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공룡을 만들다가 든 생각
펜데믹 동안 집에 있는 무료한 시간에 뜨개질을 했다. 목도리, 가방, 수세미 등 큰 기술이 필요치 않은 소품들이었다. 아들아이에게 목도리와 수세미를 나눠줬더니 내가 뜨개질에 큰 취미가 있는 줄 알고 아들에게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쥬라식 파크(Jurassic Park) 공룡 뜨기 세트가 왔다. 난감했다. 단순한 시간 보내기용 취미에 의미 부여할 일이 아닌데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갖은 공룡 인형이라니 말이다. 며칠째 뜨기 안내 책자만 들여다보고 머리 아파하고 있는데 아들이 전화했다. 잘 되고 있느냐고. 뭐라도 하나 만들어 보여줘야 될 입장이 되었다. 티라노사우루스, 블라치노사우루스, 딜로포사우루스 공룡 이름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그 인형들을 만들라니. 곰곰 생각하다가 무서운 쥬라기 공원 공룡보단 아기공룡 둘리 같은 귀여운 공룡을 만들기로 했다. 유튜브 한국 채널을 선생님 삼아. 가분수의 공룡을 만들어 머리통과 몸에 젓가락으로 솜을 밀어 넣었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공룡. 통통한 공룡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그걸 보고 있자니 오래전 남편의 유학생 시절, 유학생 부인들이 둥근 상에 둘러앉아 인형 만들던 추억이 소환되었다. 산타 인형 뱃속으로 솜을 넣었던 기억, 토끼털로 수염과 옷 가장자리 장식 붙이던 기억, 산타 자루에 넣는 손톱만 한 선물을 포장하고 가는 끈으로 묶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이 났다. 일을 주던 인형작가가 디테일에 뛰어난 한국 여성들 솜씨에 감탄하던 생각도 났다. 한국의 예전 달동네에서 하던 가내수공업을 멀리 미국까지 와서 하던 억척 부인들. 대학 선후배 이거나 고교 선후배이기도 했던 그녀들 덕에 남편들이 맘 편히 공부할 수 있었다. 지금도 기념품 가게에서 팔리는 컬렉션용 산타 인형들을 보면 비싼 가격이 그럴만하다고 생각된다. 그 어려웠던 공정을 알기에. 이런 인형 만들기 경력직인 내가 공룡에 꼬리와 팔다리를 붙이고 등과 머리에 뿔도 붙이니 그럭저럭 귀여운 공룡이 탄생하였다. 아들네에 아기가 생긴다면 첫 장난감으로 줘야겠다. 공룡 연구로 흰머리가 더 센 느낌이 들어서 공룡은 한 마리로 마감하기로 했다. 올해가 청룡의 해라며 이왕이면 청룡도 하나 만들어보지? 남편이 옆에서 말하길래 손사래를 쳤다. 청룡은 공룡보다 더 길고 구불거리며 산발한 뿔에 긴 수염, 불도 입에서 뿜어져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여의주를 물고 화룡점정도 찍으려면 조수가 있어도 못 만들 일이다. 공룡이건 청룡이건 용은 사양하련다. 그리고 아들아 이런 말 하긴 쑥스러운데 앞으로 저런 선물은 싫어, 차라리 현금으로 주면 어떨까? 아니면 이 나이 되니 먹는 선물도 좋아. 누가 대신 말해 줬으면 좋겠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공룡 생각 공룡이건 청룡이건 아기공룡 둘리 딜로포사우루스 공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