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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손녀의 대학 입학

나는 자식 셋에  손주가 모두 다섯명이다.  그중에서 가장 위인 첫 손녀가 지난해 9월에 대학에 입학했다. 손녀는 들어가기 힘들다는 캘리포니아의 여러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미국 전역에서도 명문으로 꼽히는 대학들이다. 그중에 몇 학교는 장학금 혜택까지 있었다. 우리는 손녀에게 선택의 지혜를 주시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손녀는 스스로 여러 가지를 비교 분석해서 지금의 학교를 택했다.  
 
매주 목요일이면 손녀가 오는 날이다. 목요일 저녁은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식사를 한다. 그녀의 일주일간의 학교생활을 들으며 다투어 궁금한 내용들을  물어본다. 손녀가 처음 기숙사에 들어간 날이다. 사위는 먼저 손녀와 같이 짐들을 싣고 학교로 갔다.  딸이 엄마도 같이 가자고 하였다. 나는 궁금했던 차에 그 소리가 너무 반가워 동행했다. 학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학교에서 마련한 셔틀버스로 갈아탔다. 손녀의 옷가지 침구 등은 바퀴 달린 큰 바구니  두 개에다 나눠 넣어 방 호실을 써서 트럭이 싣고 갔다.  
 
많은 선배 학생들이 나와서 친절하고 정확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셔틀에서 내리니 손녀의 짐은 미리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바구니를 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기숙사 방에 들어갔다. 방은 세 명이 사용하게 되어있었다. 선배 둘과 미리 연락되어 손녀는 2층 침대를 사용하게 되었다. 천장과 맛닿아 있는 침대가 앞으로 1년 동안 자야 할 침대라고 생각하니 나는 겁이 덜컥 났다. 그동안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침대다.  
 
우리는 서로 말을 아끼며 침대 정리를 한 다음 올라가는 연습을 시켰다. 누웠다 일어나서 내려오는 연습도 수없이 시켰다.  우리는 걱정이 되면서도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침대 펜스가 높아 아늑하다, 옷장이나 책상이 아주 고급이다 등등 좋은 점을 들어 손녀를 기분 좋게 하였다.
 
일주일이 지났다. 손녀가 집에 오자마자 제 침대를 껴안고 누웠다. 마치 엄마의 포근한 가슴에 안기는 어린아이처럼 침대를 쓰다듬었다. 자기 침대가 무척 그리웠다 한다. 그래서인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수업이 끝난 목요일이면 집에 온다. 별일이 없으면 금요일 토요일은 집에서 공부하며 그리운 침대에서 자고 간다. 학교는 교통체증이 없는 시간이면 집과 한 시간 거리다.  
 
손녀를 키우려 미국과 한국을 수없이 왔다 갔다 했다. 비행기 타는 일이 너무 힘들어 우리 부부는 영주권까지 받으며 손녀를 돌보았다. 무려 18년이 되었다. 손녀는 유치원 초중고를 다니며 힘들다고 짜증 부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항상 밝게 웃으며 매사를 즐겁게 풀어나가는 긍정 마인드 손녀다.  
 
손녀가 18개월이 되었을 때 체류 기간 만기 한 달 전에 한국에 입국해야 했다. 딸과 사위가 일하는 낮에 어딘가 맡겨야 하는데 마땅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밤에 꿈을 꾸는데 어떤 수녀님이 나타나 양손을 벌리며 오라고 하였다. 그곳은 24개월이 된 아이부터 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도 안 했다. 그래도 실오라기만 한 희망을 가지고 이튿날 찾아가서 꿈 얘기를 했더니 난처해 하면서도 웃으며 허락해 주셨다. 나중에 들으니 손녀는 적응을 못하고  수녀님 치마만 잡고 종일 지냈다고 한다.
 
손녀는 유난히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할아버지가 식사 때 잔기침을 조금만 해도 금세 일어나 물을 갖다 드린다. 그리고 “할머니가 만든 음식은 다 맛있다”고 한다. 할아버지 생일에 축하의 말과 앞으로의 각오를 한글 편지로 썼는데 받침 하나 틀린 곳이 없었다. 손녀를 미국에서 키우며 우리도 다시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셈이 되었다. 유치원, 초중고의 많은 행사에 참여해 마냥 신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손녀는 바이올린을 했고 고등학교 때는 댄스팀 활동을 해  발표회가 많았다. 발표회는 항상 환상적이었고 손녀의 밝은 미래를 보는 듯했다.      
 
이제 대학생이 된 늠름한 우리 큰 손녀, 언니답게 누나답게 동생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자신감을 주었다. 본인의 더 큰 꿈을 향해 가다 보면 2층 침대 같은 어려움도 따르겠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로 극복하리라 믿는다.  오늘도 기숙사 앞에 내려주며 등에 십자 성호를 그어주었다. 손녀는 자기가 바빠서 집에 가지 못하면 우리더러 학교에 와서 점심을 같이 먹자고도 한다.  60평생 삶을 뒤로하고 미국 땅에 온 보람이 손녀의 마음 씀씀이에 모두 스며있는 것 같아 대견하고 흐뭇하다.

이영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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