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색다른 여행
수필
7월을 보내며 매년 해변 문학제가 열리는 시기인지라 모두 꿈을 저버릴 수 없어서 모인 여행, 미주 시학 발행인 정미셸 회장의 인도로 미국 동부 여행길에 올랐다.
올해 최우수상인 배정웅 문학상 수상자가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는 관계로 지난번 LA교육원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및 수상자 잔치에 참석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에 상패와 소정의 상금을 싸 들고 떠나는 길이었다.
핑계는 그렇고 우리는 신세계로의 여행이었다. 화씨 90도 푹푹 찌는 날씨의 LA를 떠나면서 동부 지역엔 1주일 내내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 예보에 우산까지 사 들고 길을 나섰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을 날던 국제선 비행기보다 좀 작았다. 그러나 비행 기간 내내 창밖을 내다보며 부푼 꿈을 안고 우리는 피곤함도 잊은 채 신이 나 있었다.
수놓은 듯 흰 구름 덩이가 꽃처럼 둥둥 떠 있는 무수한 산등성이를 보고 또 봤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이 정말 목화솜 같다는 감탄사를 쉴 새 없이 늘어놓았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진한 주황색 붉은 협곡, 물의 힘으로 만들어졌다는 장엄한 그랜드캐년이 보였고, 곧이어 도시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평화로운 고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모두 내릴 때가 되어서인지 조용하던 비행기 안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고 각자 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앞사람들 걷는 대로 한발 한발 짐을 끌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6시간 동안에 비행기 안은 너무 시원했고, 우리 일행은 “승무원 서비스가 좋네‘”, “만족스러웠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링컨 국제공항 주차장 안내판을 바라보며 밖으로 나왔다.
그곳엔 알래스카에서 내려온 평론가이자 영어 번역가인 강수영님이 렌터카를 몰고 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부 여행이 처음인 나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신비로운 세계를 걷는 기분, 오랫동안 살아온 LA는 큰 도시라도 고향 같았는데 그곳은 빨간 벽돌의 건물들이 즐비했다. “여긴 진짜 미국 같아”라고 했더니 누군가 “LA도 미국이에요”라고 해서 한바탕 웃으며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바로 앞에 높이 솟은 붉은 벽돌 건물은 시청이라고 했다. 그런데 시청 앞에는 하얗게 쏟아지는 분수대만 있을 뿐 광장이 없다. “여긴 서울 시청 앞이나 광화문처럼 광장이 없네. 데모도하고 큰 잔치도 하는 그런 광장” 하고 물으니 누군가 미국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못 본척하는 사회라 광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LA시청 앞에는 광장이 있었던가?” 기억을 떠올려보지만 가물거린다. 아무튼 수만개의 붉은 벽돌들의 위용을 숨죽이고 바라보았다.
다음날 시상식 행사가 있는 날이라 일찍 쉬기로 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그곳 한인타운에 있는 ’한강‘이라는 식당에 도착해 보니 한인 종업원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버지니아주 근처 4개 주에서 모인 시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를 낭송하고 수상자에게 상패와 상금을 전달했다. 수상자의 수상 소감을 듣고 즐거운 식사를 하느라 시간 가는줄 몰랐다.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찍고는 찻집으로 옮겨 담소를 나누다가 샌타모니카의 뒷골목 같은 길에 들어서자 기타 소리 등 시끌벅적했다. 우리는 소란한 곳을 피해 포토맥 강가에 앉아 발을 적시며 하루를 접었다.
다음날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생가를 방문했다. 관광버스가 6대나 서 있고 주차장마다 차들로 가득한 걸 보니 관광명소인 듯했다. 빨간 지붕, 넓디넓은 숲과 잔디밭 사잇길, 땡볕 쏟아지는 길들을 많은 관광객과 오락가락 거닐었다. 300여명이 넘는 노예들이 살았다는 곳을 지나 푸른 강변으로 옮겨 하얀 머리 독수리를 만날 수 있다는 가이드 말을 기대하며 페리호를 탓지만 독수리는 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영화 같은 이야기와 기념 사진관을 둘러보다가 돌아왔고,마지막날은 역시 광장 없는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가기로 했다. 독수리가 앉아있는 황금색 둥근 지붕의 연방의회 의사당, 워싱턴 기념관 일명 연필탑을 둘러보며 링컨 기념관을 들러 나오다가 쏟아지는 비를 피해 관광을 접기로 했다.
동행했던 시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알지 못했던 무수한 이야기를 들었고 신비한 세계도 경험했다. 즐거웠던 7월의 여행, 또 하나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엄경춘 / 시인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