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I Love My Wife
나를 포함해 한국 남자들은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인색한 것 같다. 아내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사랑하니까 여태까지 살았다고 대답한다.
어릴 적 할아버지는 남자가 입이 무거워야 한다며 침묵(沈?)을 장려했다. 나도 모르게 말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평생 미국 정부 기관에서 일했지만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말이 많은가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서로 만나면 시시콜콜 말이 많다. 그것이 ‘heart-to-heart talk’ ,즉 흉금 없는 의사소통이란 것을 이 바보는 몰랐다.
한 번은 직장에서 부부 동반 저녁 식사 모임이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미국인들은 아내를 극진히 모셨다. 아내를 먼저 차에 태우고, 도착하면 문을 열고 손을 잡아준다. 나도 할 수 없이 그들이 하는 대로 흉내를 내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차에서 먼저 내려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20분 가까이 기다려도 아내가 들어오지 않았다. 주차장에 가 보았더니 아내는 차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내가 어떻게 하는지 테스트를 해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아내는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와 2~3시간 동안 통화를 하기도 한다. 그런 아내와 결혼하고 60년이 지났다. 그동안 아내가 말하고 나는 듣기만 하는 편이었다. 주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이들이 떠나간 지 오래되었다. 아내와 나는 이제는 할 말이 없다. 대화의 소재가 바닥이 났다. 우리는 한 집에서 두 살림을 차리고 산다. 나는 이층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TV를 보고, 낮잠을 잔다. 아내는 아래층에서 신문을 읽고, 성경을 복사하고, 컴퓨터로 유튜브 기사를 듣는다. 우리가 만나는 시간은 세 끼니때다.
이제는 아내에게 좀 더 관심을 두고 보살펴 주리라 생각해도 실천이 쉽지 않다. 대신 아내를 위해 김치와 빵도 만들어 준다. 세 끼 밥상을 차려주고 설거지도 내가 한다.
우리 부부는 자기 전에 하는 일이 있다. 그 날의 생활 보고다. 보고, 느낀 것을 주고받다 보면 한쪽이 조용해진다. 나는 ‘good night’이라고 속삭인다. 아직 ‘I love you’란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윤재현 / 전 연방 정부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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