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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데’의 띄어쓰기

뇌가 외부 자극에 반응해 알맞은 단어를 찾아 표현하기까지 0.6초가량 걸린다고 한다. 말은 순식간에 나오지만 이를 글로 옮기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띄어쓰기다.   문장에서 어떨 때는 붙여 쓰고 어떨 때는 띄어 쓰는 말이 적지 않다. ‘데’가 대표적이다. “지금 굉장히 추운데 그렇게 입고 괜찮으세요?”의 경우 ‘추운데’로 붙여 써야 한다. “그 추운 데서 하루 종일 고생이 참 많다”의 경우 ‘추운 데’로 띄어 써야 바르다. 왜 그럴까?   먼저 의미를 살펴봐야 한다. ‘데’가 ‘곳이나 장소’ ‘일이나 것’이라는 뜻을 나타낼 때에는 의존명사로 띄어 쓴다. “지금 네가 가려는 데가 어디지?” “이번 과제는 환경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에서 ‘데’는 각각 ‘가려는 곳이’‘깨닫게 하는 것에’로 바꿀 수 있다.   ‘데’가 ‘경우’의 뜻을 나타낼 때도 의존명사로 띄어 써야 한다. “머리 아픈 데 먹는 약과 감기 예방에 좋은 생강차를 여행가방에 넣어 뒀다” “이 찻잔은 매우 귀한 거라 특별한 손님을 대접하는 데나 내놓는다”에서 ‘데’는 ‘경우’의 의미로 사용됐으므로 띄어 쓰는 게 바르다.   ‘데’가 어미일 때는 붙여야 한다. ‘-ㄴ데/-는데/-은데’ 등은 뒤에서 어떤 일을 설명하거나 묻거나 시키거나 제안하기 위해 그 대상과 관련되는 상황을 미리 말할 때에 쓴다. “그렇게 아픈데 하루도 수업을 안 빠지다니!” “편의점에 가는데 뭐 사다 줄까?” “볼 것은 많은데 시간이 너무 부족해”의 경우 모두 붙여야 한다.   뜻으로 구별이 잘 안 될 때는 ‘데’ 뒤에 격조사 ‘에’를 붙여 보는 방법도 있다. ‘데’가 의존명사로 쓰였을 경우에는 뒤에 ‘에’가 결합할 수 있다. “지금 굉장히 추운데(에) 그렇게 입고 괜찮으세요?”는 ‘에’가 결합할 수 없다. ‘~ㄴ데’는 연결어미이므로 붙여 쓴다. “그 추운 데(에)서 하루 종일 고생이 참 많다”는 ‘에’가 결합할 수 있다. 이때의 ‘데’는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쓴다.우리말 바루기 띄어쓰기 외부 자극 약과 감기 이번 과제

2025-01-16

[우리말 바루기] 칠칠맞은 여친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이런 것이 있었다. 남녀 관계에서 발생하는 고민을 들어 주면서 그에 관해 참견하고 진단하는 프로그램인데 이날의 주제는 ‘칠칠맞아도 너무 칠칠맞은 여친’이었다. 연애를 지속해야 할지 고민하는 남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얘기인즉슨 똑똑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음식을 먹다 옷에 흘리거나 길바닥에 가방을 뒤엎는 등 실수를 연발하는 여자친구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것이었다. 남친 집에 인사드리러 갔다가 가구를 긁고 화장품을 흘렸다는 사연에 이르러서는 토론자들도 탄식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라면 그 여자친구는 사실은 칠칠맞은 여친이 아니다. 칠칠맞은 여친은 아무 문제가 없는 여친이다. ‘칠칠맞은 여친’은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진 여자친구’의 뜻이어서 프로그램 내용과 맞지 않는다. ‘칠칠맞다’는 ‘칠칠하다’와 같은 뜻의 단어로,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로그램 내용에 맞게 하려면 ‘칠칠맞은 여친’이 아니라 ‘칠칠맞지 못한 여친’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반듯하거나 야무지지 못하다는 뜻이 된다. 즉 실수를 연발한다면 ‘칠칠맞지 못한’ 또는 ‘칠칠하지 못한’이란 표현을 써야 한다.   “사람이 칠칠맞지 못해 이 모양이다” “그는 매사에 칠칠하지 않았다” 등처럼 사용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여친 프로그램 내용 tv 프로그램 여자친구 때문

2025-01-15

[우리말 바루기] ‘금세’ ‘요새’를 구분하는 법

다음 낱말 가운데 틀린 것을 고르시오.   ㄱ.금새. ㄴ.요새 ㄷ.그새 ㄹ.밤새   젊은이들이 쓰는 신조어 가운데 ‘금사빠’와 ‘금사식’이 있다. ‘금사빠’는 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금사식’은 금세 사랑이 식어 버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금방 상대에 대해 싫증을 내기도 하므로 ‘금사빠’와 ‘금사식’은 한몸인 셈이다.   ‘금사빠’와 ‘금사식’의 ‘금’은 ‘금세’ 또는 ‘금방’의 줄임말이라 볼 수 있다. ‘금세’는 적을 때 가장 헷갈리는 말 가운데 하나다. 막상 적으려면 ‘금세’ ‘금새’ 어느 것으로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에’와 ‘애’가 발음으로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무엇의 준말인지 따져보면 된다. ‘금시(今時)에’가 줄어든 말이므로 ‘금세’가 된다. ‘시에’는 줄어 ‘세’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새’는 어떻게 될까? 혹 ‘요세’로 적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역시 무엇의 준말인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요사이’의 준말이므로 ‘요새’가 된다. ‘사이’는 줄어 ‘새’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줄어 ‘애’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새’ ‘밤새’ 역시 ‘그사이’와 ‘밤사이’의 준말이므로 모두 ‘새’로 적는 것이 맞다. 따라서 정답은 ㄱ ‘금새’. ‘금세’로 고쳐야 한다. 다만 지금 바로가 아니라 물건 값 또는 물건 값의 비싸고 싼 정도를 나타낼 때는 ‘금새’도 성립한다.우리말 바루기 구분 신조어 가운데 다음 낱말

2025-01-14

[우리말 바루기] ‘~중이다’를 줄여 쓰자

중학교 때 영어를 처음 접하면서 ‘~ing’를 배우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영어의 진행형인 ‘~ing’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우리말로 ‘~중이다’로 가르친 것으로 기억된다. 이를테면 ‘~ing = ~중이다’ 공식이 성립하는 것으로 배웠다. 영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진행형을 이해시키기에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말에서 진행형이 꼭 이렇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말에서 기본적으로 진행형은 ‘~하고 있다’이기 때문이다. “공부하고 있다” “수업하고 있다” “회의하고 있다” 등처럼 서술어에서는 ‘~하고 있다’가 현재 진행을 나타내는 고유한 표현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부 중이다” “수업 중이다” “회의 중이다”처럼 ‘~중이다’ 형태가 많이 쓰이고 있다. 이는 영어의 진행형인 ‘~ing’를 배우면서 ‘~중이다’가 익숙해진 탓이라고 보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특히 영어를 번역하는 경우 대부분 이렇게 옮긴다.   우리말의 ‘~중’은 ‘공부 중, 수업 중, 회의 중, 공사 중, 협상 중, 임신 중’ 등과 같이 어떤 상태나 ‘동안’의 뜻으로 쓰일 때 잘 어울린다. 물론 이런 의미에서 “공부 중이다” “수업 중이다” 등의 표현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보통은 ‘~하고 있다’가 자연스럽다. 진행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공부하는 중이다”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처럼 ‘~하는 중이다’ ‘~하고 있는 중이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 역시 ‘~하고 있다’ 형태인 “공부하고 있다”가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중이다’를 남용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비상근무 중인 대책본부는 범정부 협업체계를 가동 중이다. 전국에서 관계 공무원이 24시간 비상근무 중이다”와 같은 예다. ‘중인’ ‘중이다’ ‘중이다’ 등 ‘중’으로 가득하다. 실제로 글에서는 이런 형태가 많이 나온다. 서술어에서는 가급적 ‘~중이다’ 대신 ‘~하고 있다’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비상근무 중인 범정부 협업체계 관계 공무원

2025-01-13

[우리말 바루기] ‘호동이예요’의 함정

“오늘 발표할 내용이 뭐죠?”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학생들이 두 가지 대답을 내놓았다. 한 무리는 “먹이에요”로, 다른 한 무리는 “먹이예요”로 답을 했다. 누가 맞춤법에 맞게 대답했을까?   수업 시간에 다룰 내용이 문방사우(文房四友) 중 하나인 ‘먹’이라면 “‘먹’이에요”라고 해야 옳지만 동물의 생육에 필요한 먹을거리에 관한 것이라면 “‘먹이’예요”라고 하는 것이 바르다.   ‘-이에요’는 서술격 조사 ‘-이다’의 어간 뒤에 어미 ‘-에요’가 붙은 말로, 체언 뒤에 쓰인다. ‘붓’처럼 체언의 끝말에 받침이 있으면 ‘-이에요’를 사용하면 된다. 이때의 “붓이에요”는 줄어들지 않으나 ‘벼루’처럼 받침이 없는 체언에 붙을 때는 ‘-예요’로 줄기도 한다. “벼루이에요”가 “벼루예요”로 줄어든다.   문제는 사람의 이름 뒤에 나타나는 ‘이예요’다. 받침이 있고 없음에 따라 “정우성이에요” “김남주예요”라고 하면 되지만 “호동이예요”에 이르면 헷갈린다. “호동이에요”로 고쳐야 할 듯하나 “호동이예요”가 바른 표현이다. 받침 있는 인명 뒤에 어조를 고르는 접사 ‘-이’가 덧붙은 경우다. 받침이 없는 체언과 같아져서 ‘호동+이에요’가 아니라 ‘호동+이+예요’로 분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니에요”는 왜 ‘-에요’로 쓸까? ‘아니다’의 경우 체언이 아닌 용언이므로 서술격 조사 ‘-이다’가 필요 없다. 어미 ‘-에요’만 붙이면 되므로 “아니에요”로 사용한다. “아니예요”는 잘못된 표현이다. “아니에요”에 영향을 받아 “대형 사고에요”처럼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형 사고예요”로 바루어야 한다.   “다시 올 거에요”도 마찬가지다. ‘거’는 ‘것’을 구어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받침이 없으므로 ‘거예요’로 써야 한다. ‘거에요’는 잘못된 표현이다. “이게 다 우리 것이에요”의 경우 받침이 있으므로 ‘-이에요’가 오는 게 바르다.우리말 바루기 호동 함정 서술격 조사 수업 시간

2025-01-12

[우리말 바루기] 느낌적인 느낌

요즘 ‘느낌적인 느낌’이란 표현이 많이 쓰인다. “눈빛에 담긴 느낌적인 느낌” 등처럼 자주 사용한다. 일반인의 글뿐 아니라 인터넷매체 등의 기사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노래 제목으로도 많이 쓰였다.   우선 ‘느낌적인’의 ‘적’에 대해 살펴보자. ‘~적(的)’은 본래 ‘~의’ 뜻으로 쓰이는 중국어 토씨로, 일본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을 우리가 따라 쓰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메이지(明治) 시대 초기에 영어의 ‘-tic’을 번역하면서 처음으로 ‘~적’이란 말을 썼다고 한다(다카다 히로시 『本のある生活』).   우리나라에서는 개화기 잡지나 소설에서 ‘~적’의 사용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렇게 해서 두루 쓰이게 된 ‘~적’은 이제 우리말의 일부분이 됐다. 적절하게 사용하면 된다. 문제는 남용하는 것이다.   ‘~적’은 대체로 ‘그 성격을 띠는’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환상적’이라고 하면 생각 등이 현실적 기초나 가능성이 없고 헛된 성격을 띠는 것을 가리킨다. ‘낭만적’ ‘문화적’ 등도 그렇다. 그러나 ‘느낌적’은 어색하다. ‘느낌’이면 ‘느낌’이지 느낌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은 모호하다. 더구나 ‘느낌적인 느낌’ 구조는 더욱 어설프다.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냥 느낌일 뿐이다. 이처럼 내용은 없이 듣기 좋게 꾸민 글귀를 언어유희라고 한다. 쉽게 얘기하면 말장난이다.   ‘애처로운 느낌’처럼 어떤 느낌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말이 ‘느낌’을 수식하는 구조여야지 그말이 그말인 ‘느낌적인 느낌’은 지극히 어색한 표현이다. ‘생각적인 생각’ ‘공감적인 공감’ 등처럼 같은 구조의 말을 만들어 보면 이 말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따지고 보면 ‘느낌적인 느낌’은 어떤 느낌인지를 정확하고 섬세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가벼운 말장난에 의존하는 표현이다. 자기 느낌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표현하면서 나 자신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느낌 자기 느낌 다카다 히로시 개화기 잡지

2025-01-09

[우리말 바루기] 나는 ‘여’씨가 아닙니다

여직원·여교수·여의사·여비서·여군·여경-. 직업을 가진 여성을 지칭할 때 이처럼 ‘여’자를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남성에게는 대체로 ‘남’자를 붙이지 않는 데 비해 여성에게만 ‘여’자를 붙인다. 마치 모든 여성이 ‘여’씨인 것처럼 꼬박꼬박 이렇게 부르기 일쑤다. 다분히 성차별적인 용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몇 년 전 대표적인 성차별 언어 10개를 선정해 발표했다. 성평등주간을 맞아 이 단체가 ‘생활 속 성차별 언어’ 시민 제안을 받은 결과 608개가 접수됐다. 전문가 자문을 거쳐 이 중 10개를 공유 대상으로 선정했다. 차별적 용어 가운데 최근 문제가 되거나 쉽게 개선할 수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골랐다.   가장 많이 제안된 사항은 바로 이 ‘여’자다. 여직원·여교수 등의 ‘여’자를 빼고 직원·교수·의사·비서·군인·경찰 등 성평등 용어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여자고등학교’처럼 여자고등학교에만 붙은 ‘여자’를 빼고 ‘○○고등학교’라 부르자는 의견도 선정됐다. 남자만 다니는 고등학교의 경우 일반적으로 그냥 ‘○○고등학교’라 부른다. 이에 비해 여자만 다니는 고등학교의 이름에 ‘여자’란 단어가 들어간 곳이 아직도 많다. 처녀작·처녀출전처럼 ‘첫’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처녀’ 표현도 성차별 용어로 선정됐다. 처녀작·처녀출전은 있어도 총각작·총각출전은 없다. 이들을 첫 작품, 첫 출전 등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아빠는 유모차를 끌 수 있을까? 유모차(乳母車)란 단어 속에는 아이와 엄마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어 마치 엄마만 유모차를 끌 수 있는 것처럼 비친다. 이에 대한 성평등 언어로 ‘유아차(乳兒車)’를 제시했다. 이 밖에도 ‘그녀’를 ‘그’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미혼’을 ‘비혼’으로, ‘자궁(子宮)’을 ‘포궁(胞宮)’으로 바꾸기로 했다. ‘몰래카메라’를 ‘불법촬영’으로,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를 ‘디지털 성범죄’로 바꾸는 것도 포함됐다.우리말 바루기 성차별 용어 성차별 언어 성평등 용어

2025-01-08

[우리말 바루기] '제주항공 참사'가 맞다

무안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여객기가 불에 타고 산산조각이 났다.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숨졌다. 언론은 처음 ‘무안공항 참사’라고도, ‘제주항공 참사’라고도 했다. 지금은 주로 ‘제주항공 참사’라고 부른다. 모두 ‘참사’라고는 했지만 지역명과 기업명을 두고는 정리가 덜 됐었다.   언론이 ‘사고’라고 하지 않은 건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에는 ‘우연’이란 의미가 깔려 있다. ‘참사’라고 불러야 사건의 책임 주체도 드러낼 수 있는 일이 된다. ‘참사’는 말 그대로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어서 사실을 더 적극 반영한 말이기도 했다.   ‘무안공항 참사’라는 표현에는 지역명이 들어간다. 그 지역에 부정적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지역 혐오를 부추기게 된다. 대신 참사를 일으킨 기업의 책임은 감춰진다. 2007년 12월 7일 일어난 삼성중공업의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는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불렸다. 기업의 책임은 희석됐고, 지역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졌다. 그래서 언론은 대부분 ‘제주항공 참사’라고 한다.   ‘제주항공 참사’로 숨진 사람들을 가리킬 때는 ‘사망자’가 아니라 ‘희생자’라고 한다. 사망자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이다. 희생자는 ‘어떤 일이나 사건으로 말미암아 죽거나 다치거나 피해를 본 사람’이다. 그들에게 희생자라고 하는 건 사전적 의미를 떠나 그들의 죽음이 개인적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죽음은 사회적이고 구조적이다.   어떤 일에 대해 명칭을 붙이는 건 중요하다. 정확한 표현이어야 사실이 뒤틀리지 않는다. 올바른 명칭은 진실로 가는 길이 되기도 한다.우리말 바루기 제주항공 참사 제주항공 참사 무안공항 참사 대신 참사

2025-01-07

[우리말 바루기] ‘완전 좋아요’의 함정

구매 후기도 물품 구입의 잣대 중 하나가 됐다. “완전 예뻐요” “완전 좋아요”라는 말을 참고한다는 이가 많다.   눈에 익을 정도로 후기나 댓글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완전+용언’의 형태는 문법적으로는 틀린 표현이다. 한 연예인이 “완전 사랑합니다”고 쓴 이후 따라 하는 이가 늘면서 확산됐다.   ‘완전’은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춰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을 뜻하는 명사다. 명사는 기본적으로 용언(동사·형용사)을 수식할 수 없다. ‘완전’은 “법률시장 완전 개방” “임금협상 완전 타결” “불순물 완전 제거” 등처럼 일부 명사 앞에 쓰인다. 명사가 형용사와 동사를 각각 수식하는 구조인 “완전 예뻐요” “완전 좋아요”와 “완전 사랑합니다” 형태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다.   용언을 꾸미는 품사는 부사다. “정말 예뻐요” “진짜 좋아요” “많이 사랑합니다”와 같이 고쳐야 자연스럽다. 아주·몹시·매우·무척·엄청·너무 등 문맥에 맞게 부사를 적절히 선택하면 된다.   부사를 만드는 접사나 부사어 자격을 갖게 하는 부사격 조사 등이 붙으면 명사도 용언을 꾸밀 수 있다. ‘완전’에서 파생된 부사 ‘완전히’는 용언을 수식하는 말로 사용할 수 있으나 주로 변화를 나타내는 동사와 어울린다. ‘예쁘다’ ‘좋다’ ‘사랑하다’와는 의미상 어울리지 않는다.     “맡은 일을 완전히 끝냈다” “둘은 완전히 갈라섰다” 등과 같이 써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완전 함정 임금협상 완전 법률시장 완전 불순물 완전

2025-01-05

[우리말 바루기] 일상과 다르다는 말 ‘채’

의존명사 ‘채’는 주로 ‘-은 채(로)’ 형태로 쓰인다. 어떤 동작이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걸 나타낸다. “옷을 입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노루를 산 채로 잡았다.” “벽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 때나 ‘채’가 오지는 않는다. 옷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건 일상적이지 않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어야 옷을 입은 상태로 물속으로 뛰어든다. 노루도 살아 있는 상태로 잡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 잠은 누구나 누워서 잔다.   ‘채’는 이처럼 일상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나 상태를 나타낼 때 자연스럽다.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구두를 신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같은 문장에서도 역시 알 수 있다. 고개를 숙이는 건 잘못을 저질렀다든가 뭔가 사정이 있을 때다. 그런 상태에서 말할 때 ‘채’를 가져온다.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는 상황에 따라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숙이고’에서는 일상적이지 않다는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방에 들어갈 때 구두를 신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 평범하지 않으니까 ‘구두를 신은 채’라고 하는 거다.   이런 기준이나 쓰임새에 기대면 다음 같은 문장은 어색해 보인다. “그는 모자를 벗은 채 인사했다.” 이 문장은 “그는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건 일반적인 일이니까.   ‘인사’ 대신 ‘거수경례’를 넣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는 모자를 벗은 채 거수경례했다.” 거수경례는 모자를 쓰고 하는 게 더 일상적이다. “한복을 차려입은 채 절했다”는 “한복을 차려입고 절했다”가 자연스럽다.우리말 바루기 입고 물속 기대면 다음

2025-01-02

[우리말 바루기] 이 자리를 빌어(?)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 출근, 회사 e메일을 열어 보면 대표의 신년사가 도착해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신년사에는 대부분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와 같은 문구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이처럼 ‘이 자리를 빌어’라고 돼 있다면 어색한 부분을 발견하지는 않으셨는지?   우리말 바루기를 열심히 읽어 온 독자라면 알 법도 하다. 바로 ‘빌어’라고 한 표현에 문제가 있다.   ‘빌어’는 많은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곧잘 나오는 표현이다. “이 자리를 빌어 임직원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어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에서도 ‘빌어’가 나온다. 여기에서 ‘빌어’는 모두 잘못된 표현으로, ‘빌려’가 맞는 말이다.   ‘빌어’는 ‘빌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간청하거나 호소·사죄할 때 사용한다. “그들의 앞날에 더 큰 영광이 있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범인은 피해자의 가족에게 용서를 빌었다”와 같이 쓸 수 있다.   ‘빌려’는 ‘빌리다’를 활용한 말이다. 남의 물건이나 돈을 나중에 다시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쓴다는 의미가 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와 같은 경우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기회를 이용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린다”가 이런 예다. ‘이 기회를 이용해 말씀드린다’는 의미가 된다.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해 따른다는 뜻을 나타낼 때도 ‘빌리다’가 쓰인다. “옛 성현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과 같은 경우다. 이때도 ‘빌어’라고 쓰면 틀린 말이 된다. “법률 전문가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수필이란 형식을 빌려~”처럼 사용된다.   ‘빌어’와 ‘빌려’는 헷갈리기 십상이다. ‘빌려’를 써야 할 자리에 ‘빌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빌리다’와 ‘빌다’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빌어’는 간청·호소·사죄를, ‘빌려’는 차용·임차를 나타낼 때 쓴다고 기억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감사 말씀 법률 전문가

2025-01-01

[우리말 바루기] ‘체신없는’ 행동은 없다

말이나 행동이 경솔해 위엄이나 신망이 없는 사람을 힐난할 때 “체신없게 행동하지 말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하거나 지위·위치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체신머리없다”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잘못된 것으로, ‘채신없다’ ‘채신머리없다’고 표현해야 올바르다.   ‘채신’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을 의미하는 ‘처신’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를 ‘몸 체(體)’와 ‘몸 신(身)’ 자로 이뤄진 ‘체신’으로 잘못 이해하고 쓰는 사람이 많다.   ‘체신(體身)’은 한자 뜻 그대로 ‘사람의 몸뚱이’를 의미하며, “체신이 작은 그는 평소에도 공깃밥 한 그릇을 채 비우지 못했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체신없다’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로, 의미상으로도 성립할 수 없다.   ‘채신’은 주로 ‘채신없다’ ‘채신머리없다’ 등처럼 쓰여 부정적 의미를 나타낸다. “다 큰 어른이 채신사납게 아이의 과자를 빼앗아 먹다니!”처럼 쓰이는 ‘채신사납다, 채신머리사납다’라는 표현도 있다. 이는 몸가짐을 잘못해 꼴이 몹시 언짢다는 말로, 역시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를 ‘체신사납다’ ‘체신머리사납다’라고 쓰는 경우도 꽤 있으나 이 또한 ‘채신’에서 파생된 말이므로 ‘체신’이라고 쓰면 안 된다.   이제 해가 바뀌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고 생각하니 올 한 해 나이와 위치에 맞는 행동을 해 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년에는 ‘채신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길 소망해 본다.우리말 바루기 체신 행동 부정적 의미

2024-12-30

[우리말 바루기] ‘그 와중에’가 품은 뜻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현대인. 늘 시간에 쫓기며 지내서일까? “바쁘신 와중에도 송년회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귀한 시간을 내준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지만 적절한 인사말은 아니다. 딴 겨를 없이 바쁜 상황과 ‘와중’이란 단어의 의미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와중’은 소용돌이 와(渦)와 가운데 중(中)으로 이뤄진 한자어다. 소용돌이는 물이 빙빙 돌면서 흐르는 현상으로, 힘이나 감정 따위가 뒤엉켜 요란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이런 소용돌이 가운데가 ‘와중’이다. 그 속에 있는 것과 같이 일이나 사건이 시끄럽고 복잡하게 벌어지는 상황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그는 피란 와중에 헤어진 형을 찾고 있다”처럼 쓰인다.   ‘와중’은 전란·태풍·지진과 같이 큰일이 일어나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상황이 복잡하게 꼬일 때 사용하는 게 자연스럽다. 일상생활에서의 바쁜 상황을 나타낼 때 “바쁘신 와중에도”와 같이 표현하는 건 지나치다. “바쁘신 중에도” “바쁘신 가운데도”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등으로 표현하면 된다.   더한 오용 사례도 있다. “기차를 타고 가던 와중에 네 생각이 났다” “모두 잠든 와중에 홀로 깨어 있었다” 등의 경우다. “기차를 타고 가던 중에” “모두 잠든 가운데”라고 하면 충분하다.우리말 바루기 와중 소용돌이 가운데 오용 사례 감정 따위

2024-12-29

[우리말 바루기] 낮추는 말 ‘~하는 자’

의존명사는 말 그대로 다른 말 아래에 기대어 쓰인다. ‘좋은 것, 감사할 따름, 웃을 뿐’에서 ‘것, 따름, 뿐’처럼 앞말에 기댄다.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에 “제 뜻을 시러(능히) 펴지 못할 놈이 하니라(많다)”의 ‘놈’도 앞말 ‘못할’에 의지한다. ‘놈’이라고 해서 지금처럼 대상을 낮추는 말은 아니었고, 단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훈민정음 한문본에는 ‘못할 놈’이 ‘불가자(不可者)’로 돼 있다. 여기서 ‘자’는 ‘못할 놈’의 ‘놈’과 뜻은 같지만 쓰임새가 다르다. ‘과학자, 기술자, 노동자’의 ‘자’처럼 쓰였다. 의존명사가 아니라 낱말 끝에 붙어서 새로운 말을 만드는 접미사로 쓰인 거다. 이때 ‘자’는 ‘못할 놈’의 ‘놈’처럼 ‘사람’을 뜻한다. 이전에도, 지금도 낱말 끝에 붙는 ‘자’는 ‘사람’이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다. “낯선 자”에서처럼 ‘자’가 의존명사로도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어의 영향으로 보인다. 의존명사로 쓰이는 ‘자’는 의미도 달라져 ‘사람’과 ‘놈’ 사이쯤에 있다. 맥락에 따라 더 낮추고 덜 낮추는 차이는 있다. “미친 자, 저 자를 잡아라”에서 ‘자’는 홀대의 정도가 커 보인다. “미친 사람, 저 사람을 잡아라”와 확연한 차이가 난다. ‘부역자’를 더 얕잡고 싶으면 ‘부역하는 자’라고 하면 된다. ‘동조자’는 ‘동조하는 자’라고 하면 된다. 법조문이나 공문서에는 의존명사로 쓰이는 ‘자’가 더 흔하다. 당연하다는 듯이 ‘정치 활동을 하는 자’라고 쓴다.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편하다. 특별하지 않다면 ‘노력하는 자’보다는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게 더 좋겠다.우리말 바루기 훈민정음 언해본 정치 활동 과학자 기술자

2024-12-26

[우리말 바루기] ‘엄한’ 사람을 잡는다?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상에서는 소위 ‘신상 털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신상 털기’란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의 가해자 등 특정인에 대한 신상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공개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로 인해 애꿎은 피해자가 생겨나는 등 2차·3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엄한 사람이 가해자로 알려져 큰 피해를 봤다”에서와 같이 억울하게 오해를 받는 경우 ‘엄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말이다. ‘엄한’은 ‘엄하다’를 활용한 표현으로, ‘엄한 사람’은 규율을 적용하거나 예절을 가르치는 게 철저하고 바른 이를 의미한다.   위 문장에서는 ‘엄한 사람’이 아니라 ‘애먼 사람’이 바른말이다. ‘애먼’은 “애먼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다”에서와 같이 ‘일의 결과가 다른 데로 돌아가 억울하게 느껴지는’의 의미로 쓰인다. “애먼 짓 하지 마라”에서처럼 ‘일의 결과가 다른 데로 돌아가 엉뚱하게 느껴지는’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애먼’과 비슷한 의미의 말로 ‘애매하다’도 있다.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아 억울하다’는 의미다. 줄여서 ‘앰하다’고도 한다. “녀석이 저지른 실수 탓에 애매한[앰한] 사람까지 화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처럼 쓸 수 있다. 우리말 바루기 신상 정보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2024-12-25

[우리말 바루기] 감기 낳으세요?

인터넷에는 이런 그림이 올라 있다. “당신이 낳으라고 하신 우리 아들 감기예요” “아니 제가 언제…”라고 남녀가 대화하는 장면이다. 남자가 “감기 빨리 낳으세요”라고 인사한 것을 비꼬는 그림으로 생각된다.   주변에 감기 환자가 많은 요즘 혹여나 이처럼 “감기 빨리 낳으세요”라고 카톡이나 문자를 보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감기 빨리 낳으세요”는 구직 포털인 알바몬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충격적인 맞춤법 실수 1위에 오른 적도 있다.   ‘낳으세요’는 ‘낳다’의 어간 ‘낳’에 공손한 요청을 나타내는 ‘-으세요’가 붙은 형태다. ‘낳다’는 배 속의 아이를 몸 밖으로 내놓는 행위, 즉 출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감기 빨리 낳으세요”는 감기를 빨리 출산하라는 얘기가 된다.   병이 원래대로 회복되는 것은 ‘낳다’가 아니라 ‘낫다’다. ‘낫다’는 ‘나아, 나으니, 낫는’ 등으로 활용된다. ‘-으세요’라는 어미가 붙을 때는 ‘ㅅ’이 탈락해 ‘나으세요’가 된다. 따라서 감기에서 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면 “빨리 나으세요”라고 해야 한다. 간혹 ‘낫으세요’라고 쓰는 사람도 있는데 이 역시 잘못된 말이다.   물론 ‘나으세요’를 ‘낳으세요’로 쓰는 건 단순한 실수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실수가 나오면 아무래도 체면이 깎이게 마련이다.우리말 바루기 감기 감기 환자 맞춤법 실수 우리 아들

2024-12-24

[우리말 바루기] ‘효과’의 발음 [효꽈] 괜찮다

말할 때 누구보다 발음을 정확하게 해야 하는 직업이 아나운서다. 그러다 보니 아나운서는 사전에 나와 있는 표준발음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발음하도록 훈련하고 방송에서도 그대로 구현한다. 문제는 일반인이 보편적으로 발음하는 것과 다른 표준발음을 사전에 맞추어 하다 보니 듣는 사람이 불편한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바로 ‘효과’다. 일반인은 대체로 [효꽈]라고 말하지만 아나운서들은 예외 없이 [효과]로 발음한다. 특히 TV에서 예전에 유도 경기를 중계할 때 아나운서가 “우리 선수가 효과[효과]를 하나 얻었습니다”고 소리치는 경우가 있었다. 유독 아나운서만 [효과]라고 하니 듣는 사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처럼 그동안 효과[효과] 발음이 일반인의 언어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어서 불만이 적지 않았다. 다행히 국립국어원은 이 발음을 [효꽈]로도 할 수 있다고 표준발음을 변경했다. 그러니까 이제 억지로 [효과]로 발음하지 않아도 된다.   ‘관건’과 ‘교과’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사전에는 [관건]과 [교과]로 발음한다고 돼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이렇게 발음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거북함이 따랐다. 국립국어원은 ‘효과’와 함께 이들 단어의 발음도 된소리를 인정해 사전에 추가했다. 앞으로는 아나운서든 일반인이든 이들 단어를 편리한 대로 [효꽈] [관껀] [교꽈]로 읽어도 된다. 우리말 바루기 발음 유도 경기 언어 생활 이들 단어

2024-12-23

[우리말 바루기] 바래지 말고 바랍시다

연말이면 문자 메시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2025년은 더욱 행복한 한 해가 되길 바래” “내년에도 항상 건강하길 바래요” 등과 같은 덕담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여기엔 잘못된 표현이 숨어 있다.   어떤 일의 상태가 생각이나 바람대로 이루어지길 기원할 때 이처럼 ‘~길 바래’ 또는 ‘~을 바래’라고 쓰곤 한다. 그러나 ‘바래’는 틀린 표현으로, ‘바라’로 고쳐야 한다.   이런 뜻으로 쓰이는 단어는 ‘바래다’가 아니라 ‘바라다’가 바른말이기 때문이다. ‘바라다’의 어간 ‘바라-’에 어미 ‘-어/아’가 붙으면 ‘바라아’가 된다. 모음 ‘ㅏ, ㅓ’로 끝난 어간에 ‘-아/-어, -았-/-었-’이 어울릴 적에는 준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규정에 따라 ‘바라아’는 줄어든 형태인 ‘바라’로 쓰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즐거운 방학 보내길 바라”에서와 같이 ‘바라’라고 써야 한다.   ‘바라다’를 명사형으로 표현할 때도 “나의 바램은~”과 같이 ‘바램’이라고 잘못 쓰기 쉽다. 그러나 이 역시 ‘바라다’의 어간 ‘바라-’에 ‘-ㅁ’을 붙여 명사형을 만들어 주면 되므로 ‘바람’이라고 해야 한다.   ‘바래다’는 “누렇게 바랜 편지”에서처럼 ‘볕이나 습기를 받아 색이 변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변색을 의미할 땐 ‘바래다’, 소망을 의미할 땐 ‘바라다’를 쓴다고 기억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문자 메시지 맞춤법 규정

2024-12-22

[우리말 바루기] ‘옛부터’ ‘예부터’

예로부터 내려오는 민간요법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쌓인 치료법도 많지만 잘못 알려진 것들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옛부터 시골에서는 벌에 쏘이면 민간요법으로 쏘인 부분에 된장을 바르기도 한다” “예부터 화상을 입었을 때는 소주를 부어 열을 빼곤 했다” 등이 잘못 알려진 대표적 민간요법이다.   지나간 과거를 가리킬 때 ‘예’와 ‘옛’ 중 어떤 걸 써야 할지 헷갈린다는 이가 많다. ‘예로부터’를 ‘옛로부터’라고 쓰진 않지만, ‘~부터’가 바로 뒤에 올 경우 ‘예부터’라고 써야 할지, ‘옛부터’라고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예’와 ‘옛’은 지나간 과거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품사가 다르므로 주의해 써야 한다. ‘예’는 아주 먼 과거를 뜻하는 명사이므로 조사나 접사와 결합할 수 있다. ‘옛’은 ‘지나간 때의’를 의미하는 관형사로, 뒤에 오는 체언(명사·대명사·수사)의 내용을 꾸며 주는 역할을 한다.   ‘~부터’는 어떤 일이나 상태 등에 관련된 범위의 시작임을 나타내는 보조사이므로 명사 뒤에 붙일 수 있다. 따라서 관형사인 ‘옛’이 아닌 명사 ‘예’와 결합해 ‘예부터’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예스러운’과 ‘옛스러운’ 중 올바른 표현은 무엇일까. ‘~스러운’은 ‘그러한 성질이 있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스럽다’를 활용한 표현이므로, 이 역시 명사와 결합할 수 있다. 따라서 ‘옛스러운’이 아닌 ‘예스러운’이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옛’은 ‘옛 추억’ ‘옛 친구’ 등과 같이 뒤에 체언이 올 때 쓸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우리 조상들

2024-12-19

[우리말 바루기] 느리다, 늘이다, 늘리다

‘길이’는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의 거리다. 그렇지만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낮과 밤의 길이’에서처럼 ‘시간’을 나타낼 때도 있고, ‘글의 길이’에서처럼 ‘분량’을 가리킬 때도 있다. ‘강폭’은 “강을 가로질러 잰 길이”인데, 이때 ‘길이’는 ‘면적’도 아우른다.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길이’는 더 섬세하게 의미가 갈라진다.   ‘느리다’ ‘늘이다’ ‘늘리다’는 이런 ‘길이’와 연관돼 있다. 길이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뜻이 구분된다. ‘느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동작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다. 단순히 시간의 길이가 길다는 걸 뜻한다. ‘늘이다’ ‘늘리다’와 명백하고 뚜렷하게 차이가 나서 이 말들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렇지만 ‘늘이다’와 ‘늘리다’는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한다면 경계가 선명해 보이지만, 이 기준을 따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사전은 표면적인 ‘길이’와 관련된 상황에선 무조건 ‘늘이다’를 쓰라고 안내한다. 그래서 “바지 길이를 늘이다”가 된다 ‘늘리다’는 ‘넓이’ ‘부피’ ‘분량’ 등과 관계될 때만 쓰라고 한다. ‘늘리다’는 ‘길이’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규모를 늘리다” “학생 수를 늘리다” 같은 때만 ‘늘리다’가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앞에서 밝혔듯이 ‘길이’는 단순하지 않다. ‘길이’는 면적이나 분량 같은 것들도 수반한다. ‘늘리다’도 ‘길이’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바지 길이를 늘이다”는 면적이 늘어나는 걸 의미한다. 따라서 “바지 길이를 늘리다”가 더 적절하다. ‘훈민정음 국어사전’도 그렇다고 설명한다.우리말 바루기 바지 길이 훈민정음 국어사전 사전적 의미

20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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