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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왼손 피아니스트의 인간 승리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애를 극복하고 우뚝 선 예술가의 인간승리는 지친 우리를 감동으로 일으켜준다. 특히 음악가들이 그렇다. 그들이 빚어내는 속 깊은 음악도 그렇고, 그 인생에 배어있는 불굴의 의지도 그러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만,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 등등…. 그들을 보고 들으면 절망 속에서도 털고 일어날 힘이 솟는다.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Leon Fleisher, 1928-2020)도 그런 멋진 인간승리의 표본이다. 최전성기에 갑자기 오른손을 못 쓰게 된 피아니스트, 그 혹독한 시련을 끝내 이겨낸 인간 드라마는 나를 울린다.
 
레온 플라이셔는 동유럽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민 온 가난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나 4세 때 피아노를 시작, 8세 때 이미 대중 앞에서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16세 때 뉴욕 필과 협연했고, 세계적 권위의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신동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당대의 거장 아르투르 슈나벨의 제자가 되어, 이른바 베토벤 악파의 계승자가 되었다. 이후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세계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37세에 갑자기 근육긴장이상증으로 오른쪽 손가락이 마비되는 불행을 겪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35년 동안 왼손만으로 연주 활동을 하며, ‘왼손을 위한 협주곡’ 등 왼손만으로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를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또한, 지휘자로 활동했고, 존경받는 교육자로 많은 세계적 피아니스트를 길러냈다. 그리고 끈질긴 치료 노력과 의학의 발달로 2004년 기적적으로 오른손을 회복, 양손 연주를 시작했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마치 이력서 같아서 큰 느낌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피아니스트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오른손 마비가 시작된 후 펼쳐졌을 엄청난 시련과 극복의 인간 드라마는 감동적이다. 연주 경력 절정기에 찾아온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 인간 승리에 대해 레온은 “난 두 손을 모두 써서 연주했을 때만큼 한 손으로도 음악과 내가 연결된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라고 말했다.
 
“2년 동안 나는 자포자기하고 절망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는데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나를 깨웠지요. 음악과의 관계란 나와 음악과의 관계이지 피아노 연주자로서 만의 관계가 아니다는 새로운 인식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낙담하고 어둠에 싸이고 희망을 잃기는 아주 쉬워요.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가지고 잠을 깰 수 있어요. 그 가능성을 절대 저버리지 마십시오. 그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 놓고 항상 찾으십시오.”
 
양손 연주가 가능해진 감격으로 2004년 출시한 음반의 제목은 ‘양손(Two Hands)’이다. 매우 상징적이고 감동적이다. 무려 40여년간의 투병을 통해, 고희를 넘어 되찾은 두 팔로 온전하게 연주했다는 감격이 얼마나 컸으면 이런 타이틀을 달았을까. 이 음반은 클래식 음반으로는 드물게 10만장 이상 판매됐고 뉴욕타임스의 베스트 음반에 선정됐다. 그리고 수익금 전액은 같은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기부되었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 인간 승리와 존엄을 증명해준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 인류를 온정과 용기로 위로한 숭고함을 생각하며 그의 연주를 듣는다.
 
물론, 레온 플라이셔를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는 인간적으로 충분히 감동적이고, 그런 강인함은 음악에도 스며있을 것이다. 결국 예술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래서 예술가와 작품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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