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난사 1주기…또 장례 치르는 한인들
[아시안증오범죄 예방프로젝트] 되풀이된 혐오, 댈러스①
업주 “또 총격 소식 마음 아파”
총없다 여길까 총기금지판 떼
한인타운 지정에 위상 높지만
한인 정치인들 대책 촉구없어
숨진 조씨 일가족 오늘 장례식
당시 댈러스 한인타운 로열레인 선상 ‘헤어월드’ 살롱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 직원 두 명과 손님 등 3명이 총에 맞았다. 〈2022년 5월 13일 A-1·3면〉
사건이 발생한 미용실을 1년만에 찾았다. 2015년부터 헤어월드를 운영해온 장수정씨는 그날의 기억을 묻자 괴로운 듯 입을 쉽게 떼지 못했다.
장씨는 “1년 전 그날을 떠올리면 말을 꺼내기 힘들 정도”라며 “총상을 입었던 직원 두 명은 정신적 충격으로 미용 일을 그만두고 타주로 떠났고 그중 한 명은 지금도 총상 후유증으로 한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 범인 제레미 스미스(37)는 무작정 미용실에 쳐들어와 13차례 총격을 가했다. 대낮에 한인 업소 밀집 지역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기소장에 따르면 아시안에 대한 증오가 범행 동기였다.
그날 이후 장씨는 업소 입구에 붙여뒀던 ‘총기 휴대 금지’ 사인을 곧바로 떼버렸다.
장씨는 “오히려 그걸 붙여놔서 ‘저 업소에는 총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총든 괴한이 안심하고 들어온 게 아닌가 싶었다”며 “그날 이후부터는 방어용으로 총을 갖고 들어오는 손님들도 있다”고 말했다.
1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악몽은 총성으로 되살아났다. 지난 6일 댈러스 인근 앨런 아웃렛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침전돼있던 그날의 기억을 다시 한번 휘저었다. 쓰라린 아픔은 장씨의 가슴 속에 깊이 각인돼 있었다.
장씨는 “총기 사건 소식을 듣고 남의 일 같지 않아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그만 말하고 싶다”고 했다.
미용실 카운터에는 댈러스 경찰국이 제작한 범죄 발생 시 안전 지침이 담긴 팸플릿 10여 장이 놓여있었다. ‘늘 주의하고, 위급 상황 시 911에 신고하라’는 형식적인 내용뿐이다.
장씨는 “읽어봐도 당국이 이 지역의 치안을 어떻게 신경을 쓰고 관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경관들이 놓고 간 팸플릿이니까 그냥 놔둔 것”이라고 말했다.
헤어월드가 있는 로열 레인 길은 한인 은행, 식당, 마켓 등이 즐비한 한인타운의 중심가다. 이곳에는 댈러스 한인사회의 역사가 스며있다.
댈러스 한인상공회의소 이상윤 회장은 “1980년대만 해도 로열 레인 길은 댈러스에서도 성매매 등 각종 범죄가 횡행했던 곳”이라며 “이곳에 한인들이 터전을 마련하면서 범죄율이 급감했고 오늘날 한인타운을 형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근의 로열 레인과 해리하인즈 불러바드 교차로로 향했다. 한국어로 쓰인 ‘로열 레인’ ‘해리하인즈 대로’ 표지판이 내걸린 곳이다. 한인들의 공로를 인정한 댈러스시가 지난 1월 미주한인의 날을 기념해 이곳에 단 이중언어 표지판이다. 이를 계기로 텍사스 주의회는 로열레인 길 지역을 한인타운으로 공식 지정하기 위한 결의안을 통과시켜 이제 주지사의 서명만 남겨놨다.
한인사회의 높아진 위상과 달리 한인들의 심리는 최근 잇따른 총성으로 위축되고 있다. 댈러스한인회 이경철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한인 미용실 총격 사건 이후 총기 사건의 위험성을 피부로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이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한인타운 주점에서 총격 사건으로 한인이 사망했을 때 당국은 댈러스에서 하루에 1건꼴로 총기 사건이 일어난다고 했다”며 “우리에겐 큰일인데 별것 아닌 일처럼 말하더라. 한인타운도 더는 안전지대는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총성은 여전히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지난 8일 발생한 앨런 아웃렛 총기 난사 사건을 포함, 한인 피해자들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적극 발벗고 나서야 할 정치인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본지는 앨런 프리미엄 아웃렛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 댈러스 인근 한인 정치인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댈러스 인근 코펠시의 전영주 시의원 사무실 한 관계자는 “인터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앨런 몰 사건 피해자들에 대해) 삼가 조의를 표한다”는 내용의 답변만 보내왔다. 한인 다수 거주 지역인 캐롤튼시의 성영준 시의원은 인터뷰 요청에 답변하지 않았다.
주의회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텍사스주 하원 지역사회 안전위원회는 앨런 아웃렛 사건 발생 직후 반자동 소총 구매 가능 연령을 21세(기존 18세)로 상향 조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벌써 겉치레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댈러스 지역 언론들은 주지사 거부 가능성 등 법안이 최종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앨런 아웃렛 추모 현장에서 만난 조영준(41·앨런) 씨는 “주지사는 총격범이 정신 이상자라고만 하고, 경찰은 증오범죄 여부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억울한 죽음만 매번 발생하고 있다”며 “한인 정치인들조차 뚜렷한 대안 하나 내놓지 못하는데 한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부분이 바로 소수계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앨런 아웃렛 총기 난사 사건으로 숨진 한인 일가족이 출석했던 캐롤튼 지역 뉴송교회에서는 지난 9일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기도회가 진행됐다. 피해자 조모(37)·강모(35)씨 부부와 3세 막내아들의 천국환송예배는 11일(오늘) 뉴송교회에서 진행된다. 공교롭게도 헤어월드 살롱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한인들은 또 한번 눈물을 닦아야 한다.
댈러스=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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