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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단신 브리핑] UIUC 남자농구, 마치매드니스 2라운드 진출 외

#. UIUC 남자농구, 마치매드니스 2라운드 진출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학(UIUC)이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남자농구 디비전 1 챔피언을 가리는 ‘마치 매드니스’(March Madness) 토너먼트 1라운드서 승리하며 32강에 올랐다.     3년 만에 ‘빅 텐’(Big Ten) 컨퍼런스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동부지구 3번 시드에 배치된 일리노이대학은 지난 21일 열린 1라운드 경기서 14번 시드 모어헤드스테이트대학을 85-69로 꺾고 승리했다.   일리노이대학은 23일 오후 7시40분부터 11번 시드 듀케인대학을 상대로 2라운드 경기를 치른다. 듀케인대학은 1라운드에서 6번 시드 BYU를 71대67로 누르고 32강에 합류했다.   일리노이대학이 2라운드에서 듀케인대학에 승리하면 워싱턴스테이트대학(7번)과 아이오와스테이트대학(2번) 승자와 16강 진출권을 놓고 겨루게 된다.       #. 시카고 봄철 눈폭풍    시카고 일원에 22일 천둥 번개를 동반한 봄철 눈폭풍이 몰아쳤다.   이날 눈폭풍은 오전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계속됐는데 지역에 따라 최대 4인치이상의 많은 눈이 내리기도 했다.   지역별로는 시카고 북서부 서버브인 레이크와 맥헨리 카운티의 적설량이 많았는데 거니 3.8인치를 비롯 볼보 4인치, 맥헨리 4인치, 워키건 3인치, 레이크 빌라 4인치, 마렝고 4.5인치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이번 주말 시카고 지역 최고 기온은 화씨 40도 안팎으로 예보됐으며 내주 초엔 최고 60도까지 오르지만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됐다.     꽃잎을 내민 수선화가 22일 내린 봄 눈을 맞고 있다.  Kevin Rho 기자로컬 단신 브리핑 남자농구 라운드 2라운드 진출 2라운드 경기 1라운드 경기

2024-03-22

"우승은 영원히 못할지라도 난 영원한 승자"…덕 콜린스의 농구인생

지난해 덕 콜린스가 TNT 농구 해설직을 그만두고 필라델피아 76ers 지휘봉을 잡는다고 했을 때 기자는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컸다. 그의 '명 해설'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됐기 때문이었다. 콜린스 해설의 백미는 그가 농구 전술을 설명할 때. 농구 관계자들은 이 부분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역 시절 스타였고 NBA 감독으로도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는 해설자로서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콜린스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맞대결을 벌이고 있는 에릭 스폴스트라 마이애미 히트 감독도 콜린스의 농구 지식에 혀를 내두른다. 그는 "콜린스의 해설을 들으며 공부하는 코치들이 많았다"며 "나도 농구에 대해서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됐다"고 말했다. 일단 콜린스는 기억력이 빼어나다. 그는 38년 농구인생에서 자신이 뛰었던 경기 또 지도했던 경기는 전부 다 기억한다고 말했다. 기억력이 좋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그만큼 아픔도 잘 떨쳐내지 못한다. 그는 지금도 매일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사건이 머리 속에 떠올라 괴롭다고 토로했다. 당시 미국 대표팀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던 그는 소련을 상대로 스틸을 뽑아낸 뒤 자유투 2개를 성공시켜 미국의 50-49 리드를 잡아줬다. 금메달을 목전에 두고 있던 상황. 경기도 그대로 끝났고 미국 선수들은 승리의 환호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주심이 억지를 부렸다. 경기가 안 끝났다면서 다시 시간을 돌려 놓았고 소련에 계속 공격기회를 줬다. 결국 세 번째 공격 때 소련이 결승슛을 성공시켰다. 미국 선수들은 격분을 참지 못해 시상식에 불참했다. 콜린스의 농구인생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그는 1973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필라델피아에 지명됐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9승73패를 기록 지금까지도 NBA 역사상 최악의 팀으로 거론되고 있는 팀이다. 하지만 콜린스의 맹활약에 힘입어 필라델피아의 성적은 계속 상승했고 급기야 1977-78시즌에 동부 컨퍼런스 1위(55승27패)에 올랐다. 그러나 동부 컨퍼런스 결승서 워싱턴 불리츠(현 위저즈)에 패했다. 콜린스는 1981년 무릎부상으로 인해 전성기를 맞이해야 할 29세의 나이에 조기은퇴를 하고 말았다. 필라델피아는 2년 뒤에 우승을 차지했다. 감독으로서도 아쉬웠던 것은 마찬가지. 펜과 애리조나 St.에서 보조코치로 활동했던 그는 1986년부터 마이클 조던이라는 수퍼스타가 뛰고 있는 불스의 감독직을 맡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34세였다. 그는 "그 때 내 인생의 전부가 농구였다. 농구 경기가 끝났어도 내 머리 속에서는 경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의 지나친 열정은 선수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게임 플랜을 말해도 선수들은 이를 잔소리로 여기기 시작했다. 에너지 넘치는 조던 조차 "이런 감독 밑에서는 못 뛰겠다. 나도 지친다. (당시 보조코치였던) 필 잭슨이 팀을 이끌면 좋을텐데"라고 투덜댔다. 콜린스는 1989년에 불스를 동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이끌었지만 곧 해고통보를 받았다. 역시 2년 뒤 불스는 프랜차이즈 첫 우승을 거뒀다. 그는 올 시즌 선수시절 뛰었던 필라델피아로 돌아왔다. 첫 16경기서 3승13패로 부진했지만 이후 상승세를 타며 41승41패로 동부 7번 시드를 잡았다. 비록 마이애미와 시리즈서 2연패를 당했지만 지난 시즌에 필라델피아가 27승55패에 머물렀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시리즈 결과여부를 떠나 성공적인 시즌이다. 그는 불스를 맡은 첫 해에도 전년대비 10승 96년 디트로이트에선 18승 그리고 2002년 조던이 마지막으로 컴백했던 워싱턴을 이끌면서 전년대비 18승을 추가시킬 정도로 리빌딩에 타고난 재질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의 지나친 열정 그리고 지나친 스트레스가 문제였다. 그는 "와이프와 아이들이 내게 요구 조건을 내걸었다. 농구를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을 때에만 필라델피아 감독직을 수락하라고 말했다"며 "난 처음으로 농구를 즐기고 있다. 비록 우승은 영원히 못할지라도 계속 도전하는 난 영원한 승자다"고 말했다.

2011-04-18

농구를 바꾼 한 번의 선택, 잔 칼리파리 감독

때는 1996년이었다. 매사추세츠 대학 농구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잔 칼리파리 감독(작은 사진)은 뉴저지 네츠의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필라델피아의 로우어 매리언 고등학교 농구팀에서 활약하고 있었고 당시 그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NBA로 곧바로 가기 위해 드래프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체 8번 픽을 가졌던 네츠는 18살의 어린 코비를 페어레이 디킨스 대학 경기장에서 열리는 워크아웃에 초청했다. 칼리파리 감독은 "당시 코비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의 플레이를 다시 꼭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으로서 그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 결정은 지금의 네츠와 LA 레이커스의 상황을 바꿔놓았다. 칼리파리 감독은 당시 NBA 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한지 몇 주 밖에 지나지 않았고 코비도 그 때는 검증된 선수가 아니었다. 코비의 에이전트였던 안 텔럼은 뉴저지가 코비를 뽑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워크아웃에 코비를 참여시켜서 놀래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레이커스가 워크아웃에 코비를 불러들였다. 네츠에 관심이 있던 텔럼이지만 레이커스라는 훌륭한 프랜차이즈팀을 놓칠 수는 없었다. 레이커스의 워크아웃에서 코비는 미시시피 대학을 '파이널포'에 올려 놓았던 단테 존스를 압도해 버렸다. 제리 웨스트 레이커스 단장은 "게임 오버"라며 경기를 중단시켰다. 하지만 24번의 낮은 픽을 가지고 있던 레이커스가 그를 데려올 방법이 없어 웨스트는 13번 픽인 샬럿이 코비를 뽑고 바로 레이커스의 주전 센터 블라디 디박과 트레이드를 하려 했다. 여전히 코비를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칼리파리 감독에게 텔럼은 "아마 코비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이탈리아에서 활동할 것 같다"고 협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위의 소리에 꿈쩍도 않는 칼리파리 감독이었지만 차선책으로라도 빌라노바의 가드 케리 키틀스를 뽑으라는 사람들의 설득에 넘어가 8번 픽을 가지고 있던 뉴저지는 키틀스를 뽑고 만다. 코비는 샬럿으로 갔고 디박과 곧바로 트레이드 됐다. 결국 칼리파리 감독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올리며 1999년에 해고됐다. 해고당한 뒤 자괴감에 빠졌던 그는 틀어박혀 지내다 아내와 함께 간 레스토랑에서 옆 자리의 남자로부터 '더 이상 뉴저지의 티켓을 사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며 큰 충격을 받아 다시 삶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칼리파리 감독은 "감독으로서 선수들이 더 좋은 실력 발휘를 하도록 키우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네츠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심기일전한 그는 켄터키 와일드캐츠에서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한편 칼리파리 감독이 이끈 켄터키는 지난달 27일 NCAA 대학농구 파이널포에 진출했지만 코네티컷 대학에 55-56으로 분패했다. 김영호 기자

2011-04-08

[이상민 객원기자의 '미국 대학농구 현장'] 코네티컷대의 마지막 포효…그렇게 '광란'은 끝났다

2011년 NCAA 남자농구 내셔널 챔피언 트로피는 코네티컷대학이 차지했다. 버틀러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준우승팀이 됐다. 코네티컷대와 버틀러대의 결승전은 4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렸다. 코네티컷대학이 53-41로 이겼는데 경기 내용은 기대 이하였다. 스코어에서도 알 수 있듯 코네티컷은 철저하게 수비 위주의 경기를 했다. 버틀러대는 코네티컷대 수비에 묶여 2점슛 64개를 던져 12개를 성공시켰다. 2점슛 성공률 18.8%는 역대 미국대학농구 결승전 최저기록이라고 한다. 버틀러대는 오히려 3점슛 성공률(27.3%)이 더 높은 진기록을 남겼다. 게다가 버틀러대는 이날 페인트존에서 성공시킨 골이 단 한 개였다. 버틀러대는 페인트존 득점에서 2-26으로 뒤졌다. 이런 기록이라면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다. 올해 69세인 짐 칼훈 코네티컷대 감독은 역대 대학농구 최고령 우승 감독이 됐다. 노회한 칼훈 감독은 결승전에서 수비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철저한 수비 작전에 35세의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버틀러대)이 말려든 모양새였다. 지나치게 수비 위주로 경기가 흘러가면서 코네티컷대 최고의 스타인 켐바 워커(20.1m85㎝)의 활약도 미미했다. 워커는 이날 16점을 올리면서 체면치레를 하는 데 그쳤다. 하프타임에 CBS 중계방송 해설자들은 "내가 본 최악의 결승전"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농구 전문가들이 보기엔 기대 이하의 경기였을지 몰라도 결승에 오른 학교의 학생들은 경기 내용에 상관없이 축제 분위기였다. 해설자들이 하프타임에 경기를 분석하는 동안 그 뒤에 앉은 학생들은 '여기 있어서 행복해요'라는 피켓을 들고 펄쩍펄쩍 뛰었다. 버틀러대는 비록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쳤지만 TV 중계에 비친 학생들은 2년 연속으로 결승전을 구경해 신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경기를 보면서 연세대를 졸업하기 전 마지막이었던 1994~95 농구대잔치 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우리는 풀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고려대와 만났고 서장훈의 버저비터로 극적인 77-75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 경기 막판 발목을 다쳐 남은 경기에 나가지 못했다. 학생과 팬들이 뒤엉켜 열광의 도가니가 됐던 그때의 분위기를 미국대학농구에서 다시 느꼈다.

201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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