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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신앙심과 폭력 사이에서

종교의 신앙심과 폭력 사이의 갈등은 인류의 오랜 질문 중의 하나다. 역사의 갈피마다 만나는 질문이기도 하다. 종교는 폭력을 적극 부정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십자군전쟁처럼 많은 전쟁이 종교 때문에 일어난 것이 현실이다. 천주교신자인 안중근 의사의 거사도 그렇다. 김훈의 신작 ‘하얼빈’도 그런 갈등을 그리고 있어서 감동적이다. 나는 읽는 내내 깊이 공감하면서도, 쉽게 술술 읽을 수는 없었다. 내 젊은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같이 연극을 하던 동료 중에 신부가 되려고 소신학교를 다녔지만, 이런저런 형편으로 대학은 법대를 나오고, 외교관이 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안중근 도마의 신앙심과 나라를 위한 애국심으로 사람을 쏴 죽여야 하는 인간적 고뇌를 연극으로 만들고 싶어서, 희곡으로 썼다. 안타깝게도 공연이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큰 공부를 했다.  
 
그 뒤로 내가 존경하는 출판인인 ‘열화당’ 이기웅 사장의 안중근 의사에 대해 각별한 존경과 사랑을 보면서 또 많은 것을 배웠다. 이기웅 사장은 안중근 의사의 공판기록을 꼼꼼히 챙겨 책으로 펴냈고, 파주에 출판단지를 조성하면서 ‘응칠교’라는 다리를 만들기도 했다. (응칠은 안중근의 어린 시절 이름이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그동안 소설, 연극, 영화, 뮤지컬로 끊임없이 소개되었다. 대부분이 찬양 일색의 영웅적 서사로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다. ‘대한국인’이라는 서명의 힘찬 붓글씨도 유명하다. 하지만, 안중근의 인간적 고뇌를 그린 작품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김훈의 ‘하얼빈’이 더욱 반갑다.  
 


한국 천주교는 안중근 의사의 거사 이후 긴 세월 그를 ‘살인하지 말라는 교리를 어긴 죄인’으로 규정해왔다. “악을 악으로 무찌른 자리에는 악이 남는다”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고집해온 것이다. 그런 생각의 벽이 깨진 것은 1993년이었다. 김훈의 ‘하얼빈’은 이 사실을 후기에서 슬그머니(?) 언급한다.
 
“1993년 8월 21일 서울 대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은 안중근 추모 미사를 집전했다. 이 미사는 한국 천주교회가 안중근을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최초의 미사였다. 김 추기경은 이 날 미사의 강론에서, …(중략)… 안중근의 행위는 ‘정당방위’이고 ‘국권 회복을 위한 전쟁 수행으로서 타당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려 80년도 넘게 걸렸다. 긴 세월 한국 천주교회는 공식적으로 안중근의 행위를 ‘역사 속에서 정당화하지 않았고, 교리상으로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안중근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 안중근 의사와 함께한 동지 우덕순(1879-1950)이 지었다는 시(詩) ‘보난대로 죽이리라’는 매우 뜨겁지만, 살벌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하지만, 신앙인 안중근의 생각은 그런 단순한 증오심이 아니었다. 평화를 위한 폭력… 그래서 인간적 고뇌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그대가 믿는 천주교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
 
일본인 수사관의 질문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대답이다. 생각이 뚜렷하고 당차다. 또, 신부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제가 이토의 목숨을 없앤 것은 죄일 수 있겠지만, 이토의 작용을 없앤 것은 죄가 아닐 것입니다.
 
교회 안의 종교적 진리와 교회 밖 세상의 정의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신앙과 폭력, 불의에 맞서는 힘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남의 얘기나 옛날의 문제가 아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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