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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한국 문학에 나타난 미국

나는 올해로 45년째 미국에 살고 있는 재외동포 또는 재외한인이다. 한국에서 산 날보다 미국에서 부대낀 세월이 훨씬 길다. 그런데도 미국을 잘 모른다. 미국이 어떤 나라냐, 미국인은 어떤 사람이냐 라는 질문을 받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자신이 전혀 없다. 살아갈수록 모르는 것만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살면서 겪은 일이나 얻어들은 풍월은 더러 있지만, 그런 토막상식으로 미국을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아마도 줄곧 코리아타운에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 대해서 좀 깊고 정확하게 알고 싶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이리저리 자료를 찾으며 공부한다. ‘한국문학에 나타난 미국’ 같은 거창한(?) 주제도 그런 공부 중의 하나다.
 
우리에게 미국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다룬 문학작품은 상당히 많다. 그 중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작품은 남정현의 ‘분지’, 천승세의 ‘황구의 비명’, 조해일의 ‘아메리카’, 최인호의 ‘깊고 푸른 밤’, 문병란 시집 ‘양키여 양키여’, 오세영 시집 ‘아메리카 시편’ 등이다. (지극히 개인적 소견이다.)
 


언론인들이 쓴 날카로운 칼럼집이나 지식인들의 기행문 중에도 중요한 작품이 많지만, 아무래도 문학작품에 더 주목하게 된다. 오세영 시집 ‘아메리카 시편’은 짧고 날카로운 풍자로 많은 깨달음을 준다. 오세영 시인이 1995-96년 UC 버클리의 교환교수로 미국에 살면서 관찰한 문명비판 시집인데,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쳐버린 것에서 근본적인 핵심을 짚어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가령, 햄버거는 아메리카의 사료, 콜라는 아메리카 성인들의 모유라고 비유한다. 미국 문명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햄버거와 콜라가 단숨에 정리되는 기발한 시적 상상력에 감탄하고 공감하게 된다. 몇 구절 옮겨본다.
 
“나는 지금/ 햄과 치즈와 토막난 토마토와 빵과 방부제가 일률적으로 배합된/ 아메리카의 사료를 먹고 있다.”-〈햄버거를 먹으며〉 부분
 
“콜라는/ 아메리카 성인들의 모유일까,/ 어머니의 젖을 먹지 않고 자란 사람들의/ 대리 대상일까?/ 사랑의 결핍을 채우려 마시는/ 아메리카의 콜라”
 
시인의 머리말도 눈길을 끈다. 이 시들이 미국 사회 혹은 미국 문명을 비판한 것이지만, 사실은 거기서 오늘의 우리를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역설적이지만 나는 우리의 얼굴을 우리나라에서가 아니라, 미국에 가서 들여다본 셈이 된다.”
 
시인은 이런 현실이 벌어지는 이유 중의 하나로 “한국이 세계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미국 이상의 ‘미국’적인 나라가 되어버렸다”는 점을 들었다. 이건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지점이다.
 
지금 서울의 번화가에 가면 정말로 미국의 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겉모습은 그렇다 쳐도, 정신세계까지 ‘미국 이상으로 미국적’이 되어버려서는 곤란하다. 아주 심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면에서는 한국은 이미 미국의 한 주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할 지경이다.
 
실제로, 한국 근대화 과정의 특수성과 단기간에 이룬 산업화는 미국의 강한 영향력 아래 이루어졌다. 거칠게 말하면,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은 미국 흉내내기였다.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하고, 미국 팝송을 듣고, 콜라를 마시면서 자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다.
 
이 숙제는 반세기 가까이 미국에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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