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증오범죄 예방 프로젝트] 괴롭힘 당할까 태권도 수강 청소년 ‘2배’
플로리다 탬파·올랜도 가다(1)
아시안 학생 호신용 운동 선호
1년 새 범죄 240건, 전국 9위
신고율 저조해 실제는 더 많아
쨍한 햇빛과 서늘한 바람이 감도는 날씨에 야외에서 커피를 즐기는 직장인들이 눈에 띈다.
평일 오후 시간인 걸 고려해도 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경적과 사람들의 발길로 붐비는 LA다운타운과는 달리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1시간여를 걷는 동안 5명 남짓한 홈리스들과 마주쳤다. 동냥하는 팻말만 없으면 홈리스인 줄 모를 만큼 행색이 말쑥한 편이다.
아시안 여성으로 홀로 다운타운 길거리를 걷는데 긴장감이 없다는 사실이 낯설다.
시청에서 북쪽으로 걸어 15분쯤 떨어진 카페 ‘크래프트 앤 커먼’을 들려 음료 한잔을 주문했다.
계산하는데 흑인 직원이 갑자기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순간 신경이 곤두섰다. 흔한 인종차별 레퍼토리인데 라는 생각이 스치는 찰나였다.
약간 긴장하며 LA에서 왔는데 왜 그러냐고 묻자 ‘지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한국에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이름이 한국 사람이라 반가웠다”고 말했다.
‘아차’ 싶은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곳엔 한인들이 많이 없냐’고 묻자 지크는 “베트남 커뮤니티가 이 근처라 베트남계는 좀 있지만 한인들이나 그 외 아시안들은 잘 보지 못한다”며 “한인 마켓에 가면 그래도 많이들 있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2020 센서스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내 아시안은 3%(59만668명)에 불과하다.
기자가 방문한 올랜도는 플로리다주에서 알라추아카운티 다음으로 아시안이 2번째로 많다는 오렌지 카운티에 속해있는 도시임에도 거리에서 아시안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다운타운을 벗어나 17번 하이웨이를 타고 서쪽으로 10분 남짓 달려간 곳엔 대형 한인 마켓 ‘롯데 플라자 마켓’이 있다. 올랜도에 한인 마켓은 이곳과 ‘우성식품’ 2곳이 전부다. 심지어 롯데 마켓은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19년 문을 열었다. 널찍한 매장 안에는 밖에서는 자주 보지 못했던 한인뿐만 아니라 중국계, 베트남계 등 아시안들이 장을 보고 있었다.
조지아주에 30년을 살고 플로리다에 온 지 4년째라는 케니 김 마켓 매니저는 “이곳 아시안들은 경제적으로 중상위가 많고 이민 역사가 길어 이미 3세, 4세대 자녀들이 주류사회 각계에 진출해 뿌리가 깊게 내려져 있다”며 “물론 인종차별이 없지 않지만, 나이 많은 은퇴자들이 많고 다같이 어우러지는 분위기다”고 설명했다.
민간 연구기관 ‘인구참조국(PRB)’에 따르면 전국에서 규모 3위인 플로리다 인구 약 2100만명 중 65세 이상은 460만명(21%)이다. 전체 인구 5명 중 1명은 은퇴자인 셈이다. 플로리다 별명 중 하나가 ‘은퇴자들의 천국’인 이유다.
인구 중 나이가 많은 주민들의 비율이 높고, 아시안은 적다 보니 당연히 인종 편견에 기반을 둔 사건·사고들이 쉽게 보이진 않는다.
탬파에서 20년째 거주 중인 한재덕(55·의류 소매업)씨는 “영어를 잘 못 하면 좀 무시하는 것 정도. 이게 ‘인종차별’인가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큰 피해를 본 적은 없다”며 “평화로운 동네이기도 하고 아시안들이 피해 사실을 공공연하게 잘 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자주 체감되지 않을 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플로리다주에 드물지 않게 나타나고 있는 ‘아시안 증오범죄’는 경각심을 깨우고 있다.
증오사건 신고 비영리단체 260건, 경찰 1건
지난해 한인 의사 폭행 피해
관할 영사관 “증오범죄 증가”
인종차별 대처법 교육 시급
지난해 9월에는 한국 대학병원에서 콘퍼런스 참석차 마이애미를 방문한 한국 의사 지모씨가 기차 안에서 흑인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플로리다주를 관할하는 애틀랜타 총영사관에 사건·사고 담당협력관으로 활동 중인 임창현 ‘코리아 태권도장’ 관장은 “당시 피해자는 안경이 깨지고 광대뼈가 골절되는 등 심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사건·사고가 자주 있지는 않지만 팬데믹 이후로 늘었다”며 “팬데믹 이후로 사람들이 더 예민해졌고 인종차별은 더 늘어난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런 계기로 태권도장에는 팬데믹 이전 초등학생들과 30~40대 성인이 다수였지만 팬데믹 이후 중고등학생의 비율이 2배 가까이 늘었다고 임 관장은 전했다.
그는 “아시안 학생들이 학교에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과 함께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하며 “예전엔 구기 종목 수요가 많았는데 학생들이 종합 마샬아트를 호신용으로 배우려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양한 유색인종이 살며 인종 간의 화합이 늘 화두인 캘리포니아와 비교해 수적으로 한인들이 극히 열세하다 보니 증오범죄는 물론 인종차별은 이슈가 크게 안 되는 모습이다.
특히 ‘조용한 게 미덕이다’는 한인들의 문화적 특성상 피해를 보고도 감추기 일쑤고, 적은 인구 규모에 따른 사회적, 정책적 지원 시스템 부족은 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USF) 사회복지학과 박난숙 교수는 “한인들이 많아 사회적 지원이 탄탄한 LA와 달리 그런 시스템이 구축돼있지 않고, 아시안들을 모범 소수민족(Model Minority)으로서 인식이 있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그룹으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묘한 공격성(micro aggression)을 띠는 인종차별의 경우 교육과 대처 훈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판단이 잘 안 돼 그냥 참고 넘어가는 한인들이 대다수다”라며 실제 사건보다 신고율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플로리다의 공기관이 취합한 데이터는 ‘Stop AAPI Hate’가 취합한 결과와 거리감을 보인다.
지난 2021년 플로리다 법집행기관 757개 중 단 2곳만 연방수사국(FBI)에 증오범죄 데이터를 제출했으며 아시안 증오범죄를 포함해 전체 증오범죄는 단 1건에 불과했다.
올랜도 지역 매체 ‘뉴스6’도 지난해 5월 13일 자 방송에서 “플로리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증오 사건들이 늘고 있다”며 사례들을 인용해 보도하면서 비영리단체와 공기관에서 취합한 결과가 크게 차이를 보이는 점을 지적했다.
“수사관이 휴대폰 번호 주며 신고 당부”
신광수 서부플로리다 회장
아시아계 최초 세미나 개최
한인회는 아시안 증오범죄 예방교육과 대응법 안내에 소극적이었던 당시 플로리다 상황을 우려해 지난 2021년 9월 증오범죄 세미나를 개최했다.
주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탬파 지역을 포함해 13개 카운티를 담당하는 서부플로리다한인회는 최근 새로운 한인회장이 부임하면서 다양한 커뮤니티 행사와 서비스 지원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본지는 지난달 13일 탬파 지역 한 카페에서 신광수(55·사진) 제31대 한인회장을 만났다.
-한인회를 소개한다면.
“지난 1974년 설립된 서부플로리다한인회는 당시 회장단과 이사진이 4명에 불과했지만, 현재 22명으로 늘어났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05년부터 봉사를 이어오다 지난 2021년 6월에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해 임원 및 이사들과 함께 아시안 혐오 범죄 예방 세미나를 비롯해 제1회 탬파 베이 오픈 오렌지 컵 골프대회, 제1회 노래경연대회 ‘K 보이스 플로리다’를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4월에는 미주지역 한인회 최초로 순회 영사예약제를 시행했으며 9월에는 태풍 이안에 대한 대피 통보와 각종 정보를 공유하며 지역 한인들의 인명피해를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시안 증오범죄 세미나 어떻게 개최하게 됐나.
“2021년 3월 애틀랜타 총격 사건 후 사회적으로 긴장감이 높아져 필요성이 제기됐다. 일단 가장 먼저 증오범죄 대응법과 신고 방법 등을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해 탬파 지역을 관할하는 힐스버러 카운티 셰리프쪽에 연락을 취했는데 흔쾌히 해주겠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시안의 목소리가 필요했다며 아시안 커뮤니티 중에서는 한인사회가 처음으로 요청한 거라고 전해왔다.”
-한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한인단체장과 교회 리더 등 40명을 초청해 세미나를 실시했는데 이런 행사는 한인사회 내에서도 처음이라며 도움이 많이 됐다고 전했다. 당시 강사로 온 존 맥다비 아시안 담당 수사관은 자신의 사무실과 개인 셀폰 번호까지 주며 ‘9·11처럼 생각하고 연락하라’고 전했다. 수사관은 인종차별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신고가 적어 수사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하며 협조를 당부했다.”
-플로리다 주류사회와 한인사회 관계는 어떤가.
“한인사회 목소리가 워낙 저조하기 때문에 정치인 사무실 쪽에서 직접 연락이 와서 상황이 어떤지 물어보기도 하고, 공공기관에서는 정치적 자문기구를 만들어 목소리를 내달라고 권유한다. 사실 유권자 비율로 봤을 때 한인 비율은 0.1% 정도에 불과할 텐데 목소리를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게 고맙다.”
-앞으로 한인회가 추구할 방향은.
“전문가를 초빙해 주택 모기지 및 각종 세금 납부 방법, 각종 정부 혜택 등 한인들의 미국 생활에 필요한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또한 고학력/전문직에 화려한 과거를 자랑하면서도 외로움을 어찌할 수 없어 힘들어하는 한인 은퇴자분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 함께 인근에 거주하며 황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한인 우정 공동체’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장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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