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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책 덮은 사람들, 책은 왜 읽어?

“가을은 독서의 계절!” 옛날에 그런 명언이 있었다. 뒤를 이어서 “독서를 왜 가을에만 하느냐. 독서는 근육운동과 마찬가지로 매일 해야 한다”는 근엄한 가르침도 있었다. 여기에는 반드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혓바늘이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말씀이 따라붙곤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 바야흐로 ‘아무 때도 독서를 안 하는 시대’가 되었다. ‘책 덮은 대한민국’이라는 비판이 심각하게 나오고, ‘지성의 사막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크다. 그냥 짐작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가 입증하는 확실한 사실이다.   한국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1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9월부터 2021년 8월까지 1년간 만 19세 이상 성인층에서 1권 이상 책(교과서나 참고서를 제외한 일반도서)을 읽은 이의 비율(연간 종합독서율)은 47.5%로, 전체 국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이 전체 성인의 절반이 넘는 셈이다. 전년보다 8.2%포인트 줄었고, 독서량은 4.5권으로, 3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 독서율’이란 종이책과 전자책(웹소설 포함), 오디오북의 연간 이용률을 모두 합한 것이다. (참고로, 국민 독서실태 조사는 국가 승인 통계자료로 격년 단위 2년에 한 번 실시한다. 올해 2023년 통계도 곧 발표될 것으로 기대된다.)   짐작하건대 아마도 우리 미주 한인사회의 현실도 한국과 비슷할 것이다. 이 통계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할 점들이 한층 분명하게 드러난다. 가령, 매체별 독서율(복수응답률)은 종이책 40.7%, 전자책 19.0%, 오디오북 4.5%로, 직전 조사에 비해 종이책 독서율은 크게 추락한 반면, 전자책과 오디오북은 더디게 증가했다. 종이책을 안 읽는다는 이야기다.   더 길게 보면, 2013년에는 성인 10명 중 7명이 적어도 1년에 한 권 이상 종이책을 읽었지만, 2021년에는 10명 중 4명 수준으로 무려 3명이 증발했다. 그 8년 사이 전자책과 오디오북까지 합한 종합 독서율은 24.7%p 하락했다.   한편, 2017년 발표한 OECD 국가별 성인 1인당 월간 독서량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은 0.8권으로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 중국 2.6권 등에 비해 크게 낮다. 독서량 순위에서도 세계 166위로 하위권이다.   독서율 하락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다른 매체, 콘텐트 이용’이 많았다. 학생들은 ‘스마트폰, 텔레비전, 인터넷 게임 등을 이용해서’를 가장 큰 독서 장애 요인으로 꼽았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국민의 92%가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변화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편향성이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독서량 감소가 장기적인 담론 형성, 사회 통합 등 건강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독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능동적으로 정보를 선택하는 방식이지만, 온라인에서만 정보를 얻으면 각자 입맛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이 강화돼 사회 통합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인터넷으로 접하는 정보는 연령, 성별, 계층별로 담론이 파편화되고 있다는 염려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결론은 독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손가락으로 검색만 하지 말고, 머리와 가슴으로 사색을 하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책 읽는 계절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연간 종합독서율 종이책 독서율 매체별 독서율

2023-10-19

[문화산책] 내 마지막 종이책에게 위로를…

얼마 전에 새 책을 냈다. 오늘날의 미술이 당면하고 있는 다양한 근본 문제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쓴 책이다. 제목은 ‘그림 그림자’.   내게는 의미가 있는 책이다. 책의 내용이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이 마지막 책이라고 생각하고 냈기 때문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다. 종이책으로는 마지막 책이라는 제법 비장한 마음으로 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을 받아들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조금 비감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정신 차려보니 사람들이 종이책을 안 읽는 세상이 되었다. 독자들이 우르르 e-북 동네로 몰려가더니, 조금 지나니 그것마저 귀찮다며 오디오북을 듣는다. 다른 일 하면서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이야기다.   눈부시게 발달하는 첨단통신기기 덕에 긴 글을 멀리하게 되더니, 드디어는 책 자체를 읽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독자가 아예 없어진 것이다. 급기야는 인공지능이 작품을 쓰는 세상이다. 작가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물론 종이책이 아주 없어지지야 않겠지만, 끝끝내 살아남는 책은 아주 특별한 극히 일부의 책일 것이니, 나 같은 허름한 글쟁이에겐 해당 없는 희망 사항이다. 오랜 시간 낑낑대며 힘쓰고, 시간 들이고, 돈 써가며 책을 내봤자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말짱 헛짓이다.   그러니 새로운 길을 찾을밖에 도리가 없다. 블로그, 유튜브, 카톡, SNS 등 방법은 많다고 한다. 그러니까, 디지털 세계로 이민을 가라는 말이다. 내용만 재미있고 좋으면 성공 보장이라는 친절한 조언도 뒤따른다. 하지만, 컴퓨터 까막눈인 내 처지에서는 그야말로 장님 문고리 더듬기이니 아득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막막하다. 자신이 안 서고, 답이 안 나온다.   “머릿속에 든 것을 그냥 가지고 가는 것은 죄악이다”라는 말씀을 믿고, 부지런히 쓰고 말하고 가르치느라 애써왔는데….   세월에 따라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다. 나이 먹을수록 더 힘들어진다. 더구나 요즘처럼 빠르고 급격하게 달라지는 세상에서는….   나 같이 완고한 아날로그 꼰대가 현란한 디지털 문명에 적응하는 것은 어지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어려움투성이다. 가령, 가물거리는 눈을 부릅뜨고 휴대전화기의 조그마한 글자판을 잔뜩 노려보면서 손가락에 힘을 주어야 한 글자 한 글자 콕콕 찍어대고 있자면 짜증이 저절로 나고 서글퍼진다. 이건 도무지 선비가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그 앙증맞은 기계로 온갖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 작은 연장이 못 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기능을 가지고 있단다. 그리고 배우기도 너무너무 간단해서 어린아이들도 척척 한단다.   그래서 나도 열심히 배우려 애써본다. 하지만, 새 기술을 가까스로 익혀서 써먹어 볼까 하면, 어느새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있다. 가령, 이메일에 제법 익숙해졌다 싶은데, 이미 사람들은 모두 전화기로 몰려가 카톡이니 뭐니에 빠져버린 식이다. 정말 정신이 한 개도 없다. 기계의 노예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울 때도 잦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뒤꽁무니만 따라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쯤에서 나도 살길을 찾아야겠다. 내 방식은 아주 간단하다. 포기하는 것이다. 빠르고 편리한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포기하는 것도 능력이다.   이렇게 옛날 방식에 머물며, 변하는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을 유식한 전문용어로 ‘문화 지체’라고 한단다. 낙오자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겠다.   어떻게 불리든 상관없다. 아날로그 지킴이를 자처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된다. 천천히 걷고, 가다가 지치면 쉬어가면 그만이다. 아날로그 세상에는 디지털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가치와 재미들이 가득하다.   그런 고마운 마음으로 내 마지막 종이책의 행복을 비는 바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종이책 위로 마지막 종이책 아날로그 지킴이 디지털 세계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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