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전쟁과 트럼프
‘미 역사상 전·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형사 기소된 인물’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준 트럼프의 기소를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그를 비추는 조명의 강도와 미국 사회의 분열상은 비례한다.
공격적인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 입은 거칠기만 하다.. 트럼프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수록 지지자들은 더 결집하고 기부금을 낸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문화전쟁을 캠페인에 이용했다. 인종, 이민, 기후변화, 낙태, 총기, 성 정체성 등의 이슈로 농촌 지역 저소득층의 좌절과 분노를 파고들어 표심을 얻었다. 이로 인해 진보와 보수가 강하게 충돌하고, 영웅 또는 악당으로 양분되는 거칠고 품위 없는 정치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당파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보복 정치로 향했다.
보수와 진보는 문화전쟁 외에 워크네스(wokeness, 깨어남)와 부모권리 운동(parents’ rights movement)을 내세웠다. 진보는 워크네스를 추구하고 보수는 문화전쟁과 강력한 부모의 권리를 옹호하지만 이 세 가지는 씨실과 날실처럼 연결되어 있다.
‘워크네스’는 정의롭고 평등하며 포용하는 사회를 추구하는 진보적 가치관이다. 미국 사회 시스템에 인종차별과 인종주의가 깊이 내재하여 있다며 이의 개선을 요구하는 비판적 인종이론(CRT)이나 흑인 인권 운동도 이에 해당한다.
보수는 문화전쟁을 점점 확대한다. 대학에 다니지 않은 농촌과 소도시 거주 백인들은 전통적 가치와 보수적 정체성을 중시한다. 이들은 문명과 테크놀로지 발달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정치권에서도 잊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민자와 진보를 위협으로 여긴다.
또 CRT는 ‘미국 역사를 백인 우월주의로 묘사한 진보의 사악한 역사관’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문화전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부모권리’ 운동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힘을 얻었다. 지난달 연방하원 공화당은 ‘부모의 권리장전’ 법을 통과시켰다. 핵심은 자녀의 교육과 건강 결정권이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다. 즉, 부모에게 전통적 가치와 믿음을 벗어난 진보적 교육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학교에서 인종, 성별, 성 정체성 등을 다룬 서적들을 추방할 권리도 있다는 것 등이다.
공화당의 문화전쟁은 트럼프의 보복 정치 영향을 받아 과격하다. 한 때 ‘작은 트럼프’로 불렸던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디즈니월드와 1년 이상 다툼 중이다. 작년 3월 디즈니가 ‘교육법상 부모의 권리법(Parental Rights in Education act)’, 일명 ‘돈 세이 게이(Don’t Say Gay)’ 법을 반대하자 드샌티스는 디즈니월드의 특별지역자치권을 박탈하고 지역 운영감독위원회를 해산시켜버렸다.
하원 법사위원장 짐 조던은 트럼프에 대한 수사 기록을 조사하고 검사를 소환하려 한다. 테네시 주 공화당은 총기규제 시위에 참여한 민주당 하원 의원 두 명을 모독죄를 명분으로 의회에서 축출시키기도 했다.
미국 정치는 트럼프가 판 토끼 굴에 갇혀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석회화 된 정치 상황(calcified political state)이라고 한다. 2016년 이래 인종주의는 여전히 미국 정치의 앞자리에 있고 트럼프는 변함없이 공화당 내 실세다.
트럼프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의 위선과 부정직함은 후손과 미래를 위해 수용하기 어렵다.
정 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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