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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음식의 힘, 전쟁 같은 맛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그레이스 M. 조의 책 ‘전쟁 같은 맛’을 읽는 내내 가슴이 무겁고 아팠다.  
 
이 책은 저자가 사회학 박사이며 대학교수의 관점에서 자기 어머니의 파란만장한 삶과 영혼을 성실하게 되살려낸 회고록이다.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6·25한국전쟁을 겪으며 기지촌에서 일하다 미국인 남편과 결혼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생존’해낸 인물이다. 말년에는 정신병인 조현병을 앓으며…. 폭력과 트라우마 속에서도 생의 조건과 정신의 고통을 뛰어넘는 존재였다.
 
저자는 어머니를 괴롭히는 조현병의 발병 원인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매번 혹독한 현실과 역사를 마주한다. 그렇게 마주한, 우리 현대사의 아프고 서러운 상처를 ‘혹독한 솔직함’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피할 수만 있다면 그냥 덮어두고 싶은 생생한 상처들을 꾸밈없는 민낯으로 까발려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끼리 나누는 은밀한 성찰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 당당하게 말한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칫 감정적 푸념이나 하소연으로 끝나기 쉬운 이런 이야기를 가슴 저미는 설득력으로 승화시키는 힘은 저자의 객관적이고 진지한 학문적 자세와 솔직하고 용기 있는 자기 고백에서 나온다. 저자 그레이스 M. 조는 상선 선원이던 백인 미국인 아버지와 기지촌에서 일하던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냉전 시기 외국인 혐오가 극심했던 워싱턴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이 책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2021년 전미 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작, ‘타임’지, NPR 2021년 ‘올해의 책’, 2022년 아시아-태평양 미국인 도서상을 수상했다.
 
나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음식의 힘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성찰이었다. “어디서든 음식이란 단순히 먹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먹는다는 것은 (적어도 인간에게 있어) 결코 단순한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기조를 이룬다.
 
뿌리 깊은 차별과 외로움으로 얼룩진 미국생활을 헤쳐 나가면서 엄마와 딸은 한국음식을 요리하고 같이 먹으면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위로받으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중요한 굽이마다 김치, 생태찌개 같은 한국음식이 등장해 이민 가정의 음식이 연결과 기쁨, 기억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길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음식을 중심으로 한 이런 근원적 정서는 미셀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 같은 작품에서도 실감 나게 드러난다.
 
식구란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이고, 사회에서는 회식을 통해 관계를 만들고 다진다. 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린 뒤에 함께 밥을 먹는 식사공동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거룩하게 여긴다. 잔치의 중심은 대개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이다. 음식이란 이렇게 사회적 인간관계의 중요한 연결고리다. 치유와 구원이 되기도 한다.
 
국제결혼으로 미국에서 살던 한국 여성들의 눈물겨운 증언도 음식의 잠재력을 실감 나게 말해준다. “이들은 은신처에서 함께 김치와 미역국을 먹으며 한국 이야기를 나눴다. (…) 맵고 마늘 맛이 강한, 발효된 한국 음식을 마침내 맛보는 경험은 마치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가 처음으로 물 한 모금을 마시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천천히 다가오던 죽음을 가까스로 피하는 일이었다.”
 
작가는 말한다. “이 기억의 전면에는 항상 음식이 있었다. 즐거움의 원천으로, 수입의 원천으로, 아니면 좀더 근본적인 생존의 방식으로, 음식을 먹는 장면으로 돌아가서 나는 발견했다. 엄마를 망가뜨린 것뿐만 아니라 엄마를 살아 있게 했던 것을.”
 
그렇게 그리워하며 숨어서 몰래 먹던 한국 음식이 지금은 K-푸드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자랑스럽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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