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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내 마지막 종이책에게 위로를…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얼마 전에 새 책을 냈다. 오늘날의 미술이 당면하고 있는 다양한 근본 문제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쓴 책이다. 제목은 ‘그림 그림자’.
 
내게는 의미가 있는 책이다. 책의 내용이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이 마지막 책이라고 생각하고 냈기 때문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다. 종이책으로는 마지막 책이라는 제법 비장한 마음으로 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을 받아들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조금 비감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정신 차려보니 사람들이 종이책을 안 읽는 세상이 되었다. 독자들이 우르르 e-북 동네로 몰려가더니, 조금 지나니 그것마저 귀찮다며 오디오북을 듣는다. 다른 일 하면서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이야기다.
 
눈부시게 발달하는 첨단통신기기 덕에 긴 글을 멀리하게 되더니, 드디어는 책 자체를 읽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독자가 아예 없어진 것이다. 급기야는 인공지능이 작품을 쓰는 세상이다. 작가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물론 종이책이 아주 없어지지야 않겠지만, 끝끝내 살아남는 책은 아주 특별한 극히 일부의 책일 것이니, 나 같은 허름한 글쟁이에겐 해당 없는 희망 사항이다. 오랜 시간 낑낑대며 힘쓰고, 시간 들이고, 돈 써가며 책을 내봤자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말짱 헛짓이다.
 
그러니 새로운 길을 찾을밖에 도리가 없다. 블로그, 유튜브, 카톡, SNS 등 방법은 많다고 한다. 그러니까, 디지털 세계로 이민을 가라는 말이다. 내용만 재미있고 좋으면 성공 보장이라는 친절한 조언도 뒤따른다. 하지만, 컴퓨터 까막눈인 내 처지에서는 그야말로 장님 문고리 더듬기이니 아득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막막하다. 자신이 안 서고, 답이 안 나온다.
 
“머릿속에 든 것을 그냥 가지고 가는 것은 죄악이다”라는 말씀을 믿고, 부지런히 쓰고 말하고 가르치느라 애써왔는데….
 
세월에 따라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다. 나이 먹을수록 더 힘들어진다. 더구나 요즘처럼 빠르고 급격하게 달라지는 세상에서는….
 
나 같이 완고한 아날로그 꼰대가 현란한 디지털 문명에 적응하는 것은 어지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어려움투성이다. 가령, 가물거리는 눈을 부릅뜨고 휴대전화기의 조그마한 글자판을 잔뜩 노려보면서 손가락에 힘을 주어야 한 글자 한 글자 콕콕 찍어대고 있자면 짜증이 저절로 나고 서글퍼진다. 이건 도무지 선비가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그 앙증맞은 기계로 온갖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 작은 연장이 못 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기능을 가지고 있단다. 그리고 배우기도 너무너무 간단해서 어린아이들도 척척 한단다.
 
그래서 나도 열심히 배우려 애써본다. 하지만, 새 기술을 가까스로 익혀서 써먹어 볼까 하면, 어느새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있다. 가령, 이메일에 제법 익숙해졌다 싶은데, 이미 사람들은 모두 전화기로 몰려가 카톡이니 뭐니에 빠져버린 식이다. 정말 정신이 한 개도 없다. 기계의 노예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울 때도 잦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뒤꽁무니만 따라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쯤에서 나도 살길을 찾아야겠다. 내 방식은 아주 간단하다. 포기하는 것이다. 빠르고 편리한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포기하는 것도 능력이다.
 
이렇게 옛날 방식에 머물며, 변하는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을 유식한 전문용어로 ‘문화 지체’라고 한단다. 낙오자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겠다.
 
어떻게 불리든 상관없다. 아날로그 지킴이를 자처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된다. 천천히 걷고, 가다가 지치면 쉬어가면 그만이다. 아날로그 세상에는 디지털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가치와 재미들이 가득하다.
 
그런 고마운 마음으로 내 마지막 종이책의 행복을 비는 바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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