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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어린이의 창조적 호기심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나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귀엽다는 말이야. 유치한 구석이 있으시네요, 귀여우세요 하면 기분이 아주 좋아. 반대로 어른스럽다, 인격자다, 원로답다, 노숙하십니다란 건 칭찬으로 들리지 않지. 어린아이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나에겐 인삼 녹용이나 마찬가지예요.”
 
이어령 선생이 생전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창조적 지식인의 말씀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 80을 훌쩍 넘은 나이에 귀엽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이 참 귀엽다.
 
“세상 모든 아이는 지적 호기심이 있지만, 어른이 되면서 이 호기심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선생의 주장이다. 그리고, 학교를 비롯해서, 등수를 매겨 줄 세우기를 하는 사회가 그런 호기심과 창조적 능력을 죽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만큼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이 소중하다는 말씀이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고, 피카소는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이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성장하면서도 여전히 예술가로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분들의 말씀이나 이어령 선생처럼 세상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세상이 한결 창조적이고 예술적으로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부모들의 욕심 때문인데, 그 욕망이 간단히 사라질 전망은 거의 없어 보인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멋지게 포장되어 있는 데다가, 자기 자식은 훌륭한 인간이라고 믿는 오해와 과대망상이 있기 때문이다.
 
빛나는 창조적 능력을 죽이는 또 하나의 큰 원흉은 학교 교육이다. 학교는 창의력의 싹을 무자비하게 잘라버리는 곳이다. 달달 외우게 하고, 사지선다형이나 OX 문제 시험을 쳐서,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를 하는 교육은 창의력과는 별 관계가 없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아쉽게도 나는 희생자인 셈이다. 고지식하고 엄격한 가정교육 탓에 나는 어릴 적부터 애늙은이, 어른이로 자랐다. 초등학교 때는 어머니가 선생님으로 계시는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모범생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전형적인 모범생답게 학교 공부와 숙제 착실하게 잘하고, 시험 잘 치는 재주가 좀 있었는지 성적은 꽤 좋았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니까, 창조적 능력과는 거리가 먼, 지식은 좀 있지만 지혜는 없는 규격품이었던 셈이다.
 
정서적인 면에서도 그랬다. 가령 나와 내 동생들은 ‘엄마’라는 말을 모르고 자랐다. 말을 배울 때부터 ‘어머니’라는 말만 배웠기 때문에, 평생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러보지 못했다.  
 
어머니와 엄마는 뜻은 같은 낱말이지만, 정서적 밀도는 크게 다르다. 부모님을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점은 못내 아쉽다.
 
그처럼 틀에 갇힌 범생이가 예술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을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아마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책 빌려주는 가게를 운영한 덕에 이런저런 책을 닥치는 대로 읽은 것이 예술 소양의 원천이 된 것 같다.
 
하지만, 틀을 벗어나 용감하게 창조적으로 살지는 못했다. 주어진 규격을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길든 가축으로 안전하게 살았을 뿐, 새로운 세상을 찾아 헤매는 자유로움은 모르고 산 셈이다. 그러니 예술가답게 창조적인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이 많이 들어서도 어린이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이 참 부럽다. 나도 그러고 싶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되찾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고약한 꼰대가 되는 것만이라도 피하고 싶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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