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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우산과 양산

조현용 경희대학교 교수

조현용 경희대학교 교수

저 앞에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과 그 뒤를 따라 양산을 쓰고 가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면 두 사람의 성별은 구별이 될까요? 아마도 우리는 앞에 가는 사람의 성별은 알 수 없지만, 뒤에 가는 사람은 여성일 것이라고 판단할 겁니다. 치마를 입은 사람, 스커트를 입은 사람은 어떤가요? 갓을 쓴 사람, 바지를 입은 사람, 하이힐을 신은 사람 등등 복장은 사람의 성별을 구별합니다.  
 
복장은 성별뿐 아니라 사람의 직업이나 지위, 성향도 구별합니다. 청바지가 자유를 상징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선글라스가 상징하는 게 있고, 완장이 상징하는 게 있습니다. 노란 리본이나 빨간 열매를 가슴에 달고 있는 것도 모두 상징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몸에 무엇을 두르고, 입고, 쓰면서 나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입을 수 없고, 원하는 대로 입기도 어렵습니다. 모든 게 상징이고, 때로는 그 상징이 나를 나타내는 질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의 성별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산을 남녀 모두 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양산을 쓰고 있는 사람은 구별하기가 쉽죠. 이는 마치 갓을 쓴 사람은 남자일 거라 판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양산을 쓰면 우리는 일단 여성일 것이라 판단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추측은 대부분 맞습니다. 실제로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양산을 쓰고 있는 사람은 여성이 대부분입니다. 양산이 중요한 패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우산도 원래는 여성이 주로 썼다는 점입니다. 문화에 대한 예전의 기록을 보면 남성이 우산을 쓰는 것은 여성스러운 행동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영향 때문에 군인이 우산을 쓰는 게 금기처럼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산도 예전에는 여성적 상징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뀝니다. 어느 순간부터 검은 우산을 든 영국신사가 등장하고 더 이상 우산은 여성의 상징이 아니게 됩니다.
 


성별을 상징하는 물건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 문화에 따라 변화합니다. 로마의 장군이 치마를 입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충격적입니다. 스커트를 입고 행진하는 스코틀랜드 병사들의 모습은 여전히 어색합니다. 성별을 상징하는 물건은 고정적인 상징이 아니라는 점은 우리에게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유연해야 합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생각이 늘 맞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가 왜, 여자가 왜?’라는 질문은 시대착오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양산으로 돌아가면, 사실 이제는 양산이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양산을 쓰고 다니는 남성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올해 무더위 속에서 양산 쓴 많은 남자를 보았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햇볕이 강하면 양산을 쓰면 그만인데 우리는 지나치게 고정관념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산이 그러했듯이 양산도 남자의 손에 자연스레 잡힐 날이 오리라 봅니다.
 
이번 여름 우리는 사상 최고의 더위를 지나고 있습니다. 한여름의 열기가 어마어마합니다. 햇볕이 검은 머리를 태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합니다. 양산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는 머뭇거립니다. 올해 양산의 유혹을 강하게 느꼈지만, 고정관념의 벽은 넘지 못했습니다. 아직 여름은 남았지만 작은 결심을 해 봅니다. 내년에는 꼭 양산을 쓰겠다는 결심. 올해 참 더웠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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