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글마당] 왜곡된 기억이 아니길

sooim lee, Gossip band, 2012, Oil on canvas, 20 x 16 inches.

sooim lee, Gossip band, 2012, Oil on canvas, 20 x 16 inches.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희미해진 기억을 정확히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나는 사진을 찍듯이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메모한다. 예전처럼 수첩에 쓰는 것이 아니라 아이폰 메모장, 스피커 폰에 대고 중얼중얼 기록해 놓는다. 시간이 지나면 나 편리한 대로 기억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한인 작가가 많지 않았다. 특별한 날엔 돌아가며 집에 초대해서 교분하고 전시회도 함께했다. 나이, 학교, 선후배 따지지 않고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만남이 안개 걷힌 듯 사라졌다. 한분 한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옛 시절을 떠올리며 메모장을 들여다본다.
 
오랜만에 나는 그 당시 어울렸던 작가들과 AHL 재단에서 그룹전을 하고 있다.
 
‘AHL 재단은 2024년 9월 20일부터 10월 26일까지 아카이브 전시회인 Visionary Catalysts: Wolhee Choe and the Empowerment of Korean Identity를 발표하게 되어 기쁩니다. 현수정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이 전시회는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변혁기에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들의 진화하는 문화적 정체성과 예술적 업적을 탐구합니다. 이 전시회는 영문학, 번역, 문화 옹호 분야의 선구자였던 최월희(1937.8.20 ~2013.5.27)의 아카이브에 초점을 맞춥니다. 참여 화가는 최성호, 조숙진, 정은모, 김향안, 김정향, 김미경, 김명희, 김포, 김차섭, 김환기, 김웅, 김원숙, 김영길, 이상남, 이수임, 임충섭, 민병옥, 백남준, 한용진.’
 
최월희 선생님은 내가 존경했던 분이고 참여하는 북클럽에서 강의하셨다. 2013년,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을 때 나의 메모장에는 ‘삼삼오오 몰려다니던 짙은 감청색 교복 속에 상기된 살구 같은 얼굴은 아니지만, 분을 뽀얗게 바른 친구들은 매달 두 번째 수요일 북클럽이 끝나고 나서도 리버사이드 공원에 앉아 강의를 복습한다.  
 
선생님은 에디스 와튼(Edith Wharton)의 순수시대(The age of innocence) 강의에서 사람이 사는 모습에는 4단계가 있다고 하셨다. ’1단계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돈에 연연하는 삶, 2단계는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삶, 3단계는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고 이끌어주는 삶, 4단계는 우리 나이에 딴 동네 취급하는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더 나은 삶을 재창조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에 눈을 돌리면서 미묘한 느낌과 기쁨을 느낀다. 또 다른 신세계를 볼 수 있는 다음 달 북클럽을 기다리며 마음이 설렌다. 우리는 훌륭한 스승을 옆에 둔 운 좋은 사람들이다.’라고 메모장에 쓰여 있다.
 
오프닝에서 누군가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보기 드문 좋은 전시회다.’ 아무래도 오래 작업한 분들의 작품이라서 자연스러운 붓 터치와 색감이 주는 깊은 맛과 오래 숙성된 깊은 향을 내뿜는 따뜻한 전시회가 아닐까?

이수임 / 화가·맨해튼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