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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옹기종기

[신호철]

[신호철]

바다 같은 미시간 호수에 가면 가슴이 확 트인다. 마음 속 편안함이 푸른 물결위로 가득히 춤춘다.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 보다 보면 삶은 늘 그렇게 밀려왔다가 밀려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갈매기들도 밀려오는 파도를 응시하고 바람에 깃털을 날리고 있다. 한 마리 새가 물결 위로 사쁜히 앉는다. 나도 물결을 타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본다.
 
우리 식구도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어미닭을 중심으로 병아리들처럼 졸졸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바쁘셨던지 밀려가는 파도처럼 우리에게 영영 작별을 고하셨다. 홀로 된 어머니는 어린 오 남매를 밤낮으로 돌보시느라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셨다. 곱던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나눠 가져야 할 삶의 무게를 홀로 지고도 한마디 말이 없으셨다.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어머니의 낙이었다.  
 
큰 누이는 마음이 깊었다. 홀로 견디어내는 어머니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으로 대전에서 큰 개인병원을 차리고 계신 큰 아버지를 찿아가 대학 진학을 상의했었나 보다. 큰아버지의 대답은 차갑고 냉정했다. 실망한 큰 누나는 마음의 병을 갖게 되었고 어둠이 그를 붙잡아버렸다. 
 
아무도 모르게 모아 놓은 알약으로 큰 누나는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꽃이 피기도 전에 꽃봉오리가 세찬 바람에 떨어져 버렸다. 그때 나는 막 중학교에 입학했었다. 만약에 내가 큰누나와 대화를 가질 나이였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일을 막았을 것이다. 좌절을 딛고 원하던 공부를 마쳤을 것이고, 그 고비를 넘긴 누이는 환한 얼굴로 가정을 꾸몄을 것이다. 아마도 손자 손녀를 거느리고 이곳 시카고에서 옹기종기 노년을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파도는 세차게 몰려왔고 바람도 거칠어져 새의 깃털이 부풀어 올랐다. 이제 밤이 찿아오면 새들도 집으로 가겠지.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 가듯이. 우리 모두도 영원히 살 본향으로 돌아가겠지. 노을이 붉어지는 호수와 모래 위에 십자 발자국을 만드는 갈매기를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매 해 뒤란의 꽃들도 옹기종기 피기도 하고 지기도 했다. 봄 꽃이 피고 지면 여름 꽃이 피어나고 그 꽃이 질 즈음 가을 꽃이 피고 추운 겨울엔 가지마다 눈꽃이 피었다. 꽃들의 삶이 그랬듯이 아버지의 환한 웃음이 우리를 행복의 꽃밭으로 이끌다 돌아가신 후 서글프게도 못 다핀 큰 누나가 하늘로 가셨다. 오랜 시간 남겨진 일들을 마치고 그토록 가슴에 고이 품었던 아버지를 만나러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다. 언젠가 순서는 모르지만 우리도 모래 위에 갈매기 십자 발자국처럼 걸어왔던 여정의 뒤안길을 남겨놓고 내일도 걸을 것만 같았던 이 길을 마칠 것이다.
 
햇빛 따스이 내리쬐는 로즈힐 묘지(Rosehill Cemetery)에는 가운데 아버지의 묘, 왼쪽으로 어머니의 묘가, 오른쪽으로 큰 누나의 묘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오늘은 아버지께 국화 화분을, 어머니께 하얀 장미 다발을, 큰 누나께 꿈같은 안개꽃을 드리고 싶다. 그러면 먼저 가신 세분은 무슨 대화를 나누실까? 그냥 그 말 홀로여도 포근한, 어떤 뒷말을 대어도 정다운, 따뜻한 햇살 아래 옹기 종기 모여서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가는 인생들을 향해 무어라 하실까?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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