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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보다 힘이 있고   움직이는 것이   정지된 것보다 강하다       부드러운 싹이 동토를 뚫고   가느다란 뿌리가   바위를 무너트린다       강한 바람은   옷을 여미게 하지만   부드러운 햇살은   겉옷을 벗게 한다       움켜쥔 꽃봉오리를 피운 것은   외압의 힘이 아니라   내면의 자율이다       부드러운 깃털을 가진 새는   날갯짓의 수고보다   바람에 기대어 날기에   두려움이란 힘을 빼고   나를 맡기면   더 높이, 더 멀리 날 수 있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경계를 긋거나   담을 세우지 말라   이것들은 돌아서 당신을 가두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을 것이다   마침내 당신의   언어를 빼앗기게 된다      어떤 강한 말보다   조용한 문필의 힘이 강하다   그리고 명사보다 동사가 강하다   그리하여 명명되지 않은 시간에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는   바람에 기대어 긴 날개를 펴고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갔다       *가장 높이 가장 멀리 날 수 있는 새       미시간 호수를 산책하다 여러 무리의 새들을 보았다. 하얀 깃털이 불어오는 바람에 한껏 부풀어 있다. 바다 갈매기도 보이고 작은 물새도 간혹 눈에 띄었다. 모래 위 세 갈래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덩치가 꽤 큰 갈매기 한 마리를 보았다. 호수 가까이 날다가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새를 보면서 두 발로 디딘 땅을 떠나 결코 날 수 없는 내가 초라해 보였다. 수면 위 높은 하늘로 날아간 새는 한동안 날갯짓을 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편안히 하늘을 날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인가? 이 물음은 나에게 던진 물음이기도 하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향해 걷고 있냐고.    독서에 빠져 있던 시절이 있었다. 방과 후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깜깜한 밤하늘에 뜬 별들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 읽은 책 중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빠져 몇 번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 속에 나왔던 신의 이름, ‘아프락사스’를 기억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새는 힘겹게 싸운다. 마침내 나를 감싸고 있는 알, 세상을 벗어나 신에게로 날아가는 한 마리 새의 날갯짓을 상상해 보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수고와 노력도 이와 같지 않은가.     바보 갈매기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바보 갈매기의 이름은 알바트로스이다. 조류 중에서 가장 큰 덩치를 가진 새는 타조이지만 타조는 날 수 없는 새이기에 세상에서 날 수 있는 짐승 중에 가장 큰 것은 단연 알바트로스이다. 날개를 펼치면 그 길이가 무려 3미터가 넘는다. 길고 폭이 좁은 날개를 편 채 바다 표면에 생기는 풍속 차를 이용해 날아오르는 알바트로스는 날갯짓을 하지 않고서도 어느 새보다 더 멀리 날고 더 높이 오른다. 커다란 날개로 미끄러질 듯 날아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단 한 개의 알을 낳아 암수 교대로 알을 품는다. 새끼는 성장이 느리지만 수명은 30년 이상이나 산다. 한 마리의 짝과 평생 어울려 다니는 독특한 생태가 특이하다. 아마도 함께 기대어 하늘을 나는 데에는 한 마리의 짝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알바트로스가 지상에 내려앉으면 큰 날개가 오히려 장애가 되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일단 하늘에 오르면 폭풍우 속에서도 가공할 만한 용기와 담력으로 고도의 추진력과 힘을 얻어 속도와 높낮이를 자율 하는 능력도 준비되어 있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볼 때 시련과 어려움의 연속이었고 삶은 그 속에서 견디며 단련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에게 찾아온 어떤 시련과 폭풍우 속에서도 다듬어지고 단단해져서 더 높이 더 멀리 역경을 헤치며 날아오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바보새 알바트로스처럼.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알바트로스 갈매기 바보새 알바트로스 바보 갈매기 바다 갈매기

2024-09-0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갈매기의 꿈

갈매기의 꿈    하늘 별들의 이름이 호명되고 제일 늦게 나온 푸른 별 하나   새들의 무리에게, 붉은 저녁노을에게, 발길을 돌리는 지친 어깨에게, 슬픔과 눈물의 세레나데에게, 뜨겁고 깊은 그루터기에게, 서성이는 걸음 뒤안길에게, 작고 푸른 점 안의 슬픔들에게    춤출 수 있는 흥을 끌어내며 어루만지는 당신의 카타르시스 푸른 별에 살고 있는 우리 위대한 것을 말하지 전에 피 흘리고 땅을 정복한 역사를 말하기 전에 우리는 한낱 먼지일 뿐을 말하고 미시간 호수, 출렁이는 파도일 뿐 시야를 떠난 주저앉는 것들의 얇아진 생채기뿐임을 말하고 서쪽 하늘 피어날 작고 푸른 별 향한 힘찬 날갯짓임을 말하고   Lawrence와 Pulaski 사우스웨스트 코너 3층 건물. 그 옥상은 한 무더기 새들의 집이다. 종종 그곳을 지나갈 때 하늘을 덮는 새들의 무희를 볼 수 있다. 앞장선 한 마리 새를 쫓아 어마 무시한 그룹의 새떼가 하늘을 수놓으며 날아간다. 길 건너로 낮게 날아가다 방향을 틀어 북쪽 먼 곳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이내 제 집으로 돌아와 빌딩의 옥상 근처를 난다. 늦게 발동이 걸린 다른 새 떼가 옥상을 떠나 비행을 시작한다. 하늘엔 먼저 비행을 즐기고 있는 그룹과 어우러져 두 군락의 새떼가 하늘을 겹치며 난다. 빵가루를 뿌려 주었는지 그 많은 새들이 한꺼번에 날갯짓을 퍼득이며 건물 건너 Walgreen 파킹랏을 가득 메운다. 주위에 사람들이 지나가도 잠깐 자리를 옮길 뿐 먹이를 먹는데 여념이 없다. 마치 비둘기들의 천국 같다.   지난 몇 개월 미시간 호수를 구석구석을 찾아 다녔다. 예쁜 등대도 만나기도 하고 노을 지는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밀려오는 파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찬 바람에 몸이 들썩이기도 하였다. 비 내리는 호수의 적막함에 꿈같은 아득함에 빠져들기도 하였다. 눈 내리는 호수는 어느 다른 행성의 모습 같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하였다. 이제 추워진 날씨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곳에도 반전은 있었다. 인적이 끊긴 해변에 갈매기의 무리가 모여 도닥거리고 있었다. 바람에 깃털을 부풀리며 한가로이 망중한을 즐기는 그곳은 또한 그들만의 천국임에 틀림없다.     Chopin의 Waltz of the rain을 들으며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찬바람을 등에 지고 넓은 호수를 나는 한 마리 갈매기가 외롭게 보였지만 호기로웠다. 마치 조나단 리빙스턴을 보는듯 하였다. 리처드 바크(Richard Bach)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갈매기 이름이다. 조나단에게는 먹는 것보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따라 살아가기를 원했다. 단지 먹기 위해서의 비행을 거부하고 먼바다로의 비행을 통해 자유를 추구하였다. 하늘 높이 날아 오른 후 한계속도를 넘어 수직 하강을 시도하기도 했다. 실패하면 자신의 몸이 산산조각 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마침내 그는 고난도 비행에 성공하고야 말았다. 수천 년 동안 우린 물고기 머리 밖에 찾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더 멀리, 더 오래 날아야 할 이유가 생겨났다고 항변했지만 결국 조나단은 무리에서 쫓겨났다. 눈 뜨면 무리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고민하였다. 그러나 왜 사는가? 왜 나는가? 그것이 조나단의 질문이었고 마침내 그는 그 대답을 찾았다.     저자는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조나단이 고민했던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꼭 우리의 삶이 멍하니 바라보았던 새떼의 삶 같아서, 물고기 머리를 찾아 온종일 물가를 서성거리는 갈매기의 삶 같아서 서글퍼지는 오후. 창공을 치고 날아오르는 조나단의 비행에 눈길을 주며 독백처럼 나에게 한마디 한다. “눈이 가르쳐 주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믿지 말아라. 마음의 눈이 가르쳐 주는 것을 믿어라 그러면 비로소 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제일 늦게 나올 푸른 별 하나 떠오를 서쪽 하늘에 힘찬 날갯짓의 조나단 리빙스턴의 모습이 보인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갈매기 새떼가 하늘 조나단 리빙스턴 미시간 호수

2024-01-29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옹기종기

바다 같은 미시간 호수에 가면 가슴이 확 트인다. 마음 속 편안함이 푸른 물결위로 가득히 춤춘다.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 보다 보면 삶은 늘 그렇게 밀려왔다가 밀려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갈매기들도 밀려오는 파도를 응시하고 바람에 깃털을 날리고 있다. 한 마리 새가 물결 위로 사쁜히 앉는다. 나도 물결을 타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본다.   우리 식구도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어미닭을 중심으로 병아리들처럼 졸졸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바쁘셨던지 밀려가는 파도처럼 우리에게 영영 작별을 고하셨다. 홀로 된 어머니는 어린 오 남매를 밤낮으로 돌보시느라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셨다. 곱던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나눠 가져야 할 삶의 무게를 홀로 지고도 한마디 말이 없으셨다.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어머니의 낙이었다.     큰 누이는 마음이 깊었다. 홀로 견디어내는 어머니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으로 대전에서 큰 개인병원을 차리고 계신 큰 아버지를 찿아가 대학 진학을 상의했었나 보다. 큰아버지의 대답은 차갑고 냉정했다. 실망한 큰 누나는 마음의 병을 갖게 되었고 어둠이 그를 붙잡아버렸다.    아무도 모르게 모아 놓은 알약으로 큰 누나는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꽃이 피기도 전에 꽃봉오리가 세찬 바람에 떨어져 버렸다. 그때 나는 막 중학교에 입학했었다. 만약에 내가 큰누나와 대화를 가질 나이였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일을 막았을 것이다. 좌절을 딛고 원하던 공부를 마쳤을 것이고, 그 고비를 넘긴 누이는 환한 얼굴로 가정을 꾸몄을 것이다. 아마도 손자 손녀를 거느리고 이곳 시카고에서 옹기종기 노년을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파도는 세차게 몰려왔고 바람도 거칠어져 새의 깃털이 부풀어 올랐다. 이제 밤이 찿아오면 새들도 집으로 가겠지.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 가듯이. 우리 모두도 영원히 살 본향으로 돌아가겠지. 노을이 붉어지는 호수와 모래 위에 십자 발자국을 만드는 갈매기를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매 해 뒤란의 꽃들도 옹기종기 피기도 하고 지기도 했다. 봄 꽃이 피고 지면 여름 꽃이 피어나고 그 꽃이 질 즈음 가을 꽃이 피고 추운 겨울엔 가지마다 눈꽃이 피었다. 꽃들의 삶이 그랬듯이 아버지의 환한 웃음이 우리를 행복의 꽃밭으로 이끌다 돌아가신 후 서글프게도 못 다핀 큰 누나가 하늘로 가셨다. 오랜 시간 남겨진 일들을 마치고 그토록 가슴에 고이 품었던 아버지를 만나러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다. 언젠가 순서는 모르지만 우리도 모래 위에 갈매기 십자 발자국처럼 걸어왔던 여정의 뒤안길을 남겨놓고 내일도 걸을 것만 같았던 이 길을 마칠 것이다.   햇빛 따스이 내리쬐는 로즈힐 묘지(Rosehill Cemetery)에는 가운데 아버지의 묘, 왼쪽으로 어머니의 묘가, 오른쪽으로 큰 누나의 묘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오늘은 아버지께 국화 화분을, 어머니께 하얀 장미 다발을, 큰 누나께 꿈같은 안개꽃을 드리고 싶다. 그러면 먼저 가신 세분은 무슨 대화를 나누실까? 그냥 그 말 홀로여도 포근한, 어떤 뒷말을 대어도 정다운, 따뜻한 햇살 아래 옹기 종기 모여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가는 인생들을 향해 무어라 하실까?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가운데 아버지 갈매기 십자 미시간 호수

2023-10-02

[잠망경] 큰 목소리로 말하라

찰스의 별명은 ‘loudmouth, 수다쟁이, 떠버리’다. 영어나 우리말이나 이 호칭은 말이 많은 사람을 낮잡아 부를 때 쓰인다.   사사건건 할 말이이많을뿐더러 한번 말을 시작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대는 찰스. 특히 아침 조회시간에 다른 환자들의 빈축을 산다. 말의 앞뒤가 맞건 틀리건 그의 목소리는 일관성 있게 거칠다. 어떤 때는 고함도 지른다.   ‘shout’는 ‘소리 지르다, 고함치다’로 번역된다. 큰 반감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해도 어딘지 사나운 기세가 깃들여진 말투다. 광화문 같은 데서 수많은 인파가 목청을 돋워 소리치는 정황에 걸맞은 표현이다. ‘shout’와 ‘shoot, (총 등을) 쏘다’는 같은 말뿌리에 왔다.   축구 경기에서 관중이 환호하는 ‘슛~!’, “회식하러 가자. 오늘은 내가 쏜다!” 하는 ‘shoot’! 사람 목소리도 돈도 총알에 비유된다. “구멍 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넘쳐 흘러~♪” 하며 소리치는 백지영의 2008년 히트곡,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yell, 외치다’도 ‘shout’와 비슷한 의미지만 거부감이 드는 말이다. 소리를 빽! 지른다는 뉘앙스가 짙다. 고대 영어에서 이 말은 워낙 노래를 부른다는 뜻이었다. 전인도 유럽어 ‘ghel, 겔’에서 현대영어의 ‘yell, 옐’이 태어난 것이다. 지금도 ‘nightingale, 꾀꼬리’의 끝부분에 ‘게일’이라는 소리가 살아있다.   ‘scream, 악을 쓰다, 비명을 지르다.’는 극단적 사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공포영화 여주인공의 꺄악! 하는 비명이 귀에 들리는 기분이 든다면 당신은 언어학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다. 자동차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 갈매기 우는 소리를 ‘screech’라 하는데 ‘scream’과 거의 같은 소리의 의성어다. 우리말로는 ‘끼익~’, ‘끼룩끼룩’! 다 쌍기역(ㄲ) 소리가 난다.       소리를 지른다는 표현으로 ‘exclaim’도 있다. 감탄한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말. 그래서 감탄사 부호(!)를 ‘exclamation mark’라 한다. 13세기에 ‘yell’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던 ‘cry’는 또 어떤가. 고대 불어와 라틴어로 ‘울부짖다’, 혹은 ‘(돼지처럼) 꽤액꽤액소리 지르다’라는 뜻이었는데 눈물을 뚝뚝 흘린다는 의미로 변천된 것은 16세기였다고 전해진다.   우리는 왜 때때로 고함을 치고 소리를 지르는가. 제 스스로의 감정에 겨워 떠들어대면서 말을 그치지 못하는가. 찰스는 왜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아낌없이 받아가면서 공개석상에서 흥분을 제어하지 못하는가.   찰스보다 10년 정도 나이가 어린 데니스가 그를 나무라는 발언을 적극적으로 자주 한다. 그는 찰스에 비하여 부드럽고 커다란 목소리를 타고난 것 같다. 왕왕 울리는 베이스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성대의 소유자.   그의 목소리는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움이 없을뿐더러 악을 쓴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고 돼지 멱따는 분위기는 더더구나 없다. 찰스가 너무 떠버리기 때문에 병동이 혼란스러워진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은 데니스!   그는 병동이라는 공동사회에서 일어나는 환자들의 이해 상관과 정치적(?) 갈등에 대하여 시시때때로 큰 목소리로 핵심을 콕콕 찌르는 발언을 한다. 내막을 밝힐 수는 없지만, 엊그제 그가 우렁찬 언성으로 찰스를 향한 ‘사이다 발언’을 했을 때 밑도 끝도 없이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노래가 떠올랐던 거다. 제목이 주는 전율 말고 가사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순간이었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목소리 사람 목소리 소리 갈매기 베이스 소리

2023-06-13

[시조가 있는 아침] 갈매기

  ━   갈매기     -이태극 (1913-2003)   햇빛은 다사론데 물결 어이 미쳐 뛰나   뜨락 잠기락하여 바람마저 휘젓다가   푸른 선 아스라 넘어 날라 날라 가고나   온 국민이 코로나 사태로 인한 불안감   - 시조연구(1953)     ━   오늘의 시조단을 이룬 넉넉한 품     고시조를 집대성하고 현대시조를 이론과 작품으로 체계화한 월하 이태극의 데뷔작이다. 선생이 박병순, 한춘섭과 함께 엮은 『한국시조큰사전』(1985. 을지출판공사)에는 이 작품을 1952년 5월, 영도에서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전까지 선생은 서울대와 이화여대, 동덕여대에 출강하며 시조의 이론 연구에 몰두해오다가 6·25 동란을 맞아 40대 부산 피난 시절에 직접 시조를 창작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강원도 화천이 고향인 선생은 이 작품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전쟁의 광풍을 슬퍼하며 아스라한 평화를 그리고 있다. 따뜻한 봄, 거친 물결 위로 날아가는 갈매기의 모습을 중의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봄은 또 어찌 이리 넘기기가 힘든 것인가?   선생의 작품들은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 서정적인 것이 특징이다. 시조의 전통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인 자수율에 따른 율격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선생은 1960년 하한주, 조종현, 김광수와 더불어 ‘시조문학’을 창간, 현대시조의 재목들을 배출해 오늘의 시조단을 이루게 했다. 선생은 넉넉한 품으로 시조를 가르치셨다.   오늘날 평단에서 필봉을 드날리고 있는 이숭원 교수가 그의 외아들이다. 3회 추천완료제이던 1960년대와 70년대, 선생은 나를 4회 만에 천료(薦了) 시키셨다. 그만큼 오랜 훈도(薰陶)를 받았으니 나의 복이었다.   유자효 / 시인시조가 있는 아침 갈매기 창간 현대시조 고향인 선생 월하 이태극

2023-01-26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주는 편지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주는 편지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내 사랑하는 지아 희재 리예 보아라.   너희들은 하나님이 우리 집안에 주신 축복이요 소중한 보물들이다. 오늘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너희들이 건강하게 자라서 좋은 사람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너희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할아버지는 이 세상을 살고 떠나면서 너희에게 무슨 유산을 남겨줄까 고민했다. 이 편지는 평소 할아버지가 너희에게 들려주려고 준비했던 글들을 한데 모아 정리한 것이다. 잘 음미하면서 삶의 영양분으로 삼기를 바란다.     할아버지는 너희에게 물려줄 물질적인 재산은 없다. 하지만 너희에게 물려줄 가장 중요한 자산은 돈이 아니라 ‘가치’라고 생각한다.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지만, 가치는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을 지켜주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조금 오래되기는 했지만  디즈니의 만화영화 ‘라이온 킹’을 보았다면 어린 사자 심바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왕국의 후계자였다. 심바는 자기 아빠 무파사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누명을 쓰고 죄책감과 두려움에 도망을 친다. 그 후 왕이 되려는 꿈을 접었다. 어느 날 황야에서 무파사가 환상 중에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심바야, 너는 날 잊었구나.”“아니에요. 아빠. 아빠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넌 네가 누군지 잊어버렸구나. 그렇다면 날 잊은 거야. 네가 누군지 기억하렴. 너는 내 아들, 진정한 왕이란다.”   할아버지는 이 장면을 좋아한다. 우리의 정체성에 관한 핵심적인 진리를 놓치지 않고 붙들게 해주기 때문이다.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준다. 할아버지도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은 바닷가의 쓰레기더미 아니면 선창가와 고깃배 주위를 맴돌면서 어부들이 먹다 버린 빵조각을 먹으려고 서로 다투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조나단은 먹기 위해 사는데 싫증이 났다. 그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었다. 그는 부모와 형제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혼자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작했다. 갈매기 조나단은 피나는 노력과 눈물겨운 인내로 하늘 높이 날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   꿈이 있는 자에게는 미래가 있다. 믿음 안에서 꿈을 가꾸며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에겐 반드시 기회가 온다. 갈매기처럼 높이 날 수 있다. 꾸준함을 이길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할아버지는 너희들의 밝은 미래를 소망하기에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컴퓨터 앞에 앉아 한 글자 한 글자 자판을 두드린다. 하나님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길을 열어 주신다.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좋은 사람이 되어라.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 마음을 잘 운전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다. 항상 품위와 절제를 잃지 않고 자기 정진에 힘쓰다 보면 미처 생각도 못한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할아버지에게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잊을 수 없는 한 분의 스승이 있다. 서울고등학교에 스파르타 교육으로 유명한  ‘김원규’라는 교장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에게는 해방 후 새로 문을 연 서울고등학교를 영국의 이튼 스쿨이나 해로 스쿨 같은 명문 학교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무소처럼 밀고 나갔다. 전국을 훑어, 내로라는 선생님들을 스카웃해서 뽑아 올렸다‘한국의 대표적 지성’이라는 이어령 교수와 시인인 조병화  교수도 모교의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항상 조회 때마다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어느 자리에 있던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어라!.”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있어서는 안 될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꼭 있어야 할 사람이다. 여러분은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어야 한다.”이미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할아버지는 그 분의 훈시를 뇌리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별 느낌이 없이 받아들였던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평생 나를 채찍질했다. 할아버지는 이 말씀을 너희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절대 환경을 탓하거나 남을 원망하지 말아라. 자기 인생의 최종 책임자는 자신이다. 나이로 살기보다 생각으로 살아라.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산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고 만다. 생각의 게으름이야말로 가장 비참한 일이다. 나이가 아닌 생각으로 세상을 들여다보아라. 생리적 나이는 어쩔 수 없지만, 정신적 나이, 신체적 나이는 29살에 고정해 살아라. 좋은 습관 중의 첫 번째가 책 읽는 일이니 하루 10분씩이라도 밥을 먹듯, 잠을 자듯이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말아라. 100원을 가졌어도 50원 가진 듯 살아라. 벌기는 어려워도 쓰기는 쉽다. 남을 험담하는 사람을 경계하여라. 그는 다른 곳에서 네 험담을 하는 사람이다. 항상 혀를 조심하여라. 네 입이 바로 네 그릇이고 인격이다. 현명한 사람은 행동보다 말이 앞설까봐 경계하고 말하기 전에 오래도록 생각한다. 말하고 싶을 때마다 입을 다물고 생각하여라. 그 말이 정녕 말할 가치가 있는 말인가.   먼 훗날 우리가 인생을 돌아보며 우리 스스로에게 삶이 화려하지 않았어도 존재감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세상에는 부와 권력을 가졌어도 사람의 마음을 사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결코 인생이란 길에 좋은 이름을 새길 수 없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라. 인생이란 길에 좋은 이름을 새겨라. 세상을 살아가며 우뚝 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화려한 이면 뒤에 겪었던 고난의 길을 생각해 보아라. 그들은 그 길에서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으며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기 위해 노력했다. 명심하자. 오늘은 비록 내가 제대로 안 보이는 존재일지라도 묵묵히 내 길을 갈 것이며, 내 길에 이름을 새길 것이라고.     돌이켜보면 우리는 모든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기쁨도 있었지만, 아픔도 많았다. 이 세상 비에 젖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세상을 살아가려면 온갖 역경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갖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는 꿋꿋함이 있어야 한다. 그게 자아의 진정한 가치를 만드는 ‘나를 지키려는 용기’이다. 유대 격언에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라.’는 말이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라. 남을 의지할 생각 말고 네 힘으로 살아라. 부모 형제는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줄 수는 있으나 날 수 있는 날개가 되어줄 수는 없다. 새는 스스로의 날개짓으로 하늘을 날지 기대어 하늘을 날지는 않는다.     생각이 강물처럼 넘치는 시대다. 일상을 바라보아라. 다양하게 생각하여라. 낯설게 생각하여라.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세뇌당한 관습적 사고와 태도를 버리고 열린 눈으로 세상을 크게 바라보아라. 자기가 좋아하는 특기를  찾아라. 그리고 그것을 붙들고 꾸준히 밀고 나가거라. 반드시 열매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김지민 기자할아버지 손주 평소 할아버지 갈매기 조나단 주인공 갈매기

2022-10-26

[문화산책] 갈매기의 꿈, 다시 한 번

글 쓰는 데 필요해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찾아 다시 읽고는 깜짝 놀라는 일이 가끔 있다. 옛날 읽었을 때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새로 읽게 된다. 연륜 탓일까?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1936-)의 ‘갈매기의 꿈’도 그렇게 새로 읽은 책이다.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수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 조나단의 생애를 쓰고 자기 타자기를 바닷속에 던져 넣었다잖나. 그걸로 다 썼다는 거지.”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라는 호기심이 일어, 책장을 한참 뒤져 한구석에서 겨우 찾아냈다. 내가 가진 책은 1970년에 처음 발간된 영문판과 1975년에 나온 한글 번역판이다. 그러니까, 거의 50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은 것이다. 읽어가노라니 이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의 화면들도 되살아났다. 닐 다이아몬드의 노래를 배경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힘찬 날개짓….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꿈이 없다면 그건 이미 생명이 아니야”라는 구절도 가슴을 찌른다.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부끄러웠다. 꿈을 펼치기는커녕, 먹이를 구하기 위해 초라한 ‘생계형 글쟁이’가 되어, 감히 울타리를 벗어날 생각조차 못 하고 꾸역꾸역 살아온 지난날들이 너무도 누추하고 부끄러워, 끊었던 술을 한잔했다. 물론 소시민적 삶의 소소한 행복도 소중하지만, 예술 세계에서 그런 따위의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통할 리 없다.   ‘갈매기의 꿈’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었으니 다들 읽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전직 비행사였던 작가가 비행에 대한 꿈과 신념을 실현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일생을 통해 모든 존재의 초월적 능력을 일깨운 우화형식의 신비주의 소설이다. 우화나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작품으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비견되기도 한다.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다른 갈매기와는 달리 비행 그 자체를 사랑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자신의 행복과 더욱 멋지고 값진 삶을 살기 위해 평범한 삶을 거부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저자가 해변을 거닐다가 공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정식으로 출간되어 5년 만에 700만 부가 판매되었고, 전세계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국 문학사상 최대의 베스트셀러였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보다 더 널리 읽히는 불후의 명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열여덟 군데의 출판사로부터 출간을 거절당한 뒤, 1970년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초판이 정식 출간되었다. (참고로 리처드 바크의 Bach는 현대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같은 철자다.)   이 작품이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것은 삶의 숭고한 목적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인간이 가진 무한한 힘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자유를 선택하는 삶의 가치, 인간은 누구나 위대한 가능성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다는 깨달음의 메시지….   “꿈이 없이 살아가는 생명이 있을까? 꿈이 없다면 그건 이미 생명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도 그렇다.   그나저나, 꿈이 없으면 생명이 아니라는데, 나는 어떤가? 이제 새삼스레 꿈을 찾아 떠나기엔 너무 늦은 걸까? 꿈을 꾸는데 늦은 때란 없다. 있을 수 없다. 그렇다 ‘꿈꾸러기’에는 나이가 없다. 그렇게 믿는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갈매기 갈매기 조나단 세계적 베스트셀러 전세계 언어

2022-08-17

[문화산책] 갈매기의 꿈, 다시 한 번

글 쓰는 데 필요해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찾아 다시 읽고는 깜짝 놀라는 일이 가끔 있다. 옛날 읽었을 때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새로 읽게 된다. 연륜 탓일까?   리처드 바크(Richard Bach, 1936-)의 ‘갈매기의 꿈’도 그렇게 새로 읽은 책이다.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수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는 갈매기 조나단의 생애를 쓰고 자기 타자기를 바닷속에 던져 넣었다잖나. 그걸로 다 썼다는 거지.”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라는 호기심이 일어, 책장을 한참 뒤져 한구석에서 겨우 찾아냈다. 내가 가진 책은 1970년에 처음 발간된 영문판과 1975년에 나온 한글 번역판이다. 그러니까, 거의 50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은 것이다. 읽어가노라니 이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의 화면들도 되살아났다. 닐 다이아몬드의 노래를 배경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힘찬 날개짓….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꿈이 없다면 그건 이미 생명이 아니야”라는 구절도 가슴을 찌른다.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부끄러웠다. 꿈을 펼치기는커녕, 먹이를 구하기 위해 초라한 ‘생계형 글쟁이’가 되어, 감히 울타리를 벗어날 생각조차 못 하고 꾸역꾸역 살아온 지난날들이 너무도 누추하고 부끄러워, 끊었던 술을 한잔했다. 물론 소시민적 삶의 소소한 행복도 소중하지만, 예술 세계에서 그런 따위의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통할 리 없다.   ‘갈매기의 꿈’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었으니 다들 읽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전직 비행사였던 작가가 비행에 대한 꿈과 신념을 실현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일생을 통해 모든 존재의 초월적 능력을 일깨운 우화형식의 신비주의 소설이다. 우화나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작품으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비견되기도 한다.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다른 갈매기와는 달리 비행 그 자체를 사랑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자신의 행복과 더욱 멋지고 값진 삶을 살기 위해 평범한 삶을 거부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저자가 해변을 거닐다가 공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정식으로 출간되어 5년 만에 700만 부가 판매되었고, 전세계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국 문학사상 최대의 베스트셀러였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보다 더 널리 읽히는 불후의 명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열여덟 군데의 출판사로부터 출간을 거절당한 뒤, 1970년 뉴욕 맥밀란 출판사에서 초판이 정식 출간되었다. (참고로 리처드 바크의 Bach는 현대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같은 철자다.)   이 작품이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것은 삶의 숭고한 목적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인간이 가진 무한한 힘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자유를 선택하는 삶의 가치, 인간은 누구나 위대한 가능성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다는 깨달음의 메시지….   “꿈이 없이 살아가는 생명이 있을까? 꿈이 없다면 그건 이미 생명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도 그렇다.   그나저나, 꿈이 없으면 생명이 아니라는데, 나는 어떤가? 이제 새삼스레 꿈을 찾아 떠나기엔 너무 늦은 걸까? 꿈을 꾸는데 늦은 때란 없다. 있을 수 없다. 그렇다 ‘꿈꾸러기’에는 나이가 없다. 그렇게 믿는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갈매기 갈매기 조나단 세계적 베스트셀러 전세계 언어

2022-08-11

[이 아침에] 더 높이 더 멀리

이제 날기를 배우면서/가장 많이 아파하고/가장 잘 견디며 열중하는 새가/후일 더 높이 더 멀리/그리고 더 힘차게 날 수 있다 - 갈매기의 꿈.     평생 함께 날던 배우자를 잃고 축 처진 날개로 찾았던 2010년 여름의 한국, 인사동에서 우연히 만난 이 족자는, 남편 없는 세상 이제 혼자 날기를 배워야 한다는 두려움에 떨던 나의 치어리더가 되어 주었다. 또 있다. 다 잘 될거야/환하게 웃어봐/어깨를 활짝 펴 이런 행복메시지 머그잔들도 얼른 집어 들었었다. 그 해 여름 난, 나를 아주 많이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gull)의 저자 리처드 바크는 생떽쥐베리처럼 실제 비행사 겸 작가다. 대학 시절 겁없이 가르치던 교회 중고등부 애들 설교를 위해, 이 책을 급 읽고 써먹은 적 있다. 이후 그래, 아주 일찍 일어나 날기를 연습하는 기특한 갈매기가 있었지, 흠, 나도 일찍 일어나야지, 이 정도로만 기억하던 이 책을, 오늘 우연히 영어로 읽었다. 와우, 같은 책도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더욱이 원어로 읽으면 만나게 되는 새로운 보물들!     갈매기 조나단은 우리 알바트로스 형님처럼 비행에 놀라운 관심이 있다. 다른 갈매기들이 먹이를 위해 어선 주위를 맴돌 때, 그는 홀로 여러 가지 비행을 시도한다. 저공 비행, 고공 비행, 야간 비행, 날개 접기, 급강하, 공중회전 등을 배우고, 갈매기로서 불가능한 속도의 비행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추방이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 그는 새로운 세계로 인도되어 스승 설리반과 큰 지도자 창을 만난다. 창은 온갖 비행에 거의 완벽해진 조나단에게, 이제 ‘친절함과 사랑’의 의미를 배우라고 한다. 사랑이란 사람들의 내면의 선함을 보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면서. 그리고 완벽한 속도를 끝없이 추구하는 그에게, “Perfect speed, my son, is being there.”라고 한다. 이것이 그저 생각하면 바로 거기에 가있게 되는 “생각 속도”라고만  알았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른 의미가 깨달아졌다. Being there, “거기서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완벽한 속도라는 것이다. 빠른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그 곳에 가 길벗이 되어주는 것이 완벽한 속도였다니!     창은, 한 학교가 끝나면 다른 학교가 시작된다면서, 조나단의 배움에 대한 두려움 없음(less fear of learning than any gull)을 크게 칭찬한다. 앗, 이 장면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나의 영어 북클럽 회원들! 배울 것 다 배웠다고 마음을 닫을 평균 연령 오십대, 그리고 육십대에도 매주 책을 읽으며 영어를 공부하고 삶을 공부하는 이 분들은 정말 조나단을 닮았다. 이들은 더 높이 날 것이다. 더 멀리 보고 더 멀리 갈 것이다. 먹이가 아니라 비행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어제 월요 모임이 연금술사를 마쳤다.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신선했다는 분께, 팔구십대에도 책을 읽는 한 우리는 영원한 학생이라고 말하며 함께 즐거워했다. 8월부터 The Color of Water(by James McBride)를 읽는다. 아버지 학대를 피해 뉴욕으로 와 흑인 목사와 결혼, 열두 명 아이들을 다 대학/대학원까지 교육시킨 백인(유대계) 엄마와 그 흑인 자녀들의 웃고 울리는 가족애가 많이 기대된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이 아침에 갈매기 조나단 저공 비행 비행 야간

2022-07-21

[살며 생각하며] 더 높이 더 멀리

이제 날기를 배우면서/가장 많이 아파하고/가장 잘 견디며 열중하는 새가/후일 더 높이 더 멀리/그리고 더 힘차게 날 수 있다 - 갈매기의 꿈.     평생 함께 날던 배우자를 잃고 축 처진 날개로 찾았던 2010년 여름의 한국, 인사동에서 우연히 만난 이 족자는, 남편 없는 세상 이제 혼자 날기를 배워야 한다는 두려움에 떨던 나의 치어리더가 되어 주었다. 또 있다. 다 잘 될거야/환하게 웃어봐/어깨를 활짝 펴 이런 행복메시지 머그잔들도 얼른 집어 들었었다. 그 해 여름 난, 나를 아주 많이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gull)의 저자 리처드 바크는 생떽쥐베리처럼 실제 비행사 겸 작가다. 대학 시절 겁없이 가르치던 교회 중고등부 애들 설교를 위해, 이 책을 급 읽고 써먹은 적 있다. 이후 그래, 아주 일찍 일어나 날기를 연습하는 기특한 갈매기가 있었지, 흠, 나도 일찍 일어나야지, 이 정도로만 기억하던 이 책을, 오늘 우연히 영어로 읽었다. 와우, 같은 책도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더욱이 원어로 읽으면 만나게 되는 새로운 보물들!     갈매기 조나단은 우리 알바트로스 형님처럼 비행에 놀라운 관심이 있다. 다른 갈매기들이 먹이를 위해 어선 주위를 맴돌 때, 그는 홀로 여러 가지 비행을 시도한다. 저공 비행, 고공 비행, 야간 비행, 날개 접기, 급강하, 공중회전 등을 배우고, 갈매기로서 불가능한 속도의 비행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추방이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 그는 새로운 세계로 인도되어 스승 설리반과 큰 지도자 창을 만난다. 창은 온갖 비행에 거의 완벽해진 조나단에게, 이제 “친절함과 사랑”의 의미를 배우라고 한다. 사랑이란 사람들의 내면의 선함을 보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면서. 그리고 완벽한 속도를 끝없이 추구하는 그에게, “Perfect speed, my son, is being there.”라고 한다. 이것이 그저 생각하면 바로 거기에 가있게 되는 “생각 속도”라고만  알았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른 의미가 깨달아졌다. Being there, “거기서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완벽한 속도라는 것이다. 빠른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그 곳에 가 길벗이 되어주는 것이 완벽한 속도였다니!     창은, 한 학교가 끝나면 다른 학교가 시작된다면서, 조나단의 배움에 대한 두려움 없음(less fear of learning than any gull)을 크게 칭찬한다. 앗, 이 장면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나의 영어 북클럽 회원들! 배울 것 다 배웠다고 마음을 닫을 평균 연령 오십대, 그리고 육십대에도 매주 책을 읽으며 영어를 공부하고 삶을 공부하는 이 분들은 정말 조나단을 닮았다. 이들은 더 높이 날 것이다. 더 멀리 보고 더 멀리 갈 것이다. 먹이가 아니라 비행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어제 월요 모임이 연금술사를 마쳤다.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신선했다는 분께, 팔구십대에도 책을 읽는 한 우리는 영원한 학생이라고 말하며 함께 즐거워했다. 8월부터 The Color of Water(by James McBride)를 읽는다. 아버지 학대를 피해 뉴욕으로 와 흑인 목사와 결혼, 열두 명 아이들을 다 대학/대학원까지 교육시킨 백인(유대계) 엄마와 그 흑인 자녀들의 웃고 울리는 가족애가 많이 기대된다. 함께 읽고 싶은 분은 counselingsunflower@gmail.com 으로 문의하시면 된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갈매기 조나단 저공 비행 비행 야간

20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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