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일제 치하 어느 날, 서울의 한 초등학교 5학년생 교실에 공습경보가 울렸다. 사이렌 소리에 익숙한 어린 학생들은 학교 곳곳에 파놓은 방공호 속으로 들어가 머리위 고공으로 유유히 날아가는 미군 B29 폭격기를 쳐다보며 킬킬대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 패망 직전의 한 장면이다.
1945년 8월 15일 낮 12시, 전국에 라디오 중대 방송이 있었다. 연합군에 항복한다는 일본 왕의 가냘픈 목소리에 세상은 천지개벽하는 소리로 뒤덮였다. 산도 울고 강도 울었다. 바로 민족해방의 함성이었다. 36년간 나라 잃고 압박과 설음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던 날, 태극기는 삼천리강산에 파도를 쳤고 사람들은 흰 천에 ‘조선해방 만세’, ‘대한 독립 만세’를 써서 들고 천지가 진동하도록 소리쳤다.
각급 학교엔 하루아침에 일본인 교사는 모두 떠나고 한국인 교사만 남았다. 일본어로 하던 교과학습이 하루아침에 “아버지, 어머니, 안녕하세요” 등 처음 써보는 한글과 처음 들어보는 한국어로 수업이 시작돼 선생도 학생도 공부하다 말고 함께 울고 웃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서울의 해방공간 종로안경 앞 거리는 어른들의 정치 집회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좌우로 갈라져 시내 한복판에서도 테러와 집단싸움이 벌어졌다. 일제의 수탈로 가정 살림은 텅 빈 곳간만 남았다. 가난과 무질서로 사회 질서와 법규는 온데간데없었다. 좌파 집회는 남산에서. 우파 집회는 동대문 서울운동장에 열렸다. 시가행진에서 만난 좌우 양대집단이 종로 네거리에서 충돌하는 게 일상이었다. 남로당 계열의 좌익집단과 우익 측의 대학생 모임인전국학생총연맹, 서북청년회 등의 물리적 싸움은 미국 서부활극 영화보다 더 흥분케 하는 광경이었다.
해방된 조국 강토에 남이 그어 놓은 북위 38 도선을 경계로 남북이 갈라져 동족 간에 아니, 가족친척간에도 원수처럼 통행이 금지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남한의 대다수 국민은 1948년 8월15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선택해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지도자로 모시고 힘차게 새 출발 한 반면, 소련군 출신 독재자 김일성을 선택한 북한 동포들은 지금까지 공산 전체주의 세습정권하에서 암흑의 삶을 살고 있다.
대한민국이 출범한 지 2년도 안 된 1950년 6월25일,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기습 남침,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켰다. 북한군은 남쪽 땅에 포탄을 퍼붓고 죄 없는 남녀시민들을 납치해 갔다. 그 치열한 6·25전쟁이 멈춘 지 70년, 폐허에서 일어나 눈부시게 발전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지혜롭고 부지런한 대한민국은 일 인당 국민소득 67달러에서 3만 달러로 급성장했다. 분단된 상황에서도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또 세계 6위의 군사 강국으로 도약해 선진국 반열에 우뚝 섰다.
피땀 어린 역사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이제 통일만이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나라 사랑 노래가 심금을 울린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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