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 소녀 피살에 공분, 법을 바꾸다
[삼진법 촉발한 클라스양 사건]
93년 집에서 친구들과 놀던중
괴한 침입해 폴리양만 끌고가
경찰, 친구들 의심해 수사 혼선
한달 만에 폴리 옷 발견 돌파구
지문 대조로 39세 용의자 체포
범인 범죄 기록에 대중 분노
정신병원 탈출·납치·강도
수차례 복역했지만 석방 반복
범죄 강력 처벌 목소리 높아
3회 범죄시 최소 25년형 개정
원문은 LA타임스 10월30일자 ‘A 12-year-old girl’s murder shook the country, inspiring far-reaching laws‘ 제목의 기사입니다.
동갑내기 친구들과 밤샘 파티를 하던 폴리의 방에 괴한이 침입했다. 이 남성은 세 소녀에게 칼을 들이대며 조용히 하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고 위협했다.
남성은 소녀들의 손발을 방에 있던 닌텐도 게임 상자의 전선으로 결박했다. 그리고 폴리의 친구들의 머리에 베개 커버를 씌우고 1000까지 숫자를 세라고 지시했다. 당시 폴리의 어머니는 집안에 있었지만, 다른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당시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은 사건 발생 직후 ‘낯선 사람에 의한 납치’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일부 수사관들은 그 판단에 의문을 품었다. 어린 소녀가 본인의 집 침실에서 낯선 사람에게 납치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고, 특히 목격자가 있는 상태에서 납치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들의 경험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폴리 클라스의 실종 사건은 곧 전국적인 뉴스가 됐고, 수사관들에게는 압박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납치 당시 방에 있던 사건 목격자인 폴리의 친구들로부터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집중적으로 심문했다.
“혹시 장난 아니니?”, “폴리에게 남자 친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 “폴리가 남자 친구와 가출한 건 아니니?”
경찰은 증언의 사소한 차이에도 집착했다. 범인이 노란 머리띠를 했다고 폴리의 친구 중 한 명이 말한 것과 달리 다른 친구는 이를 기억하지 못한 것을 의심했다. 또 한 소녀는 문이 쾅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지만, 다른 친구는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한명은 거짓말 테스트를 통과했지만 다른 한명은 불확실했다.
사건 초기부터 페탈루마 경찰국과 긴밀히 협력해온 에디 프레이어 FBI 요원은 “수천 건의 제보가 쏟아졌지만 신뢰할 정보는 없었다”면서 “소녀들을 상대로 질문을 바꿔가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 했다. 심문 의도는 좋았지만 적절치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심한 압박에 견디지 못한 소녀들은 경찰과 대화를 중단하는 상황에 처하게됐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자원봉사자 수천 명이 인근 숲과 들판을 뒤지며 폴리의 흔적을 찾으려 노력했다. 심령술사들 마저 사건 현장에 와서 돕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프레이어 요원은 “사건이 점점 더 주목을 받으면서 너도나도 유명세에 편승하려했다”면서 “사람들은 사건 현장인 주택을 찾아와 침실을 둘러보며 심령적 현상까지 탐구하려 했다”고 말했다.
결정적인 돌파구는 11월 말, 소노마카운티에 사는 한 여성이 산책 중 발견한 아동용 사이즈의 레깅스(tights) 덕분이었다. 이 여성은 폴리가 실종되던 밤, 길가 도랑에 빠진 틴토 차량에 피투성이의 낯선 남자가 타고 있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당시 경찰 기록에 따르면, 이 남성은 그날 밤 소노마카운티 보안관 두 명에 의해 체포됐지만 차량을 도랑에서 빼낸 뒤에는 풀려났다.
당시 납치사건에 대한 긴급 경보가 발령되지 않았던 탓에 보안관들은 납치 사건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그를 놓아준 것이었다.
이 남성의 이름은 리처드 앨런 데이비스(당시 39세)로 밝혀졌다. 그는 판금공장 노동자로 납치 혐의로 기소됐다가 사건 발생 3개월 전 가석방된 상태였다.
경찰은 그의 외모가 소녀들이 증언한 괴한의 몽타주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FBI는 사건 현장에서 당시로서는 신기술이었던 교광등을 사용해 지문을 찾아내는 ‘ALS(alternate light source)’ 기법으로 폴리의 침대에서 손바닥 지문을 확보한 바 있다. 이 지문을 데이비스의 지문과 대조한 결과 일치했다.
데이비스는 체포된 후에도 범행을 인정하지 않다가 결국 그의 친구가 면회를 오면서 수사 상황을 전해주자 자백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건 당일 마리화나를 피우고 맥주를 마신 상태였다면서 폴리를 목 졸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사건 장소로 경찰을 안내하며 시신이 유기된 위치를 털어놨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경찰이 그날 밤 자신을 체포했던 당시까지만 해도 폴리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을 포함한 누구도 이를 믿지 않았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데이비스의 범죄 기록이 공개되자 대중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었다.
데이비스는 수십 년 동안 다양한 범죄를 저질렀다. 정신 병원에서 두 차례 탈출한 전력이 있었다. 또한, 납치와 강도 등의 혐의로 수년간 복역했지만 다시 석방됐다는 사실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사건은 1992년 발생한 18세 대학생 킴벌리 레이놀즈 피살사건과 더불어 캘리포니아주의 ‘삼진법(three-strikes law)’ 제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법안은 세 번째 범죄를 저지를 경우 무조건 최소 25년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했으며, 이는 당시 범죄 억제에 대한 강력한 대중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폴리의 아버지 마크 클라스는 이 법에 찬성하면서도 우려했다. 비폭력 범죄자에게 상대적으로 더 가혹한 처벌이 내려질 수 있는 부작용 때문이다.
1994년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삼진법을 골자로 하는 프로포지션 184를 압도적 지지로 통과시켰다. 당시 피트 윌슨 주지사가 법에 서명하면서 가주 전역에서 시행됐다. 2년 뒤 가주대법원은 판사들에게 특정 경우에 ‘스트라이크’ 판결을 제외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했다. 폴리의 아버지 마크는 이 결정이 충분한 안전장치라고 생각했다.
2012년 통과된 논란의 프로포지션 36은 삼진법 적용 대상은 모두 심각한 강력범죄만 해당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지 개스콘 LA카운티 검사장은 휘하의 모든 검사들에게 삼진법에 따른 형량 가중을 구형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 이에 대한 소송이 캘리포니아 대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마크는 딸 폴리의 죽음 이후 클라스키즈 재단을 설립해 아동 보호를 위한 다양한 법안을 추진하고 실종 아동을 찾는 수색 및 구조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메간법과 같은 성범죄자 공개법을 지지했고, 딸을 살해한 범인에게 사형 선고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이 사형 집행 중단을 선언하면서 클라스는 다시 한번 분노를 느꼈다. 그는 뉴섬 주지사가 자신과 대화를 나눈 후 바로 사형 중단을 발표한 것에 대해 “완전히 이용당했다”고 말했다.
이후 클라스는 뉴섬 주지사의 소환 운동에 참여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사형집행이 중단되면서 폴리를 살해한 데이비스는 상대적으로 더 편한 구금 시설로 이송됐다.
마크는 딸이 무참히 살해됐음에도 범인인 데이비스는 여전히 숨 쉬고 있다는 점에 대해 회한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동안 운영해온 클라스키즈 재단 역시 올해말로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다. 재단을 이어갈 후계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활동이 폴리의 희생을 기리며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하면서도, 더 이상 후계자가 없음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삶의 한 장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려 한다. 폴리 클라스 사건은 전국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법적·사회적 변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캘리포니아 주와 전국적으로 아동과 가정 보호를 위한 다양한 법률들이 강화되었고, 피해자를 위한 목소리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
“딸이 남긴 유산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랍니다. 내가 떠나더라도 사람들이 폴리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이를 통해 아동 보호의 중요성을 깨닫고, 더욱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크리스토퍼 고퍼드 기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