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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코리안 아메리칸’ 삶 자체가 기적

김형재 사회부 부장

김형재 사회부 부장

1903년 1월 13일 오전 3시 30분쯤 하와이 호놀룰루 제2부두 7선창에 미국 상선 겔릭호(Gaelic, Oriental and Occidental Steamship Co)가 도착한다.
 
배 안에는 대한제국(망해가던 조선의 현실을 극적으로 반영한 국호답다) ‘집조’를 손에 쥔 102명이 타고 있었다. 태어나서 3주 넘게 배를 탄 적도, 망망대해 태평양을 건너본 것도 처음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항에서 일본 고베항으로 가는 배를 탔다. 감리교인 50명, 제물포항 노동자 20명, 농부 등 전국에서 자원한 51명 등 총 121명 중 19명은 신체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미국행 겔릭호에 탈 수 없었다.
 
102명(남자 48명, 여자 16명, 어린이 22명 등)은 태평양 추운 겨울바다를 건넜다. 호놀룰루항에서 여명을 맞았다. 어떤 심경이었을까….한인 첫 집단이민 역사, ‘코리안 아메리칸’의 삶과 이야기의 시작이다.
 


아메리칸 드림, 한인 이민선조 개척자의 삶은 처절하고 고달팠다.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오하우섬 북단 와이아루아·모쿠레아 사탕수수 농장에서 ‘뼈 빠지게’ 일을 시작했다.
 
일본과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된 1905년까지 이민 선조 7226명(미주 한인이민 100년사)이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으로 취업했다. 말이 취업이지 시간당 19센트의 최저임금만 받고 일했다. 불과 2년 사이 7226명이나 하와이로 이주한 역사에는 ‘싸게 부려먹어도 일 잘하는 코리안’이라는 당시 농장주의 셈법도 작용했다. 국력이 다하고 기근에 시달리던 대한제국 정부 역시 저임금 노동자 수출에 호의적이었던 셈이다.
 
초창기 이민 선조의 일상은 고된 삶의 연속이었다. 이역만리 땅에 발을 디딘 이상 돌아갈 수도 없었다. 사탕수수 농장 ‘노동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적응에 애쓰고, 자유의 몸이 된 뒤부터 본격적인 현지 정착에 나섰다. 이들은 새 이민선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하면 백의민족 옷을 차려입고 환영에 나섰다.
 
1910년부터 1925년까지 고공덕, 천연희, 유분조 등 ‘사진신부’ 950여 명은 하와이 한인사회에 생기를 돌게 했다. 남편 될 노총각 남자(사진 신부보다 10~30세나 많았다)의 사진만 보고 미국행 배를 탄 ‘신여성’들이었다. 신여성들은 한인사회 첫 2세대를 낳은 어머니로서 한인사회 정체성을 구축했다.
 
저임금 노동자인 이민집단은 자녀 교육에 헌신했다. 이들은 영어를 배우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학교와 교회를 세웠다. 신여성 어머니들은 한영 국어교재를 직접 만들어 ‘한국어 뿌리교육’을 강조했다.
 
하와이 노동계약 만료 후 샌프란시스코, LA, 덴버, 뉴욕까지 본토 정착에 도전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을 규탄하고 일본 대사관과 미국 정부에 당당하게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농장 노동자, 세탁소 종업원, 벨보이, 집사, 일용직 등 힘든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자아 정립은 확실히 한 셈이다.
 
뿌리를 지키려는 노력과 힘은 한인 이민사회 발전의 토대였다. 1910~40년대 캘리포니아 중부 리들리·다뉴바에서는 한인 첫 백만장자가 탄생하고 한인촌이 만들어졌다. 1920년 빼앗긴 조국을 되찾자며 윌로우스 비행학교도 창설했다. 광복 후 제2 이민 물결이 시작될 때까지 이민 선조들은 저마다의 소중한 삶을 개척했다. 1960~70년대 제2 이민 물결로 전국 각지에 터를 잡은 현시대 이민 1세대와 함께 오늘날 250만 미주 한인사회를 가꾼 주인공들이다.
 
1월 13일은 한인 이민 120년, 미주 한인의 날(Korean American Day)이다. 미국에 발을 디딘 한인 모두의 생일, 저마다의 이야기를 기념하면 좋겠다.
 
우리네 삶 자체가 기적이다.

김형재 /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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