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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읽는 세상] 나비부인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은 음악적으로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편안하게 즐길 만한 것이 못 된다. ‘나비부인’은 일본의 나가사키 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핑커톤이라는 미군 장교와 일본인 게이샤 초초상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오페라다. 동양 여자가 자신을 희생하며 맹목적으로 서양 남자를 사랑하는 이야기는 서양 사람들에게는 판타지일 수 있지만, 우리 같은 동양인에게는 별로 유쾌한 이야기가 못 된다.   미군 장교 핑커톤은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전형적인 서양 남자다. 나가사키 항에 내린 그는 배가 새로운 도시에 닿을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데리고 놀’ 여자를 구한다. 일본인 포주는 그에게 어떤 여자든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단돈 100엔에 살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 음흉한 남자들의 행각에 걸려든 것이 바로 초초상이라는 게이샤다. 핑커톤은 그녀와 장난삼아 결혼하지만 초초상의 사랑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녀는 핑커톤과의 사랑에 목숨을 걸었다.   핑커톤은 잠시 초초상을 데리고 놀다가 다시 배를 타고 나가사키 항을 떠났다. 그 후 핑커톤의 아들을 낳은 초초상은 하염없이 그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기다림이었다. 핑커톤은 본국으로 돌아가 다른 여자와 정식으로 결혼을 한다. 핑커톤이 본부인을 대동하고 자기 앞에 나타났을 때, 초초상은 진실을 알게 된다. 삶의 희망을 잃은 그녀는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단도로 자기 가슴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초초상은 아리아 ‘어떤 갠 날’에서 핑커톤이 “나의 버터플라이!”라고 부르며 자기에게 돌아오는 날을 상상한다. 그렇게 한동안 달콤한 꿈을 꾼 다음 그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외치며 노래를 끝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외침이 처절한 절규처럼 들린다, 그 사랑이 곧 파국으로 끝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나비부인 게이샤 초초상 서양 남자 동양 여자

2024-03-18

[세상만사] '애니깽' 슬픈 이름

애니깽이란 멕시코에서 재배하는 용설란 나무를 말한다. 원래 명칭은 ‘에네구엔(Heneguen)’ 이지만 발음을 잘못한 것이다. 나무의 잎은 길쭉하고 그 껍질을 잘라 삶아서 심줄을 뽑아내 선박용 로프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그리고 뿌리 부분은 데낄라 술 원료로 쓰인다. 이처럼 부가 가치가 높은 작물이라 과거 한국인을 농장 노동자로 고용했다.   1905년 4월 4일 한국인 남자 802명과 여자 209명 그리고 어린이등 총 1033명은 영국 상선 일포드호를 타고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했다. 그리고 1905년 5월 15일 멕시코 유카탄주 살리나크루스항에  도착하여 메리다 등지의 25개 농장으로 흩어졌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농장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목표량을 못 채우면 채찍질을 당하는 등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    새벽에 시작된 일은 밤늦게야 끝났는데 한국인들은 스페인 어 교육을 받지 못해 소통조차 어려웠다. 당시 중국인 허이후씨가 황성신문에 멕시코 한국인 노동자들의 실태를 알려 국내 여론이 들끓었지만 망해가던 대한제국 정부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1909년 5월로 4년간의 계약이 끝났지만 일제 강점으로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길도 없었다.   그들 중 약 300여 명은 쿠바로 떠났다. 유카탄의 한인들과 쿠바로 떠난 한인들은 적은 돈이지만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선생 앞으로 독립자금을 보낸 기록도 있다. 대한국민회 유카탄 지부와 쿠바 지부를 열고 한인의 정체성을 교육하고 민성국어학원을 열어서 한글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유카탄과 쿠바에 정착한 한인들 중 재계나 문화계, 정치계에 흔적을 남긴 한인은 거의 없다. 그들인 한국에서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빈한한 삶을 살았던 그들은 고국을 그리워하며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꿈에서도 그리워하던 고국은 너무 멀고 일제의 강점 상황에 있었다. 그만큼 불운한 세상을 살다 가신 분들이었다.     지금 그 지역과 주요 대도시에는 5세, 6세 후손들이 살고 있다. 한국 정부의 고위 인사가 방문하면 한인 후손인 어린이들이 한복을 입고 꽃다발을 전달하지만 행사 때뿐 평소에는 모일 일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멕시코로 떠난 한국인 이민자, 그리고 그곳에서 견디지 못하고 쿠바로 탈출한 한국인들은 꿈속에서만 고국을 그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신 분들이다. ‘애니깽’은 한국인 노동자의 슬픈 이름이라고 밖에 달리 부를 이름이 없다. 그분들의 고혼을 위로하며 명복을 빌고 빈다. 김호길 / 시인세상만사 애니깽 이름 한국인 노동자들 멕시코 한국인 한국인 남자

2024-02-06

[글마당] 남자 사람 친구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만나며 좋아하던 선배가 있었다. 그도 내가 싫지 않은지 개인적으로 연락하곤 했다. 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어느 날,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그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떤 사인 가요?”   “친구 사이지.”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전에 데이트하다가 헤어진 여자가 다시 잘해보자고 연락해 온 적이 있었어. 나는 사귀다가 끝난 여자에게는 다시 연락하지 않아. 하지만 친구와는 헤어짐이 없는 거야.”   “혹시 우리가 친구로 지내다가 헤어지더라도 꼴사납게 끝내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와 어두워지는 길을 걸으며 ‘이 남자는 나를 좋아하지 않고 그냥 친구로만 생각하는구나!’ 왠지 모를 곤혹스러움에 구두코만 쳐다보며 조용히 걸었다. 뭔가 머릿속이 마무리되지 않은 채 버스정류장에서 손을 흔들고 그와 기약 없이 헤어졌다.     그렇게 헤어진 그가 30여 년 만에 뉴욕을 방문해서 나에게 전화했다.     “나 기억해” 귀에 익은 목소리다.   “아아~ 기억나요.”     “어떻게 내 목소리를 금방 알았어?”     “낮으면서도 달콤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라서. 하하. 반가워요. 어디예요?” 내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우리 만나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   “전화로 더 이야기할 수는 없나요?” 나는 그와 길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럴 일이 있어서. 만나서 이야기해 줄게.”   ‘한때 좋아했던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니! 그도 나를 잊지 못하고 살다가 연락했을까?’ 여름 안개 저편 먼 곳에서 아른거리던 그리운 사람이 갑자기 곁에 다가와 속삭이는 듯 기분이 들떴다.   카페에 들어서는 그가 싱거운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 물기 빠지기 시작하는 사과처럼 조금은 쪼그라든 모습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도 색이 바래고 비틀어지기 시작하는 사과 꼭지 같다. 그의 뒤로 여자가 주춤거리며 다소곳이 따랐다.     “내 와이프야.” 그가 와이프와 함께 오리라고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참한 인상의 여자가 다소곳이 인사했다. ‘이런 현모양처를 찾으시느라 나에게 ‘친구’를 강조했구나.     나는 그동안 뉴욕을 방문했던 그와 내가 알던 친구들 소식을 신이 나서 들려줬다. 그런데 그의 부인이 내가 한 이야기를 통역하듯이 간간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게 아닌가!  이상해서 물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전화상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어.”   나는 그의 얼굴 가까이 몸을 들이밀며 높은 톤으로 또박또박 잘 들으라고 지껄여 댔다. 그는 고개만 끄덕일 뿐 말이 없다. 나는 저절로 맥이 풀리며 조용해졌다.     만나기 전 희망이 잠시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슬금슬금 빠져나가며 시계추가 멈춘 듯 그와의 시간이 뚝 멈췄다. 그는 나의 수다가 끊긴 분위기에 눌렸던지 시계를 고갯짓으로 가리키더니 싱거운 표정으로 웃으며 일어났다. ‘남녀 간의 친구 사이란 애인을 만나는 동안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가 애인과 헤어지면 들춰 보는 별 볼 일 없는 사이? 오랜 세월 구석에 처박혀둔 내가 잘 있나 확인하고 싶어 만나자고 했나?’ 만남과 헤어짐처럼 분홍빛으로 타오르던 노을이 어둠 속으로 차갑게 사라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씁쓸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남자 친구 친구들 소식 남자 사람 세월 구석

2023-12-15

[열린광장] 깔끔하지 않은 남자

깔끔하지 않은 남자는 바로 나다. 또 일을 저질렀다. 주택 단지에 있는 수영장에 다녀와 무심코 현관문을 잠갔다. 아내가 밖에서 걷고 있는 것을 깜빡 잊었다. 내가 샤워하는 동안 아내는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몇 번이나 두드렸다고 한다.       아내는 뿔이 났다. “못 들었어, 미안해.” 사과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아내가 화를 낼 때는 가만히 듣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다음번에는 잠그지 말아야지 마음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웬걸, 며칠 후 또 잠갔다. 아내는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 남편이라며 화가 단단히 났다. 자기를 무시한다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이다. 어쩌면 좋을까. 문을 잠그지 않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해도 안 된다. 의지(意志)에 의지(依支)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할 수 없이 전가의 보도를 빼 들었다. 현관문에 ‘LOCK?’이라고 비망(備忘) 표어를 붙였다. 아내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밖에 나갈 때는 열쇠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꾸준히 노력하면 나의 심정을 알아주겠지.   지난주 약국에서 전화가 왔다. 크레딧카드를 가져가라고. 약값을 지불하고 카드를 놓고 온 것이다. 카드에 줄을 맬 수도 없고. 지갑 위에 흰 글씨로 카드의 첫 글자 ‘C’를 썼다.   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면 한, 두 가지를 빠뜨렸다. 배추를 사 오면서 마늘이나 생강을 사 오지 않았다. 이제는 수첩에 적어 다닌다. 수첩의 비망록이 점점 늘어난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애쓰다가 다음 날 생각이 났다. 가을에 피는 꽃 이름을 잊어버리고 당황했다. 다음 날 코스모스가 떠올랐다. 일시적으로 잊으면 건망증이고 영원히 잊으면 치매란다.   치매는 암보다 무섭다. 지난달 아내가 치매를 앓아 입원 중인 친구를 방문했다. 그의 아내는 가까이 지내던 우리도 알아보지 못했다. 치매가 심하면 남편에게 “당신 누구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나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건강하게 늙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먹고, 잘 배설하고, 잘 자고, 잘 움직여야 한다. 밤중에 깨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잠이 오지 않아 밤을 새우는 시니어가 의외로 많다. 물 한 모금 마신 다음 스트레칭과 이완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면 잠이 저절로 온다.   생사의 결단으로 움직여야 한다. 시니어들에 권장하는 최상의 운동은 수영장에서 걷는 것이다. 물속에서 태권도나 타이 치를 하는 것도 좋다.  운동을 위한 투자는 가장 값진 투자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남자 지난달 아내 동안 아내 친구 이름

2023-12-03

[글마당] 소하의 죽음에 대한 남자들의 불라불라

소하의 죽음에 대한 친정 식구들은 시부모 구박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시집 식구들은 미국에 초청한 친정 식구들이 자리 잡는데 도와달라는 성화를 견디지 못하고. 여자들 말로는 ‘남편의 외도로 속 썩이다’가. 또 다른 엇갈린 소문은 소하가 남편 몰래 누군가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동분서주하다가 열 받아서 쓰러졌다고 남자들은 쑥덕거렸다.   교포입네 하고 남자들이 한국에 나가서 예쁜 색시를 데려오곤 했던 1970대 초, 미국으로 이민 간 오빠 친구가 한국에 나와서 창숙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서둘러 결혼하고 미국으로 데려왔다. 기술 고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하고 미국에 온 창숙 남편은 정비소에서 일했다. 엔진오일 묻은 작업복을 입고 기름때 낀 손으로 자기 몸을 더듬는 남편이 귀찮고 싫었다. 창숙은 속아서 한 결혼이라며 주말이면 LA 갈비 씹듯이 불평불만을 질근질근 씹었다.   창숙은 6개월 동안 빈둥거리다가 돈을 벌어 집도 사고 꿈꾸던 멋진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소하의 바느질 공장을 찾았다. “일 배워보고 싶어 왔습니다.” 뽀얀 피부, 커다란 눈, 부푼 가슴을 자랑하듯 내민 창숙의 상냥한 목소리에 직공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고 바느질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화려한 창숙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소하는 마치 동공이 닫혀 보이지 않았던 물체를 확인하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넋 나간 듯 창숙을 쳐다봤다. 창숙은 그 순간 왜 사람들이 ‘쉬엄쉬엄 일해도 뭐라지 않고 소하가 제 한 몸으로 다 때우는 여자’라는 동네 소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창숙이 소하 밑에서 일하면서 시집 식구에게 구박받는 소하를 보고 있자니 부아가 나서 못 참고 “왜 그렇게 죽어 살아요. 일만 하지 말고 바람도 쐬고 멋도 부려요. 누구를 위해 돈을 버는데요.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인 줄 알아요. 시집 식구와 맞서서 자신의 위치를 다져야 해요.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더니. 운전면허증도 따요. 도와줄게요.”   얼마 후 창숙은 재봉질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그만두었다. 그리고 카지노 딜러가 된 후 남편과 이혼했다. 소하는 그동안 틈틈이 익힌 운전 솜씨로 마음이 심란할 때면 창숙을 만나러 갔다. 쇼핑도 외식도 하며 점점 자신만을 위한 삶을 터득했다. 창숙은 카지노 딜러가 성격에 맞는지 인기가 좋았다.     “언니 나 골수암이래. 수술해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어. 급전 좀 해줄 수 있어요? 부탁이야.”   시댁, 친정과 남편에게 돈으로 시달리는 소하는 돈거래만은 누구와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나마 자기에게 살갑게 구는 창숙이 암 수술을 해야 한다니! 4년 전, 쌈짓돈을 들고 가서 꿔줬다. 창숙은 의사의 오진으로 암 수술할 필요가 없었다고도 하고 급전이 필요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딜러가 수입이 좋다는데. 나에게 빌려 간 돈 이자는 그만두고 원금이라도 조금씩 갚았으면…” 소하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창숙은 빌려 간 돈을 기억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딴청을 떨었다. 소하는 할 말을 잃고 서둘러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창숙만은 믿고 마음을 줬는데. ‘너마저도 나를 버리다니!’ 차를 몰고 오며 소하는 잘못 살아온 자신의 삶을 한탄했다. 상대의 허점을 이용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차창 밖으로 지는 해를 바라봤다. 하늘에 피를 토하는 듯한 붉은 해를 마주하자, 뇌에 통증이 왔다. 토하고 싶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갔다.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쓰러졌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죽음 남자 창숙은 카지노 창숙은 재봉질 창숙은 의사

2023-10-20

[이 아침에] 남자의 보험

TV 채널을 돌리다가 눈에 확 띄는 장면에서 손이 멈췄다. 이마에 주름 세 줄이 깊이 팬 남자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 KBS에서 방영한 ‘남자여, 늙은 남자여’라는 다큐다.     요즘 들어 부쩍 칼럼이나 소설, 영화에 시니어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예전에는 조용히 세월만 흘리고 살던 시니어의 활동이 적극적으로 변하고 목소리가 커져 이제 주류가 되었다는 뜻일까. 시대를 지탱하는 주류 세대가 노년층이 되었다는 뜻일까. 나 역시 청년기는 이미 떠나보낸 지 오래고 장년기까지 흘러간 처지이고 보니 ‘늙음’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손수건을 적시는 남자의 눈물을 지나칠 수 없어 화면을 고정했다.      변두리 쪽방촌에서 홀로 살아가는 남자는 자신이 노년에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20년간 공장장으로 일했지만 기계가 디지털로 바뀌면서 본인의 기술이 필요 없어져 결국 밀려났다. 다른 곳에 취직을 하기에는 너무 늙었기에 그는 가족에게 얹혀사는 구박 덩어리로 전락하였다. 돈만 벌어다 주면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인 줄 알고 가족과의 소통에 무심했던 결과는 어려울 때 서로 보듬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젊어서 누리던 가부장의 권리는 더 이상 용납이 되지 않고 이혼으로 이어졌다. 그는 막강한 권위로 아내와 아이들의 대장 노릇만 하며 살아왔는데 큰소리치며 대우를 받았는데 막상 은퇴하고 나니 사회적 지위는 물론 가장의 위치마저 박탈되었다며 한숨이다. “돈 못 버는 사람은 아빠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는 눈물을 닦는다.     남자의 자탄(自歎)에 대해 여자도 할 말이 많다. 남편들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으로 가장의 역할을 다했다는 그 생각이 문제라고. 독박 육아와 살림 남편의 무관심과 잦은 술자리 등에 지친 아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는 가족을 위해 밥 해주는 여자, 애 키우는 여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거죠.” 몇 명의 젊은 여자들이 찻잔을 앞에 두고 한마디씩 한다.     아내의 입장으로서 가장 이혼하고 싶을 때는 어떤 이유로 마음의 상처가 깊어질 때라고 한다. 남편의 경제적 무능 때문에 이혼을 결정하는 아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젊어서 와이프에게 잘 해두면 늙어서 호강한다니까. 한 여자가 농담처럼 말하고는 깔깔 웃는다.     결론은 그렇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연민의 정을 쌓는 ‘관계’를 만들라는 것이다. 그것은 은퇴나 경제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젊을 때부터 열정과 에너지를 밖으로만 쏟을 것이 아니라 부인에게도 나누어주는 것은 사랑의 보험을 들어두는 것과 같다. 그러면 사업에 실패했을 때나 퇴직 후, 노년에 그 보험이 효력을 발휘한다. “내가 불리할 것 같으니까 전략과 전술을 바꾼 거지요. 히히히” 젊었을 때 남편은 하늘, 아내는 땅을 복창시키며 가족에게 군림했다는 남자가 잔뜩 쌓인 빨래를 개키며 하는 말이다. 이제 50대인 남자는 벌써 시대의 조류를 읽고 보험금을 열심히 붓는 중이다. 성민희 / 수필가이 아침에 남자 보험 권위로 아내 하늘 아내 살림 남편

2023-10-05

[잠망경] 여자, 여인, 여성

한 주일 내내 궂었던 날씨를 뒤로하고 며칠을 청명한 하늘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2023년 9월 중순 뉴욕 가을 초입이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어린 시절 동요 가사가 떠오른다.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부분에서 피식 웃는다. 어린 나이에 여자가 치마를 갈아입는 장면을 연상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맞다. 방금 ‘여자’라 했다. 남자의 반대말로 쓰이는 여자. 군대 시절에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이라는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해변의 여인아~♪” 부분에서는 ‘여인’이라는 말이 아주 쿨하게 느껴졌다.   여인은 여자의 아어(雅語). 우아한 단어다. ‘해변의 여자야’, 하면 기분을 잡쳐버린다. 여자의 반대말은 남자지만, ‘여인’의 반대말로 ‘남인’이라고 하지는 않는 게 이상하다. 조선 시대의 사색당파 중 그 남인(南人)?   한국 소식에 50대 여성이, 그다음 날에는 70대 남성이, 어찌어찌 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연거푸 여성, 남성 하는 말투가 좀 이상하게 들린다. 영어로 여성, 남성은 ‘female sex, male sex’라는 쪼다 같은 직역이 가능하다. 여자, 남자로 쉽게 표현하면 될 것을 요즘엔 왜 ‘sex, 性’에 대한 뉘앙스를 풍기려 하는가. 억지스러운 우스갯말로, 이런 식이라면, 동네 목욕탕의 남탕, 여탕을 ‘남성탕’, ‘여성탕’이라 할 참인가.   여성은 집합명사다. 여자라는 개인들의 집합체를 통틀어서 여성이라 부르는 것이다. ‘여성운동’이라는 말은 있어도 ‘여자운동’이라는 말은 없다. ‘여성상위시대’라는 표현을 ‘여자상위시대’라 하면 어딘지 잡스럽게 들린다. 여성과 여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인류(人類)라는 집합명사와 사람이라는 단수명사를 혼동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당신은 ‘옆집 사람’을 ‘옆집 인류’라 부르겠는가.   한국인들은 왜 여자를 여성이라 부르고 싶어 하는가. 내 나라, 내 집, ‘my wife’라는 말 대신 우리 나라, 우리 집, 우리 와이프라 지칭하듯 단수(單數)보다는 복수(複數)의 장벽 뒤에 숨으려는 수줍은 마음에서인가. 일개 여자보다 여성이라는 거대한 무리를 송두리째 소유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남성심리의 발로인가.   성(性)은 섹스를 연상시킨다. ‘여성’은 더 심한 연상이다. ‘sex’의 어원은 14세기 말경 라틴어 ‘section, 과(課)’하고 말뿌리가 같고, 처음에 ‘자르다, 분류하다’는 뜻이었다가 16세기 초에 동물의 ‘암컷, 수컷의 특징’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dissect, 절개하다, 해부하다’, ‘sect, 종파(宗派)’ 같은 단어와 어원이 같다.   ‘sex’는 1906년에 성교(性交)라는 뜻으로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다. 영어도 우리말도 다른 성품, 이성(異性)과의 만남이 섹스다. 얼굴을 붉히거나 할 이유가 없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가 그렇게 냉담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얼마 전부터 야수파 또는 인상파로 알려진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그림 중에서 한 여자를 화폭에 담은 것들만 주제로 삼아 시를 쓰고 있다. 예를 들면 시 제목을 “마티스 그림, ‘책 읽는 여자’에게”라 붙이고 한결같이 어찌어찌 하는 ‘여자에게’라 하며 지금껏 수십 편을 썼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모두 여자라는 말 대신 여성이라고 하는 세상에 ‘책 읽는 여성에게’ 하면 어떨까 하다가 기겁을 한다. 내 시를 여성이라는 집합 명사에게 증정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여자 여성 여자 남자 여성 남성 일개 여자

2023-09-19

[글마당] 합리적인 남자 (Reasonable man)

“굿모닝” 식당에서 옆에 앉아 아침을 먹던 노부부가 우리 부부에게 인사했다. 우리도 환한 표정으로 반겼다.   “나는 매일 아내에게 죄의식(guilt feeling)을 가지고 살아요. 그래야 와이프 마음이 편해서 별다른 다툼없이 지낼 수 있거든요.”   뜬금없이 꺼내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했지만, 금세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었다.   “죄의식을 갖고 부인에게 잘한다니 현명하시네요.”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살면서 사람들에게 사리에 맞게(reasonable) 상대하라고 키웠어요.”   그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나도 질세라   “어머 내가 미국으로 떠날 때, 우리 아버지도 사람들에게 잘해주지는 못할망정 사리에 맞게 대하라고 말했는데. 그래서 제 머릿속에 제일 먼저 새겨진 영어가 reasonable이에요.”     나는 유튜브에서 오디오북을 들으며 작업한다. 하도 많은 글을 듣다보니 작가도 내용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끔은 이해하기 쉽고 마음을 울려 기억에 남는 글이 종종 있다. 그중 요즈음 들은 김진아 작가의 ‘강남 파출부’가 머릿속을 맴돈다.     남편 없이 외아들을 키워 결혼시킨 맛집 주방에서 일하는 윤금이씨 이야기다.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인 윤금이씨와 상의도 하지 않고 보상금을 타서 10살 손자를 데리고 사라졌다. 윤금이씨는 손자가 다녔던 초등학교 친구 엄마로부터 손자가 서울 강남 세화 초등학교로 전학 갔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녀는 손자를 만나기 위해서 세화 초등학교 근처의 가사 도우미가 된다. 그녀의 손자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아이를 키우는 사업하는 부부 집이다. 남편의 바람으로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 윤금이씨는 엄마 아빠의 싸움으로 눈물 콧물 범벅이면서도 슬픔을 억누르려고 애쓰는 아이를 위로하다 가까워진다. 운동회날 아이의 바쁜 엄마를 대신해 윤금이씨가 학교를 찾아간다. 행정실 직원에게 자기 손자가 몇 반에 재학 중인가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손자의 이름은 학교 기록부에 없었다. 손자가 그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을 알고 난 윤금이씨는 이 집에 더 머무를 이유가 없어졌다. 하지만 혼자인 아이를 닫힌 방문 뒤에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아픈 사람 둘이 서로 보듬고 치유해 가는 슬프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다.     이런 따뜻한 글을 읽으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동안 살면서 누구를 위로하거나 도울 줄 모르는 나 자신에게 길티필링이 생긴다. 한편으론 아버지가 강조한 리즈너블 한 인간으로 적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합리 남자 세화 초등학교 초등학교 친구 자기 손자

2023-07-14

[아름다운 우리말] 남자는 없다

세상의 반은 남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반은 여자입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음양의 조화라고도 합니다. 세상을 숫자로 표현하자면 1은 나이고, 2는 부부 또는 남녀이고, 3은 부모와 나입니다. 1은 주체적이고, 2는 상대적이고 조화로우며, 3은 안정적입니다. 2는 상대적이면서도 조화라는 말이 어울리는 관계입니다. 서로 다르기에 서로를 배려하며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살펴보면 이런 조화는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말에는 죄가 없습니다. 말은 차별하고 구별 지으려는 세상의 모습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사회언어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 유표와무표가 있습니다. 유표는 표시를 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특별히 표시하지 않아도 됩니다. ‘키 큰 외과 의사’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남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는, 외과 의사는, 키가 큰 외과 의사는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의사는 그냥 남자일 거라는 믿음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고, 그것이 언어에 남아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여자 의사가 거의 없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여자 의사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사라고 하면 남자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의사’라는 말이 그 증거입니다. ‘남의사’라는 말은 왠지 어색합니다. 이는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교수는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남교수는 좀 어색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도 남자라는 말은 잘 안 붙입니다. 여중, 여고, 여대라는 말은 자연스럽지만 남중, 남고는 어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같은 이름의 여고와 남고가 있는 경우에는 남고라고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남고에 가보면 학교 이름에는 남자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경희여고, 경희남고라는 말은 하지만, 용산남고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경희남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모두 경희고를 졸업했다고 하고, 경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모두 경희여고를 졸업했다고 말합니다. 이화여대를 이화대학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화여대가 익숙합니다.    남자에 해당하는 말이 아예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남성을 중심으로 생활하기에 생긴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사모님의 반대말입니다. 사회 활동을 주로 남자가 하였던 시절에는 사모님만이 존재하였습니다. 선생님의 부인은 사모님이지만 선생님의 남편은 부를 말이 없습니다. 사장님의 부인은 사모님이지만 사장님의 남편은 뭐라고 해야 할지 당황스럽습니다. 사부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왠지 무술영화의 느낌이 나서 우스울 때가 많습니다. 바깥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표현이 고급스럽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실제로 대중화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영부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남편을 나타내는 말은 없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의 남편이 있은 적이 없어서 이런 고민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영어에서는 퍼스트 젠틀맨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퍼스트 레이디의 상대어로 만든 것입니다. ‘영남편’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니 우습네요. 갑자기 호남편이라는 단어도 생각이 나서 헛웃습니다. 우리나라 광역 단체장의 경우는 여성이 된 적이 없어서 부인만 익숙하지 남편은 어색합니다. 놀라운 일이지만 현재도 광역 단체장은 여성이 전무합니다. 기초단체장의 경우도 여성 비울이 매우 적다고 합니다.   우리말 단어에 남자에 해당하는 표현이 적은 것은 역설적으로 여성의 역할이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단어에도 남자에 해당하는 표현이 늘어나기 바랍니다. 균형이 맞추어지기 바라고, 어느 한쪽이 어색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게 유표, 무표라는 언어학 용어가 보여주는 세상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남자 경희남자 고등학교 외과 의사 여자 의사

2023-07-02

[중앙칼럼] 레드넥, 남부 시골 촌놈의 인기 현상

구수하면서도 남성미 가득한 컨트리 음악계가 한때 부드러워진 적이 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거칠고 투박한 음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2010년대가 그랬다. 다양성의 강조로 보수적이던 컨트리 음악계에 변화가 요구됐다. 카우보이모자, 굵직한 수염, 마초적 매력을 뽐내던 남자 컨트리 가수들이 점점 매끄럽게 변해갔다. 급기야 컨트리 게이 가수 오빌 펙의 등장은 이런 트렌드에 정점을 찍었다.   뉴욕타임스의 음악 평론가 존 카라마니카는 이들을 ‘컨트리 젠틀맨’으로 지칭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남자 컨트리 가수들이 맑은 목소리로 헌신적인 사랑을 노래한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거친 매력이 설 자리를 잃어갈 즈음이었다. 판을 뒤집는 인물이 등장했다. 날 것의 컨트리 음악을 다시 무대로 가져온 건 신인 가수 모건 월렌이었다. 야들야들해진 음악에 쉽게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던 팬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월렌은 보수적인 시골 백인을 일컫는 ‘레드넥(redneck)’이란 용어까지 과감히 꺼내 들었다. ‘레드낵 러브송’에서 월렌은 자신을 트랙터를 모는 시골 청년으로 묘사했다. 남자다움을 물씬 풍기며 칼칼하게 사랑을 외친 그는 남부 특유의 감성을 자극했다.     컨트리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월렌은 스타라면 한 번씩 거치는 버라이어티쇼 SNL(Saturday Night Live)에 출연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때 팬데믹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방역 지침을 어기고 파티를 즐기던 월렌의 사진 한장이 문제가 됐다. 논란이 커지자 SNL은 월렌의 출연을 취소해버렸다.   논란은 더 커졌다. 월렌은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려고 몰려든 민주당 지지자들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게재했다. 그러면서 ‘위선이란 비현실적(The hypocrisy is unreal)’이라고 적었다. 월렌은 소신 있게 “사회적 거리 두기 없이 거리에서 축하 파티를 해도 된다면 지금 당장 콘서트도 예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썼다. 안티들은 비난의 돌을 던졌다. 반면 답답함을 느껴온 이들에게는 통쾌함을 안겼다.   SNL은 결국 그를 다시 출연시키기로 했다. 월렌은 쇼에 나가 “남부 시골 촌놈에게 이런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며 그간의 논란을 능청스럽게 코미디로 받아쳤다.     세상은 그런 월렌을 가만두지 않았다. 이번에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헤어지는 상황에서 장난을 치며 ‘N-word’를 사용한 영상이 공개됐다.     다시 한번 난리가 났다. 영상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맞물렸다. 심지어 ‘캔슬 컬처(cancel culture)’가 월렌을 집어삼켰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음원들이 삭제됐고, 그래미 시상식 출연도 금지됐다. 사실상 음악계의 퇴출 결정이었다.   반발은 그 지점에서 폭발했다. 특정 사상을 강요하고 입맛에 안 맞으면 모든 걸 취소해버리는 풍조에 질린 이들이 반기를 제대로 들었다. 이들은 월렌의 음반을 구입하는 행위로 PC 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대항했다. 이 때문에 월렌의 두 번째 정규 음반은 2021년 가장 많이 판매된 앨범 1위를 기록하게 된다.     잡지 디 애틀랜틱의 평론가 스펜서 코나버는 ‘월렌은 인종 비하 발언으로 추방된 후 더 유명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라는 제목의 칼럼까지 썼다. 코나버는 “사람들은 이 시대를 향해 다른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월렌의 인기 요소가 명확하진 않지만 사실상 캔슬 컬처에 대한 국민투표”라고 분석했다.   월렌은 올해 초 세 번째 정규 음반을 발표하면서 역사를 썼다. 이 음반에 수록된 전곡(36곡)이 빌보드 핫100 차트에 모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급기야 컨트리 가수로는 최초로 1위 곡(라스트 나잇)을 포함, 무려 다섯 곡이 탑 10 차트에 올라갔다.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모건 월렌의 인기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을 방증한다. 현시대를 향한 대중의 질책이다.   장열ㆍ사회부 부장중앙칼럼 남부 시골 컨트리 음악계 남부 시골 남자 컨트리

2023-06-04

[열린광장] 끈과 띠

또 잃어버렸다. 보청기를 오른쪽 한쪽만 끼고 다니다가 어디서 빠졌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워런티가 있어 새것을 받았다.     보청기를 또 잃어버리지 않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하다 전가의 보도(?)를 빼 들었다. 끈을 사용하는 것이다. 오른쪽과 왼쪽 보청기를 연결하고 가운데는 집게가 달린 끈이다. 목에 걸고 다니기엔 좀 거추장스럽고 보기 흉하지만 할 수 없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고 바지가 왜 그렇게 흘러내리는지 모르겠다. 바지 치켜올리기에 바쁘다. 허리띠를 죄어도 흘러내린다. 요즘은 어깨띠를 사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할 수 없다. 건축 현장에서 사용하는 보통 띠보다 폭이 배가 넓은 공업용 띠를 구입해 매고 다닌다. 띠 위에 띠를 착용했다. 허리가 편안하고 바지도 덜 흘러내린다.     몇 개의 선글라스를 잃어버리고 난 위에는 끈을 메서 목에 걸고 다닌다. 선글라스를 바지 주머니에 넣으면 어느새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요즘 윗저고리 주머니는 좁아서 안경과 선글라스를 같이 넣을 수 없다. 지갑도 끈으로 허리띠에 연결했다.     유대(紐帶)란 끈과 띠를 말한다. 끈과 띠를 사용하여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을 방지한다. 시니어의 거추장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끈이나 띠로 연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아내다. 가끔 아내를 잃어버려 당황한다.   지난달 병원에 갔다 나오는 길이었다. 차에 타기 전 화장실에 들렀다 가기 위해 화장실을 찾았더니 복도 건너편에 남자 화장실 표지가 보인다.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니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지만 거기에도 없었다. 주차장까지 가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다시 2층으로 올라가니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도 화장실에 갔었다고 했다.   내가 또 실수를 저질렀다. 나 화장실 가는 것만 생각했지 아내에게 화장실 가고 싶지 않으냐고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나, 나, 나만 생각하는 나.     몇 년 전 그랜드캐년을 세 번째 구경 갔었다. 나는 관광을 가면 수박 겉핥기로 구경하지만 아내는 확대경 눈을 가지고 구경한다. 나도 모르게 아내를 앞질러 가서 거리가 멀어지고 만다.     아내가 한 번은 나에게 항의했다. 혼자 걸어가는 데, 어떤 할머니를 만났는데 왜 남편하고 오지 않고 혼자 왔느냐고 묻더란다. 자기를 생과부로 만들었다며 핀잔을 줬다.     유럽으로 단체관광을 갔을 때였다. 가이드가 우리 부부를 유심히 관찰했다며 한마디 했다. 두 분이 같이 먹고 자고 하는 데, 낮에 관광할 때는 따로따로라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아저씨 이리 오세요”하더니 아내의 손을 잡게 했다. 그러더니 “앞으로는 이렇게 손을 꼭 잡고 같이 다니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끈으로 메기 전에는 힘들 것 같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끈과 남자 화장실 바지 주머니 바지 치켜올리기

2023-05-15

장엄한 산이 품은 가슴 아픈 삶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히말라야 산맥의 가장 높은 메루산 주변에는 여덟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바다가 있다. 여덟 개의 산봉우리를 돌아본 사람과 메루산 정상에 올라 본 사람 중, 누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을까?     2017년 이탈리아 최고의 문학상 스트레가상과 프랑스 메디치상(외국어문학 부문)을 연이어 수상한 파올로 코네티의 소설 '여덟 개의 산'이 던지는 화두다.  작가는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단지 산을 통해 인생의 운명적 우여곡절을 말할 뿐이다.   연인 관계의 두 연출가 샤를로트와 반더미르히 펠릭스 판흐루닝언(뷰티풀 보이)이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감독한 이 영화는 제 75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원작의 심오함과 성장통의 디테일들이 스크린에 감동적으로 옮겨졌다.     영화 '여덟 개의 산'은 산을 배경으로 한 두 친구의 오랜 우정의 연대기라는 점에서 자연스레 앙 리 감독의 2005년작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아카데미상 감독상, 각본상 수상)'을 연상시킨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산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고 떨어져 있는 긴 세월에도 서로를 잊지 못했던 두 남자의 운명적 인연과 대조적인 캐릭터 설정 등 유사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동성의 로맨스가 개입되는 '브로크백 마운틴'과는 생을 관조하는 시각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산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도시 소년 피에트로는 이탈리아 알프스 몬테로사 산기슭에 자리한 작은 마을 그라나에서 한여름을 보낸다. 피에트로는 그곳에서 11살 동갑내기 브루노를 만나 한여름을 함께 뛰논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을 떨어져 지낸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오랫동안 산을 찾지 않던 피에트로(루카 마리넬리)는 31세의 성인이 되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에게 무너진 오두막이 있는 산지의 땅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0년 만에 다시 산을 찾은 그는 브루노(알레산드로 보르기)와 재회하고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을 이어간다. 피에트로는 아버지가 자신을 대신해 브루노와 교우하고 있었고 이곳에 집을 짓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산봉우리마다 남긴 아버지의 메모들을 발견한다.   두 사람은 무너진 집을 올리며 20년 만에 다시 한여름을 함께 보낸다. 각자의 아버지와 마찰하며 잃어버렸던 정체성과 혼돈이 두 사람을 더욱 가깝게 한다. 여름이 지나가고 피에트로는 가장 가기 힘든 방황의 길, 더욱이 머물기는 더 어려울 여정이 될 여덟 개의 산과 바다가 있는 네팔로 향한다. 네팔에서 아버지가 갈망했던 몬테로사 산을 껴안고 사는 친구 브루노를 생각한다.     반면 산지에서 태어난 브루노는 몬테로사 산에 묻혀 살기를 원한다. 방랑자 피에트로와 은둔자 브루노, 그러나 둘은 모두 본질적으로 방황하는 영혼들이다.     브루노는 피에트로를 통해 알게된 라라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으면서 점차 산의 야성을 잃어간다. 재정적인 어려움에 라라와의 불화가 잦아진다. 아내와 아이를 도시로 떠나 보낸 후 더 산에 집착하고 사람들을 멀리한다.     피에트로는 친구를 도우려는 애절한 마음으로 몬테로사로 돌아온다. 그러나 브루노의 자존심은 친구의 도움을 수용할 줄 모른다. 폭설이 내린 산 속에서 브루노는 실종된다.   '여덟 개의 산'은 산업화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 피에트로와, 자연에 침투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자아가 훼손되어 가는 산의 남자 브루노의 이야기다. 인간은 어느 곳에서나 고독하다. 그러나 인간은 공존함으로 잃어버린 가치를 회복하고 고독과 불안을 치유한다. 작가 코네티는 이러한 인간 본연의 문제들의 답을 자연에서 찾고자 한다.     그가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그곳에 남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산과 들, 풀과 시냇물, 그리고 돌들과 나무로 눈길을 돌리는 이유이다. 숭고하기까지 한 장엄한 산의 본성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색들과 온화한 햇살은 인간의 마음속 빈 공간을 채워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도시와 문명을 떠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꿈틀거린다.   영화는 코네티의 삶을 관찰하는 섬세하고도 진지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두 연출자의 카메라는 코네티가 소설에서 언급했던 삶의 디테일에 주목한다.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빛의 반짝거림, 산지의 맑은 호수, 어린애 같은 즐거움. 누군가를 보살피는 목가의 수고스런 손길들, 눈 덮인 산 그리고 두 주인공의 가슴 저리게 아픈 삶.   남아 있는 것이라곤 산 뿐이다. 두 남자는 결국 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막다른 곳에 이른다. 산에서 만난 이들에게 산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산은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두 친구의 운명을 보듬어 안는다.     흘러 가는 이 세월 속에 당신의 동반자는 누구인가. 간혹 문득 그리워지는 그 누군가가 당신의 마음속에 아직도 작은 메아리로 남아 있는가. 김정 영화평론가가슴 mountains 친구 브루노 남자 브루노 방랑자 피에트로

2023-05-05

[열린광장] 불안전한 남자

나무도 예쁘게 키우려면 가끔 이발을 해주어야 한다. 팬데믹 때문에 뒤뜰의 나무를 3년 동안 내버려 두었다. 석류와 피들, 그리고 대추나무는 누가 먼저 지붕까지 올라가나 경주를 하고 있다. 집을 덮치기 전에 이 나무들을 다듬어 주어야 한다.     나무 트리밍 회사를 고용하거나 내가 해야 한다. 몇 년 전 옆집에서 야자수 나무 한 그루 자르는 데 1000달러나 들었다는 기억이 난다. 빈둥빈둥 노는 나에게 할 일이 생겼다. 작전 계획을 세웠다.   우선 장비가 필요하다. 톱부터 장만해야 한다. 정원 용품 판매업소에서 톱이 달린 16자 막대기와 안전모를 사 왔다. 사다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은퇴 전 직장에서 사용하던 보호 안경도 준비했다.     수요일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금요일의 쓰레기 수거 일을 겨냥했다. 사다리를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자르니 식은 죽 먹기로 쉬웠다. 톱이 잘 들었다.     석류와 피들 나무를 자르고 대추나무를 자를 차례다. 대추나무가 가장 굳고 단단했다. 톱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이 나무는 자기 보호를 위해 송곳 같은 가시로 무장하고 있다. 가시가 많은 윗가지를 무시하고 줄기를 잘랐다.   그런데 나무가 쓰러지면서 안전모와 보호 안경을 쓰고 있는 나를 덮쳤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할퀴었다. 피가 흘렀다. 얼른 집에 들어가 거울을 보니 눈 아래로 한일자로 3인치 가량이나 찢겼다. 응급치료하고 다시 나가보았다. 땅바닥에 안경알이 떨어져 있다. 만약 보호 안경이 아니었으면 나뭇가지에 왼쪽 눈을 다쳤을 수도 있었다.     큰 실수를 저질렀다. 나무는 우선 작은 가지를 친 다음 밑동을 자르는 것이 기본 안전 수칙이다. 어쩌다가 이 수칙을 어겼는가. 너무 서둘렀기 때문이다. 아내의 말이 옳다. 나는 불안전한 사내이다. 평생 직업 안전 관리 분야에서 일한 사람이 이 같은 불안전한 행동을 하다니. 대장간 집에 식칼이 귀한 꼴이다.   그나마 안전모, 보호 안경 등의 보호 장비를 착용한 덕에 큰 상처나 실명의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안전관리를 위한 기본 교리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사람의 실수로 불안전한 행위를 저질렀을 때는 보호 장비가 이를 방어한다.     혹시 직접 정원 나무 전정 작업을 고집하는 분이 있다면 반드시 안전모와 보호 안경, 또는 안면 보호대 (face shield)를 사용을 권장한다. 내 얼굴의 한일자가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이 상처는 안전 보호 장비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교훈이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불안전 남자 안전모 보호 보호 안경 보호 장비

2023-05-02

[문장으로 읽는 책] 적어도 두 번

미스터X는 나에게 성별을 결정하기 어려우면 자기처럼 뚱보가 되라고 했다. 살이 찌면 남들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보는 게 아니라 그냥 뚱뚱한 살만 본다고. 하지만 난 살이 찌면 축구할 때 빨리 달릴 수 없어 그건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미스터X는 로또에 도전하라고 했다. 여자든 남자든 중요한 건 돈이 많아야 하고 돈이 많으면 사람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따지지 않고 부러워한다고 했다. 나는 미스터X의 조언대로 로또에 뛰어들었고 내 정체성 숫자를 찍었다. … 미래엔 인간보다 로봇이 많아질 텐데 그때가 되면 난 비정상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 될 수 있다. 차라리 인간 따윈 그만두고 로봇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로봇은 남자, 여자 구별 없이 그냥 로봇일 뿐이니까.   김멜라 『적어도 두 번』   ‘퀴어’는 최근 한국 문학의 주요 키워드다.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정상·비정상 이분법에 반기를 들고,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구호 아래 ‘일상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체성 정치’의 일환이다. 그중에서도 김멜라는 단연 압도적이다. 매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글쓰기로, 최근 읽은 퀴어 문학 중 최고다. 인용문은 소설집 『적어도 두 번』 중 ‘호르몬을 춰줘요’에 나온다. 소설가 구병모는 “한번 닿으면 뇌리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을 얼음의 문장과 마취제도 없이 몸속을 휘젓는 그로테스크의 칼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추천사를 썼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남자 여자 비정상 이분법 정체성 정치

2023-03-29

[시로 읽는 삶] 요리하는 남자

무밥 한 그릇이/ 소반 위에 놓여 있다/ 소반이 적막하여서/ 무밥도 적막하여서/ 송송 채를 썬/ 흰 무의 무른 살에 스민/ 뜨거움도 적막하여서/ (…)/ 가난하게 적막하여서/ 들척지근하고 삼삼한/ 이 한 저녁을/ 나는 달그락달그락/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안도현 시인의 ‘무밥’ 부분     요즘은 요리 잘하는 남자가 대세다.     젊은 남자들은 웬만한 것은 직접 만들어 먹는다. 요리하는 일에 거부감도 적고 부엌일을 하는 게 어색하지도 않아 보인다. 연애의 수순에도 남자가 여자를 위해 정갈하게 식탁을 꾸미고 스파게티를 만들어 함께 즐기는 게 포함된 모양이다. 스파게티가 한국음식보다는 낭만적인 걸까 아니면 만들기가 좀 쉬워서일까, 하여간 스파게티를 만드는 남자의 매력이 요즘 부쩍 부각되고 있다.     얼마 전 꽤 잘나가는 전문직 종사자인 후배를 만났다. 아직 미혼이어서 결혼 상대로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고 물어보았는데 거침없이 요리 잘하는 남자면 좋겠다고 해서 좀 놀라웠다.   젊은 세대와는 다르게 연배가 있는 남자들은 변하는 세상을 마뜩잖아 한다. 은퇴하고 남자들이 제일 못 견뎌 하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대접이 소홀해졌다는 서운함이라고 한다. 아내가 아침밥을 소홀하게 챙기고, 외출해선 식사 때가 되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불만을 한다.   퇴직하면 그동안의 노고로 지친 몸과 마음을 편히 쉬면서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와 위로를 받으려니 했는데 현실은 좀 냉랭한 것이 슬프다고도 한다. 당연하겠다. 가족을 위해 평생 일만 해온 아빠들, 박수를 받아 마땅하고 아내와 자녀들의 존경이 필요하다.     그렇긴 한데 매 끼니를 책임져온 아내들의 입장도 이해해 줘야 한다. 식구들이 ‘오늘 저녁 뭐 먹지?’라는 소리만 나오면 혈압이 오른다는 젊은 주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세 아이를 키우면서 때마다 뭔가를 먹여야 하는 게 큰 부담이었다. 먹을거리가 흔한 세상이긴 하지만 뭔가를 준비해 식탁에 내놓는다는 건 만만한 일은 아니다.     해본 적 없는 사람의 음식 만들기는 쉽게 엄두가 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간단하고 쉬운 아침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커피를 끓이고 토스트를 구워내는 일은 숙련의 문제가 아니고 성의의 문제다. 은퇴하고 시간이 많아진 남편이 오랫동안 밥을 지어내던 아내를 위해 아침 식사 정도 준비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전보다 시간이 자유로워진 내 남편은 음식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를 한다. 요리책을 사기도 하고 음식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아빠표 음식 하나 정도는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다고 노력 중인데 아직 성과는 미미하다. 달라진 것은 아침에 커피를 내리는 일, 토스트를 굽는 일은 이제 손에 익은 듯하다. 딸에게 샐러드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예상 밖으로 즐겁고 뿌듯하더라는 것이다. 음식을 만들어 보는 일은 그동안 해오던 밖의 일과는 달라서 도취되는 기분이 괜찮더라고 한다.   관성이 깨지는 곳이 새로운 모색의 출발점이다. 남자의 부엌일도 그런 측면에서 권장해볼 만하다. 더군다나 은퇴 후의 남자라면 부엌일이 가장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이 아니고 더 존중되는 반사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챙겨주는 아침 한 끼는 감동일 것이다. 아내의 행복지수를 높여주고 가정의 체감온도 역시 상승할 것이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요리 남자 아빠표 음식 음식 유튜브 음식 만들기

2023-03-28

[이 아침에] 말이 통해서 살고 있소?

이 남자 너무 웃긴다. 청개구리 놀음이 재미있어서인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보슬비가 솔솔 뿌리는 날씨에 내가 입고 가라고 한 버버리코트는 그대로 던져두고 오늘도 남편은 얇은 양복만 입고 나갔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중요한 자리에 갈 때는 넥타이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이게 좋아? 이게 좋아? 묻는다. 내가 오른쪽 것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하면 거울 앞에서 목에 번갈아 대어보고는 왼쪽 것을 매고 나온다. 때로는 운동 간다고 나서다가 묻는다. 반바지 입을까? 긴바지 입을까? 날씨가 더우니 반바지 입으라고 하면 바지 몇 개를 들고 갸웃거리다가 긴바지를 입고 나선다.     여름이 왔나 싶게 햇살이 뜨거운 어느 날, 여자 네 그룹이 와글거리며 골프를 쳤다. 라운딩이 끝나자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를 몰고 식당으로 가는 중이었다. 빨간 신호등에 걸려 서 있는데 앞차의 조수석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회원이 벌게진 얼굴로 다가왔다. 차가 갑자기 꼼짝을 안 한단다. 잠시만 비상등 등을 켜고 뒤에 서 있어 달라는 부탁이다. 트래픽이 심한 퇴근길에 도로 한복판에서 정지해 버렸으니 위험하기 그지없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앞차를 엄호(?)했다. 차 주인은 이것도 만져보고 저것도 눌러보고 몸부림을 치지만 모든 프로그램이 꺼져버린 차는 트렁크 문조차도 열리지 않았다.     허둥대는 우리 앞에 파란 티셔츠에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백인 남자가 다가왔다. 차 주인에게 밖으로 나오라는 손짓을 하며 위험하니 저쪽 인도에 가 있으라고 한다. 익숙한 솜씨로 범퍼를 열고 이것저것 만지던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 모습을 본 또 다른 백인 남자가 길가에 차를 세웠다.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주거니 받거니 의논을 하더니 한 사람은 뒤에서 밀고 한 사람은 운전석에 앉아서 핸들을 잡았다. 일단 차를 안전한 곳으로 옮길 생각인 듯했다. 그런데 웬걸 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파란 티셔츠 남자가 와서 나를 보고 그냥 가라고 했다. 경찰과 토잉카를 불렀으니 잘 해결이 될 거라고. 내가 차를 움직이자 그는 고장 난 차에 등을 대고 서서 마주 오는 차에게 차선을 바꾸라며 교통순경인 양 양팔을 번갈아 휘저었다. 두 남자의 등 쪽 티셔츠가 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몸에 착 달라붙었다.     내가 식당에 도착한 지 한 참 뒤에야 온 차 주인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미국에서 50년 가까이 살았지만 백인 남자하고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오늘 처음으로 해 봤다.” 갑자기 식당 안이 와아 하는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마음속에서 백인 사위를 본 친구가 살짝 부러워지려고 하는데 저쪽 귀퉁이에서 누가 한마디 한다. 암만 좋아도 말이 통해야 하는 거 아니야? 모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또 와글와글 웃는다. 그 말도 맞긴 하다. 자상하면 뭐해. 함께 살아가려면 말이 통해야지. 그래도 한국 남자가 편하다는 분위기로 바뀌려는 찰나, 커다란 목소리가 한쪽 구석에서 삐쭉 올라온다. “그래, 한국 남자하고는 말이 통해서 살아요?” 성민희 / 수필가이 아침에 티셔츠 남자 한국 남자 백인 남자

2023-03-15

[독자 마당] 한류의 인기 확인

유명 TV 방송인 ABC의 저녁 시간 프로그램 가운데 ‘행운의 수레바퀴(wheel of fortune)’라는 30분짜리 오락 프로그램이 있다. 일종의 낱말 맞추기 게임인데 하도 인기가 높아 수십 년 장수 프로그램이다.     어느 날 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놀랐다. K라는 글자가 나오고 그 다음에 ‘-’ 부호가 나오자 출연자 3명 중 한 사람이 ‘K-pop band’라며 금방 맞추는 것이었다. K-pop이 그만큼 유명해진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미국 출신의 소녀 트로트 가수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말로 노래를 부르는데 한국 사람보다 더 잘 부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는 K-팝이 좋아 한국에 왔다가 K-트로트에 빠져버린 것이다.   최근 본 미국 주간지에는 한국영화 한 편이 소개되어 있다. 제목이 ‘마이 퍼펙트 룸메이트(My Perfect Roommate)’인데 한국에서는 어떤 제목으로 개봉했는지 잘 모르겠다.     영화의 여주인공은 혼자 사는 70세 할머니이고 남자 주인공은 젊은 대학생이다. 여자 주인공 이름은 금분이고 남자 주인공 이름은 지웅이다.     지웅이는 시골서 올라온 학생으로 집세 내기도 힘든 형편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노인과 동거하며 집세 절약하세요(Saving Rent Project With Elderly Living Alone)’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주간지는 ‘남과 같이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특히 젊은 남자 대학생과 할머니가 함께 산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라며 독특한 소재의 영화라고 소개했다. 처음에는 서로 충돌도 많았으나 결국에는 서로 마음을 열고 따뜻한 관계가 되는 과정을 다룬 영화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영화를 찾아서 꼭 한번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효원 / LA독자 마당 한류 인기 인기 확인 남자 주인공 남자 대학생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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