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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사법으로 간 정치

안유회 뉴스룸 에디터·국장

안유회 뉴스룸 에디터·국장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3일 연방 법원에 출석했다. 이날 열린 기소인부절차(arraignment)에서는 피고인이 법정에 처음으로 나와 기소 이유와 헌법이 보장한 권리 등을 듣고 유무죄 여부를 주장한다. 재판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트럼프가 형사 재판을 받는 첫 번째 전·현직 대통령이 됨으로써 이제 심리적 혹은 정치적 내전 상태로 불리는 미국의 분열은 사법부까지 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두 번 기소됐다. 지난 3월에는 뉴욕 지방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가 과거 성관계를 폭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돈을 지급한 뒤 그 비용 처리에 관한 회사 기록을 조작한 혐의다. 지난 9일에는 플로리다 연방 검찰이 기소했다. 혐의는 기밀문서 유출과 사법방해 등 모두 37건이다.
 
대통령이 어떤 혐의를 받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리처드 닉슨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각각 워터게이트 사건과 성 추문과 관련한 위증 혐의를 받았지만 기소되거나 재판을 받지 않았다. 입장에 따라 의견이나 해법이 다를 수 있지만, 정치가 해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소됐고 재판이 시작됐다. 2016년 대선 이후 미국이 거대한 단절선으로 갈라졌다는 우려는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타협 없는 단절은 이제 중요한 정치 분석 틀이 됐다. 양 진영의 단절 정도를 둘 사이의 거리로 측정한다면 지금이 가장 멀리 떨어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단순히 더 멀어진 것이 아니라 단절의 단계가 달라졌다.
 
양 진영의 지지자가 법원 앞에서 “트럼프는 죄가 없다” 혹은 “트럼프를 감옥으로”라고 정반대 구호를 외치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공화당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의 발언은 지금까지의 단절과 다르다. “이게 여기서 끝날 것 같은가. 다음 공화당 대통령은 조 바이든과 가족, 그의 마약 중독 아들 누가 됐든 범죄 혐의를 적용하고 기소할 엄청난 압박을 받을 것이다.” 루비오 의원이 폭스뉴스에서 한 이 발언만 해도 양 진영의 단절은 단계가 달라졌다.
 
기소 이유야 충분할 것이다. 정치로 해결하기에는 혐의가 너무 중할 수도 있다. 정치력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법부 문턱을 넘으면 이유는 흐려진다. 중요한 것은 사법부로 넘어갔다는 현실이다. 정치에는 원고와 피고가 없지만, 사법엔 있다. 사법에서는 정치처럼 양측 사이 어디에선가 악수하기 어렵다. 정치도 사법으로 가면 원고와 피고로 나뉠 뿐이다. 사법부의 판단이 정의를 세울지 모르지만, 정치의 문제까지 해결하진 못한다. 오히려 갈등을 증폭할 수 있다.  
 
정치를 좌우하는 여론은 그렇다. 퀴니피액대학이 지난 8∼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성향 유권자 53%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이 수치만 봐도 사법은 정치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 수치는 또 루비오 의원이 말한 “엄청난 압박”이기도 하다.
 
트럼프 현상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소외된 이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시작됐다. 트럼프 당선으로 이들은 정치적 변방에서 주류로 단번에 진입했다. 아마 몇 십년 만에 거의 처음으로 맛본 승리였을 것이다. 개인은 무력하지만, 집단의 힘은 강하다는 것도 체감했을 것이다. 이들은 선거 결과 불복이나 연방 의사당 공격 같은, 기존 규범을 깨는 과속을 했지만 여전히 정치적 세력이다. 트럼프는 사라져도 이들은 남아 트럼프 현상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을 민주주의 체제와 미국적 전통 안으로 어떻게 수용할지는 정치의 몫이다. 그건 민주당도 공화당도 마찬가지다.

안유회 / 뉴스룸 에디터·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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