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 ‘그늘 차별’ 받고 있는 한인타운
지난 5월 할리우드의 작가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7월에는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도 파업을 선택했다. 할리우드 생태계를 떠받치는 양축이 63년 만에 ‘동시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제작사 입장에서 제작 지연은 곧장 손실로 이어진다. 양측의 긴장감이 팽팽해지던 때 ‘그늘 논쟁’이 파업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다. 유니버설시티 인근 NBC유니버설 스튜디오 앞길의 ‘피커스’ 나무들이 하루아침에 짧게 가지 쳐진 게 발단이 됐다. 7월 뙤약볕을 가로수 그늘에서 피하며 시위하던 배우들은 NBC유니버설을 비난했다. 시위대를 땡볕으로 내몰며 파업할 권리에 보복을 가했다는 비난으로 번졌다. 회사 측은 정해진 일정에 따른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가로수를 대체할 그늘막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비난은 잦아들 줄 몰랐다. 이후 노조의 요구로 LA시가 조사한 결과, 해당 바햄 블러바드 선상의 가로수 관리는 시 정부 관할이고 지난 3년 동안 가지치기를 허용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늘을 두고 이런 다툼도 있었는데 다른 한편에선 그늘 때문에 더는 야자수를 심지 말자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LA타임스는 남가주에 더 많은 그늘이 필요하다며 토착 식물도 아니고, 가성비도 좋지 않은 야자수 퇴출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고 전했다.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는 야자수 폐기를 발표했고, 마이애미비치는 30년에 걸쳐 가로수 중 야자수 비중을 현재 60%에서 25%까지 줄이기로 했다. 가주 산림소방국은 도시·지역사회 산림 조성 보조금 수령자가 야자수 심는 것을 금지했다. LA에서는 햇살 가득한 번영을 상징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낸다며 100여 년 전 붐을 일으켰던 야자수지만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폭염 장기화 속에서 “키만 컸지 그늘도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며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꼴이 됐다. 그늘은 LA에서 차별을 만들기도 한다. 부자 동네와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 최대 6배 이상 나무 그늘의 규모 차이가 난다는 연구도 있다. 범죄 예방을 위해 나무 심기에 소극적이라는 말도 있지만, 폭염 사망자가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변명은 아닌 듯하다. 임대주택에 에어컨 설치 의무화가 추진 중인 것처럼 이제 그늘은 커뮤니티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가 됐다. 역대 시장들도 이를 의식해 많은 약속을 했지만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전 시장은 2006년 무려 100만 그루 나무 심기를 약속했지만, 절반에 못 미쳤다. 그마저도 5그루 중 1그루는 심은 뒤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에릭 가세티 전 시장도 9만 그루를 공약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인도 대사로 떠났다. 이런 가운데 한인타운 청소년회관(KYCC)이 한인타운과 그 주변에 3년간 3000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나선 건 반가운 소식이다. KYCC는 가주 천연자원부(CNRA)와 가주 산림소방국이 선정한 24종의 나무를 심게 된다. 2016년 LA카운티 공원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인타운의 공원 공간은 주민 1000명당 0.1에이커로 카운티 전체 평균 3.3에이커에 크게 못 미쳤다. 또 한인타운 주민 39%만이 사는 곳에서 0.5마일 이내에 공원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카운티 평균 49%와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LA에서도 손꼽히는 녹지 부족 공간인 한인타운의 ‘그늘 공정성’이 개선되길 바란다. 평균 70피트 높이보다 2배 더 큰 그늘을 만들어준다는, 캘리포니아에서 자생하는 상록수 ‘코스트 라이브 오크’ 같은 가로수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한인타운이 되길 많은 한인은 기대하고 있다. 류정일 / 사회부장중앙칼럼 한인타운 그늘 가로수 그늘 그늘 논쟁 그늘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