극적 살인사건의 범인이자 피해자인 앤드루 서(50•한국명 서승모)가 2일 오전 9시30분 윌링 그레이스 교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 26일 일리노이 서부 키와니교도소서 30여년 만에 출소한 지 1주일 만이다.     이날 그동안 자신을 후원해온 김성민 변호사와 함께 자리한 서 씨는 “열아홉 살 때 저지른 큰 잘못으로 수감 생활을 하면서 깊이 회개해왔다. 과거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켜 여러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사망한 오두베인의 가족에게도 “미안하다”고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서 씨는 이날 기자회견 내내 눈물을 닦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 30년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좋은 마음으로 어둠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현재의 삶은 축복이고 감사할 뿐이다. 여전히 얼떨떨하지만 한번의 실수는 끝났고 이제 두번째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19살에 교도소에 가서 50대 아저씨가 돼 나왔다. 인터넷도 모르고 페이스북도 모른다”며 “차차 미래를 계획하겠지만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커뮤니티에 봉사하고 싶다”고 밝혔다.     “출소 이후 1주일간 김치도 먹고 감도 먹어보았는데 맛있었다”는 서 씨는 “한인사회가 저를 버리지 않아주셔서 고맙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한인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며 “그레이스교회와 목사님, 선한 사마리아 분들, 아버지 김한철, 김성민 변호사님께 특히 감사하고 직접 교도소를 면회 와준 분들께도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서 씨는 이날 기자회견서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했는데 한국어는 충분히 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는 “부모님이 어렸을 때 한국말만 하라고 해서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 씨는 대학 2학년 때 누나 캐서린의 사주를 받고 누나의 동거남 로버트 오두베인(당시 31세)을 총격 살해한 혐의로 1995년 재판에서 징역 100년형을 선고 받았고 이후 항소심에서 80년 형으로 감형됐다.     서 씨는 모범적인 수감 생활과 재활 프로그램을 이수할 경우 감형 특혜를 주는 새로운 일리노이 주 법 덕분에 조기 출소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서씨는 2살 때인 1976년 군 장교 출신 아버지•약사 출신 어머니를 따라 시카고로 이민했다. 그러나 이민 9년 만에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세탁소를 운영하며 남매를 키우던 어머니마저 2년 후 강도에게 살해당한 후 서 씨는 5살 위인 누나 캐서린에 의지해 살았다. 캐서린은 당시 서 씨에게 "오두베인이 엄마를 죽였다. 상속받은 재산을 도박 빚으로 탕진하고 학대한다"며 살인을 사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J 취재팀회개 용서 누나 캐서린 출소 눈물 김성민 변호사

2024-02-02

[글마당] 재만이를 떠나보내고

누나, 내가 못 갈 것 같아     어깨 수술도 해야 하고 임플란트도…     옥천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온몸에서 피가 쭈르르 빠져나가듯 현기증이 났다     상한 마음에 웃음기를 잃었다 동생이 아프다는데     그건 묻지도 않고 내 생각만 했다         누나, 누나 내가 가야겠어 누나랑 통화하고   마음을 바꿨어 병원은 다녀와서 가려고     그때부터 남편은 화장실 리모델링 시작하고     난 괜히 집 앞을 쓸고 다녔다     떨어진 낙엽들을 마구마구 공중에 뿌리며 실실 웃었다         재만이가 나타났다 고향 공기를 흠뻑 싣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돌아가신 엄마를 꼭 껴안고 오듯     큰 체격에 엄마 눈 코 입을 꼭꼭 심고 나타났다     그 옆에 예쁘고 착한 올케와 함께         어릴 적 다락방에 올라가 꿀 퍼먹다 잠든 재만이     천둥 번개 치는 날엔 재봉틀 발판 위로     기어들어간 재만이가   이순의 나이로 백발이 되어 나타났다     우리 부부는 동생 부부와 한 달 동안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웃고 떠들고 설레었다   한 달이 이렇게 짧은 시간이었나         십일월 마지막 월요일 엘에이 공항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끌어안고 윽윽 울음을 삼켰다   한 남자는 민망해 두 발짝 뒤로 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큭큭 삼켰던 울음이 쏟아졌다     채울 수 없는 공허함     버려지지 않는 이 그리움         재만아~ 홍유리 / 시인글마당 동생 부부 누나 누나 화장실 리모델링

2024-01-05

[시] 재만이를 떠나보내고

누나, 내가 못 갈 것 같아     어깨 수술도 해야 하고 임플란트도…     옥천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온몸에서 피가 쭈르르 빠져나가듯 현기증이 났다     상한 마음에 웃음기를 잃었다 동생이 아프다는데     그건 묻지도 않고 내 생각만 했다         누나, 누나 내가 가야겠어 누나랑 통화하고   마음을 바꿨어 병원은 다녀와서 가려고     그때부터 남편은 화장실 리모델링 시작하고     난 괜히 집 앞을 쓸고 다녔다     떨어진 낙엽들을 마구마구 공중에 뿌리며 실실 웃었다         재만이가 나타났다 고향 공기를 흠뻑 싣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돌아가신 엄마를 꼭 껴안고 오듯     큰 체격에 엄마 눈 코 입을 꼭꼭 심고 나타났다     그 옆에 예쁘고 착한 올케와 함께         어릴 적 다락방에 올라가 꿀 퍼먹다 잠든 재만이     천둥 번개 치는 날엔 재봉틀 발판 위로     기어들어간 재만이가   이순의 나이로 백발이 되어 나타났다     우리 부부는 동생 부부와 한 달 동안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웃고 떠들고 설레었다   한 달이 이렇게 짧은 시간이었나         십일월 마지막 월요일 엘에이 공항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끌어안고 윽윽 울음을 삼켰다   한 남자는 민망해 두 발짝 뒤로 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큭큭 삼켰던 울음이 쏟아졌다     채울 수 없는 공허함     버려지지 않는 이 그리움         재만아~   홍유리 / 시인시 동생 부부 누나 누나 화장실 리모델링

2023-12-21

[이 아침에] 가을 편지

내 나이 6~7살 때의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무렵 나는 소아마비를 치료하러 을지로의 메디컬 센터에 다니고 있었다. 그날은 외할아버지와 병원에 갔었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약을 받아가야 했다. 할아버지는 맹장 수술한 자리에 탈장이 생겨 무거운 것을 오래 들지 못하셨다. 나를 벤치에 내려놓고 모퉁이를 돌아 약국으로 약을 타러 가셨다. 곧 온다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혹시 나를 버리고 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훌쩍이다 잠시 후,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모두 나를 슬쩍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쳐 가버렸는데, 하얀 간호사복을 입은 누나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내게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훌쩍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나를 덥석 팔에 안고 약국으로 갔다. 마침 약을 찾아오던 할아버지를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 간호사 누나의 얼굴은커녕 모습도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살다가 문득 그 일은 생각난다. 6~7살이면 아직 어린 나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이미 5년가량 낫는다는 기약도 없는 재활치료를 받아 왔고, 나름 지쳐 있었다. 버려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그때 그녀가 준 것은 포근한 위로였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직장도 필요하고 돈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은 따스한 위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과연 60년을 살아오며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따스한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있었나.     며칠 사이에 계절이 확 바뀌었다. 오렌지 색으로 물들었던 마당의 감나무도 며칠 전 비와 간밤의 바람에 절반이나 옷을 벗었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 무렵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난 세월을 돌아볼 것이다.     나이가 드니 더 자주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면 참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살았다. 그중 많은 이들이 이제는 이 세상에 있지 않거나, 오래전에 연락이 끊어졌다. 카드 한장 보낼 수 없는 상황이다.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이 세상사다.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도움과 위로는 카드빚과는 다르다. 카드빚이야 월말에 정산하면 그만이지만, 내가 받은 도움과 위로의 보답이 꼭 준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 싶다.     받은 것만큼, 여유가 되면 더 많이, 주변의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내가 받은 것을 갚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게 위로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도 아마 누군가에게 받았던 것을 나누어 준 것이리라.     이런 도움과 위로가 굳이 비싸고 커야 할 필요는 없다. 작은 것이 더 간절하고 소중하다. 슬프고 힘들 때 누군가 건네주는 따스한 말 한마디, 손글씨로 쓴 카드나 편지 한장이 전해주는 위로는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손쉬운 것이 누군가에게 쓰는 가을 편지가 아닐까 싶다. 편지지에 사연 몇 자 적어 말린 낙엽 하나 붙여 보내면, 받는 이보다 보내는 이의 마음이 더 푸근해질 것이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가을 편지 가을 편지 편지 한장 간호사 누나

2023-11-22

[오늘의 생활영어] (someone or something) is out of this world; 환상적이다

John is talking to his roommate, Ray. (존이 룸메이트 레이와 말하고 있다.)   John: So how was dinner at your sister Jean's?   존: 그래서 진 누나네 저녁 어땠어?   Ray: It was great as usual. She's a wonderful cook.   레이: 늘 그렇지만 맛있었지. 진 누나 요리 솜씨는 대단해.   John: What did she make?   존: 뭐 만들어 줬어?   Ray: Chicken. Her chicken is second to none.   레이: 닭요리. 진 누나 닭요리는 최고야.     John: I know. I've had it before.   존: 그 맛 나도 알아. 전에 먹어 봤거든.     Ray: It's so delicious. It's out of this world.   레이: 정말 맛있어. 환상적이야.   John: Tell me about it.   존: 두 말 하면 잔소리지.   Ray: She asked about you.   레이: 네 얘기 묻더라.   John: She did?   존: 그래?   Ray: Yes. She says hello.   레이: 응. 안부 전해달래.   기억할만한 표현   *as usual: 언제나 그렇듯   "I was in Seattle, Washington for a week and, as usual, it was raining every day." (워싱턴 주 시애틀에 1주일 있었는데 늘 그렇듯 매일 비가 왔습니다.)     *(someone or something) is second to none: (누가 혹은 무엇이) 최고다   "Her dancing is second to none." (그녀의 춤 솜씨는 적수가 없습니다.)   *tell me about it: 누가 아니래.   Jim: "It's hot in this room." (짐: 이 방은 덥네요.)   Roger: "Tell me about it." (로저: 누가 아니래.)   California International University www.ciula.edu (213)381-3710오늘의 생활영어 world 환상 룸메이트 레이 this world 누나 닭요리

2022-12-14

[동화] 누나를 만나고 온 날

“누나는 여전히 맑은 눈동자와 엄한 입매를 하고 있습니다 얼굴에 핀 검버섯도 아름답네요 청색이 날 정도로 까맣던 머리는 겨울 눈처럼 백발이 되었습니다”   누나를 만나러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북쪽을 향해 달리는 차창 너머 짙은 푸른 하늘이 하얀 뭉게구름을 몰고 빨리도 지나갑니다. 겨울이 문턱을 넘어오려다가 주춤해 버린, 늦은 가을날 오후였지요. 누나는 3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 뵈러 온 것이었어요. 투병 중이었던 매부를 돌보느라 그간 누나는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매부는 올해 봄에 소천했습니다.     45년 전, 그러니까 내가 13살 때, 미네소타주에 있는 어느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던 누나는 지금껏 미국에 살고 있어요. 국군의 날이나 현충일에 매년 아버지를 만나러 한국을 다녀가곤 했지요. 아버지 묫자리는 현충원에 있습니다. 현충원에 있는 아버지 묘소는 빈 무덤이라고 누나가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누나는 매년 현충원을 방문하려 귀국하곤 합니다. 아버지는 6·25 전쟁 때 전사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유해는 찾지 못했다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 석 자가 단정하게 새겨져 있는 돌비석만이 아버지가 한때 이 세상에 계셨다는 것을 말해 줄 뿐입니다. 아버지의 영은 두 딸과 내가 입양되기 전까지 외아들이었던 형을 바라보고 계셨을 것입니다. 당신이 만난 적이 없는 당신의 막내아들인 나를 쳐다보시면서, ‘잘 왔다’ 하시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엄마도, 형도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요. 나는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전사하셨을 때, 누나는 세 살이었다고 합니다. 스물 몇 살 새파란 나이에 과부가 되어 가장의 임무를 도맡게 된 엄마는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 무척 힘들었대요. 살림이 옹색한 가운데에도 틈을 내어 보육원에서 봉사하시곤 했대요. 봉사하시던 보육원에서 엄마와 나는 만난 것이랍니다. 나는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던 나이였다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15년 정도가 지난 후였다고 해요.     나는 전사하신 아버지의 가정으로 입양되어 아버지의 성씨를 받았어요. 나는 유복자가 아니고, 유복 입양아이예요. 나를 업어 데리고 갔던 엄마… 퀴퀴한 땀내가 배인 엄마의 적삼, 그 가슴에 안겨 잠들곤 했던 나는, 지금도 엄마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엄마의 냄새는 끝없는 평화를 약속하는 것이었어요.     누나는 절에서 민박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올해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누나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절에는 제명을 채우고 간, 얼굴에 주름을 달고 살 수 있었던 이들의 흔적이 있어서, 누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했습니다.     넓고 넓은 현충원 뜰의 침묵이 무겁게 누나를 누르고, 즐비하게 줄지어 서 있는 새하얀 화강암 비석들이 누나의 뼛속까지 시리게 한다고 했습니다. 돌 비석에 새겨져 있는 이름 석 자는 젊음을 하늘에 토해내고, 돌 비석의 가슴은 그들의 신음을 끌어안고 있다 했어요. 젊은 그들, 돌 비석 주인들의 얼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누나를 만나기로 한 대웅전 앞에 누나는 없었어요. 대웅전의 어둠과 정적에 익숙해지고 나니, 부처님상에서 떨어져 있는 한구석에 눈을 감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누나가 보였어요. 누나는 불교 신자들이 하는 참선을 하는 것 같았어요. 누나의 종교로 말하자면 묵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누나, 부처님한테 기도한 거야? 하느님한테 혼나려고?”   “하느님은 그렇게 옹졸하지 않아. 어디서나 당신을 생각하는 것이 기도거든.”   왜소했던 누나는 50여년 전 나를 업어 길러주던 때보다 더 작아 보였어요. 나를 등에 태웠던 좁았던 어깨는 더 좁아졌고요. 어떤 때는 나를 등에 업고 수강하러 가던 누나입니다. 맑은 눈과 진실한 입매를 가졌던 누나. 내가 6척의 청년기를 지나, 흰머리가 성성하게 된 지금, 누나는 여전히 맑은 눈동자와 엄한 입매를 하고 있습니다. 누나의 얼굴에 핀 검버섯도 아름답네요. 청색이 날 정도로 까맣던 머리카락이 새까만 기와지붕에 녹지 않고 덮여 있는 겨울 눈처럼 백발이 되어있네요.   가난한 살림, 엄마가 가장이 된 집에, 나를 데리고 오셔서 입적시키셨던 엄마는 배짱이 컸거나 바보 같은 신념으로 사셨던가 봐요. ‘하느님은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게 한다’라는 것이 엄마의 인생 철학이었다고 합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만나지 못한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당신의 성(姓)을 주셨고 아버지의 이름은 엄마만큼이나 나에게 튼튼한 성채가 되었어요. 두 누나와 형은 자주 편찮으셨던 엄마 대신 나를 돌보아 주었어요.   “누나, 누나는 비 오는 날이면 나를 업고 왜 산에 갔어?”   “그랬지. 산에 가곤 했지.”   “누나, 학교는 빼 먹고 간 것이었어?”   “응. 당연히….”   “누나, 낙제를 어떻게 면했어?”   “겨우, 겨우. 그래서 너를 업고 학교 간 적도 여러 번 있었지.”   “강의시간에 등에 업혀 들어온 나하고, 누나를 보고, 누나 친구들이나 교수님이 뭐라 하지 않았어?”   누나는 이어서 내가 모르던 옛날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엄마가 아파 누워계셔서 나를 돌보실 수 없는 날에 비까지 오면, 누나는 나를 업고 학교 가는 대신, 산에 지렁이를 잡으러 갔다고 말입니다.     “그랬구나. 그런데, 누나, 왜 지렁이를 잡으러 다녔어?”   “비가 적당히 오면, 지렁이들이 땅에서 기어 나와. 엄마한테 고깃국을 끓여드려야 하는데 고기 살 돈이 없었거든. 지렁이에는 단백질이 많다고 해서.”   “누나, 그럼 우리가 먹던 국이 지렁이 국이었어?”   누나를 만나고 온 날 밤 꿈속에서, 지렁이가 소고기로 변하는 국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전월화(류 모니카) / 수필가동화 누나 누나 학교 누나 부처님 누나 친구들

2022-03-31

[오늘의 생활영어] go out like a light; 금방 잠들다

 (Roger is visiting his sister Diana in New York City…)   (라저가 뉴욕에 사는 누나 다이애나를 방문해서…)   Diana: How did you sleep last night?   다이애나: 지난 밤에는 잘 잤니?     Roger: I went out like a light.   라저: 금새 잠들었어.   Diana: Good. You look rested.   다이애나: 잘 했다. 푹 쉰 것 같다.   Roger: I went to sleep the second my head hit the pillow.   라저: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잠들었어.   Diana: Good. So what do you want to do today?   다이애나: 잘 했어. 오늘 뭐 하고 싶니?   Roger: I'd like to go to different stores.   라저: 다른 가게들을 가볼까 해.     Diana: Which store first?   다이애나: 어떤 가게 먼저 갈까?   Roger: A bookstore.   라저: 책방부터.   Diana: There's a great bookstore just a hop skip and a jump from here.   다이애나: 여기서 누우면 닿을 곳에 좋은 책방이 있어.   Roger: Great. And I want to treat you to breakfast first.   라저: 잘 됐네. 그런데 먼저 누나 아침 사주고 싶은데.   "My bank is a hop skip and a jump away." (내가 가는 은행은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어.)   기억할만한 표현   *(one) looks rested: 푹 쉰 것 같다.   “She looks rested. Did she just get back from vacation?” (그녀 말야, 좋아 보이는데. 휴가에서 막 돌아온 거야?)   *(a place is) a hop, skip, and a jump from here (or away):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My bank is a hop, skip, and a jump away.” (내가 가는 은행은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어.)   *treat (one) to (something): (누구를) 대접하다.   “I want to treat you to these concert tickets. I’ll pay for them.” (음악회 표는 내가 해주고 싶어. 내가 살게.)   California International University www.ciula.edu (213)381-3710오늘의 생활영어 light 누나 다이애나 great bookstore jump away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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