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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수요 없는 공급

온라인 시대에 달라진 소통방식
듣고 싶은 부분만 선택할 수 있어

“내가 살아봤는데 말이야”의 착각
‘높은 분’의 지루한 얘기 안 통해

온라인 참여가 가능한 콘퍼런스는 이제 일상적입니다. 모니터 위로 현장의 열기가 온전히 전해지긴 어렵지만, 현명한 이들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생생한 아이디어와 듣는 이들의 상호 작용은 선물처럼 다가옵니다.
 
찾아가 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에게 축복과 같습니다. 몸이 불편할 수도, 자리를 꼭 지켜야 하는 책무가 있을 수도, 여건이 여의치 않아 이동의 비용을 지불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다녀오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참여에 주저함이 생기지만 새로운 형식을 통해선 손쉽게 가능합니다.
 
발표자 또한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우리 삶의 터전이 예전의 곤궁함을 벗고 한껏 매력을 뽐내는 곳으로 탈바꿈하며 낯선 이들 역시 와보고 싶다 하지만, 알려진 인사일수록 청하는 곳도 많아 인접한 곳이 많지 않은 한반도는 여전히 큰마음을 먹어야 올 수 있습니다. 그분들 역시 간단히 자신의 서재에서 컴퓨터를 켜는 것만으로도 연결되면서 최근 국내 콘퍼런스에 세계적인 저명인사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방식과 새로운 시도가 버무려지며 흥미로운 현상도 보입니다. 행사장의 참여자와 해외의 강연자가 실시간으로 의견을 나누고 온라인 참여자와도 질의응답이 이루어집니다. 현장 전문가와 무대 위 스크린 속 강연자가 토론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납니다. 현장보다 온라인 참여자의 비중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모든 행사를 가상화하는 것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행사의 형식 역시 혼란을 겪습니다. 국민의례에서 내빈소개, 주최 측의 환영사와 주요 인사들의 격려사를 거쳐 단체촬영에 이르는 일련의 식순은 오프라인 행사에서 으레 하던 일이었지만 현장에 있지 않은 온라인 참여자 입장에서는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편집으로 축약되지도 않은 고정 앵글의 축사를 실시간으로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모니터 위 다른 윈도에 손이 갑니다. 유튜브의 섬네일마다 온갖 흥미로운 동영상들이 저마다 눌러 달라 재촉하고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참여자의 이름을 한 명씩 나열하며 몇 페이지에 달하는 원고를 천천히 읽고 계신 것을 끝까지 듣는 것은 보통의 인내심으로는 어렵습니다.
 
여기에 이르면 기시감이 듭니다. 어릴 적 애국조회에서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듣기까지는 험난한 단계를 거쳤습니다. 수업이 시작하기도 전의 이른 아침 운동장에는 1학년 1반에서 6학년 8반에 이르는 수천 명의 아이가 차례로 오와 열을 맞춰 모였습니다. ‘앞으로나란히’와 ‘차렷’ ‘열중쉬어’ 구령은 조용히 하라는 호통과 함께 쉬지 않고 한껏 자라는 밝은 아이들을 닦달했습니다. 손이 곱아지는 추운 날씨에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은 ‘학교에서 가장 높은 분’의 이야기에 까닭 모를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식순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상장 수여를 거쳐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서 절정을 이뤘습니다. ‘끝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야기하면’과 같이 끊임없이 이어지던 훈화는 우리 중 누군가가 쓰러져야 끝났다는 우스갯소리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사이 지금도 회자합니다.
 
이처럼 시공간의 제약으로 사람들을 집중시켰던 권위는 이제 해체되고 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들을 수도, 중간에 흥미가 떨어지면 다른 콘텐트로 곧바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발견하면 그분의 다른 강연을 찾아서 들을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과 문화는 우리에게 강요가 아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합니다. 식장에 왔으니 내 이야기는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것 역시 이미 저마다 가진 스마트폰의 도움으로 유체이탈이 가능했는데, 이제 공간의 해방까지 이루어지며 더욱 강제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이야기 역시 상대가 듣고 싶게 해야 합니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말하고 싶은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게끔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와 함께 공부하는 영민한 도반은 세대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수요 없는 공급”이라 정의 합니다. 상대가 원치 않는 정보를 오지랖 넓게 강요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내가 살아보았는데 말이야” 혹은 “잘 모를까 해서 알려주는 것인데”라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 의사소통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는 통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똑똑해지는 선택의 시대, 정보도 ‘수요를 기반으로 한 공급’의 세상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송길영 /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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