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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겨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12월은 엄마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셨던 달이다. 엄마 떠나신 후에, 나의 충견도 겨울에 나를 떠났다. 뒤돌아보니, 눈 끄트머리가 올라가 환도(環刀)를 찬 사나운 일본 군인 같다고 ‘사무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던 흑백색 고양이 녀석도 겨울에 보내주어야 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어른 나잇대의 ‘사무라이’는 고양이 독감에 걸렸던 것 같았다.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을 때, 안락사가 최선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이별, 아픈 이별을 겪었던 겨울이다. 그래도 나는 겨울을 싫어하지 않는다. 좋아하고 사랑한다. 겨울에는 이별이 남기고 간 사랑이 있다. 그리고 겨울은 춥고 가난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안고 있다. 어린 시절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던 행복했던 때이었다. 가난이 깡 추위를 몰아내기 어려워서, 겨울이 불편하고 힘들기는 했다. 창호지를 파르르 떨게 하던 겨울바람이 작고 초라한 난로(煖爐)에 항복했던 때이었다. 난로는 우리가 제 머리에 마구 얹곤 하던 못생긴 고구마를 허락해 주기도 했다.  
 
또 겨울은 춥지만 따뜻하다. 고달픈 당직을 끝내고, 눈 내리는 병원의 돌담길을 어깨동무하면서 걸었었다. 서로에게 보냈던 따뜻함이 엘에이의 으슬으슬한 추위도, 그치지 않는 폭우도 겨울날을 싫어하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제일 무겁게 다가오는 생각이 있다면, 겨울철의 나날은 엄숙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떠들지 말고, 함부로 의견을 내지도 말고, 어딘가 숨어 있을 것 같은, 어쩌면, 맑을 수도 있는 나의 사고(思考)를 찾으면서 지내야 할 것 같다. 그것들이 진정한 나의 사고(私考)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엄마는 오래 앓지 않고 엘에이에서 세상을 뜨셨다. 엄마는 매년 미국 내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60만 명 환자 중의 하나로 통계에 추가되었을 것이다. 미국은 11월, 12월, 1월 겨울철에 많은 환자를 잃는다. 거의 모두가 독감이나, 기관지에 관계되는 질병 탓이다. 참고로, 2020년 통계에 의하면, 자살은 3분기(7, 8, 9월) 때 제일 많았다고 한다. 암에 의한 사망은 계절과 관계가 없다고 보면 쉽게 이해된다.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가 완치될 수 없는 병을 앓고 계심을 알았다. 확진을 받기 위해서 환자들이 통상적으로 거치는 힘든 테스트는 엄마에게 고통만 더할 뿐, 연명의 가능성도, 질적인 삶의 향상도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나의 많은 환자가 그랬듯이, 엄마는 누가 알려드리지도 않았는데, 당신 생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셨다. 어머니의 얼굴은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 거의 없었다. 아픔조차도 표현하지 않으셨다. 어머니의 기둥에 기쁨이나, 즐거움, 행복, 나아가서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가지들이 없지는 않았을 거다. 어머니와 나의 환자들은 생각이 말로 태어나지 못하게 하는 요술을 썼을까. 아니면 태어난 말들을 우물 속, 움푹 파인 돌벽 구덩이 안에 메아리로 만들어서 감추어 놓았을까. 우물은 깊었고, 어둡고, 푸르렀다. 당신들은 우물 깊이 쫓아버린 말들을 길어 올릴 두레박을 쓰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힘든 말을 꺼내어야 했던, 그 겨울날 오후를 잊을 수 없다. 엘에이 겨울날 하늘은 파랬고, 햇빛은 찬란하게 뒷마당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침상은 빛을 거부하고 있었다.
 
우리 형제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시라고 부탁드릴 때, 나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당신의 말씀에 아무런 색깔도 칠하지 않으신 체, 슬퍼하지 말고, 그리워하지도 말고, ‘그냥’ 매일 매일을 잘 살라고 하셨다. 마치, 떠내려가지 못하고, 그것도 오랜 세월을, 출렁이는 냇물에 한없이 부대껴서 둥글어진 창백한 돌멩이 같았다.
 
나는 떠남이 있던 날들을 그리워하면서, 겨울날을 ‘그냥’, 잘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해 본다. 비가 내리고 있는 추운 겨울날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니카 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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