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가을 편지
조금씩 훌쩍이다 잠시 후,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모두 나를 슬쩍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쳐 가버렸는데, 하얀 간호사복을 입은 누나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내게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훌쩍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나를 덥석 팔에 안고 약국으로 갔다. 마침 약을 찾아오던 할아버지를 만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 간호사 누나의 얼굴은커녕 모습도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살다가 문득 그 일은 생각난다. 6~7살이면 아직 어린 나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이미 5년가량 낫는다는 기약도 없는 재활치료를 받아 왔고, 나름 지쳐 있었다. 버려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그때 그녀가 준 것은 포근한 위로였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직장도 필요하고 돈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은 따스한 위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과연 60년을 살아오며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따스한 사람이 되어 본 적이 있었나.
며칠 사이에 계절이 확 바뀌었다. 오렌지 색으로 물들었던 마당의 감나무도 며칠 전 비와 간밤의 바람에 절반이나 옷을 벗었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이 무렵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난 세월을 돌아볼 것이다.
나이가 드니 더 자주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면 참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살았다. 그중 많은 이들이 이제는 이 세상에 있지 않거나, 오래전에 연락이 끊어졌다. 카드 한장 보낼 수 없는 상황이다.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이 세상사다.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도움과 위로는 카드빚과는 다르다. 카드빚이야 월말에 정산하면 그만이지만, 내가 받은 도움과 위로의 보답이 꼭 준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 싶다.
받은 것만큼, 여유가 되면 더 많이, 주변의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내가 받은 것을 갚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게 위로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도 아마 누군가에게 받았던 것을 나누어 준 것이리라.
이런 도움과 위로가 굳이 비싸고 커야 할 필요는 없다. 작은 것이 더 간절하고 소중하다. 슬프고 힘들 때 누군가 건네주는 따스한 말 한마디, 손글씨로 쓴 카드나 편지 한장이 전해주는 위로는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손쉬운 것이 누군가에게 쓰는 가을 편지가 아닐까 싶다. 편지지에 사연 몇 자 적어 말린 낙엽 하나 붙여 보내면, 받는 이보다 보내는 이의 마음이 더 푸근해질 것이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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