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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음료수로 세계를 정복한 코카콜라

1886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존 펨버튼 박사는 자신의 약국 뒤뜰에서 코크 잎 물에 설탕, 포도주 한 방울을 혼합한 음료를 팔기 시작했다. 원래 이 음료는 신경안정제로 사용되었으며 부인병, 두통 등에  효과가 있었다. 이것이 세계 음료 시장을 장악한 코카콜라의 시작이었다. 지난 1993년 이미 코카콜라가 판매되는 국가는 195개에 달했다. 당시 유엔 가입국 184개보다 많았다. 세계적으로 초당 약 4만 개가 소비될 정도였다.  
 
코카콜라가 세계 음료 시장을 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비밀의 제조기법, 두 번째는 광고전략, 셋째는 치밀한 정치관계 활용, 넷째는 기업 철학이다.  
 
코카콜라 제조법은 여전히 비밀이다. 펨버튼 박사는 약국에 드나드는 손님들에게  더운 여름철에는 얼음을 넣어서  시원한  맛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그는 조제법을 약간의  돈을 받고 팔아넘겼다. 이를 넘겨받은 사람들이 더 개발한 것이 코카콜라다. 콜라의 제조법은 두 명의 화학자만이 알고 있으며 암호명 7-X 라는 이름으로 금고에 비밀리에 보관돼있다.
 
코카콜라의 맛이 아무리 좋아도 기발한 광고가 아니었으면 오늘날의 성공을 가져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표적 광고 전략은 유명인사의 보증 선전이다. 유명인사들이 직접 코카콜라를 들고 즐기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이 음료수가 마치 기적의 물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코카콜라 CEO와 직원들은 군부대를 찾아다니며 콜라를 공급했다. 1970년대 미국의 불경기로 코카콜라도 판매고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코카콜라는 공익광고를 시작했다. ‘미국을  다시보라’라는 광고를 통해 미국은 여전히  훌륭한 나라이며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나라라고 광고했다. 카우보이에서 자유의  여신상, 바비큐를 굽고 있는 중산층 모습까지  미국의 긍정적인 면을 광고에 담았다.  
 


미국 대통령 중 아이젠하워는 코카콜라 광이었다. 케네디,  존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독일의 헐무트 콜 총리도 좋은 홍보 대상이었다.
 
동서냉전이 시작되면서 코카콜라도 어려움을 겪었다. 동유럽 공산국가에서는 자본주의 상장이라며 코카콜라 수입을 막았고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진보 정당들도 착취자의 상품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프랑스에서는 포도주와 탄산수 산업이 위협을 받자 코카콜라 수입을 금지하는 법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법은 미국 정부의 압력으로 시행되지 못했다.  
 
코카롤라는 90년대 말 성장 정체 현상을 보였다. 미국시장은 포화상태를 보였고 아시아와 남미 등 해외시장도 규제 강화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에 코카콜라 경영진은 “다른 나라의  정치 경제적 조건과 관계없이 우리 제품을 팔 수 있어야 한다”며 적극적인 판촉에 나섰다. 코카콜라의 가치를 앞세우는 전략이었다.  
 
요즘 많은 전문가는 콜라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한다.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종류의 청량음료(Soft Drink)와 주스,차 등 경쟁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도 이런 시장 변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생산제품과 기업문화의 변화를 시도했다. 오만과 지나치게 격식을 따지던 내부조직의 문제점 개선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한  것이다. 

김기천 / LA 카운티중소기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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