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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덮히다’가 아니라 ‘덮이다’

어린 시절에는 눈이 오면 뛰어놀 생각에 무작정 좋았는데, 어른이 되니 출퇴근길이 걱정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눈으로 뒤덮혀 새로운 세계에 온 것 같다”는 낭만적인 생각은 어른이 되면서 점점 사라지고, “눈으로 뒤덮힌 도로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교통 속보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게 현실이다.   ‘뒤덮다’를 피동 표현으로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은 실수를 많이 한다. ‘뒤덮이다’와 ‘뒤덮히다’는 발음이 비슷하다 보니 어느 것이 바른 표현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뒤덮다’의 피동사는 ‘뒤덮히다’가 아닌 ‘뒤덮이다’이다. 따라서 ‘뒤덮히고, 뒤덮히면, 뒤덮힌, 뒤덮혀, 뒤덮혔다’ 등은 모두 ‘뒤덮이고, 뒤덮이면, 뒤덮인, 뒤덮여, 뒤덮였다’와 같이 고쳐야 바른 표현이 된다.   ‘덮다’ 또한 마찬가지다. ‘덮다’의 피동사 역시 ‘덮히다’가 아닌 ‘덮이다’이므로, “베일에 덮여 있던 사건”에서와 같이 ‘덮이다’를 활용한 표현을 써야 바르다.   피동사(남의 행동을 입어서 행해지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와 사동사(문장의 주체가 자기 스스로 행하지 않고 남에게 그 행동이나 동작을 하게 함을 나타내는 동사)를 만들 때 접사 ‘이’와 ‘히’ 중 어떤 것을 써야 할지 무척 헷갈린다. 그런데 피동과 사동이 만들어지는 데 일정한 규칙이 없어 각각의 어휘에 따라 어떤 접사가 오는지 찾아보고 익히는 수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덮히다’ ‘뒤덮히다’가 아닌 ‘덮이다’ ‘뒤덮이다’를 활용한 낱말을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는 걸 기억하자.우리말 바루기 피동 표현 교통 속보

2025-03-02

[우리말 바루기] ‘우리나라’와 ‘저희 나라’

우리나라 사람은 3·1운동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릴까. 유관순 열사와 대한 독립 만세라고 답한 이가 가장 많았다. 지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실시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다.   여기에 쓰인 표현처럼 우리 한민족이 세운 나라를 스스로 이를 때 ‘우리나라’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우리나라’가 가끔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나 윗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저희 나라’로 둔갑하는 경우가 있다. “저희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마음이 모여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와 같이 얘기하는 것은 어법에 어긋난다. 같은 국민끼린 ‘우리나라’라고 해야 한다.   왜일까. ‘저희’는 ‘우리’의 낮춤말이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를 높이는 방법이다. 청자를 포함하는 같은 구성원끼리의 대화에서 ‘저희’라고 하면 어색하다. 듣는 사람도 같은 구성원이므로 높여야 할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한동네 사람이나 같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끼리 ‘저희 동네’ ‘저희 회사’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 동네’ ‘우리 회사’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이웃 동네 어른에게 “저희 동네는 인심이 좋아요”라고 할 순 있지만 같은 동네 어른에게 “저희 동네는 인심이 좋아요”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외국인들에게 “저희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고 얘기하는 것은 괜찮을까.   “우리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고 쓰는 게 적절하다.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국가나 민족은 대등한 관계이므로 굳이 자기 나라나 민족을 낮출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런 이유에서 방송 등에서 ‘저희 나라’라고 얘기했다가 비난받았던 정치인과 연예인도 꽤 있다. 국립국어원도 ‘저희 나라’ ‘저희 민족’이 아니라 ‘우리나라’ ‘우리 민족’으로 쓰는 게 자연스럽다는 입장이다. “새해가 되면 한국에선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와 같은 외국인의 질문에 “우리나라에선 떡국을 먹습니다”로 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나라 저희 나라 자기 나라 우리나라 사람

2025-02-27

[우리말 바루기] 꾐에 빠지면 안 돼요

전화 금융 사기 기법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 경찰·검찰은 물론 시중은행까지 사칭하며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금융감독원이라 칭하면서 이자가 저렴한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해준다며 한 푼이 절박한 사람들을 속이는 사례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를 전하는 소식 가운데는 “꾀임에 넘어간 사람 중 대부분은 현금을 이체해 줬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꾐에 넘어가 평범한 이들이 한순간에 범죄의 늪에 빠지고 있다” 등과 같은 표현을 접할 수 있다.   이처럼 속아 넘어감을 뜻하는 단어로 ‘꾀임’ 또는 ‘꾐’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것이 맞는 말일까?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속이거나 부추겨 자기 생각대로 끈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기본형이 ‘꼬이다’이다. ‘꼬이다’를 줄여 ‘꾀다’고 쓸 수도 있다. 명사형으로 만들 경우 ‘꼬이다’는 ‘꼬임’, ‘꾀다’는 ‘꾐’이 된다. 따라서 ‘꼬이다’나 ‘꾀다’, ‘꼬임’이나 ‘꾐’ 어느 것을 써도 무방하다.   ‘꾀다’에 피동형을 만들어주는 접사 ‘-이-’를 붙여 ‘꾀이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때는 ‘꼬이다’ ‘꾀다’와는 반대로 ‘~에게 꾐을 당하다’ ‘남의 꾐에 말려든다’는 뜻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이자가 낮은 대출로 갈아타게 해준다는 말에 꾀여(←꾀이어) 사기를 당했다” 등처럼 쓸 수 있다.   서두의 예문 “꾀임에 넘어간 사람 중 대부분은 현금을 이체해 줬다”는 문장에서는 단순히 남을 속이거나 부추기는 것을 뜻하므로 ‘꾀임’이 아니라 ‘꼬임’ 또는 ‘꾐’이라고 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전화 금융 자기 생각 소식 가운데

2025-02-26

[우리말 바루기] ‘회자’가 그런 뜻이었어?

‘회자(膾炙)’는 회와 구운 고기라는 의미다. 오래 사랑받으면서 사람들이 즐기던 음식이란 점에서 칭찬을 받으며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림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그런데 날고기를 뜻하는 회자가 어감상 마치 ‘돌아올 회(回)’를 사용해 과거의 일을 언급한다는 의미로 오용하는 경우가 많다.   바른 사용의 예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있는 영화 ‘살인의 추억’은 한국 스릴러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처럼 쓰인다.   부정적이거나 나쁜 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땐 ‘회자’란 말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럴 때는 “구설에 오르다”는 표현을 써야 한다. 안 좋은 일로 남의 얘깃거리가 될 때 사용한다. 이를 “구설수에 오르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잘못된 표현이다. ‘구설’은 시비하거나 헐뜯는 말이고 ‘구설수’는 그런 말을 들을 운수다.   “구설에 오르다” 대신 “말밥에 오르다” “입길에 오르다”로도 표현한다. ‘말밥’은 좋지 못한 이야기의 대상을, ‘입길’은 남의 흉을 보는 입놀림을 이르는 말이므로 안 좋은 일로 다른 사람의 말거리가 될 때 쓸 수 있다. “입방아에 오르내리다”도 사용할 수 있지만 ‘입방아’의 대상은 나쁜 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어떤 사실을 화제로 삼아 이러쿵저러쿵 쓸데없이 뒷이야기를 할 때 두루 쓰인다.우리말 바루기 회자 회자가 어감상 한국 스릴러

2025-02-25

[우리말 바루기] 뼈다구(?) 해장국

전날 술을 먹고 불편해진 속을 푸는 데는 역시 해장국이 최고다. 해장국에는 ‘콩나물 해장국’ ‘황태 해장국’ 등이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돼지등뼈를 주재료로 해서 우거지 등을 넣어 끓인 해장국이다. 이 해장국은 술을 먹은 다음날 속을 풀 때도 좋지만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그럼 이 해장국은 무슨 해장국이라 부를까?   ㄱ. 뼈다구 ㄴ. 뼈다귀 ㄷ. 뼉다구 ㄹ. 뼉다귀   간판이나 메뉴판에는 ‘뼈다구 해장국’이라 적혀 있는 곳이 많지만 ‘뼈다구’는 방언, 즉 사투리다. ‘뼉다구’와 ‘뼉다귀’ 역시 방언이다. ㄴ. ‘뼈다귀’만 표준어다. ‘뼈다귀’는 뼈의 낱개를 가리키는 말이다. “뼈다귀를 손으로 잡고 살집을 뜯어 먹었다”처럼 쓰인다. ‘뼈다귀’는 ‘뼈’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 친구는 너무 말라서 뼈다귀만 남은 것 같다” 등과 같이 사용된다. 따라서 ‘뼈다귀 해장국’이 바른 이름이다. 이 해장국에 감자를 많이 넣고 끓이면 ‘뼈다귀 감자탕’이 된다.   ‘뼈다구’나 ‘뼉다구’가 표준어가 아니므로 ‘개뼈다구’나 ‘개뼉다구’도 마찬가지다. ‘개뼈다귀’가 맞는 말이다. ‘개뼈다귀’는 개의 뼈다귀를 뜻한다. ‘개뼈다귀’는 별 볼 일 없으면서 끼어드는 사람을 경멸하는 태도로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건 또 어디서 굴러먹은 개뼈다귀야”처럼 쓰인다.우리말 바루기 뼈다구 해장국 뼈다구 해장국 뼈다귀 해장국 콩나물 해장국

2025-02-24

[우리말 바루기] '수입산 철강'의 오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 전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 등 외국에서 만들어진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 폭탄’을 안겨 각국이 대응에 나섰다. 한국 정부도 관세 면제를 위해 대미 접촉에 나서는 등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산 철강에 25%의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와 같은 기사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잘못된 표현이 하나 숨어 있다. 바로 ‘수입산’이다.   ‘-산(産)’은 주로 지역이나 연도를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거기에서 또는 그때에 산출된 물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따라서 ‘제주산 갈치’ ‘벨기에산 초콜릿’ ‘1997년산 와인’ 등처럼 쓸 수 있다. 지역명을 붙이지 않고 자기 나라에서 생산된 물건을 얘기할 땐 ‘국내산’ 또는 ‘국산’이라 쓰기도 한다.   문제는 외국에서 생산된 물건을 가리킬 때다. 국가명을 붙이지 않고 포괄적으로 얘기할 때 예문처럼 ‘수입산’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외국산’이라고 해야 바르다.   ‘수입’은 다른 나라의 상품이나 기술 등을 국내로 사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산’이 장소나 연도 뒤에 붙는다는 걸 기억한다면 ‘수입산’이 영 어색한 표현이란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수입’이란 단어를 꼭 쓰고 싶다면 ‘-산’을 빼고 ‘수입 철강’ ‘수입 알루미늄’이라고 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수입산 철강 수입산 철강 수입 철강 수입 알루미늄

2025-02-23

[우리말 바루기] 단어도 짝이 있다

우리 속담에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짝이 있다는 얘기다. 단어도 마찬가지다. 단어도 저마다 타고난 속성이 있어 둘을 붙여 놓았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있다. 앞말의 특성 때문에 뒷말의 선택에 제약이 온다고 해서 이런 것을 ‘의미상 선택 제약’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기지개’다. “꽃망울이 기지개를 펴는 봄날이다” “벚꽃들이 기지개를 펴고 봄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기지개를 펴고 활기차게 움직여 보자” 등처럼 사용된다. ‘기지개’는 피곤할 때 몸을 쭉 펴고 팔다리를 뻗는 일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기지개’ 자체에 ‘펴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의미가 중복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펴다’가 아니라 ‘켜다’와 결합시켜 ‘기지개를 켠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예문도 ‘지지개를 켜는’ ‘기지개를 켜고’로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앙금’도 이런 단어 가운데 하나다. ‘앙금’은 녹말 등의 부드러운 가루가 물에 가라앉아 생긴 층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구성원 간 앙금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처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미 다 가라앉아 생긴 것이 ‘앙금’이어서 더는 가라앉을 수가 없다. ‘앙금이 가시지 않고 있다’와 같이 ‘가시다’는 표현을 활용해야 한다.   ‘하락세’도 마찬가지다 “하락세로 치닫고 있다”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러나 ‘하락세’는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치닫다’는 위쪽으로 달려 올라가는 것을 뜻하므로 서로 충돌이 일어난다. “하락세로 내리닫고 있다”나 “하락세로 내닫고 있다”고 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단어 단어 가운데 의미상 선택 우리 속담

2025-02-20

[우리말 바루기] 나날이, 다달이, 철철이

“일취월장이 뭔지 알죠?”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난감하다. 나만 모르는 줄임말인가 의심부터 들어서다. 인터넷엔 ‘일찍 취업해 월급 모아 장가가자’ ‘일요일에 취하면 월요일에 장난 아니다’는 언어유희가 떠돈다. 일취월장(日就月將)은 ‘시경’에서 나온 말이다. 나날이 다달이 자라거나 발전함을 이른다.   얼마 전 일취월장의 뜻풀이에 나온 ‘다달이’가 화제가 됐다. 한 교양 프로그램의 문제로 출제되면서다. 달마다를 이르는 말로 ‘달달이’를 정답으로 꼽은 사람이 많았지만 ‘다달이’로 표기하는 게 바르다. 매일매일을 이르는 ‘나날이’도 ‘날날이’로 사용하지 않는다.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때 ‘ㄹ’ 소리가 나지 않으면 안 나는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제28항에 따른 것이다. ‘ㄹ’ 받침을 가진 말이 합성어나 파생어를 형성할 때 ‘ㄹ’ 받침이 발음되지 않게 바뀌었다면 바뀐 대로 표기한다는 얘기다. 대체로 끝소리 ‘ㄹ’은 ‘ㄴ, ㄷ, ㅅ, ㅈ’으로 시작하는 말 앞에서 탈락한다. 따님(←딸+님), 차돌(←찰-+돌), 화살(←활+살), 바느질(←바늘+질) 등과 같이 쓰인다.   ‘날’은 ‘ㄴ’으로, ‘달’은 ‘ㄷ’으로 각각 시작하는 말이므로 ‘날날이’ ‘달달이’가 아니라 그 앞의 받침 ‘ㄹ’이 탈락해 ‘나날이’와 ‘다달이’가 된다. 돌아오는 철마다를 뜻하는 ‘철철이’의 경우는 이와 다를까? ‘ㄹ’ 받침 뒤에 ‘ㅊ’으로 시작하는 말이 왔으므로 앞의 ‘ㄹ’을 탈락시키지 않고 그대로 ‘철철이’라고 표기한다. 우리말 바루기 교양 프로그램 맞춤법 제28항

2025-02-19

[우리말 바루기] '애띤' 아닌 '앳된' 얼굴

어릴 적에는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 어서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나이가 들면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은 게 대부분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만약 누군가에게서 “나이에 비해 애띄어 보인다” “애띤 얼굴이 내 나이보다 다섯 살은 어려 보인다” “얼굴이 앳뗘 보여 나보다 훨씬 어린 줄만 알았다” 등과 같은 말을 듣는다면 더없이 기분이 좋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듣고 싶다면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애티가 있어 어려 보인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이처럼 ‘애띠다’ ‘애띄다’를 활용한 ‘애띄어’ ‘애띤’ ‘앳뗘’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 “붉은빛을 띤 장미”에서와 같이 감정이나 빛깔 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낼 때 ‘띠다’고 표현하다 보니 ‘아이(애)’ 같은 느낌을 ‘띠고’ 있다고 생각해 ‘애띠다’고 쓰는 듯 보인다. 여기에 사이시옷을 붙여 ‘앳띠다’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띠다’를 ‘띄다’로 바꿔 ‘애띄다’ ‘앳띄다’와 같이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잘못된 표현이다. 애티가 있어 어려 보인다는 뜻으로는 ‘앳되다’가 바른말이다. ‘앳되고, 앳된, 앳돼’ 등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앞서 든 예문은 “나이에 비해 앳되어 보인다” “앳된 얼굴이 내 나이보다 다섯 살은 어려 보인다” “얼굴이 앳돼 보여 나보다 훨씬 어린 줄만 알았다” 등으로 고쳐야 한다.   얼굴뿐 아니라 목소리가 어리게 느껴질 때도 ‘앳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풋풋하고 앳된 목소리에 가슴이 설렜다” “앳된 음성이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얼굴 정작 나이

2025-02-18

[우리말 바루기] 더는 ‘더 이상’을 쓰지 말자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마 아직은 널 좋아하니까/ 더 이상 꾸미려 하지 마 원래 네 모습이 더 좋으니까…   ‘더 이상’이라는 노래 제목이 꽤 많다. 그 가운데 가사를 하나 옮긴 것이다. ‘더 이상’이란 말에서는 무언가 부정적인 요소가 생겨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상황이 그려진다. 연인 관계에서도 이러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이라는 노래 제목이 많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상에서도 ‘더 이상’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몇년 전 드라마 ‘SKY 캐슬’에서도 “더 이상 지옥에서 살기 싫어”라는 외침이 명대사로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자주 사용되는 ‘더 이상’이라는 표현에는 어법상 다소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더’는 ‘계속해’ 또는 ‘그 이상으로’를 뜻하는 말이다. “조금 더 기다리자”에서는 ‘계속해’란 의미로 쓰였다. “날씨가 어제보다 더 춥다”에서는 ‘그 이상으로’를 뜻한다. ‘이상(以上)’은 수량이나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더 많거나 나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만 20세 이상 가능하다” “둘은 보통 이상의 관계다”처럼 사용된다.   결국 ‘더’와 ‘이상’은 뜻이 비슷하고 ‘더’에 ‘이상’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더 이상’은 의미가 중복되는 말이다. 또한 부사는 동사나 형용사를 꾸미는 기능을 하는데 ‘더 이상’은 부사가 명사를 수식하는 형태라 지극히 기형적인 표현이다. ‘더’의 반대말이 ‘덜’인데 ‘덜 이하’라고 하면 몹시 어색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 이상’이 이렇게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영어의 ‘not…any more’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 이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로 암기하거나 단순 번역하면서 ‘더 이상’이란 표현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I can‘t stand any more.”를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로 번역하는 식이다.   해결은 간단하다. 문맥에 맞추어 ’더‘나 ’더는‘으로 바꾸면 된다. “네가 돌아온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더 이상 우리 관계를 지속할 수 없어”에서 ’더 이상‘은 각각 ’더‘ ’더는‘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연인 관계 sky 캐슬 이상 지옥

2025-02-17

[우리말 바루기] ‘다시 한 번’, ‘다시 한번’

직장인과 대학생이 가장 헷갈리는 맞춤법으로 띄어쓰기를 꼽은 적이 있다. 우리말에서 띄어쓰기는 정말 어렵다. 띄어쓰기의 어려움을 보여 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한 번’이다.     단위는 띄어 쓴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따라서 ‘한 번’이 횟수를 나타낼 때는 띄어쓰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한 번 해서 안 되면 두 번, 세 번 계속 해야 한다”처럼 표기하면 된다. 그러나 ‘한 번’이 시험 삼아 시도함, 기회 있는 어떤 때 등을 나타낼 때는 붙여 써야 한다. 합성어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한번 먹어 볼까”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등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은 어떻게 될까? “다시 한 번 손님을 쳐다보았다”는 문장을 보자. 과거 국립국어원은 이 경우의 띄어쓰기에 대한 질문에 ‘한 번’이 문맥상 횟수를 나타내면 띄어 쓰고 그렇지 않으면 합성어로 붙여 써야 한다고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서 ‘한 번’을 띄어야 한다, 붙여야 한다 논란이 많았다. 문맥으로도 의미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혼선이 이어지자 국립국어원은 다행히 2015년 표준정보보완심의회 의결을 거쳐 의미에 상관없이 ‘다시 한번’의 구 형태에서는 ‘한번’을 붙여 쓴다고 결정했다.   즉 문맥을 따지지 않고 ‘다시 한번’으로 붙여 쓰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시 한번’에서 ‘한번’은 무조건 붙여 쓰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문맥상 횟수 표준정보보완심의회 의결 과거 국립국어원

2025-02-16

[우리말 바루기] 양면작전과 양동작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달래고 으르는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 북한이 군사행동을 하면 후회할 것이라고 주장하다가도 자신은 누구보다 평화적인 해법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1기 집권 당시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게 된 과정도 제재와 대화를 병행한 대북 정책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는 것을 뭐라고 할까?   ‘양동(陽動)작전’이라고 하는 이가 많지만 ‘양면(兩面)작전’이라고 해야 바르다. “강한 힘을 기반으로 한 압박과 외교를 통한 대화를 적절히 구사해 온 양동작전이 김정은을 움직였다”와 같이 쓰면 안 된다. 이때는 ‘양면작전’이라고 하는 게 적절하다. 두 방면에서 동시에 하는 작전을 이르기 때문이다.   ‘양동작전’은 적의 경계를 분산시키기 위해 장비나 병력을 움직여 공격할 것처럼 적을 속이는 것을 말한다.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성동격서(聲東擊西)’와 뜻이 통한다. 영덕 장사상륙작전도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인민군에 대한 기만술을 펼친 양동작전의 하나였다.   ‘양면작전’과 ‘양동작전’은 다르다. “중국은 대미 통상 보복을 경고하고, 금융 부문을 포함한 중국 시장에 미국 기업이 접근하도록 장려하는 양동작전을 대책으로 논의해 왔다”고 하면 안 된다. ‘양면작전’으로 고쳐야 바르다. 우리말 바루기 양면작전 양동작전 영덕 장사상륙작전 도널드 트럼프 대북 정책

2025-02-13

[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다랗다’의 사연

기다랗고 가는 목에 타원형의 얼굴. 모딜리아니 초상화의 특징이다. 이런 화풍은 그의 병증이 한몫했다는 주장도 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 속 형태 변형이 심한 난시와 관련됐다는 것이다.   매우 길다는 의미의 단어 ‘기다랗다’도 잘못된 형태로 종종 표현되곤 한다. “긴 타원형의 얼굴 아래로 음악처럼 흐르는 길다란 목” “백조같이 길다랗고 가는 목”처럼 쓰면 안 된다. ‘기다란’ ‘기다랗고’로 고쳐야 바르다. ‘길다랗다’를 기본형으로 알고 잘못 활용한 경우다.   ‘길다’에 그 정도가 꽤 뚜렷하다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다랗다’가 붙은 말이므로 ‘길다랗다’로 읽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왜 어간 ‘길-’에서 ㄹ이 탈락한 ‘기다랗다’를 표준말로 삼은 걸까? 발음이 [기ː다라타]로 난다.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때 ㄹ소리가 안 나면 나지 않는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8항 규정에 따랐다.   ‘높다랗다(←높다)’와 같이 용언의 어간 뒤에 자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된 말은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는 게 원칙이나 ‘기다랗다’는 변한 형태를 표준어로 삼았다. ‘가느다랗다(←가늘다)’도 같은 예다.   ‘짤따랗다(←짧다)’는 왜 이런 형태가 됐을까? 겹받침의 끝소리가 드러나지 않을 땐 소리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1항 규정 때문이다. [짤따라타]로 발음되므로 ‘짧’에서 ㅂ은 버리고 뒤의 접미사 ‘-다랗다’도 소리를 반영해 ‘짤따랗다’가 됐다. ‘널따랗다(←넓다)’ ‘얄따랗다(←얇다)’도 같은 이유로 표기가 정해졌다. ‘굵다랗다(←굵다)’는 같은 겹받침 단어이지만 뒤에 있는 받침인 ㄱ이 발음되므로 원형을 밝혀 적는다.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사연 모딜리아니 초상화 형태 변형 얼굴 아래

2025-02-12

[우리말 바루기] 후년과 내후년

“내후년에는 1위가 목표입니다!” 어느 기업의 사장이 직원들에게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 내년에는 시장 2위로 도약하고 그다음 해엔 업계 1위를 목표로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회사의 직원들은 사장의 목표가 몇 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까?   2025년을 기준으로 2027년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내후년’을 올해의 다음다음 해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장도 그렇게 설명한다. 내년(2026년)에는 시장 2위로 도약하고 그다음 해(2027년)엔 1위로 올라서겠다고 말했다. 이 설명대로라면 “후년에는 1위가 목표입니다!”라고 이야기했어야 옳다. 내년 다음 해는 ‘내후년’이 아니라 ‘후년’이다. 내후년은 3년 뒤를 가리키는 말이다. 올해(2025년)를 기준으로 하면 내후년은 2028년이다.   2027년이라 쓰고 내후년이라고 설명해선 안 된다. 내년(올해의 바로 다음 해)은 2026년, 후년(올해의 다음다음 해)은 2027년, 내후년(후년의 바로 다음 해)은 2028년이다. 내후년을 ‘후후년’이라고도 쓴다.   지나간 해의 경우 ‘작년→재작년→재재작년’으로 나타낸다. 각각 1년 전, 2년 전, 3년 전을 말한다. 순우리말로 표현하면 ‘지난해→지지난해(=그러께)→그끄러께’가 된다. ‘그러께’와 ‘그끄러께’는 2일 전을 나타내는 ‘그저께’와 3일 전을 나타내는 ‘그끄저께’와 혼동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후년과 내후년 후년과 내후년 다음다음 해로 내년 다음

2025-02-11

[우리말 바루기] ‘창난젓’으로 불러 주세요

명태만큼 다양한 이름을 가진 생선도 없다. 잡는 시기나 가공법, 색깔 등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생선이기도 하다. ‘내장은 창란젓, 알은 명란젓, 아가미로 만든 아가미젓….’ 강산에의 ‘명태’란 노랫말에도 나오듯 젓갈로도 친숙하다.   시와 노래의 소재가 될 정도로 사랑받는 국민 생선이지만 종종 잘못된 이름이 쓰인다. 강산에가 지난해 평양 공연 때 불러 깊은 인상을 남긴 ‘명태’의 가사에도 잘못된 표기가 눈에 띈다.   노래에 나오는 것처럼 명태로 만드는 젓갈은 크게 세 종류다. 아가미로는 ‘아감젓’을 만들 수 있다. ‘명란젓’은 명태의 알을 소금에 절여 담근 것이다. 또 하나의 재료는 창자다. 이 젓갈을 ‘창란젓’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올바른 용어가 아니다. 명태 창자를 이르는 말은 ‘창란’이 아니라 ‘창난’이다. 젓갈 이름도 당연히 ‘창난젓’이지만 ‘창란젓’으로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강산에가 ‘창란젓’으로 노래한 것을 우연으로 볼 수 없다. 식품업체들이 ‘창란젓’으로 제품명을 표기하는 일도 흔하다. 왜 이런 혼란이 생겼을까. ‘명란(明卵)젓’에 이끌려 ‘창란젓’으로 쓰기 쉽다. ‘창난’은 명태 창자를 일컫는 순우리말로 ‘난’은 알(卵)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창난’은 ‘명란’처럼 알이 아니므로 ‘창란’으로 쓰면 안 된다.   ‘토하젓’과 ‘토화젓’을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생이라는 민물 새우로 만든 젓갈을 ‘토화젓’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때는 ‘새우 하(蝦)’자를 써서 ‘토하(土蝦)젓’으로 표기해야 한다. ‘토화(土花)젓’은 굴과의 바닷물조개인 미네굴로 담근 젓갈을 말한다.우리말 바루기 창난젓 명란젓 아가미 젓갈 이름 명태 창자

2025-02-10

[우리말 바루기] ‘곽 티슈’가 아니라 ‘갑 티슈’

화장실에서 쓰는 화장지, 즉 둘둘 말아놓은 화장지를 뭐라 불러야 할까? ‘두루마리 화장지’ ‘두루마리 휴지’ 등과 같이 대부분 바로 대답한다. 맞는 이름이다. 그렇다면 화장대나 거실 등에 놓여 있는, 네모난 작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화장지는 뭐라 불러야 할까? 아마도 대답을 망설이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잠시 고민을 한 후 ‘곽 티슈’나 ‘각 티슈’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곽 티슈’나 ‘각 티슈’라는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정확한 이름은 ‘갑 티슈’ 또는 ‘갑 화장지’다.   ‘곽 티슈’라고 하는 것은 ‘갑’을 ‘곽’이라고 부르는 데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곽’은 ‘갑’을 잘못 표기한 것이라고 나와 있다. 즉 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는 ‘곽’이 아니라 ‘갑’이 바른말이다. 그러므로 ‘곽 티슈’가 아니라 ‘갑 티슈’라고 해야 한다.   ‘각’은 사전을 찾아보면 상자와 관련한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곽’을 ‘각’으로 발음하다 보니 ‘각 티슈’라는 말을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각 티슈’ 역시 바른말이 아니다. ‘곽 티슈’나 ‘각 티슈’가 아니라 ‘갑 티슈’라고 해야 한다. 국립국어원은 ‘티슈’가 외래어여서 ‘화장지’로 바꿔 부를 것을 권하고 있으므로 ‘갑 화장지’라 부르면 더욱 좋다.   우유를 담는 종이 용기를 가리킬 때도 이와 비슷하게 ‘우유곽’ ‘우유각’이라고 쓰기 십상이다. 이 역시 잘못된 표현이므로 ‘우유갑’이라 해야 한다. ‘우유갑’은 한 단어로 굳어졌다는 판단 아래 사전에 하나의 표제어로 올려 놓았다. ‘우유 갑’처럼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써야 한다.   그렇다면 ‘성냥곽’ ‘분곽’은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다. 성냥을 넣어 두는 작은 종이 상자는 ‘성냥갑’, 얼굴빛을 곱게 하기 위해 얼굴에 바르는 분을 담는 조그만 용기는 ‘분갑’이라고 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티슈 두루마리 화장지 종이 상자 두루마리 휴지

2025-02-09

[우리말 바루기] 외래어 받침의 비밀

초기 케이크의 형태는 꿀 바른 밀가루에 가까웠다고 한다. 여기에 견과류나 말린 과일이 들어가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cake(케이크)’란 영어 단어가 등장한 것은 13세기 무렵이다. 우리나라엔 구한말 선교사에 의해 소개됐는데 궁궐에서 커피와 함께 대접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이제는 기념일에 케이크가 빠지면 허전할 정도가 됐지만 표기법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생크림케잌 주문받아요” “컵케익 만드는 법”처럼 ‘케잌’이나 ‘케익’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식품의 제품명이나 제과점 진열대에도 ‘케잌’이나 ‘케익’으로 적어 놓을 정도다. 모두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고 각자 자신의 귀에 들리는 대로 옮기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올바른 표기는 ‘케이크’이다.   왜 ‘케잌’ 대신 ‘케이크’로 사용해야 할까? 외래어 표기법에선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일곱 글자 외에 ‘ㅋ, ㅌ, ㅍ, ㅊ’ 등이나 겹받침은 사용하지 못한다. ‘커피숖’을 ‘커피숍’으로, ‘디스켙’을 ‘디스켓’으로 적어야 하는 이유다.   고유어에선 ‘부엌, 콩팥, 풀숲, 봄꽃’과 같은 표기가 가능하다. 외래어에서 쓰지 않는 받침을 순우리말에 사용하는 이유는 이들 받침소리가 모두 발음되어서다. ‘봄꽃’은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만나면 [봄꼬치] [봄꼬츨]처럼 ‘ㅊ’ 소리가 난다. ‘봄꼳’이나 ‘봄꼿’으로 적지 않고 ‘봄꽃’으로 표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외래어는 다르다. ‘커피숍’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하면 [커피쇼비] [커피쇼베서]처럼 발음한다. [커피쇼피] [커피쇼페서]로 소리 내는 사람은 없으므로 ‘커피숖’으로 적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케익’은 왜 쓰지 못할까? 외래어의 경우 이중모음 뒤의 ‘k, t, p’ 발음은 받침으로 적지 않고 ‘크, 트, 프’로 표기하도록 돼 있다. ‘브레이크(brake)’를 ‘브레익’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cake’도 이중모음 뒤의 ‘k’ 발음에 해당하므로 ‘케익’이 아니라 ‘케이크’로 적는다.우리말 바루기 외래어 비밀 외래어 표기법 외래어 받침 모두 외래어

2025-02-06

[우리말 바루기] 옭맬까, 옥죌까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며 플라스틱 사용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지만 당장 손에 들고 있는 전화기에서부터 지하철 손잡이, 음식 포장재, 단추, 가구와 전등까지 의식주 모두에 플라스틱이 사용되지 않은 부분을 찾기 힘들 정도다. 싸고 편리하다고 마구 사용했던 플라스틱이 인간의 건강에 독이 돼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거북이의 목을 옭매고 있는 버려진 플라스틱 그물처럼 플라스틱은 이제 인간의 삶을 옭매고 있다” “플라스틱 저감을 위한 규제의 고삐를 더욱 옥죄어야 한다”와 같이 플라스틱 사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이 다수 올라 있다.   바짝 매거나 죄는 일을 뜻할 때 이처럼 ‘옭매다’ ‘옥죄다’를 쓰곤 한다. 그런데 여기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옭매다’와 ‘옥죄다’가 모두 조여서 매는 일을 떠올리게 해서인지 ‘옭매다’와 ‘옥죄다’ 둘 중 하나를 틀린 말로 생각하기 쉽다. 어떤 이는 ‘옭매다’ ‘옭죄다’를 바른 표현으로 알고 있기도 하고, ‘옥매다’ ‘옥죄다’가 바른 표현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그러나 ‘옭매다’ ‘옥죄다’가 바른 표현.   ‘옭매다’는 옭아매다를 줄여 쓴 표현으로, ‘옭다’는 단어에 이미 끈이나 줄로 단단히 감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결국 ‘옭매다’는 옭아서 맨다는 뜻.   ‘옥죄다’는 ‘옭다’가 들어간 표현이 아니다. ‘옥죄다’는 ‘옭아서 죄다’가 아닌 ‘옥이다’와 ‘죄다’를 더한 말이다. ‘옥이다’는 ‘옥다’의 사동사로, ‘안쪽으로 조금 오그라지게 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옥죄다’는 안쪽으로 오그라지게 잡아서 죈다는 뜻이 된다.   ‘옥죄다’를 활용하는 경우에도 “옥죄야 한다”와 같이 ‘옥죄야’를 쓰기 쉽다. ‘옥죄어야’를 줄여 쓴 것이므로 ‘옥좨야’가 바른 표현이다.우리말 바루기 플라스틱 사용 플라스틱 저감 플라스틱 그물

2025-02-05

[우리말 바루기] ‘있음’인가 ‘있슴’인가?

독자에게서 e메일을 받았다. ‘있습니다’ ‘없습니다’를 명사형으로 쓸 때는 ‘있슴’과 ‘없슴’으로 표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우선 ‘~읍니다’ ‘~습니다’에 대해 살펴보자. 지금은 ‘~습니다’로 쓰는 게 당연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과거의 글들을 보면 ‘~읍니다’로 적혀 있는 것이 있다. 나이 드신 분 가운데는 아직도 ‘~읍니다’를 사용하는 사람이 더러 있기도 하다. 예전에는 ‘~읍니다’와 ‘~습니다’를 함께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8년 표준어 규정이 바뀌었다. 모음 뒤에서는 ‘~ㅂ니다’, 자음 뒤에서는 ‘~습니다’를 쓰도록 개정됐다. ‘기쁩니다’ ‘학생입니다’는 모음 뒤에 ‘~ㅂ니다’가 붙은 경우다. ‘먹습니다’ ‘좋습니다’는 자음 뒤에 ‘~습니다’가 붙은 예다.   표준어 규정은 비슷한 발음의 몇 형태가 쓰일 경우 그 의미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중 하나가 더 널리 쓰이면 하나의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도록 정하고 있다. 당시 ‘~읍니다’와 ‘~습니다’의 의미 차이가 명확하지 않고 입말에서는 일반적으로 ‘~습니다’가 더 널리 쓰인다는 판단 아래 ‘~습니다’를 표준어로 삼았다.   이제 ‘~습니다’가 자연스럽게 사용되다 보니 명사형으로 만들 때에도 ‘~ㅁ’을 붙여 ‘있슴’ ‘없슴’과 같이 ‘~슴’으로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명사를 만드는 어미 ‘~ㅁ’은 항상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ㅁ’은 모음 또는 ㄹ 받침으로 끝나는 말 뒤에 붙어 그 단어가 명사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 준다. ‘끌리다’가 ‘끌림’, ‘만들다’가 ‘만듦’이 되는 것이 이런 예다.   하지만 자음으로 끝나는 말 뒤에 붙을 때에는 소리를 고르기 위해 매개 모음 ‘-으-’를 넣어 ‘-음’으로 쓴다. 따라서 ‘있다’는 ‘있음’, ‘없다’는 ‘없음’으로 적어야 한다.   다른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따로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서술어는 ‘~습니다’, 명사형은 ‘~음’이라고 기억하면 큰 문제가 없다.우리말 바루기 표준어 규정 의미 차이 명사 역할

2025-02-04

[우리말 바루기] 감정노동과 사물 존칭

“문의하신 상품은 품절되셨어요” “주문하신 음료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표현은 이제 사라졌을까? 여전히 많이 쓰이지만 이를 바로잡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고객의 폭언 등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인 감정노동자 보호법도 힘을 실어 준다.   그동안 모르고도 사용했지만 알고 나서도 사용했다는 것이 고객 응대 노동자들의 속사정이다. 사물에까지 경어를 붙여 말하는 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무례한 고객에게 꼬투리를 안 잡히기 위해서다. ‘사물 존칭’이 퍼지게 된 것은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과정과 무관치 않다. 고객 만족을 서비스의 최고 가치로 삼으면서 마구 쓰인 측면이 있다. 우리말에서 물건은 높임의 대상이 아니다. 선어말어미 ‘-시-’를 붙일 수 없다. “문의하신 상품은 품절되었어요”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처럼 표현하는 게 바르다.   말하는 이가 주어를 직접 높이는 게 아니라 주어와 관련된 대상을 통해 높이는 것을 ‘간접 높임’이라고 한다. 높임 대상의 소유물이나 신체 일부분, 관련된 사람을 높이는 방법이다. “선생님은 모자가 많으시다” “할머니는 발이 크시다”와 같은 표현이 해당된다. 이 간접 높임과 사물 높임은 다르다. “선생님은 모자가 많으시다”는 선생님의 소유물인 모자를 통해 주어를 높인 것으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찾으시는 모자 있으세요”는 ‘모자’ 자체를 높이는 말로 어색하다.   직원이 손님에게 어떤 행동을 공손히 요구할 때 “자리에 앉으실게요” 등과 같이 말하는 것도 잘못된 표현이다. ‘-시-’는 ‘앉다’의 주체를 높이는 선어말어미다. ‘-ㄹ게요’는 말하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는 약속이나 의지를 나타낸다. ‘-시-’와 ‘-ㄹ게요’를 어울려 쓰는 것은 어색하다. 자신이 자리에 앉겠다는 것인지, 상대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것인지 모호한 표현이 돼 버린다. “자리에 앉으실게요” 대신 “자리에 앉으세요” “자리에 앉으십시오” “자리에 앉으시기 바랍니다” 등으로 바꿔야 자연스럽다.우리말 바루기 감정노동 사물 사물 존칭 감정노동자 보호법 사물 높임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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