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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개스 카드

샌디에이고에 거주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발보아파크에서 열리는 ‘코리아 인터내셔널 하우스(Korea International House)’ 창립 1주년 기념 파티에 꼭 참석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파크에는 세계 32개국이 각자 건물을 지어놓고 문화 교류를 하는 인터내셔널 센터(International Center)가 있다. 한국의 경우 한인 1세들의 노력이 컸다. 터를 장만하고 여러 해에 걸친 모금을 통해 건물을 완성했다. 그리고 지난해, 2세 봉사자들이 힘을 보탰다. 대한민국 홍보는 순전히 그들 몫이었다.
 
친구를 만나는 기쁨과 코리아 하우스의 모습을 마침내 보게 되었다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렜다. 샌디에이고로 몰고 갈 차는 최근에 구입한 수소차였다. 구매 당시 5년간 무상으로 쓸 수 있는 개스 카드를 선물로 받았다. 한 가지 불편은 수소 개스 충전소가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샌디에이고 방문 후 포도주와 올리브 오일로 유명한 테미큘라에 들려 돌아오는 일정은 210마일 거리였다. 개스를 꽉 채우니 차는 270마일을 갈 수 있었다. 60마일의 여유는 나를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흐렸던 아침 날씨가 더없이 상쾌하고 맑은 날씨로 변했다. 햇살이 조금은 눈부시다는 생각을 하다가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개스 카드가  없다. 개스 넣을 때 카드를 바닥에 떨어뜨린 기억을 떠올리자 마음이 급해졌다. 급히 차를 돌렸지만 카드는 없었다. 햇빛이 구름에 가려지고 있었다. 약속했으니 꼭 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고 카드가 생명 줄인데 그것 없이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는 것은 아내의 의견이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 한들 의견이 다르면 서로 으르렁거리게 되는 것은 인생지사인 듯 하다.  
 
수소차는 방향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서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동차 제작 업체인 도요타에 전화를 걸었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통화가  이루어졌다. 세상이 편해 졌다고 하는데 이럴 때면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고객관리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기업이 아닌가. 좋은 소식을 듣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10일 내에 새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개스가 필요하면 일반 크레딧카드를 딱 한 번 쓸 수 있다고 전화 속 목소리는 덧붙이고 있었다. 샌디에이고에서 오는 전화벨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차에 문제가 있어 늦겠지만 반드시 간다고 회답하는 아내의 음성은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샌디에이고 발보아 공원은 넓었다. 공사 중인 곳이 두어 군데 있어서 빙빙 돌아야 했을 때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시간에 맞게 도착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광장은 노래와 춤으로 흥이 돋아 있었고 여러 나라의 색다른 의상은 화려하다 못해 신기해 보였다.
 
1주년 기념행사는 성공적이었다. 300 명 가량의 손님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국 LA총영사, 샌디에이고 시장 및 많은 공직자의 참석은 행사의 의미를 더해 주었다. 성공한 이민 1세 사업가 임천빈 회장의 젊은이들을 향한 연설은 인상적이었다. 로봇 회사 로보링크(Robolink)의 홍한술 사장 등의 출중한 2세들의 성공 이야기는 청중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볼거리와 음식도 최고 수준이었다. 코리아 하우스를 설립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희생과 노력을 다한 모든 분들에게 진심어린 경의를 표한다. 이 프로젝트는 한인들의 자랑이며 샌디에이고 시민들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태평양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산 위에 자리 잡은 친구 집은 환상적이었다. 지난 세월 이야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하룻밤은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끝내기에는 부족했다.  
 
테미큘라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한 번의 두통거리가 있었다. 차가 갈 수 있는 개스는 65 마일인데 가야 할 길은 80 마일이었다. 머리가 묵직해졌다. 차를 멈추고 열심히 검색해 보니 터스틴 충전소가 62 마일 거리에 있었다. 거기다 목을 걸 수밖에 없었다. 충전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빨간 불을 밝힌 개스 게이지는 5마일은 더 갈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저녁이 되면 아내는 연속극을 자주 보는데 그 날은 볼 필요가 없었다. 주말여행은 노부부가 연출한 한 편의 드라마였으므로.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아내의 환호성을 들었다. 아내가 차에서  찾은 작은 청색 봉투에 수소 개스 카드가 들어 있었다.    

이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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