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론] 미국 식탁에 오른 한국 라면
이 같은 K-라면 열풍은 팬데믹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관련 기관에 따르면 한국의 라면 수출은 올해 1분기 2억 달러를 넘어섰다. 1분기 수출액이 2억 달러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농심 등 일부 라면 제조업체들은 해외공장을 두고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고 있어, 판매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한국 라면의 인기몰이에는 요즘 더욱 확산되고 있는 한류 영향이 크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 영화와 드라마 등에 라면이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실제 지난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 +너구리)’는 미국을 포함한 해외에서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오징어 게임도 한몫을 했다. 주인공이 매콤한 국물에 꼬들꼬들한 면을 먹는 모습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일본의 경제 전문가인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는 저서 ‘식탁 밑의 경제학’에서 세계 각국의 음식문화와 관련, 음식을 ‘자원’으로 간주하는 나라와 ‘문화’로 보는 나라로 분류했다. 영국,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음식을 자원으로 취급하는 반면, 중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은 문화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20세기 말 미국이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쥐면서, 패스트푸드 열풍이 전 세계에 불었다.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미국 패스트푸드는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누구나 간편하고 빠르게 먹을 수 이유로 세계인이 즐겨 찾는다.
라면도 일종의 패스트푸드 군에 속한다.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대에, 끓는 물을 붓고 몇 분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다. 간편하고 시간 절약을 필요로 하는 앵글로색슨 문화와 궁합이 맞는다. 게다가 햄버거와는 다른 독특한 맛까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시장은 세계 인스턴트 라면의 격전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쟁에서 바야흐로 한국산이 세계인의 입맛을 점령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아직은 원조인 일본산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한국산 제품들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일본제품과 차별화한 K-라면이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기까지 관련 기업들이 각고의 노력을 한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 월마트나 코스트코, 크로거 등 매장에서 미국 소비자들이 먼저 찾는 대표 한류 식품이 됐다.
내친김에 삼성과 LG의 가전제품들이 소니를 추월했듯이 라면도 부동의 1위인 도요스이산을 따라잡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아직 건너야 할 강과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우선 패스트푸드가 비만 등 여러 가지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연구보고서들이 말해주듯이 미국인들도 요즘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라면도 건강에 좋지 않은 식품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 업체들은 라면이 건강을 생각하는 식품이라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기존의 편리성과 함께 맛의 다양화를 추구하면서 웰빙식품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소비자 트렌드에 부응하는 길이다.
아울러 즉석조리식품과 경쟁하려면 제품의 고급화도 필요하다. 일본 라면 전문점인 큐라멘이 다양한 메뉴와 고급화로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권영일 / 애틀랜타 중앙일보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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