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론] ‘K컬처’의 한쪽 빈자리가 크다
가요·문학·미술 등 한류 다양화
현대미술‘K아트’도 뜨거운 반응
그러나 고미술엔 여전히 무관심
‘한국미술 5000년전’다시 기획을
한류는 ‘K팝’에서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BTS, 블랙핑크 등의 빌보드 차트 진입은 이제 특파원들의 기삿거리도 되지 못한다. 유튜브를 통해 이들 이외의 아이돌 그룹, 또는 대중음악에 전통장단을 접목한 악단광칠이 세계를 누비는 모습이나, 유럽·남미의 도시 광장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무작위로 틀어주는 ‘K팝’ 음악에 맞춰 ‘커버 댄스’를 추는 랜덤 플레이 댄스(random play dance)를 보고 있자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에서 시작된 한류는 대중예술을 거쳐 음식 등 생활문화로 뻗어 나가더니 문학, 미술 등 고급문화까지 확대되고 있다. 문학은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한강의 『채식주의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의 번역서가 K문학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K아트’도 목하 뜨거운 열기로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록펠러센터가 주최한 ‘한국문화예술 기념주간’에는 한국 현대미술 특별전 ‘기원, 출현, 귀환’이라는 주제 하에 단색화 거장 박서보를 비롯하여 한국계 작가 진 마이어슨, 독일에서 활동하는 윤종숙 등의 작품 70여 점이 전시됐다. 이와 동시에 록펠러센터가 있는 뉴욕 맨해튼 심장부 채널가든 광장에는 ‘숯의 작가’ 이배(67)의 높이 6.5m에 달하는 대형 숯덩이 조각이 세워졌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기획한 김구림,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의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은 서울전시회를 마치고, 오는 9월에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내년 2월에는 LA 해머미술관에서 순차적으로 전시가 이어진다.
또 내년 10월에는 필라델피아미술관이 이 미술관 15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하여 ‘시간의 형태: 1989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전’(가칭)에 서도호·함경아·신미경 등 33인의 한국 작가 작품들이 전시될 전망이다. 이런 추세에 맞추어 오는 9월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화랑협회 주최 제22회 키아프(Kiaf)에는 작년에 이어 세계적인 아트 페어인 프리즈(Frieze)가 동참하여 30여 개국의 200여 개 갤러리가 참가한다.
한류는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넘어 동경에 이르고 있다. 지난여름 파리에 학술강연 차 갔다가 만난 현지 한글학교 교장들은 프랑스에서는 한국어가 중국어, 일본어를 제치고 제2외국어로 부상해 있다고 전한다. 이런 추세에 맞추어 이달 8일 서울에서는 전 세계 240여 곳에서 운영되는 세종학당의 한국어 교원들이 모이는 ‘세계 한국어 교육자대회’가 열린다.
이러한 ‘K컬처’ 한류의 흐름은 세계 유명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자연히 한국실로 옮기게 한다. 그러나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파리 기메 뮤지엄의 한국실을 다녀간 관람객들은 한국 전통미술에 대한 감동은커녕 오히려 큰 실망을 안고 간다. 바로 곁에 있는 중국관, 일본관보다 형편없이 작은 규모에, 전시 유물도 빈약한 것에 의아해한다.
작년 10월, 세계 최대 공예박물관인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V&A) 뮤지엄에서는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렸는데, 영국에 있는 지인이 이 전시회를 보고 “지금 우리는 한류 팬덤을 자랑하는 전시보다 한류의 뿌리를 보여주는 기획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친한파 미술사가인 클리블랜드 뮤지엄의 전 학예실장인 마이클 커닝엄은 1979년부터 3년간 미국 7대 도시를 순회한 ‘한국미술 5000년전’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서구의 동양미술사 전공자들도 한국 미술사의 전통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커닝엄의 고백은 미술품이란 그 나라 문화와 역사를 말해주는 구체적인 ‘물질문화의 외교관’ 역할도 한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한국 미술사의 진수로 ‘한국미술 5000년전’을 꾸며 파리, 런던, 뉴욕 등을 순회하며 ‘K컬처’의 근저에는 오랜 문화적 전통이 있었음을 자랑하고 확인시켜 주면서, 한류가 오래도록 도도히 흘러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유홍준 /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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