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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할리우드 파업과 ‘파이널 판타지’

안유회 뉴스룸 에디터·국장

안유회 뉴스룸 에디터·국장

2001년 콜롬비아 픽처스는 ‘파이널 판타지(Final Fantasy: the Spirits Within)’라는 영화를 개봉했다. 영화는 수작이 아니었지만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다. 모든 등장인물을 컴퓨터로 만들어냈다는 점이었다. 애니메이션과는 또 달랐다. 배우를 컴퓨터 영상으로 만들어 낸 실사영화였다.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표정과 움직임이 어색해 현실성이 없었지만 ‘배우 없이 실사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만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20여년 전 시사회에서 ‘파이널 판타지’의 감상은 찜찜한 의문이었다. 사람 없는 사람 이야기가 영화의 미래가 될 수 있나?
 
그 뒤로 ‘파이널 판타지’류의 시도는 없었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았고 흥행에도 참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여 년이 흐르고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자 ‘파이널 판타지’가 꿈꾸었던 배우 없는 실사영화는 현실로 훅 들어왔다. 할리우드에서 196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장기 파업이 발생한 배경에는 ‘파이널 판타지’의 시도가 현실이 된 시대 흐름이 있다. 할리우드 작가조합(WGA)은 5월부터, 영화배우조합·미국방송인연맹(SAG-AFTRA)은 7월 14일부터 동반파업에 들어가면서 AI와 스트리밍 시대에 맞는 계약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상대는 영화·TV제작자연맹(AMPTP)에 소속된 메이저 영화사와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회사다.  
 
이들의 요구에는 당장 배우나 작가가 처한 두려운 현실이 반영됐다.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배우들에게 배역 연기가 아닌 단순 촬영을 요구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AI가 배우를 촬영한 영상을 데이터로 배우가 실제로 하지 않은 연기를 만들어 영화에 사용할지도 모른다. 이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틱톡에는 딥 페이크 기술을 사용해 가짜 톰 크루즈가 춤을 추고 골프를 치는 영상이 화제다. 진짜 크루즈와 구별도 어렵다. 조금 더 진전되면 실제 배우를 촬영하지 않고도 디지털로 새로운 배우를 만들어 낼 것이다. ‘파이널 판타지’가 원하던 배우 없는 실사영화 시대가 열렸다. 제작사들에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법적 제약이 없어지겠지만, 배우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AI가 만든 스크립트 초본을 작가가 다듬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디지털은 본격적으로 영화산업을 뿌리째 바꾸고 있다. 1949년 연방 대법원은 영화사가 제작·배급·상영을 장악하는 수직통합을 반독점법 위반으로 금지했다. DVD를 우편으로 대여하며 비디오 대여 산업 자체를 없앤 넷플릭스는 제작·배급·상영을 수직통합했지만 반독점을 언급하는 이들은 없다. 스트리밍 상영 덕분에 필름을 복사해 전 세계에 배급하고 영화관과 수익을 나누는 비용도 사라졌다.  
 
스트리밍은 기존의 이익 배분도 파괴했다. 디지털 시대 이전 영화는 북미 극장, 해외 극장, 북미 비디오, 해외 비디오, 북미 방송, 해외 방송까지 6개의 시장으로 나뉘었다. 그때마다 감독, 배우, 작가 등은 재상영 분배금(residual)을 받았다. 스트리밍 시대엔 기존의 순차적 개봉 개념이 사라지면서 분배금은 껍질만 남았다. 넷플릭스 초기 히트작인 ‘오렌지는 새로운 블랙(Orange Is the New Black)’의 재상영 분배금에 대해 에마 마일스는 20달러를, 키미코 글렌은 27.30달러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넷플릭스 성공의 일등공신인 ‘오징어 게임’의 제작진도 재상영 분배금을 받지 못해 노동착취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AI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사진과 그림, 문학, 영화 같은 창작의 영역에 제일 먼저 도입됐고 할리우드는 AI와 부딪치는 최전선이 됐다. 할리우드는 싸우고 있고 그 결과는 창작과 다른 분야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안유회 / 뉴스룸 에디터·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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