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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여자, 여인, 여성

한 주일 내내 궂었던 날씨를 뒤로하고 며칠을 청명한 하늘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2023년 9월 중순 뉴욕 가을 초입이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어린 시절 동요 가사가 떠오른다.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부분에서 피식 웃는다. 어린 나이에 여자가 치마를 갈아입는 장면을 연상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맞다. 방금 ‘여자’라 했다. 남자의 반대말로 쓰이는 여자. 군대 시절에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이라는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해변의 여인아~♪” 부분에서는 ‘여인’이라는 말이 아주 쿨하게 느껴졌다.
 
여인은 여자의 아어(雅語). 우아한 단어다. ‘해변의 여자야’, 하면 기분을 잡쳐버린다. 여자의 반대말은 남자지만, ‘여인’의 반대말로 ‘남인’이라고 하지는 않는 게 이상하다. 조선 시대의 사색당파 중 그 남인(南人)?
 


한국 소식에 50대 여성이, 그다음 날에는 70대 남성이, 어찌어찌 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연거푸 여성, 남성 하는 말투가 좀 이상하게 들린다. 영어로 여성, 남성은 ‘female sex, male sex’라는 쪼다 같은 직역이 가능하다. 여자, 남자로 쉽게 표현하면 될 것을 요즘엔 왜 ‘sex, 性’에 대한 뉘앙스를 풍기려 하는가. 억지스러운 우스갯말로, 이런 식이라면, 동네 목욕탕의 남탕, 여탕을 ‘남성탕’, ‘여성탕’이라 할 참인가.
 
여성은 집합명사다. 여자라는 개인들의 집합체를 통틀어서 여성이라 부르는 것이다. ‘여성운동’이라는 말은 있어도 ‘여자운동’이라는 말은 없다. ‘여성상위시대’라는 표현을 ‘여자상위시대’라 하면 어딘지 잡스럽게 들린다. 여성과 여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인류(人類)라는 집합명사와 사람이라는 단수명사를 혼동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당신은 ‘옆집 사람’을 ‘옆집 인류’라 부르겠는가.
 
한국인들은 왜 여자를 여성이라 부르고 싶어 하는가. 내 나라, 내 집, ‘my wife’라는 말 대신 우리 나라, 우리 집, 우리 와이프라 지칭하듯 단수(單數)보다는 복수(複數)의 장벽 뒤에 숨으려는 수줍은 마음에서인가. 일개 여자보다 여성이라는 거대한 무리를 송두리째 소유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남성심리의 발로인가.
 
성(性)은 섹스를 연상시킨다. ‘여성’은 더 심한 연상이다. ‘sex’의 어원은 14세기 말경 라틴어 ‘section, 과(課)’하고 말뿌리가 같고, 처음에 ‘자르다, 분류하다’는 뜻이었다가 16세기 초에 동물의 ‘암컷, 수컷의 특징’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dissect, 절개하다, 해부하다’, ‘sect, 종파(宗派)’ 같은 단어와 어원이 같다.
 
‘sex’는 1906년에 성교(性交)라는 뜻으로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다. 영어도 우리말도 다른 성품, 이성(異性)과의 만남이 섹스다. 얼굴을 붉히거나 할 이유가 없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가 그렇게 냉담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얼마 전부터 야수파 또는 인상파로 알려진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그림 중에서 한 여자를 화폭에 담은 것들만 주제로 삼아 시를 쓰고 있다. 예를 들면 시 제목을 “마티스 그림, ‘책 읽는 여자’에게”라 붙이고 한결같이 어찌어찌 하는 ‘여자에게’라 하며 지금껏 수십 편을 썼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모두 여자라는 말 대신 여성이라고 하는 세상에 ‘책 읽는 여성에게’ 하면 어떨까 하다가 기겁을 한다. 내 시를 여성이라는 집합 명사에게 증정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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