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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AA 남자축구 사상 첫 여성 감독 대결

이번 주말 열리는 미국 대학스포츠(NCAA) 남자축구 3부 리그 경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성 감독간 전례 없는 대결 구도라는 점에서다.   26일 뉴욕타임스(NYT)와 시카고 트리뷴은 "오는 28일 뉴욕 브롱스의 게일릭파크에서 이정표적인 경기가 열린다"며 1400여 NCAA 남자축구팀 가운데 여성 감독이 총괄지휘 하는 단 두 팀인 시카고대학과 뉴욕대학이 맞붙는다고 전했다.   '남자대학팀의 첫 여성 감독' 기록을 갖고 있는 뉴욕대학 킴 와이언트 감독(58)과 올시즌 시카고대학을 14승 무패, 3부 리그 1위로 이끌고 있는 줄리앤 시치(39) 감독의 대결이다.   "양팀 감독이 모두 여성인 남자축구 경기는 NCAA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NYT는 전했다.   미국 대학 스포츠 팀의 여성 코칭 스태프 숫자를 매년 업데이트하고 있는 미네소타대학 운동학과 니콜 라보이 교수는 이번 경기를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남자 대학 스포츠 팀의 감독을 여성이 맡고 있는 경우는 단 5%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재정 지원이 적은 종목이거나 스키, 수영, 육상 등 남녀 혼성팀이 대부분이다.   반면 남성 감독이 여자 팀을 지휘하는 경우는 흔하다. 특히 1부 리그의 경우 풋볼, 야구, 남자농구, 남자축구 팀 감독이 여성인 경우는 전혀 없고, 여자축구 팀의 경우도 단 26%만 여성 감독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카고대학과 뉴욕대학은 모두 3부 리그에 속해 있다.   1985년부터 1993년까지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에서 골키퍼로 활약한 와이언트는 2015년 처음 유리천장을 깨고 뉴욕대학 남자축구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이후 그는 뉴욕대학 남자축구팀을 5차례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미국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 시치는 "와이언트가 롤모델이 됐다"며 지난 겨울 시카고대학 남자축구팀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됐을 때 와이언트와 통화한 후 지원 결심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결국 두 사람은 경기에서 맞붙어 큰 기대를 모으게 됐다.   시치와 와이언트는 모두 "선수들이나 선수 가족들이 감독의 성별에 대해 반감을 표한 경우는 없었다"며 "선수들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팀에 헌신할 수 있는 지도자를 찾는다"고 말했다.   미네소타대학 여성 스포츠 연구소 '터커 센터'는 "여자대학팀 감독이 여성인 경우는 1971년 90%에 달했으나 현재는 42.7%에 불과하다"며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데 대한 부담, 상대적으로 인기가 낮은 여자 스포츠에 대한 재정 지원 부족, 소셜미디어의 부정적 영향, 직무에 대한 부담 등을 이유로 들었다.   라보이 교수는 "오는 28일 열리는 시카고대학과 뉴욕대학 경기가 기대되는 이유"라면서 와이언트 감독과 시치 감독이 모든 여성과 대학 당국에 '감독직은 선수들의 성별과 상관없이 여성들도 충분히 잘 수행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통계상, 여성이 남성들의 관심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을 보며 성장한 남학생들은 대학 졸업 후 직장 또는 개인관계에서 여성을 더 평등하게 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기자남자축구 사상 남자축구팀 감독 뉴욕대학 남자축구팀 여성 감독

2022-10-27

[J네트워크] 그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올림픽은 한때 아마추어의 잔치였다. 대부분의 종목이 프로선수 출전을 금지했다. 올림픽 상업화의 효시인 1984년 LA올림픽부터 프로선수 출전 제한이 완화됐다. 그런가 하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는 남자축구에 출전 선수 나이 제한(23세 이하)이 생겼다. 이런 이유로 1988년 서울올림픽은 남자축구에서 나이 및 프로선수 출전 제한이 없었던 유일한 대회다. 그렇기에 대회 출전국과 선수의 면면이 월드컵과 맞먹을 정도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축구에는 16개국이 출전했다. 조별 리그에서 한국은 미국·소련·아르헨티나와 함께 C조에 속했다. 한국은 2무 1패, 조 3위로 탈락했다. 금메달은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2-1로 꺾은 소련이 차지했다.     당시 소련팀을 이끈 지도자가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이다. 외국인 최초로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올라 한국이 세계 축구에 눈뜨게 한 그 감독이다. 그는 1943년 키이우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선수 시절에도 우크라이나 명문클럽 FC 디나모 키이우에서 활약했다.   소련 축구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올레흐 블로힌과 이호르 벨라노우(러시아 발음 이고리 벨라노프)다. 두 선수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블로힌은 1952년 키이우, 벨라노우는 1960년 오데사에서 각각 태어났다. 둘 다 선수 시절 디나모 키이우에서 활약했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득점 기계’로 불린 안드리 셰우첸코와 함께 ‘발롱도르’를 수상한 세 명의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이들 외에 발롱도르를 받은 소련(러시아 포함) 선수는 ‘거미손’ 레프 야신뿐이다.   여자체조의 전설 라리사 라티니나는 1956년 멜버른, 60년 로마, 64년 도쿄올림픽에 걸쳐 금 9개, 은 5개, 동 4개 등 모두 18개의 메달을 따냈다. 그는 1934년 헤르손에서 태어났고 키이우에서 자란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세르히(러시아 발음 세르게이) 붑카는 장대높이뛰기에서 인간 최초로 6m를 넘었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소련에 금메달을 안겼다. 붑카는 1963년 루한시크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현재 이들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인으로, 일부는 러시아인으로 살고 있다. 한때 이들은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출신 동료와 한 팀을 이뤄 호흡을 맞췄다.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지난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이들의 후예인 수많은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자신들이 뛰던 경기장을 떠나 총을 들고 전선으로 향했다. 그중 일부는 안타까운 전사 소식까지 전해졌다.     하루빨리 이 미친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보내야 한다. 그곳이 바로 그들 자리다. 장혜수 / 한국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J네트워크 경기장 우크라이나 선수들 우크라이나 출신 서울올림픽 남자축구

2022-03-13

[카운터어택] 그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올림픽은 한때 아마추어의 잔치였다. 대부분의 종목이 프로선수 출전을 금지했다. 올림픽 상업화의 효시인 1984년 LA올림픽부터 프로선수 출전 제한이 완화됐다. 그런가 하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는 남자축구에 출전 선수 나이 제한(23세 이하)이 생겼다. 이런 이유로 1988년 서울올림픽은 남자축구에서 나이 및 프로선수 출전 제한이 없었던 유일한 대회다. 그렇기에 대회 출전국과 선수의 면면이 월드컵과 맞먹을 정도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축구에는 16개국이 출전했다. 조별 리그에서 한국은 미국·소련·아르헨티나와 함께 C조에 속했다. 한국은 2무 1패, 조 3위로 탈락했다. 금메달은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2-1로 꺾은 소련이 차지했다. 당시 소련팀을 이끈 지도자가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이다. 외국인 최초로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올라 한국이 세계 축구에 눈뜨게 한 그 감독이다. 그는 1943년 키이우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선수 시절에도 우크라이나 명문클럽 FC 디나모 키이우에서 활약했다.   소련 축구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올레흐 블로힌과 이호르 벨라노우(러시아 발음 이고리 벨라노프)다. 두 선수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블로힌은 1952년 키이우, 벨라노우는 1960년 오데사에서 각각 태어났다. 둘 다 선수 시절 디나모 키이우에서 활약했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득점 기계’로 불린 안드리 셰우첸코와 함께 ‘발롱도르’를 수상한 세 명의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이들 외에 발롱도르를 받은 소련(러시아 포함) 선수는 ‘거미손’ 레프 야신뿐이다.   여자체조의 전설 라리사 라티니나는 1956년 멜버른, 60년 로마, 64년 도쿄올림픽에 걸쳐 금 9개, 은 5개, 동 4개 등 모두 18개의 메달을 따냈다. 그는 1934년 헤르손에서 태어났고 키이우에서 자란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세르히(러시아 발음 세르게이) 붑카는 장대높이뛰기에서 인간 최초로 6m를 넘었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소련에 금메달을 안겼다. 붑카는 1963년 루한시크에서 태어난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현재 이들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인으로, 일부는 러시아인으로 살고 있다. 한때 이들은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출신 동료와 한 팀을 이뤄 호흡을 맞췄다.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지난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이들의 후예인 수많은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자신들이 뛰던 경기장을 떠나 총을 들고 전선으로 향했다. 그중 일부는 안타까운 전사 소식까지 전해졌다. 하루빨리 이 미친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보내야 한다. 그곳이 바로 그들 자리다. 장혜수 / 한국 콘텐트제작에디터카운터어택 경기장 우크라이나 선수들 우크라이나 출신 서울올림픽 남자축구

202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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