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몽상] 코로나 마스크가 카메오?
억만장자가 소유한 그리스 외딴 섬 저택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섬에 있던 사람은 억만장자와 그의 초청을 받은 손님들뿐. 육지를 오가는 배는 끊긴 상태다. 고전적 추리극의 면모가 물씬하게 풍기는 이 영화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2019년 세계적으로 흥행한 ‘나이브스 아웃’에 이어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속편이다.주요 출연진은 억만장자 역의 에드워드 노턴을 비롯 10명 안팎. 한데 엔딩 크레딧에는 이보다 많은 유명한 이름들이 눈에 띈다. 단역으로 잠깐 출연한 유명인 카메오가 많다는 얘기다.
그중 테니스 스타 세레나 윌리엄스나 첼리스트 요요마, 배우 휴 그랜트 등은 난도가 낮은 편. 누가 봐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 반면 배우 조셉 고든 래빗을 비롯해 사전 정보 없이는 대체 무슨 장면에 어떻게 나왔는지 알아차리기 힘든 경우도 여럿이다. 덕분에 범인 찾기만 아니라 카메오 찾기로도 흥미를 부른다.
미국의 뮤지컬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도 쉬운 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과문한 탓도 있지만, 출연 장면이 워낙 뜻밖이라 짐작도 못 했다. 알고 보면 이 장면에 같이 나온 다른 세 사람도 모두 유명인. 왕년의 미국 프로농구 스타 카림 압둘 자바도 그중 하나다. 안젤라 랜스베리도 있다. 1980~90년대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미국 TV 시리즈 ‘제시카의 추리극장’의 추리소설가 제시카였던 바로 그 배우다.
이들의 등장 장면도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극중 시대 배경에 대한 단서를 또렷하게 흘려 놓았다. 손님들이 억만장자의 섬으로 가는 배에 타기 전, 경호원인 듯한 사람(알고 보면 카메오)이 뭔가 주사를 놓는 장면도 그 예다. 특히 손님들이 저마다 마스크를 쓴 채 선착장에 나타나는 모습은 단박에 코로나19 시대임을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가 지난 연말 넷플릭스에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해도, 마스크는 우리 일상의 필수품이었다. 이제는 의료기관, 대중교통 등을 제외하고 마스크 실내 착용 의무가 해제된 마당이다. 그런데도 습관처럼 마스크를 챙기곤 한다. 팬데믹이 불러온 고통과 비극을 그저 과거지사로 여기기에는 여전히 이른 것 같단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카메오는 카메오일 뿐. 마스크가 상징하는 코로나19는 저명 카메오들이 그렇듯 극중 사건 전개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어쩌면 카메오 아닌 주연으로, 인류가 가장 최근 경험한 팬데믹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영화라면 당분간은 굳이 볼 마음이 내키지 않을 듯싶다.
사족이지만 이 영화는 랜스베리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그는 지난해 이 영화의 공개 직전에 97세로 세상을 떠났다. 손드하임은 한 해 앞서 2021년 91세로 별세했다.
이후남 / 한국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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